[표류하는 제주문화예술재단] ② 코로나19 뒷북 조치, 아트플랫폼 “신임 이사장 오면...”

전임자의 사퇴 이후 공백이던 제주문화예술재단 이사장 자리가 5개월 만에 채워졌다. 신임 이승택 이사장에 대한 기대와 우려의 시각이 공존하지만, 조직에 대한 각종 문제들이 해결 없이 쌓이기만 해온 상황에서 새 이사장의 어깨가 어느 때보다 무겁다는 사실에는 논란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제주의소리]는 지난 5개월 간 이사장 공백 상태로 표류해온 제주문화예술재단이 처한 현실과 문제점, 나아가 대안까지 차례로 짚어본다.  [편집자 주]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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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 이사장 오면 해야죠. 지금은 뭐….”

140일 간의 제주문화예술재단(문예재단) 이사장 공백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되는 것도 없고, 안 되는 것도 없는’ 답보 상태였다. 더욱이 코로나19라는 엄중한 시점이었기에 문예재단과 제주도 예술 당국의 판단과 대응은 실망감을 넘어 상실감까지 안겨준다.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은 문화예술계에도 공공 민간 가리지 않고 모든 공연장, 전시장의 문을 닫게 했고 사람들의 발길은 뚝 끊겼다. 창작 작업, 교육 활동, 외부 활동도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대면 접촉으로 감염병을 옮기는 코로나 시국에서 예술은 존재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 단순 예술인들의 경제적인 위기뿐만 아니라 ‘포스트 코로나’라는 거시적인 상황까지 함께 고민해야 하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위로하고 가치를 전하는 예술인들의 활동이 자칫 감염병을 전파하는 창구와 동일하게 취급받을 수 있다. 예술 창작이란 무엇인지, 대중과의 소통 방법은 무엇인지 대안을 찾아야 할 시기다.

그러나 코로나 위기 때 문예재단이 보여준 모습은 부유(浮遊) 상태에 머물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1월 20일 코로나19 첫 국내 확진자가 발생하고, 정부가 감염병 위기경보 단계를 최고 단계인 ‘심각’으로 올린 시점이 2월 23일이다.

문예재단은 3월까지 예술경영지원센터가 제공하는 코로나19 관련 정부 지원 제도를 소개하고, 재단 사업 참가자에게 코로나 대응을 정해주는데 그쳤다. 4월에는 도립 공연과 예술단체 주관 행사를 온라인 비대면 중계로 전환하고 본격적인 피해 현황 파악에 나섰다. 그렇게 해서 4월 27일이 되어서야 제주도와 문화예술재단의 공식적인 코로나19 지원 대책이 나온다.

대책을 살펴보면 정산 처리에 대한 손실 최소화, 기획비 인정은 이미 재단이 3월에 진행한 사업 별 대응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창작기획안 공모 기획료 정액 지원 ▲대관료 전액 지원 ▲온라인 공연, 영상 제작 지원 등 나머지 지원 대책은 모두 ‘추경 통과’를 전제로 세운 조건부 대응에 그친다.

2월 21일 코로나 관련 첫 대응책을 발표하고, 3월부터 예술창작활동 지원 선정자 550여명에게 300만원 씩 활동비를 우선 지급하면서, 4월 6일부터 총 45억원의 예산을 확보해 최소 50만원부터 최대 2000만원까지 예술 현장을 지원한 서울문화재단과는 엄청난 차이를 보인다.

서울문화재단은 기존에 계획했던 사업을 재조정해 15억4000만원의 추가 지원 재원을 확보했는데, 이 사실을 발표한 시점은 제주 지역 첫 코로나 대책이 발표된 지 이틀 뒤인 4월 29일이다.

제주 지역 예술 행정의 코로나19 대응은 사실상 지원 사업에 참여한 예술인을 주 대상으로 삼고 있기에, 이번 위기 상황에서 제주도와 문예재단이 보여준 태도는 상당수 문화예술인들에게 절망감을 안겨줬다. 문예재단의 코로나19 대처에 대해서는 유기적으로 협업해야 할 사업부서와 기획부서 간의 간극도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발등의 불’이었던 코로나19도 대처하지 못했는데 최대 현안인 ‘제주아트플랫폼’ 조성사업 역시 제대로 추진될 리 만무하다.

제주아트플랫폼은 막대한 재단 재산을 사용하면서 그동안 제주가 갖추지 못한 공공 공연연습장과 예술인회관 문제도 함께 해결하는 숙원 사업이지만, 도의회의 문제 제기에 발목이 잡혀 현재 1차 계약 체결 이후 전혀 진전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제주아트플랫폼 사업은 실내 놀이공원 재밋섬 건물을 인수해 리모델링하는 내용이다. 

검찰 고발과 무혐의 처분, 감사위원회 감사 등 지난한 과정을 거치면서 지난해 11월 12일 ‘제주아트플랫폼 타당성 검토위원회’ 1차 회의가 열렸다. 검토위원회는 ‘조성 사업의 문제점과 타당성을 검토하고 사업 추진 여부 등 효율적 해결 방안을 모색’하는 역할이다. 

하지만 검토위가 만들어진 지 반 년을 훌쩍 넘었지만 타당성 검토위는 공개적으로 어떤 결과도 내놓지 못하고, 제주아트플랫폼 사업은 제자리걸음 중이다. 지난 3월에야 문예재단 본부장들과 이사장 권한대행이 계약 당사자인 재밋섬 대표와 만났지만, ‘신임 이사장을 선임하면 해결될 것’이라는 입장만 반복한 사실을 봐도 잘 알 수 있다.

문예재단 앞에 놓인 숙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문예재단 이사진 구성에 ‘쓴소리’를 제기해온 민예총 인사를 완전 배제하고 예총 인사 위주로 구성하면서 편향된 구성 논란을 자초했다. 상식에도 벗어나고 신임 이승택 이사장의 행보에도 결코 도움이 되지 않을 결정이다. 문화예술인 복지 증진을 위한 제도적인 작업 역시 손을 놓고 있는 등 해결해야 할 과제들은 차고 넘친다.

여기에 엄연히 독립된 기관임에도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기 보다는 사사건건 도청의 눈치를 보고 있다는 비판은 가슴 아프게 새겨야 할 대목이다. 문예재단에 독립적으로 주어진 인사·조직개편 권한까지도 일일이 도청의 의견을 묻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과정서 ‘NO’는 못하고 ‘YES’만 되풀이하는 행태에 대한 조직 내부의 비판이 거세다. 

주어진 권한은 주체적으로 수행하고 그것에 대한 감시와 평가를 절차에 따라 정상적으로 받으면 되는 일이다. 그러나 현재 문예재단은 제주도의 외청 하부 부서 내지는 하청업체처럼 끌려 다니기에 급급한 '패배주의'가 만연해 있다는 안팎의 평가에 귀 기울여야 한다. 인사·조직 개편 등 재단 내적인 문제는 더이상 늦출수 없는 숙제다. 

도내 한 공연 예술인 A씨는 “코로나가 문화예술계에도 심각한 피해를 주고 있는 상황에서 문예재단이 대체 왜 있는지, 무슨 역할을 하는지 깊은 회의감이 들었다. 신임 이사장이 왔는데 과연 독립적이고 주체적으로 현안들을 풀어나갈지, 재단의 존재 이유를 보여줄지 걱정이 크다”라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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