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현장] BCT노조 파업 55일째 협상결렬...건설현장 ‘암울’, 웃돈 들여 ‘임시방편’

제주시 한경면 소재의 어느 건설현장. 장기간 콘크리트 타설공사를 진행하지 못하면서 거푸집과 비계 등이 무너져 내리고 노출된 철근들도 심각히 녹슬고 있다. ⓒ제주의소리
제주시 한경면 소재의 어느 건설현장. 장기간 콘크리트 타설공사를 진행하지 못한 이 곳도 거푸집과 비계 등이 무너져 내리고 노출된 철근들도 심각히 녹슬고 있다. ⓒ제주의소리

제주지역 벌크 시멘트 트레일러(BCT) 운전자들의 파업이 55일 째로 접어들면서 시멘트 타설을 필요로 하는 건설 현장 역시 마비돼 초비상이 걸렸다. 상온에 노출된 철근이 녹이 슬기 시작했고, 장마철까지 앞두고 있어 우려가 커지고 있다.

BCT운전자들이 현실을 반영한 안전운임료 인상을 요구하며 무기한 파업에 돌입한 것은 지난 4월 10일. 파업이 장기화됨에 따라 건설 현장이 연쇄적으로 중단됐고, 나날이 피해가 늘어나고 있다. 심지어 현장의 일용직 근로자들도 생계를 위협받는 실정이다.

제주도당국의 중재로 BCT노조와 시멘트업계가 참여하는 3자 교섭이 지난달 20일과 28일, 이달 2일 세차례에 걸쳐 진행되기도 했지만 끝내 협상은 결렬됐다. 파업이 언제까지 진행될지 아무도 가늠할 수 없는 시점에 이르렀다.

3일 오후 찾은 제주시 병문천 하류 하천재해 예방사업 현장은 붉은 철골이 볼썽사납게 방치돼 있었다. 다리 아래로는 탁한 물이 끊임없이 흐르고 있었지만, 근로자들은 멍하니 현장을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BCT노동자 파업 장기화로 철골 공사중 멈춰선 제주시 병문천 하천재해예방사업 현장. ⓒ제주의소리
BCT노동자 파업 장기화로 철골 공사중 멈춰선 제주시 병문천 하천재해예방사업 현장. ⓒ제주의소리

현장 관계자는 "늦어도 다음달까지 끝낼 예정이었던 시멘트 작업이 두 달째 중단됐다. 언제 파업이 풀릴지 모르는 상황이다보니 철골을 올리는 것도 무기한 연장되고 있다"고 말했다.

제주시내 한 초등학교 역시 바닥에 시멘트를 덧입히는 작업을 진행하지 못하고 있었다. 코로나19를 이겨내고 겨우 등굣길에 오른 아이들은 굴곡진 바닥에서 위험을 감수해야 했다.

시급한 현장은 BCT 대신 '울며 겨자먹기'로 포대 단위의 시멘트를 구입해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과거 방식으로 삽으로 시멘트를 개우는 경우도 허다하다는 것이 현장의 전언이다. 이 경우 기존에 비해 약 30% 이상의 비용이 추가 소요된다. 현장 규모에 따라 상당한 부담이 될 수 밖에 없다.

제주시민 A씨는 최근 웃돈을 얹어 포대 시멘트로 공사를 진행해야 했다. A씨는 "더이상 시간이 지체되면 공사 자체를 갈아엎어야 한다니, 피해를 감수하면서라도 결정할 수 밖에 없었다. 말이 30%지 수천만원이 왔다갔다하니 속이 쓰리더라"고 답답한 심경을 토로했다.

제주도에 따르면 5월 중순까지 시멘트가 공급되지 않아 중단된 공사현장은 총 88곳이다. 아파트 7곳, 연립주택 8곳, 다세대주택 12곳, 단독주택 3곳, 숙박시설 7곳, 근린생활시설 24곳, 업무시설 8곳, 공공건축물 5곳, 기타 14곳 등 피해가 뚜렷했다. 

공공분야의 피해 역시 만만치 않다. 강당을 신축하거나 건물을 증축하던 함덕고, 서귀여중, 구좌중앙초, 금악초, 대흘초, 선흘분교, 세화초, 해안초, 법환초, 예래초, 제주동초, 하원초 등 12개교의 공사현장은 하루 아침에 마비됐다.

제주시내 중단된 관급공사도 50여건이 넘어섰다. 병문천 재해예방사업을 비롯해 △퐁낭굴내 소하천 정비사업 △광령4세천 침수지역 정비사업 △월평10길 상습침수지역 정비공사 △서사로·신북로 인도정비 공사 △노형동 재활용도움센터 조성공사 등도 멈춰섰다. △외도동 공영주차장 복층화 사업 △납읍리·청수리 관로 정비공사, 월정리 어촌해양관광센터 신축 등 지역민원 해결을 위한 차원의 사업 역시 중단됐다.

시멘트 타설 작업을 진행하지 못하고 방치된 제주시내 한 초등학교. ⓒ제주의소리
시멘트 타설 작업을 진행하지 못하고 방치된 제주시내 한 초등학교. ⓒ제주의소리

제주도는 5월 중순 이후로는 관련 피해규모를 파악하는 것조차 그쳤다. 시멘트 공급이 중단돼 모든 공사장이 멈춰 선 시점에서 더이상 피해 현장을 꼽는게 무의미하다는 판단이었다.

당면한 상황도 상황이지만, 앞으로가 더 큰 문제다. 현장 관계자에 따르면 공사장 철근은 오랜 기간 노출되면 녹이 슬거나 부식돼 사용할 수 없다. 통상적으로 그 기한을 약 2개월로 잡는다. 

이후에는 기본을 다지는 작업을 원점에서 시작하거나, 건물의 부실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4월 10일 시작된 파업이 50여일째 접어들면서 2개월을 채우는 시점이 임박한 셈이다.

곧 다가올 장마철도 고민거리다. 비가 내리거나 비날씨가 예보되면 시멘트 타설 작업은 불가능하다. 장마철이 돼 비날씨가 이어질수록 손실은 급격히 늘어날 수 밖에 없는 구조다.

한편, BCT노조와 시멘트업계의 입장이 평행선을 그으면서 공은 제주도당국으로 넘어온 모양새다.

지난 2일 진행된 협상에서 BCT노조 측은 '기존 운임 대비 12% 인상안'을 요구했지만, 업계측은 '안전운임의 12% 인상'을 고수한 것으로 전해졌다. 노조측은 "업계의 요구를 받아들이면 노동자들의 소득은 기존에 비해 더 낮아지게 된다"며 강하게 반발했고, 업계측은 "육지대비 비싼 물가와 열악한 제주 운송환경을 반영한 것"이라고 맞서고 있다.

네번째 교섭 일정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업계측은 제주도정이 사태 해결을 위해 직권 조정해 줄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 제주도 관계자는 "서로가 요구하는 입장 차이가 커서 협상이 이뤄지지 못하는 상황에서 어떤 결정이 이뤄지든 부담으로 작용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추후 협의를 통해 입장을 정리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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