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년 시간 속 '도시화'를 돌아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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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世通, 제주 읽기] 168. 최열, ‘옛 그림으로 본 서울’, 혜화1117, 2020.

“정선에겐 한 풍경이고 자연이지만, 김윤겸에겐 바로 할아버지의 자취가 남아 있는 역사이자 가문의 흔적이 아니겠느냐. 그것이 풍경 속에 담겼다.”

저자 최열은 같은 대상을 담은 두 화가의 마음을 이렇게 표현한다. 뚝섬에서 송파나루 건너 멀리 보이는 남한산성을 바라본 풍경을 담은 두 화가 이야기다. 녹청색의 여름날 송파나루를 그려낸 정선과 잔설에 칼바람 부는 쓸쓸한 풍경을 그려낸 김윤겸을 비교한 것이다. 김윤겸은 병자호란(1636년) 당시 결사항전론을 펼친 김상헌의 손자이니 그림을 그린 사람의 마음에 따라 같은 풍경 속에 다른 듯이 담겨있기 마련이다. 이렇듯 이 책은 그림 속에 담긴 사람의 마음을 읽어내기 위하여 다층적인 분석과 해석의 틀을 동원한다. 그 속에는 필시 역사적 사실의 기록과 더불어 시·지각적 감각의 흐름이 담겨있다. 

그림은 감각의 현현이다. 인간의 감각은 개별 인간의 신체가 탑재하고 있는 독립적인 개체이다. 따라서 각각의 인간이 지니고 있는 감각은 그 무엇으로도 치환할 수 없는 고유의 적이며 실재적으로 내면화한 실체이다. 하지만 그 감각이라는 것은 생리학적인 신체 활동이기 이전에 오랜 시간동안 교육을 통하여 형성되는 문화적 집단 심리의 영향 아래 조직된 심리 활동이다. 따라서 인간의 감각은 개별 신체의 것이며 동시에 공동체가 공유하고 있는 집단 심리의 작동이다. 그것은 감각하는 신체를 보유한 인간 존재 개별의 문제이며 동시에 그 감각적 기제를 공유하고 있는 인간 사회 공동의 문제이기도 하다.

이 책 <옛 그림으로 본 서울>은 조선시대 서화를 통하여 조선시대 한양의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오늘날과 같이 가로와 조경, 건축이 근대화, 서구화 되기 이전, 자연의 일부로 존재했던 전근대화, 비서구화 도시 한양의 모습이다. 빌딩에 가려 보이지 않는 서울의 산하는 말 그대로 한폭의 산수화 속에 온전히 담겨있다. 그림 같은 비경이나 절경이 속깊은 수묵이나 화려한 색채 속에 담겨있다. 옛 그림을 통해 본 옛 서울의 면면을 소상히 알려주는 이 책은 지난 400년동안 쌓여온 한양에 대한 시각적 기록의 집대성이다. 당대의 역사적 기록은 물론 생활서적인 면에서도 다채롭다. 궁중 기록화에서 서민 삶의 기록에 이르기까지 옛 그림 속의 서울은 생생하면서도 아련하다.

이렇듯 이 책은 기록의 관점에서 탁월한 연구서이다. 하지만 이 책은 기록학의 성취에 그치지 않는다. 이 책의 진면목은 조선시대 사람들의 시·지각적인 감각의 변천을 일목요연하게 갈파할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서 더욱 흥미롭다. 이 책의 표지화로 쓰인 북산 김수철의 그림은 매우 특이하다. 대관산수라고 하여 웅장하고 심원한 자연의 세계를 보여주는 수묵 산수화의 일반적인 경향과 달리 김수철의 산수화는 밝은 밝은 담채를 동반하여 일반적인 수묵화와는 결이 다른 신 감각을 선보인다. 게다가 한양 도성 내의 수백 수천개 가옥들을 빼곡하게 그려넣은 이 그림은 전통적으로 산수화가 목표로 삼았던 자연의 재현에 그치지 않고 도시의 면면을 대담하고도 세밀하게 담고 있다는 점에서 새로운 감각의 현현을 내비추고 있다.

동시대 미술가들 가운데, 이른바 ‘동양화과’를 나온 이들은 수묵이나 채색안료를 사용하여 종이나 천 위에 모필로 그리는 그림을 동양화나 한국화로 부르며, 자기 정체성을 이어나간다. 이들 가운데 적지 않은 예술가들이 조선의 진경정신을 다시 가다듬어 현대적 감각으로 수묵채색화를 이어나가고자 집단적인 움직임을 보여왔다. 1980년대를 지나면서 진경산수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관념산수에서 진경산수로의 전환은 명나라의 조공국가였던 조선으로서는 담대한 문화적 독립이었을 것이다. 문화적 정체성 탐구에 천착했던 1980년대부터 시작된 진경산수의 재해석은 1990년대를 지나면서 생활 속의 정서를 포함한 일상 담론과 결합하기도 했고, 21세기 접어들어서는 도시화와 공존하는 자연의 모습을 담아내기도 했다. 

현대미술운동을 펼쳤던 미술사학자 최열이 펼치는 조선시대 진경산수의 대서사가 동시대 수묵채색화가들에게, 나아가 동시대의 자연과 인간의 문제를 다루는 예술가들에게, 그리고 서구화한 감각을 장착한 현대인들에게 큰 울림을 준다. 그것은 역사를 통하여 현재를 다시 읽는 지혜의 샘과 같은 것이다. 고전을 통하여 새로움을 창조하는 법고창신의 뜻. 거듭 최열의 노작에 존경과 경의를 표하는 이유이다.

▷ 김준기

홍익대학교 예술학 석사, 미술학 박사.
현(現)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 경기문화재단 '평화예술대장정' 프로젝트 총감독 겸 정책자문위원장, 예술과학연구소장, 지리산프로젝트 예술감독, 미술평론가.
전(前) 부산비엔날레 전시기획 팀장, 부산시립미술관 큐레이터,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연구실장, 제주도립미술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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