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의 힘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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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왓 칼럼] (9) 이주, 공동체, 만남 이야기 / 신현정 제주평화인권연구소왓 상근활동가
편견으로 무장한 이들이 사회적 약자들에게 여전히 반인권적 발언과 행동을 주저하지 않는 일들을 우리는 종종 목격하곤 합니다. 존재 자체로 차별받는 사회적 약자들이 있어선 안됩니다.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 이주노동자, 난민 등 대상은 다르나 일상 곳곳에서 여전히 차별이나 혐오, 폭력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독립언론 <제주의소리>가 인권문제를 다룰 '인권왓 칼럼'을 격주로 연재합니다. 제주평화인권연구소왓을 중심으로 인권활동가들의 현장 목소리를 싣습니다. [편집자 글]

2018년 어느 초여름 저녁, 나는 제주의 어느 지하 연습실에서 진땀을 흘리며 한국어 수업을 하고 있었다. 스무 명이 조금 넘는 외국인들의 두 눈동자가 판서를 하는 나의 손을 따라 움직이고, 내가 발음하는 입 모양대로 그들의 입도 움직였다. 하나, 둘, 셋, 넷. 혹은 일, 이, 삼, 사 같은 숫자와, 간단한 인삿말을 배우고 나면 그들이 준비한 고향 음식을 함께 나눠 먹으며 식사를 했다. 2018년, 제주로 온 예멘 난민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쳐주었던 시간이다.

수업이 끝나면 그들이 준비한 음식을 함께 나눠 먹으며 그들의 삶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예멘에서의 삶에 대해, 제주로 이주해 온 이후의 일들에 대해 듣고 소통하며 우리는 정말로 동등한 친구가 될 수 있었다. 그때 그들을 만나고 관계를 쌓아가는 시간이 없었다면 나 역시 그들을 시혜와 온정의 대상으로 바라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지금도 그때를 삶에서 온전히 평화를 배운 시간이라 말한다.

▲ 예멘인 난민 신청자가 늘자 3층에 임시로 난민 지원실을 운영 중이다. ⓒ제주의소리
2018년 5월 예멘인 난민 신청자가 늘자 제주출입국·외국인청 3층에는 임시로 난민 지원실이 운영되기도 했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2018년부터 2019년까지, 제주에서 평화교육을 하는 친구들은 예멘에서 온 친구들과 함께 ‘희망의 학교’를 진행했다. 희망의 학교는 예멘 여성들과 제주 여성들이 만나 차를 마시는 모임, 예멘인들의 일터로 찾아가 함께 듣고 이야기하는 모임들을 통해 그들과 연결되고자 했다. 만남을 통해 무수한 의문과 편견, 거리두기를 넘어 동등한 친구가 되고자 하는 목적이다.

다들 연결이 중요하다고 한다. 다양성이 중요하다고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야 한다고 한다. 그래서 나 역시 수많은 ‘네트워킹’을 하지만, 정말로 다른 누군가를 온전하게 만나는 것을 경험하기는 여전히 어렵다. 보통의 경우 내가 상대에게 필요한 자원이 있거나, 상대가 나에게 필요한 자원이 있을 때만 우리는 연결될 수 있다. 그러나 그 연결이 정말로 ‘우리’가 되는 경험이었는지, 혹은 개인이 각자의 이득을 취하며 다시 분절되는 경험이었는지를 생각해보면 후자에 가까울 때가 많다.

포스트-코로나 시대의 담론들이 다양하게 쏟아져나오는 요즘이다. 그러나 언택트, 뉴노멀 같은 어떤 논의들은, 때론 누구도 만나지 않고도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을 것처럼 이야기하며 누구도 서로에게 의존하지 않는 관계를 만들어내기를 원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얼마 전 인터넷 쇼핑몰에서 목격한 ‘코로나 시대의 쇼핑, MD 추천’에서는 무인택배함 같은 것을 팔고 있었다. 자본주의는 여전히 비대면 방식으로 물건을 공급받고(택배), 문제를 해결하며(콜센터) 모든 일상을 해결할 수 있을 것처럼 이야기한다. 

신현정 제주평화인권연구소왓 상근활동가.
신현정 제주평화인권연구소왓 상근활동가.

정말로 어떠한 거대한 재난과 위기가 닥쳤을 때 우리는 과연 개인이 모두 분절된 사회에서 생존할 수 있을까. 나는 아니라 생각한다. 거대한 재난이 닥칠수록 우리는 개인이 아닌 집단으로 존재해야 하고, 그 ‘우리’가 되는 경험은 서로를 온전하게 만날 때 가능하며,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삶을 나누는 경험에서부터 출발할 것이다.

2018년 예멘 난민들과 함께 진행한 ‘희망의 학교’는 밥과 대화로 서로의 삶과 경험들을 나누며 분절로 향하는 사회가 아닌 나눔과 공감 속에 연결된 공동체적 사회를 바라는 움직임이었다. 다음 달부터 희망의 학교가 다시 시작된다. 서로의 삶에 대한 이해, 공감의 태도에서 출발하는 진정한 문화 다양성의 제주 사회가 만들어지기를 바란다. / 신현정 제주평화인권연구소왓 상근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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