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청진기] (29) 해수욕장 기능 잃은 ‘그린코스트’를 보며

'제주 청진기'는 제주에 사는 청년 논객들의 글이다. 제주 청년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담았다. 청년이 함께 하면 세상이 바뀐다. 우리 주변의 소소한 이야기에서, 각종 사회문제에 대한 비판적 시선, 청년들의 삶, 기존 언론에서 다루지 않는 서브컬쳐(Subculture)에 이르기까지 '막힘 없는' 주제를 다룬다. 전제는 '청년 의제'를 '청년의 소리'로 내는 것이다. 청진기를 대듯 청년들의 이야기를 격주마다 속 시원히 들어 볼 것이다. [편집자]
파래에 덮힌 성산읍 신양해수욕장. ⓒ김현지
파래에 덮힌 성산읍 신양해수욕장. ⓒ김현지

‘바다는 너무 극성스럽고 욕심을 부리고 안달하는 사람들에겐 보답을 베풀지 않는 법. 보물을 찾아 파헤친다는 건 무엇인가. 초조하게 안달하고 탐욕스럽다는 것만이 아니라, 그것은 곧 신념의 결핍을 나타낸다. 참을성, 참을성, 참을성. 이것이 바로 바다의 가르침인 것이다. 참을성과 신념, 사람들은 텅 빈, 시원스레 트인, 허심탄회한 해변 같은 마음으로 바다가 보내는 선물을 기다려야 한다.’

린드버그가 쓴 ‘바다의 선물’이라는 책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이다. ‘바다의 선물’은 최초로 대서양을 횡단한 찰스 린드버그 대령의 아내가 휴가를 맞아 한 바다의 해변 앞에서 자신을 성찰하며 쓴 에세이다. 

여름이 왔다. 바구니 하나 들고 나가 조개도 파고, 돌 위를 총총 다니며 보말도 잡고, 게도 잡을 시간이다. 친구들과는 웃통을 벗어 던지고 물에 빠져 더위를 식히기도 하고, 해가 지고나면 별이 내리는 바다를 보며 낭만에 젖기도 한다. 바다가 주는 선물을 기다렸던 시간, 그야말로 여름은 축제다. 이렇게 바다는 우리에게 먹을거리와 기쁨, 즐거움을 주지만 무엇보다 그 자신의 모습을 통해 어떤 말을 건네 오기도 한다. 

내가 사는 서귀포시 성산읍 신양마을은 23년째 구멍갈파래가 해변을 뒤덮는다. 이 구멍갈파래가 떠밀려오기 시작하면 300m에 이르는 모래사장은 순식간에 초록으로 뒤바뀐다. 며칠 그대로 방치가 되면 악취가 나기 시작하고, 해안을 온통 장악한 파래들로 인해 마을 주민들과 관광객들은 눈살을 찌푸린다. 그나마 해수욕장을 앞둔 때에는 포크레인이 동원되기도 하지만, 어떤 때는 감당이 되지 않아 그 파래 위에 다시 모래를 덮어버린다.

파래에 덮힌 성산읍 신양해수욕장. ⓒ김현지
파래에 덮힌 성산읍 신양해수욕장. ⓒ김현지

파래 이상 번식에 대한 원인으로 조류 소통 문제, 지형적 요인 등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을 것으로만 추정하고 있어 실질적인 대책 마련은 어려운 실정이다. 도에서는 ‘파래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수거 인력·장비 지원과 자원화 방안, 장기적으로는 근본적인 원인을 없애는 방안 마련의 필요성에 대해 언급을 하고 있지만, 실제적으로 현실화하기란 어렵다. 결국 전문가들은 그것들을 ‘수거’하는 것만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라고 말한다.

도내에서 발생하는 파래는 연간 138㏊의 면적에 1만t으로 추정되고 있고, 신양해수욕장은 2018년 7월 말 기준 1600톤이 발생했다고 한다. 같은 기간 신양해수욕장에 총 4억원의 사업비가 투입돼 수거작업이 이뤄지기도 했지만, 그 효과는 매우 미미했던 것으로 평가됐다.

난 종종 신양해변은 ‘그린코스트’라며 웃어대지만, 사실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가끔 소름이 끼칠 때가 있다. 한발도 들이지 못하게 겹겹이 층을 만들어 입구를 봉쇄한 모양을 볼 때다. 그 모습으로 사실상 해수욕장의 기능을 상실시킨다. 바다는 우리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일까. 바다는 이번 여름에도 어김없이 ‘선물’을 보냈다.

김현지는?

만 26세. 성산에서 나고 자랐다. 대학 진학으로 육지생활을 하다 우리 마을이 제주 제2공항 예정지가 되면서 신문에 대문짝하게 난 것을 보고는 3년 전 고향으로 돌아왔다.

마을에서 동네친구들과 주민들과 소식지 제작 등 이것저것을 한다. 환경보호 웹진을 만드는 해양레포츠 기업에서 근무하고 있다. 강아지를 좋아한다.

※ 필자 사정으로 원고 게재일이 하루 늦어진 점 사과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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