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희의 노동세상] 28. 사고 반복 막으려면 중대재해기업처벌법 필요

지난해 11월 19일 제주학생문화원 '미래의 자리'에서 故 이민호군 추모조형물 제막식 및 추모제가 열렸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지난해 11월 19일 제주학생문화원 '미래의 자리'에서 故 이민호군 추모조형물 제막식 및 추모제가 열렸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제주시 학생문화원을 들어서면 정면을 바라보고 왼편으로 다른 조형물과 어우러져있는 18세 현장실습생 이민호 학생의 추모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다. 특성화고 학생을 노동력 제공 수단으로 활용하는 파견형 현장실습제도를 하지 않겠다는 제주도교육청 이석문 교육감의 약속 이후 추진되어 설치된 조형물이다. 

2017년 11월, 구좌읍 용암해수단지내의 제이크리에이션이라는 음료공장에서 18세 현장실습생이 기계에 목이 끼는 산업 재해가 발생했다. OECD국가 중 산업 재해로 사망하는 노동자가 압도적으로 높은 노동 현장에서 학생을 값싼 노동력으로 활용하는 현장실습 제도 하에 학생의 죽음이 반복되고 있던 찰나였다. 이민호 학생은 사고 이후 한마음병원 중환자실에서 집중 치료에 들어갔지만 결국 영영 가족의 곁을 떠나고야 말았다. 

이 죽음에 대한 책임을 묻는 2심 재판의 최종 선고가 오늘(14일) 있었다. 앞서 1심을 맡은 제주지방법원은 이 죽음에 대한 사업주의 책임에 대해 벌금 500만원, 징역2년에 대한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사업주는 구속되지 않았고 향후 3년 동안 공장에서 같은 사고가 발생하지 않으면 그 형벌은 끝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이크리에이션 사업주는 선고가 과해서 부당하다면서 1심에 대하여 항소했고 2심 재판으로 이어졌다. 대책위와 유족 측에서도 항소했다. 학생이 죽었는데 책임지는 사람이 없었다. 

사건에 대한 대응을 하면서 2심 재판부는 1심 재판부보다는 심도 깊게 살피려 노력했다고 평가한다. 재판의 결과가 사회에 미칠 영향이 컸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1심 재판부보다는 사망사고의 원인과 그 과정에서 사업주의 과실여부에 대하여 꼼꼼히 따지려 했다. 

2017년 7월, 구좌읍 제이크리에이션 공장으로 현장실습을 나간 서귀포산업고등학교 학생들은 월요일에 회사에 들어가 금요일에 집으로 가는 기숙사 생활을 시작했다. 기숙사라고 하지만 따로 갖춰있는 것은 아니었고 공장 바로 옆 건물 사무실 건물 3층 구내식당 옆에 임시로 2층 침대 등을 놓고 사용하던 곳이었다. 

이민호 학생이 현장실습을 시작하면서 맡게 된 역할은 포장된 음료 팔렛트를 지게차로 옮기는 것이었다. 전공과는 관계없었지만 이민호 학생은 현장실습을 위해서 지게차 면허를 땄고, 그에 맞는 역할을 하게 되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민호 학생은 상주하는 현장실습생들의 반장 격으로 함께 파견된 실습생들의 끼니를 챙기고 관리자와 소통하는 역할을 했다. 일하는 것에 대해 눈썰미가 좋은 이민호 학생에게 회사는 포장라인 전체에 대한 업무를 알려주었다. 원예과 출신이었던 이민호 학생은 포장 기계와 관련해서 학교에서 배운 것은 없었지만 회사에서 알려주었던 대로 일하면서 포장 라인을 가동시켰다. 실습 중이었기 때문에 여러 업무를 알려주니 오히려 감사하단 생각으로 열심히 배웠다. 그런데 일주일 정도 배운 상황에서 선임이 퇴사를 했고 인원 충원이 없이 돌연 현장실습생 홀로 포장 라인 전체를 담당하게 되었다. 

이민호 학생이 책임을 맡은 포장 기계는 자주 멈췄다. 포장 공정은 음료를 화물차에 싣기 위해 포장하는 작업으로 자동화 기계가 팔렛트에 음료를 차곡차곡 쌓은 후 랩핑을 하는 것이다. 기계는 맨 아래층 팔렛트가 투입되면서 센서를 건드려 설비가 멈추는 일이 많았고, 5층으로 쌓이는 음료 중간 중간에 들어가야 하는 간지(골판지) 투입 기계도 멈추는 등 오류가 나는 일이 많았다. 그럴 때마다 이민호 학생은 기계 밑으로 들어가 오류를 제거했고 관리자에게 보고했지만 기계를 수리한 적은 없었다.

2심 재판의 주요한 쟁점은 이러한 사실에 대해서 사업주가 인지하고 있었는지, 이에 대하여 원인 규명 및 기계 수리 등의 적절한 대처를 했는지에 집중되었다. 

노동 재해에 있어서 유명한 법칙이 있다. ‘1:29:300’ 법칙으로도 불리는 하인리히 법칙이다. 1920년대 미국의 여행보험사의 직원이었던 하버트 하인리히는 당시 5000여건의 노동 재해를 분석하다가 특이한 점을 우연히 발견했다. 

‘대형사고 1건이 발생하기 전엔 관련된 소형사고가 29회 발생, 이 소형사고 이전엔 같은 원인의 사소한 징후들이 300회 나타난다.’

이 법칙은 대형 사고를 막기 위해서는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섣불리 지나쳐서는 안 된다는 교훈으로 노동 재해 예방 분야에 적용된다.
 
이민호 학생은 2017년 11월 발생한 끔찍한 사고에 앞서 두 차례의 노동 재해를 경험한다. 첫 번째 재해는 작업 도중 미끄러진 사고이다. 당시 민호는 낙법으로 떨어져서 몸에 부상은 없었지만 손에 들고 있던 핸드폰 액정이 산산조각이 났다. 두 번째 재해도 역시 미끄러진 사고였는데 이번에는 넘어지면서 갈비뼈 부분을 크게 부딪치며 병원까지 갈 정도였다. 검사 결과 타박상이었고 병원에서는 당분간 쉬어야 한다는 진단을 내려 며칠간 집에서 요양을 했을 정도였다. 두 사고 모두 포장 기계가 멈춰 조치를 하고 나오던 중 발생한 사고였다.

포장 라인 전체를 담당하는 현장실습생(직원)이 며칠간 출근을 못할 정도의 사고가 발생했고 당시 공장 내에는 공장장이 상주했기 때문에 사업주가 이와 같은 사실을 몰랐을 리 만무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업주는 “팔렛트 업체에서 불량 팔렛트를 줘서 오류가 많이 발생한 것이고 기계 결함은 없었다. 이후에 양품 팔렛트를 받아서 이제는 오류가 발생하지 않는다”며 책임을 회피했다.

오늘 2심 재판부는 18살 현장실습생 이민호의 죽음에 대한 책임으로 ㈜제이크리에이션 대표이사에게 1심 판결을 유지했다. 

공판 과정에서 사업주는 육지에서 기계 전문가를 불러 수리하지 않았다고 증언했고, 도내 팔렛트 공급업체는 불량 팔렛트를 별도로 관리하며 대여 업체에게 공급하고 있었음이 확인되는 등 사업주가 위험 사실을 이미 인지하고 있었고 그에 대하여 합당한 조치를 하지 않았다는 사실 관계가 밝혀졌지만 결과는 1심과 다르지 않았다. 

현재도 도내를 비롯하여 전국의 생수 혹은 음료 제조 공장에서 비슷한 유형의 위험이 존재하고 있다. 이민호 학생의 사고 이후, 1년이 채 되지 않아 삼다수 공장에서 30대 노동자가 거의 같은 이유로 사망한 일도 발생했다. 이러한 현장의 위험을 없앨 수 있는 주체는 그 사업장의 안전 보건을 책임지는 사업주다. 하지만 현행 법 체계 내에서는 그 사업주에게 안전 보건을 책임져야 할 요인을 제공하고 있는 것 같지 않다. 

21대 국회가 개원했다. 

일하다가 사망하는 산업 재해의 반복을 막자며 그 방안으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도입하자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고 그 취지에 공감하는 국회의원들이 찬성하는 의사를 하나둘 밝히고 있다. 더 이상의 허망한 죽음을 막기 위해서, 기업이 안전 보건에 대하여 집중 할 수 있도록 안전 보건 시설에 투입하는 투자 비용보다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사업장에서 책임져야 하는 비용을 월등히 높이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의 조속한 입법이 절실한 때이다.

# 김경희는?

‘평화의 섬 제주’는 일하는 노동자가 평화로울 때 가능하다고 생각하면서, 노동자의 인권과 권리보장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공인노무사이며 민주노총제주본부 법규국장으로 도민 대상 노동 상담을 하며 법률교육 및 청소년노동인권교육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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