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웅의 借古述今] 175. 여윈 소 위에 파리 들끓는다

* 준 쉐 : 여윈 소, 말라빠진 소
* 포리 : 파리
* 궨다 : 들끓는다

농부들의 일상 생활 속에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집에서 기르는 가축으로 말과 소를 빼놓지 못한다. 밭 갈고 등짐 져 주고 그러다 가족이 병나거나 자녀 혼인잔치로 가계가 다급하면 팔아 환금해 어려움을 막았다. 우·마만한 자산이 없었다 해도 지나침이 없다.

그러니 평소 촐(꼴) 주고 연못이나 바닷가 담수를 찾아 물 먹이며 애지중지했음은 말할 것이 없다. 한데 여름철 마소에게 고통스러운 것 중 하나가 파리가 들끓는 일이다. 하도 귀찮게 구니 꼬리로 번갈아 쳐 날리지만 이내 날아와 달라붙는다. 워낙 끈질겨 고통을 받는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게 비쩍 말라빠진 놈이다. 파리 떼가 연신 공격해 와 피를 빨아먹는다. 양순한 데가 기력이 없으니 꼬리로 후려치다 말고 큰 눈만 껌뻑인다. 주인은 측은한 나머지 안쓰러워 해 ‘준 쉐 우의 포리 궨다’며 가슴 쓸어내리는 것이다.

비단 ‘준 쉐’에 그치지 않았다. 사람에, 사람의 일에 빗댄다. 궁색한 처지인 데다 난처한 일이 겹쳐 일어남을 안타까워한다.

흔히 쓰는 성어 ‘설상가상(雪上加霜)’으로 확산한다. 눈 위에 서리가 덮인 격으로, 어려운 일 연거푸 일어난다 함이다.

이를테면 병을 앓는 동안에 또 다른 병이 겹쳐 생기는 것이니 그야말로 ‘병상첨병(病上添病)’이다. 길사가 겹친다고, 비단 위에 꽃을 더한다 해서, 좋은 것 위에 더욱 좋은 것을 더함을 비유한 금상첨화(錦上添花)와는 정반대다. 

설령 어려움이 포개지더라도 그러려니, 그럴 수도 있는 일이려니 해 부딪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반드시 성취가 따른다. 출처=오마이뉴스.

설상가상은 내우외환(內憂外患)과 다를 바 없다.

‘재수 없는 놈은 (뒤로) 자빠져도 코가 깨진다’와도 뜻이 통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경 치고 포도청 간다’라는 재미있는 표현도 있다. 

‘경(鯨)’이란 옛날 형벌의 하나로, 얼굴이나 팔뚝의 살을 따고 흠을 내어 먹물로 죄명을 찍어 넣는 것, 곧 죄인의 몸에 새겨 넣던 문신이다. 도둑이 관아에 끌령 경이란 형벌을 받는다 함이니, 경에다 포도청에까지 톡톡히 대가를 치르는 것이다.

말의 행간을 읽어야 할 것 같다. ‘조드는 사름은 조들 일만 난다(걱정하는 사람을 걱정할 일만 생긴다)’고 했다. 목전의 어떤 상황을 너무 비관하거나 부정적으로만 몰고 가선 종국에 그렇게 되고 만다는 깊은 뜻이 담겨 있지 않은가.

긍정에는 분명 에너지가 있다. 어떤 일이든지 어둡고 무겁게 불가능으로 볼 게 아니다. 밝고 가볍게 가능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설령 어려움이 포개지더라도 그러려니, 그럴 수도 있는 일이려니 해 부딪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반드시 성취가 따른다. / 김길웅 시인·수필가·칼럼니스트

동보(東甫) 김길웅 선생은 국어교사로서, 중등교장을 끝으로 교단을 떠날 때까지 수십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쳤다.1993년 시인, 수필가로 등단했다. 문학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도서관에 칩거하면서 수필, 시, 평론과 씨름한 일화는 그의 열정과 집념을 짐작케한다. 제주수필문학회, 제주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대한문학대상, 한국문인상 본상, 제주도문화상(예술부문)을 수상했다. 수필집 <마음자리>, 시집 <텅 빈 부재>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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