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주사고 발생서 약식명령까지 보통 6개월 소요돼...김태엽 내정자는 단 43일, 왜?

/ 그래픽 = 문준영 기자 ⓒ제주의소리
김태엽 서귀포시장 내정자의 3월26일 음주운전 사고가 경찰, 검찰, 법원까지의 사법처리 과정이 행정시장 응모를 앞두고 이례적으로 초스피드로 진행된 사실이 드러났다.  / 그래픽 = 문준영 기자 ⓒ제주의소리

음주운전 사고로 물의를 빚은 김태엽(60) 서귀포시장 내정자의 수사와 형사처벌 절차가 행정시장 공모를 앞둬 유독 빠르게 진행돼 의구심을 키우고 있다.

검찰측 공소사실 등을 종합하면 김 내정자는 3월26일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 모슬포의 모 관광지 내 무허가 건축물에서 지인들과 술을 마시고 대리운전을 이용해 제주시내 노형동 자택 근처까지 이동했다.

이날 오후 9시45분쯤 제주시 노형동 노형중학교 정문 앞 모 빌라 주차장에 김 내정자의 요청으로 대리기사가 주차했다. 이후 김 내정자는 음주상태로 자신의 차량을 직접 몰았다.

이 과정에서 김 내정자는 도로 옆 연석과 가로등을 들이 받는 단독 사고를 냈다. 사고 직후 김 내정자는 별다른 조치 없이 최소 150m를 차로 몰아 자택 주차장까지 이동했다.

도로교통법 제54조(사고발생 시의 조치)에 따르면 차량 운전으로 물건을 손괴한 경우, 즉시 정차해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한다. 이를 지키지 않으면 같은 법 제148조(벌칙)에 따라 5년 이하의 징역이나 15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진다.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가로등 밑 부분이 움푹 들어가고 하부 덮개(베이스 커버)가 부서지는 물적 피해가 발생했다. 제주시는 사고 다음날 서둘러 베이스 커버를 교체했다.

시민들의 음주 의심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자택에 있던 김 내정자를 상대로 음주 사실을 확인한 결과, 혈중알코올농도는 면허 취소에 해당하는 0.101% 만취 상태였다.  

 # 경찰·검찰·법원까지 딱 43일 초스피드

문제는 서부경찰서의 사고 조사부터 검찰로의 송치와 검찰 수사 종결(약식기소)까지는 채 보름정도 밖에 걸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유사사건의 경우 기소까지 최소 한 달을 넘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검찰 관계자는 “해당 사건이 빨리 처리된 것에 대해서는 특별한 사유가 없다. 담당 검사실 사정과 사건 난이도에 따라 처리 시점이 달라질 수 있다”는 원론적인 답변을 내놓았다.

이후 법원의 약식명령 결정도 속전속결이었다. 검찰은 4월13일 김 내정자에 대해 도로교통법상 사고후미조치와 음주운전 혐의를 적용해 벌금 800만원에 약식기소 했다.

사건을 넘겨 받은 제주지방법원은 공소사실을 유죄로 판단해 5월7일자로 약식명령했다. 약식기소에서 명령까지 단 25일만에 처리됐다. 

약식명령은 형사소송법 제448조에 따라 공판절차를 거치지 않고 검찰이 청구해 서면심리로 법원에서 벌금형 등을 명령하는 절차다. 통상 약식기소에서 명령까지는 대략 3개월 안팎이 걸린다.

제주지방법원의 경우 이창한 법원장과 부장판사 2명 등 총 3명이 약식사건을 담당한다. 이 법원장이 전체의 절반을, 부장판사 2명이 나머지 절반씩을 맡는다. 김태엽 내정자의 약식명령 사건은 이창한 법원장이 맡았다. 

# 약식명령, 법원장이 25일만에 처리...법원 측 “정확히 기억 못해”

법원장에 배당되는 약식사건만 일주일에 100여건에 이른다. 사건이 워낙 많아 약식명령까지 수개월이 소요되지만 김 내정자 사건의 경우 순서를 한참 가로질러 형사처벌이 이뤄졌다.

통상 구속사건이나 다른 사건과 연계돼 급히 처리해야할 약식사건의 경우 ‘긴급’으로 분류해 빨리 처리하지만, 취재 결과 김 내정자의 사건은 그런 표시가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법원 관계자는 “법원장도 김 내정자의 사건인지 알지 못했다. 그런 내용도 금시초문이라고 했다”며 “배당된 서류 순서에 맞춰 사건을 처리했다는 것이 법원장의 설명”이라고만 전했다.

김 내정자의 사건이 왜 순서를 앞당겨 처리됐냐는 질문에는 “그런 요청이 있을 수 있지만 담당 실무관과 참여관도 내용을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며 명확한 답변을 하지 못했다.

그러나 약식명령 처분을 위해선 사건번호와 사건내용을 반드시 살펴야 하는 상황에서 순서대로 처리되던 다른 사건 날짜보다 훨씬 늦은 시점의 사건내용을 판단하면서 순서가 뒤바뀐 것을 인지 못했다는 점은 납득하기 어려운 내용이다. 

이에 대해 법률전문가들도 고개를 갸웃했다. 변호사 A씨는 “단순 음주운전 사고의 경우 사고발생에서 약식명령이 내려지기까지는 최소 6개월이 소요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조언했다. 

A 변호사는 “이번 음주운전 사건은 단순 사건임에도 경찰에서 검찰로, 검찰에서 법원으로 가는 과정이 초스피드다. 매우 이례적이기도 하고 일반적으로는 불가능한 처리 과정”이라고 말했다. 

또다른 변호사 B씨 역시 이런 처리과정은 본 적이 없다고 조언했다. B변호사는 “오랜 기간 법조계 생활을 했지만 약식명령이 이처럼 신속히 내려지는 경우는 본적이 없다. 법원에서만 약 3개월 처리기간이 소요된다”고 말했다. 

그는 “약식명령 처리 사건이 워낙 많아 현재 6월 중순이지만 지금도 올해 초 사건이 아직도 약식명령 처분이 내려지지 않은 사건들이 있는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다. 

제주도가 제주시와 서귀포시장 행정시장 공모에 나선 시점은 5월12일부터다. 공교롭게도 약식명령은 공고를 닷새 남긴 시점에 이뤄졌다.

지방공무원법 제31조(결격사유)에 따라 금고 이상의 형이 확정되고 5년이 지나지 않은 사람이나 집행유예기간이 끝난 날부터 2년이 지나지 아니한 사람 등은 응시가 불가능하다.

김 내정자의 경우 이에 해당하지 않지만, 피의자 신분으로 형이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행정시장 응모에 나설 경우 도덕성은 물론 정치적 부담까지 더해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김 내정자는 이와 관련해 “사건처리를 부탁한 적도 없고 그럴 능력도 없다”며 “경찰 조사에서 범행을 인정했고 검찰 문자메시지 서비스로 사건 진행 상황을 확인했을 뿐”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일부 주변인들이 음주사고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변호사 자문이나 지인 도움을 받지는 않았다”며 “내 사건이 다른 사람보다 빨리 처리된 것인지도 알지 못하는 부분”이라고 선을 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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