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웅의 지금 제주는] (34) 곶자왈의 생명 학살 멈춰라 / 이영웅 제주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

제주영어교육도시 전경.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제주영어교육도시 전경.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제주는 유네스코 자연과학 분야 3관왕을 달성할 만큼 환경자산의 보물섬이다. 언어와 생활양식 등 문화와 전통에서 특출한 경쟁력을 지니고 있다. 이런 제주의 가치를 보존하고 증진하는 패러다임을 기반으로 성장과 공존을 이끌어내야 한다.” 지난 연말 문대림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JDC) 이사장이 언론 인터뷰에서 제주사회가 가야 할 방향성에 대한 질문에 대한 답변이다. 이 자리에서 문 이사장은 JDC는 앞으로 대규모 프로젝트 중심의 부동산 개발에서 벗어나 청정 환경과 첨단 산업을 기반으로 제주의 신성장 동력을 만들겠다고 했다.

그리고 지난달 열린 JDC 이사회에 ‘제주영어교육도시 도시개발사업 2단계 추진’ 안건이 상정되어 실시설계 용역을 위한 예비비 전용을 원안 의결했다. 손 놓았다는 부동산 개발을 다시 시작하기로 한 것이다. 더군다나 JDC가 개발하려는 영어교육도시 2단계 사업부지는 제주곶자왈도립공원과 이어져 있는 울울창창한 곶자왈 숲이 형성된 지역이다.
 
첫 단추부터 잘못 꿴 영어교육도시

제주영어교육도시의 시작은 지난 2006년 재정경제부가 ‘서비스산업 경쟁력 강화 종합대책’의 하나로 가칭 ‘영어전용타운’ 건설계획을 발표하면서이다. 재경부는 학부모들의 영어교육에 대한 열정과 기대수준이 높아져 조기유학·연수 등이 빠르게 증가하면서 서비스부문 국제수지를 크게 악화시키는 한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유학·연수 수지 적자는 해마다 크게 증가해 서비스수지 악화를 초래하고 있어 서비스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제주도에 수업과 생활을 영어로 하는 영어전용타운을 건설키로 했다고 발표했다. 결국 제주영어교육도시는 영어교육의 필요성보다는 외화유출을 막기 위해 교육부가 아닌 재정경제부가 추진한 사업이었다.
 
이후 국무조정실이 주관하고 재경부, 교육부, 건교부, 예산처 등 관계부처 TF가 구성·운영되고, ‘제주 영어전용타운 조성을 위한 사전조사 연구’ 용역이 실시되었다. 이 용역에서 부지의 적합성, 시설 기본구상, 교육운영프로그램 및 사업타당성 검토가 이뤄졌다. 그리고 사전조사 연구용역을 토대로 만들어진 ‘제주영어전용타운 조성 기본방안’이 국무회의에 보고되었다. 내용을 보면 제주도유지 곶자왈 지대를 활용하여 초등학교 7개교, 중학교 4개교, 고등학교 1개교 등 12개 학교를 설립한다는 방안이다. 이중 4개교(초2, 중1, 고1)는 공립학교, 나머지 학교(초5, 중3)는 공공재원으로 건립하여 민간에 위탁 운영하는 방안과 민간재원의 사립학교 방안을 계획하였다. 또한 영어교육 연구·개발 및 성인영어 교육, 영어교육 콘텐츠 전파 기능을 수행하는 정부출연 특수법인 형태의 영어교육센터 설립과 외국 대학·대학원 등 외국 교육기관을 유치하고, 1만 세대 규모의 주거 및 상업시설 등의 지원시설을 계획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계획들은 JDC가 본격적으로 개발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크게 변질되거나 사라졌다. 현재 제주영어교육도시에는 애초 정부에서 계획한 12개 학교와 외국 대학·대학원 유치 계획 중 단 하나도 설립되지 못했다. 그 대신에 초·중·고 과정의 국제학교 4곳이 들어와 있을 뿐이다. 특히 정부의 사전조사 연구용역에서 학교의 운영방안은 정규교육과정과 연계하고 등록금은 기숙사비 포함 연간 1,000만원 수준으로 추진한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JDC가 영어교육도시 내 국제학교 학부모에게 설문조사한 결과를 보면 세대당 학비·생활비로 연간 8,300만원이 지출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중 학비는 5,000만원에 달했다. 결국 영어교육도시 조성은 애초 사업의 취지와는 거리가 먼 사업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학생수 역시 잠재적 수요자의 10%인 9천명을 교육수요 목표치로 설정했지만 현재 3천9백여 명이 재학 중으로 목표치를 훨씬 밑돌고 있다.
 
도내 최대 면적 곶자왈 훼손한 JDC

제주영어교육도시 개발사업을 추진하면서 가장 큰 논란을 빚었던 것은 사업의 타당성보다 오히려 사업입지의 적정성 문제였다. 사업입지는 제주도내 곶자왈 지역 가운데 가장 면적이 넓은 월림-신평 곶자왈에 해당하는 곳으로 활엽수림대가 넓게 분포한다. 영어교육도시 개발사업 사전환경성검토 보고서에서 조차 “사업지구 내부에는 상록활엽수가 우점하는 맹아림이 교목성으로 발달하고 있는데, 이 수림은 다른 구역과 달리 다양한 구성상태를 유지하고 있고 보다 안정되어 보호가치가 높은 것으로 판단된다.”고 했다. 특히 환경부가 멸종위기종으로 지정한 참나무과의 상록교목인 개가시나무는 우리나라에서는 제주도에만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현재까지 확인된 바로는 영어교육도시 사업지구에 최대 군락지로 자생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2007년 제주영어전용타운 조성 기본방안에 대한 국무회의 보고자료에도 사업부지의 환경 현황이 자세히 보고되어 있다. 자연환경 현황으로 사업부지는 한경-안덕 곶자왈 지대에 속하며, 생태환경 현황으로 법정보호종인 개가시나무 군락이 형성되어 있어 반경 35m는 생태계 1등급지라는 설명도 곁들여 있다. 또한 사업 대상지의 약 41%가 개발행위가 제한되는 생태계 2등급지 이상이고, 97.5%가 지하수 2등급지라고 밝히고 있다. 전형적인 곶자왈 지역으로 사실상 개발이 불가능한 지역임을 정부도 인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더욱이 지난 2003년 이곳에 JDC가 신화역사공원을 조성하려다 지금의 안덕면 서광리 마을목장으로 옮기게 된 것 역시 개발이 불가능한 이곳 곶자왈의 생태환경 현황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 사업의 시행주체인 JDC와 사업을 유치하려는 제주도는 포기하지 않았다. JDC는 애초 사업부지 중앙부에 집중된 생태계 2등급 지역 일부를 부지에서 제척하고, 사업부지 남쪽의 토지를 추가 매입하면서 사업추진의 가능성을 이어갔다.

제주도는 더욱 노골적으로 이 사업의 길을 열어주었다. 제주도는 곶자왈 보전의 목소리를 반영한다며 2006년부터 도내 곶자왈 재정비 용역을 시행했다. 용역 결과는 놀라웠다. 곶자왈 보전을 위한 용역이었지만 오히려 곶자왈 지역 중 개발이 가능한 지역을 훨씬 넓혀 놓았다. 영어교육도시 사업부지도 가관이었다. 등급이 높아 사업부지 대부분이 개발 할 수가 없는 지역이었지만 용역 결과 사업부지의 절반은 개발이 가능하도록 등급을 완화해 놓았다. 당시 환경단체들이 현장을 확인한 결과 생태적 가치가 매우 높은 상록활엽수림지대가 제주도 용역결과에서는 잡목지로 평가되는 생태계 4-2등급으로 분류되고 있었다. 곶자왈 지역 중에서도 반드시 보전해야 할 지역이 중앙정부와 제주도, JDC에 의해 무참히 파괴되고 말았고, 현재 JDC에 의해 그 만행이 또 다시 준비되고 있다.
 
JDC는 곶자왈의 생명 학살 멈춰라

그동안 JDC의 사업방식이 대규모 개발사업을 위한 토지를 비축하고, 대형 프로젝트 사업을 통해 땅 장사를 할 뿐 제주의 가치를 높이거나 실질적인 국제자유도시 조성에 도움이 되지 못했다는 비판이 제기되어 왔다. 특히 JDC가 진행하는 사업마다 주민 토지의 강제수용 논란과 환경파괴 논란은 꼬리표처럼 뒤따랐다.

이런 연유로 JDC는 환경단체뿐만 아니라 도민사회 전반적으로 사업방향의 전환을 요구받아왔다. 지난 2017년에 열린 제12회 제주포럼 중 ‘제주도, JDC, 제주지역사회의 협력모델 모색’을 주제로 한 라운드테이블에서 참석자들은 한결같이 JDC의 변화를 촉구했다. 이날 좌장을 맡은 문정인 교수는 ‘JDC는 환경, 문화, 4차 산업혁명 등과 관련한 새로운 영역을 발굴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원희룡 지사는 ‘JDC는 부동산 개발 성격의 투자유치를 탈피해 제주의 가치를 높이기 위한 분야에 집중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이에 대해 당시 이광희 JDC 이사장은 ‘JDC는 기존처럼 부동산을 개발하는 대규모 사업이 아닌 제주의 청정을 활용한 고부가가치 사업을 추진할 것이다.’라고 답했다.

근래에도 JDC는 곶자왈 보전과 제주의 환경가치 증진을 자주 언급하며 기존 이미지를 변화시키려는 노력을 기울여왔다. 그러나 제주의 환경가치라는 옷이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했는지 최근 JDC 이사회는 자신들의 변화를 멈추는 결정을 하였다. 영어교육도시 2단계 사업 추진 의사를 밝히며 또 다시 대규모 부동산 개발이라는 과거 사업방식으로 회귀하기로 한 것이다.

JDC는 영어교육도시 2단계 사업은 이미 개발사업 승인을 받은 사업으로 앞으로 시행하지 않기로 도민들과 약속한 대규모 부동산 개발사업에 포함되는 사안이 아니라고 항변할 수 있다. 허나 JDC가 이런 생각을 갖고 있다면 JDC의 변화를 기대하기는 틀렸다고 본다. JDC가 영어교육도시 2단계 사업추진을 당연시 한다는 것은 현재 JDC가 내세우고 있는 생태환경과 제주가치 보존의 목소리는 지난 과거의 사업방식에 대한 반성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라 단지 기업 이미지를 낫게 하려는 미사여구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현재 영어교육도시 2단계 예정지는 지난 2008년 환경영향평가 협의과정에서 특히 쟁점이 되었던 지역이다. 사업지구 북측에 위치한 이 곳은 제주도가 고시한 생태계 등급에서는 잡목지에 해당하는 4-2등급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환경영향평가서 작성을 위한 현장조사에서 해당지역은 활엽수림이 발달해 있는 녹지자연도 7∼8등급으로 확인되었다. 이 때문에 제주도의회는 환경영향평가서 협의내용 동의안 심의에서 부대조건으로 해당 구역에 대해 공사전에 식생조사단을 구성하여 식생조사를 재실시하도록 했을 정도이다. 환경영향평가서를 검토했던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KEI) 역시 영어교육도시 2단계 예정지인 사업지구 북측의 사업시행으로 인한 생태계 파편화와 단절, 인위적 간섭이 커 토지이용계획 변경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이영웅 제주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
이영웅 제주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

사실 이곳 곶자왈의 환경적 가치를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JDC의 영어교육도시 2단계 사업은 중단되어야 한다. 더 이상의 곶자왈 훼손은 하지 않겠다고 도민들과 약속했기 때문이다. 제주영어교육도시 개발사업을 진행하면서 이미 대규모의 곶자왈이 사라졌다. 이제라도 남아있는 곶자왈을 곶자왈도립공원 부지에 편입하여 보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JDC는 제주의 청정 환경과 제주문화의 보존에 앞장서겠다는 도민과의 약속을 지켜야 한다. / 이영웅 제주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