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감독-미술관 갈등 심화...부실한 자문위 근거, 대행업체 계약 기형적 “제도 보완 시급”

제주도립미술관 전경.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제주도립미술관 전경.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기사 수정 : 7월 2일 17시 45분] 제주도립미술관이 국제 미술 행사 ‘제주비엔날레’를 추진하면서 내부 갈등에 휘말렸다.

예술감독은 “예술감독으로서의 정당한 권한을 부당하게 침해당했다”고 반발하고, 미술관은 “당연한 관리 감독이다. 오히려 예술감독이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고 반박했다. 다만, 갈등 이면에 자리 잡은 제도적 문제점을 바로잡지 않는다면 누구든, 언제든, 반복될 수 밖에 없는 한계를 노출하고 있어 이를 개선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로 꼽힌다. 
 
# 예술감독의 권한 두고 공방

김인선 제2회 제주비엔날레 예술감독은 지난 22일 ‘역행하는 제주비엔날레 구조 개선과 예술인 권리보장 요구’라는 제목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성명서에는 예술감독과 함께 전시를 준비하는 직원 3명과 비엔날레 참여작가 12명의 이름이 함께 올랐다.

이들은 성명서에서 제주비엔날레의 문제를 크게 ▲제주비엔날레 주관처의 검열과 월권으로 예술인의 자율성과 권한 침해 ▲행정 부실로 인한 참여 작가들 피해 ▲비엔날레 진행체계의 기형적 구조 문제 등으로 꼽았다.

우선 검열, 권한 침해 문제는 “전시 주제 및 작가 선정은 전시 기획자의 해석에 따른 고유영역이다. 또한 주제에 협의된 작가들의 작품 제작은 자율성을 가진다”며 “그럼에도 미술관장은 자의적인 해석을 근거로 일부 참여 작가에 대한 사전검열의 태도로 일관했다. 이 과정에서 ‘흑인 여성 성소수자’를 소재로 한 작가를 교체하라는 관장의 노골적 요구에 이의를 제기한 예술 감독을 해임하고자 하는 등 전시 기획에 관한 월권과 갑질의 행태가 있어왔다”고 주장했다.  

행정 부실로 인한 피해는 “참여 작가들은 계약 체결을 하지 못한 채 행사의 공신력을 믿고 자비를 들이면서 작품을 진행해 왔다. 하지만 현재 전시팀과 예술감독을 배제한 채 주관처가 일방적인 통보를 지속하고 있어 이로 인한 혼선과 불신을 겪고 있다”고 피력했다. 이런 이유로 예술감독은 미술관을 감사해달라고 최근 감사위원회에 요청하기도 했다.

미술관 측은 이 같은 지적에 “미술관은 비엔날레라는 사업의 발주처로서 책임 있는 자세로 조언할 의무가 있다. 공식 기구인 제주비엔날레 자문위원회가 제시하는 의견에 대해 미술관은 반영해야 한다. 그렇기에 예술감독에게 의견을 전했는데 자신의 생각하는 방향에 대해 충분히 미술관과 자문위원회를 설득하지 못했다. 작가 선정에 있어서도 일부 자문위원들이 보기에는 과연 비엔날레 주제인 ‘할망’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 의구심이 들었고, 작가 선정 이유에 대해 예술감독이 성의 있게 답하거나 설득하는 자세를 보이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최정주 관장 역시 최근 자신의 SNS를 통해 “용역업체와 예술감독팀이 협상 과정에서 불거진 문제”라면서 “원하는 바를 상호 논의를 통해 얼마든지 변경, 조정할 수 있기 때문에 시시비비의 문제가 아니라 보완의 문제인 것이다. 계약을 위한 협상 절차를 밟아야 이 모든 실타래가 풀릴 수 있다는 것을 예술감독팀이 이해하시기를 바란다”고 해명했다.

제주비엔날레는 최초 2019년에 2회 행사를 개최할 예정이었지만 내부 점검, 인력 부족 등의 이유로 한 해 연기했다. 시작 시점은 올해 5월이 예상됐으나 6월에서 다시 8월로 바뀌었고 코로나19 여파로 끝내 1년 늦추기에 이른다. 

# 자문위원회 역할은 어디까지? 

단순한 양측의 입장 차이로 치부하기 전에, 제주비엔날레가 지닌 제도적 문제들은 바로 잡아야 한다는 의견이 높다. 자문위원회 역할과 대행업체 시스템이 핵심이다. 

‘검열, 월권’ 논란을 일으킨 제주비엔날레 자문위원회는 ‘제주비엔날레 자문위원회 설치 및 운영 조례’에 설치 근거를 둔다. 조례는 2017년 개최된 제1회 제주비엔날레 진행 과정에서 나타난 문제를 보완한다는 이유로 지난해 5월 8일 제정됐다.

조례에는 자문위원회의 목적을 ▲비엔날레 관련 기본계획 수립과 시행 ▲홍보 ▲휘장 등 관련 상징물 제정, 관리 및 사용 ▲관련 지식재산권의 등록 및 관리, 사용 ▲결과보고 및 개선사항 ▲그 밖의 제주비엔날레 운영 등을 ‘자문한다’고 규정한다.

‘자문한다’는 권한에 대해 예술감독은 말 그대로 자문이어야 하며 오히려 비엔날레 기획 총 책임자로서 예술감독의 권한은 존중 받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에 반해 미술관은 자문위원회가 명목상 자문 성격이지만, 실제로는 흡사 의회처럼 최종 결정·인준 권한을 가졌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제주도의 공식 문서에도 비엔날레 예술감독의 지위에 대해 ‘행사 총 지휘자’라고 명시한 상황에서, 자문위원회의 태도나 미술관의 자문위원회 성격 해석은 앞뒤가 맞지 않는 모양새다.

제주도가 지난해 5월 공고한 제2회 비엔날레 ‘사전준비·행사운영 용역사 선정 제안요청서’를 보면 예술감독의 역할에 대해 '사무국 운영 전반을 총괄하고, 행사를 총 지휘하는 전문가'라고 명시해 놨다. 

물론 비엔날레 사무국의 역할에 대해 “최소 월 1회 이상 비엔날레 자문위원회를 개최하고 추진상황 보고 및 의견수렴을 해야 한다”고 정해놨다.

그러나 제안요청서에서 규정한 비엔날레 사무국 조직도에도 예술감독은 최고 책임자이며 그 아래 자문위원회가 미술관 학예연구과가 각각 ‘자문·의견수렴’, ‘협업·지원’ 관계로 못 박아놓은 사실을 함께 고려할 때, “자문위원회가 결정 권한이 있다”는 미술관의 입장은 마치 ‘규정과 현실은 다르다’는 이중적인 잣대를 인정하는 꼴이다.

이와 관련해 제주도립미술관은 비엔날레 대행업체가 지난해 12월 제작한 '2020년 제주비엔날레 기본계획 수립연구' 최종 보고서를 근거로, 예술감독의 위치는 제주도립미술관과 자문위원회 보다 하위 개념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해당 보고서에도 예술감독의 역할을 '비엔날레 업무 총괄'이라고 명시해놓고 있어, 자문위원회의 월권 논란은 사라지지 않은 상태다.

제2회 비엔날레 ‘사전준비·행사운영 용역사 선정 제안요청서'에 명시된 예술감독의 권한. ⓒ제주의소리
제2회 비엔날레 ‘사전준비·행사운영 용역사 선정 제안요청서'에 명시된 예술감독의 권한. ⓒ제주의소리
제2회 비엔날레 ‘사전준비·행사운영 용역사 선정 제안요청서'에 그려진 비엔날레 사무국 조직도 구성안. ⓒ제주의소리
제2회 비엔날레 ‘사전준비·행사운영 용역사 선정 제안요청서'에 그려진 비엔날레 사무국 조직도 구성안. ⓒ제주의소리
ⓒ제주의소리
제주비엔날레 대행업체가 2019년 12월 제작한 '2020년 제주비엔날레 기본계획 수립연구' 최종 보고서 속 조직도. ⓒ제주의소리

제주비엔날레 자문위원회는 당연직(도립미술관장, 제주도 문화체육대외협력국장) 2명과 선임직 8명이다. 선임직에는 기획자, 미술작가, 문광위 소속 도의원 등이 포함돼 있다.

김인선 예술감독도 자문위원회가 선정한 사실을 고려할 때, 뒤늦게 ‘예술감독과 소통이 안된다’며 비토 하는 모양새는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과 다름없다. 일부 자문위원들은 공식 회의 자리에서 예술감독을 거친 언사로 대하는 등 문제점을 드러냈다. 

차라리 조례나 제안요청서에 자문위원회의 역할을 보다 명확히 명시하는 방안도 고려해볼 만 하지만, '옥상옥' 비판에서 자유로울 순 없어 보인다.

# 전문 대행업체 계약 구조 ‘불안’, 언제라도 갈등 불씨

제주비엔날레의 가장 큰 문제는 전문 대행업체로 행사를 치르는 구조다. 현재 제주비엔날레는 매년 제주도와 대행업체와 행사 계약을 하고, 다시 대행업체와 예술감독 같은 전담 직원들이 계약하는 구조를 띄고 있다. 예술감독은 제주도(미술관)가 아닌 대행업체와 계약하는 것이다.

이런 형태는 미술관이 자체 전담 부서나 추진위원회를 꾸릴 수 없는 현실적인 여건을 고려한 자구책이다. 그러나 격년마다 개최가 원칙인 비엔날레 특성상 2년을 준비해야 함에도 매해 계약을 새로 진행해야 하기에 연속성이 전혀 담보되지 않는 구조적 문제를 품는다.

실제로 제주비엔날레 행사를 대행하기로 선정된 A대행업체는 지난해 7월부터 12월까지 반년에 불과한 기간 동안 업무를 진행하다가, 새로 해가 바뀌면서 B대행업체로 바뀌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발생했다. 당연히 예술감독을 포함한 직원들에 대한 계약도 B업체와 다시 맺어야 한다. 업무의 연속성을 고려해도 비효율적이다. 입장 차이를 이유로 계약이 불발되며 지난 1월부터 3개월간 전담 직원들의 급여까지 지급되지 않은 상황도, 원인을 따져볼 때 이 같은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김 예술감독은 “비엔날레라는 2년 연속 행사의 특이성을 고려하지 않고 매년 입찰을 통해 선정되는 대행업체와 예술감독이 매번 계약해야하는 행정 편의주의적 악조건 속에서 업무 공백이 발생하게 된다. 이로 인해 막대한 도 예산이 투입되는 행사임에도 불구하고 불안정하고 비효율적 구조로 인한 원활한 업무 진행이 불가능한 환경”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어느 관장, 예술감독이 오더라도 지금 같은 구조에서는 같은 문제가 재반복되기 십상인데, 도립미술관 측은 예술감독의 주장이 현실을 반영하지 않은 과도한 비판이라고 꼬집으면서 대행업체 문제는 일부 공감했다.

김용철 도립미술관 학예사는 “대행업체와 매년 입찰 계약하는 구조가 행정 편의주의적 악조건이라는 지적에는 동감할 수 없다. 예를 들어 광주비엔날레 정도 되는 행사라면 예산을 걱정하지 않는다. 조직위원회도 별도로 채용해 운영한다. 하지만 제주비엔날레는 솔직히 겨우 예산을 만들어 놓고도 이제나 저제나 삭감되지 않을까 걱정에 시달리며 꾸려오고 있다. 현실을 알고 하는 말인지 궁금하다"고 맞받아쳤다.

최정주 관장은 "자체 워크숍을 통해 제주비엔날레에 대한 다양한 과제를 도출했는데, 대행업체와의 계약 기간 문제도 이미 워크숍에서 논의된 바 있다. 로드맵을 세우고 차근차근 밟아가는 중인데, 장기 과제를 당장 가져와 큰 문제라고 지적하면 다소 현실에 맞지 않는다. 일찌감치 예술감독에게도 대행업체 구조로 치르는 제주비엔날레 상황을 설명했었다"면서 "2회를 앞둔 제주비엔날레가 안정적으로 도약할 수 있도록 제주도정의 지원과 도민 여론의 관심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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