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예술칼럼, Peace Art Column] (19) 김준기

제주도는 평화의 섬입니다. 항쟁과 학살의 역사를 가지고 있기에 평화를 염원하는 마음은 더욱 간절할 수 밖에 없습니다. 제주4.3이 그렇듯이 비극적 전쟁을 겪은 오키나와, 2·28 이래 40년간 독재체제를 겪어온 타이완도 예술을 통해 평화를 갈구하는 ‘평화예술’이 역사와 함께 현실 속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2018년부터 세 나라 세 섬의 예술가들이 연대해 평화예술운동을 벌이고 있어 이에 대한 창작과 비평, 이론과 실천의 공진화(共進化)도 매우 중요합니다. 독립언론 <제주의소리>가 세 섬 예술가들의 활동을 ‘평화예술칼럼(Peace Art Column)’을 통해 매주 소개합니다. 필자로 국외 작가들이 참여하고 있어 일어, 영어 번역 원고도 동시 게재합니다. [편집자 글] 

“자연과 싸우지 않고 그저 자연이 있는 그대로 그 모습을 볼 수 있는”
“잠시 멈춰 이곳의 우주를 있는 그대로 봐라봐 주세요.”
“잘 보시라 풀꽃밭 있는 그대로를”
“이곳은 별들이 놀다가는 우주정원”
“모두가 꽃으로 빛나는 화엄세상 풀꽃밭”

제공=김준기. ⓒ제주의소리
도판 1. 지리산 실상사 극락전 마당에 있는 도법스님의 풀꽃밭. 제공=김준기. ⓒ제주의소리
제공=김준기. ⓒ제주의소리
도판 1. 지리산 실상사 극락전 마당에 있는 도법스님의 풀꽃밭. 제공=김준기. ⓒ제주의소리

지리산 실상사에는 도법스님이 머물고 있는 극락전이 있고, 그곳 뜰에는 이런 문구들이 있다. 기와장에 색연필로 써놓은 풀꽃밭 해설문이다. 꽃밭이 아니라 풀꽃밭이다. 꽃밭은 사람의 눈에 보기좋은 꽃을 피우는 식물 이외 이외의 풀들을 배제하는 공간이다. 풀꽃밭은 사람의 눈이 아니라 생명의 논리대로 어떤 풀이든 자라게 하는 공간이다. 얼마 전까지는 민들레 꽃으로 가득하더니 어느새 망초 꽃이 활짝 피어있고, 얼마 후면 달맞이 꽃이 피어날 것이다. 모든 풀은 꽃을 피우고 그 꽃은 나름의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다. 

도법스님의 풀꽃밭은 생명평화라는 화엄사상을 집약하고 있다. 가장 앞서는 출발점은 자연과 싸우지 말자는 것이다. 절집은 건축물 이외의 공간, 즉 마당을 풀한포기 자라지 않는 깔끔한 공간으로 정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따라서 봄부터 가을까지 절집은 풀들과 전쟁을 벌인다. 매일 거듭되는 울력으로 풀을 제거하기 바쁘다. 그런데 도법스님은 역발상으로 화상사상의 정원을 만들었다. 사람 다니는 길 이외의 공간을 풀꽃밭으로 명명하고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받아안아 그곳에 우주를 모셔놓았다. 싸움을 멈추고 아름다움을 얻었다. 전쟁을 종식하고 평화를 성취한 것이다.

사실 인간이 자연과 싸워 얻을 것이라고는 한정된 곳에 인공적인 공간을 조성하고 유지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도법스님은 절집안에서 벌어지는 이 풀과의 전쟁을 멈추고 별들이 머물다가는 우주정원을 만들었다. 일미진중함시방(一微塵中含十方). 한 톨의 먼지에 우주가 담겨있다고 했다. <의상조사법성게>라는 시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존재하는 모든 것의 총체로서 우주는 낱낱의 존재 하나하나에 가치가 있고 의미가 있다. 역으로 낱낱의 존재 하나하나가 곧 우주다. 부분과 전체를 유기적으로 연동된 총체로 인식하는 이 우주적 사유가 지리산 실상사 풀꽃밭에 펼쳐져 있다. 

도법스님의 이 독특한 정원은 생명평화 사상의 예술적 표현이다. 정원은 자연을 통제하여 얻은 인공적인 공간이다. 사전적 의미로 정원을 가꾸는 조원술(造園術, gardening)은 ‘발 디딜 곳을 확보키 위해 식생을 없애는’ 일이다. 뭇 생명을 존중하고 그 속에서 삶의 진리를 깨닫고 실천하며, 생명이야 말로 평화의 출발이며 궁극이라는 생명평화 사상으로 불교사찰이 수천년동안 유지해온 가드닝의 전통을 뒤바꾼 것이다. 풀꽃밭으로 표현한 생명평화 사상은 사실은 지리산 실상사를 중심으로 오랫동안 이어온 사상이자 실천운동이다. 6.25전쟁이라는 동족상잔의 비극이 두드러지게 벌어졌던 지리산에서 발원한 일이라 그 의미가 더욱 각별하다.

제공=김준기. ⓒ제주의소리
도판 2. 안상수의 생명평화무늬. 제공=김준기. ⓒ제주의소리

생명평화 사상을 감성학적으로 압축한 안상수의 생명평화무늬는 더욱 아름답다. 가운데 원을 중심으로 위쪽에는 풀나무를 상징하는 세 개의 선이 있다. 왼쪽에는 물고기와 새, 오른쪽에는 네발과 꼬리를 가진 땅고기가 있다. 그리고 아래에는 사람이 있다. 핵심은 이 네 방향의 존재들이 가운데에 있는 원에 연결돼있다는 것이다. 뭇 생명은 이렇듯 하나로 이어진다는 뜻이다. 인간은 하늘과 땅과 바다, 공기와 흙과 물 기체와 고체와 액체 등 존재하는 모든 것들과 따로 떨어져서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그래픽이다. 실상사 곳곳에 존재하는 이 도상은 인간형상의 불상을 대체하기도 한다. 붓다라는 인간에 대한 경의와 그 깨달음에 대한 각성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일이다. 

평화란 무엇인가? 그것은 곧 생명의 평화를 의미한다. 기실 우주 도처의 물질세계에 평화를 의미가 없다. 곳곳에서 벌어지는 혼돈 속에서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이 우주다. 서양 사람들이 우주를 물질적 공간으로서의 스페이스(space)로 보거나 존재하는 모든 것의 총체로서의 유니버스(universe)라는 개념과 함께, 혼돈 속에서도 질서에 따라 운행하는 시공간으로서의 코스모스(comos)라고도 명명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천자문 첫 구절에도 나온다. ‘천지현황우주홍황(天地玄黃宇宙洪荒).'  하늘은 검고 땅은 누르며 우주는 넓고도 거칠다는 이 문장에서도 하늘과 땅, 우주는 알 수 없는 혼돈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결국 평화는 생명의 문제이며 궁극적으로는 인간 삶의 문제다. 자연계가 혼돈 속에서 질서를 찾아가듯이, 인간계 또한 혼돈 속에서 질서를 찾아간다. 그런데 인간계의 질서는 자연계의 질서와는 다를 수 있다. 자연계의 질서가 물질세계의 충돌과 조화 속에 이뤄지는 것이라면, 인간사회의 질서는 약육강식과 같은 질서와는 다른 것이어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실서가 아닌 평화를 이야기하는 이유이다. 요컨대 생명평화는 생명 존중의 사상을 바탕으로 뭇 생명이 공존하는 우주적 관점의 평화를 길어올리려는 사상이자 실천 운동이다. 앞마당에 풀꽃밭을 모셔놓고 우주를 사유하는 도법스님의 생명평화예술을 다시 생각한다.

도판 3. 생명평화무늬를 형상미술로 풀어낸 박영균 작 지리산둘레길 인원안내센터 벽화. 제공=김준기. ⓒ제주의소리
도판 3. 생명평화무늬를 형상미술로 풀어낸 박영균 작 지리산둘레길 인원안내센터 벽화. 제공=김준기. ⓒ제주의소리

 

▷ 김준기

홍익대학교 예술학 석사, 미술학 박사.
현(現)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 예술과학연구소장, 지리산프로젝트 예술감독, 미술평론가.
전(前) 부산비엔날레 전시기획 팀장, 부산시립미술관 큐레이터,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연구실장, 제주도립미술관장.


the cosmic though and practice of life-peace

GIM Jungi

"You don't fight with nature, you just see it as it is."
"Stop for a second. Look at the universe here as it is."
"Look, the grass-flower garden as they are."
"This is the cosmic garden where the stars play."
"The grass-flower garden of the Hwa-eom world, where everyone shines with flowers."

In Shilsangsa Temple on Jirisan Mountain, there is Geungnakjeon where the Buddhist monk Dobeop is staying, and there are these phrases in the courtyard. This is a description of the grass flower garden written with colored pencils on the tile. It's not a flower garden, it's a grass flower garden. A flower garden is a space that excludes grass other than plants that bloom in the eyes of a person. Grass flower fields are not human eyes, but spaces where any grass grows according to the logic of life. Until not long ago, it was full of dandelion flowers, and before I knew it, the mango flowers were in full bloom, and in a few days the moon will bloom. All grasses bloom and the flowers have their own beauty.

The grass-flowering field of Buddhist monk Dobeop compiles the idea of peace of life. The foremost starting point is not to fight against nature. In principle, a pickled house shall be organized into a space other than a building, that is, a neat space that does not grow in a single pool. Thus, from spring to autumn, the temple fights war with the grass. I'm busy removing grass with every day's energy. However, Buddhist monk Dobeop made a garden of burn thought by reverse idea. He embraced the nature of the place, which is named as a grass flower field, and enshrined the universe there. Stop fighting and gain beauty. It ended the war and achieved peace.

In fact, human beings will not only create and maintain artificial spaces in limited places. The Buddhist monk stopped the war against the grass in the temple and created a space garden where the stars stayed. Japan, Ilmijinjunghamsibang(一微塵中含十方). A grain of dust contained the universe. It is a passage from a poem called <Uisangjosabeopseonggp(義湘祖師法性偈)>. As an aggregate of everything that exists, the universe is valuable and meaningful in every single existence. In reverse, every single being is the universe. This cosmic reason, which recognizes the entire part as an organically interlinked total, unfolds in the grass flower field of Shilsangsa Temple on Jirisan Mountain.

This unique garden of Dobeop is an artistic expression of life-peace thought. A garden is an artificial space obtained by controlling nature. Gardening, in a dictionary sense, is about "getting rid of vegetation in order to secure a place to step in." It is a reversal of the tradition of Gardening, which has been maintained by Buddhist temples for thousands of years, with respect for many lives, realizing and practicing the truth of life, and with the idea that life is the beginning of peace and the ultimate. The idea of life-peace, expressed as a field of grass flowers, is actually a long-standing thought and movement centered on Shilsangsa Temple in Jirisan Mountain. It is all the more meaningful because it originated from Jirisan Mountain, where the tragedy of fratricidal Korean War took place.

AN Sang-soo's life-peace pattern, which is emotionally compressed with the idea of life-peace, is more beautiful. At the center of the circle in the middle, there are three lines at the top that symbolize the grass tree. There are fish and birds on the left, and ground fish on the right with four feet and a tail. And there's a man down there. The key is that these four-way beings are connected to the circle in the middle. This means that many lives lead to one. It is a graphic that reminds us that humans cannot exist separately from everything that exists, such as the sky, the earth, the sea, air, earth, water, gas, solids and liquids. This image, which exists throughout the real world, also replaces the Buddha statues in human form. It shows that Buddha is no different from respect for human beings and awakening for their enlightenment.

What is peace? It means peace of life. Peace is meaningless in the material world all over the cabin. The universe is constantly changing in the chaos that takes place everywhere. This is why Westerners call the universe a space as a material space or a universe as a total of everything that exists, as well as a cosmos as a space and time that runs according to order even in chaos. It also appears in the first verse of the Thousand-Character Classic, "JeonjiHyeonhwang, Ujuhonghwang(天地玄黃宇宙洪荒)". The sentence, "The sky is black and the earth is pressing, and the universe is wide and rough," also tells us that the sky, the earth and the universe are full of unknown chaos.

After all, peace is a matter of life and ultimately a matter of human life. Just as the natural world seeks order in chaos, the human world also seeks order in chaos. But the order of the human world can be different from the order of the natural world. If the order of the natural world is in conflict and harmony with the material world, then the order of human society should be different from the order of the weak and strong. That's why we talk about peace, not about due diligence. In short, peace of life is an idea and a movement to promote peace in the cosmic perspective where many lives coexist based on the idea of respect for life. I think again about the life-peace art of Dobeop, who has a grass flower garden in his front yard and thinks of the universe as a reason.

image 1. The Grass Flower Garden of Master Dobeop in the Geungnakjeon Hall of Silsangsa Temple on Jirisan Mountain.
image 2. An Sang-soo's Life-Peace Pattern.
image 3. A Wall painting of a Lfe-peace pattern on the Information Center in Jirisan Dulle-gil, painted by Park Young-gyun.


生命和平的宇宙思維與實踐  
金俊起  

 “不與大自然抗爭,只看它的本質。”  
“請暫時停下來,看看這裏的宇宙。”  
“仔細看,花園本身的原貌”  
“這是星星們悠遊其中玩耍的大千庭院”  
“所有人都是花的璀璨華嚴世界花園”  

 智異山實相寺院裡有一方天堂,佛教僧侶居住的極樂殿,其後院寫有這樣的句子。這是用彩色鉛筆在瓦片上寫的花圃解說文。“這不是花圃,而是花園”。”花園是除了能種出美麗花朵的植物之外,還是雜草共生的空間“。花園不是依據人的眼睛,而是根據生命的邏輯,任何草都可以生長的空間”。不久前,它開滿了蒲公英的花,不久就盛開了勿忘我花,而月見草花很快便盛開了。每棵草木都盛開,每朵花兀自美麗。

僧侶的花園體現了生命和平的華嚴思想。最初的出發點就是不抗拒自然。通常, 廟宇的原則是,把建築以外的空間,即院子整理成不生長的乾淨空間。因此,從春季到秋季,寺廟與草展開搏鬥。每天以反覆的體力忙於除草。但是,和尚僧侶卻以逆向思維,創建了華嚴思想的花園。將人類行走以外的空間開闢爲花園,並擁抱原樣的自然,將宇宙供奉在那裏。止爭而得美,於是這結束了戰爭,並實現了和平的結果。

實際上,人類與自然抗爭得到的不只是建立並維持有限的人工空間。和尚僧侶停止了在寺廟裏與草進行的鬥爭,建造了星星聚集的大千庭院。「一微塵中含十方」,這詩出自於《義湘祖師法性偈》。總體而言,宇宙的所有事物存在都有其價值和意義。相反,每一個存在都是宇宙。這種將宇宙的一部分和整體視為有機聯繫的實體的宇宙正在智異山實相寺的花叢中擴散。

這一獨特的和尚院落,充滿了生命和平思想的藝術表現。庭園是通過控制自然獲得的人造空間。從詞彙意義上講,栽培庭園的造園術(gardening)是“為確保立足之地而消除植被”。反之,尊重眾生,從中領悟和實踐人生真理,認識生命即是和平共存的起點,僧侶們顛覆了佛教寺廟維護了數千年的景觀建築傳統。以為「庭園造園」作為的生活和平的思想實際上是一個主要在智異山實相寺傳承了長時間的思想,也是一種實踐運動。源於 6.25戰爭這一同族相殘悲劇發生的智異山,其意義更加特別。

安尚秀的生命和平紋理是其生命和平理念的濃縮大成,紋理極為美麗。以中心圓為中心,上面有象徵草木的三條線。 左邊是魚和鳥,右邊是四腳和尾巴的地魚。 還有下面有人。 核心是這四個方向的存在與中間的圓相連。 意思是說,衆多的生命就這樣連在一起。 這種圖像使人意識到,人與天地和海洋,空氣和泥土,水氣體和固體和液體等存在的一切分離,是不可能存在的。 在實相寺中隨處可見的佛像有時會代替人類形態的佛像。 佛陀是向世人表明,它與人類的敬意及其感悟並無二致。

什麼是和平?這意味著安寧。實際上,和平對宇宙所處的物質世界沒有任何意義。 在各地不斷發生的混亂、不斷變化才是宇宙的常態。西方人之所以將宇宙視為一個空間是一個物理空間,是因為宇宙的概念是所有存在的整體,以及將其命名為宇宙的時空,即使在混亂中也能有序地運轉在那兒。 千字文第一句中也有記載。「天地玄黃,宇宙洪荒」 宇宙形成於混沌蒙昧的荒蕪狀態之中,告訴我們「天地混沌,充滿了未知的混亂」。

畢竟,和平是生活的問題,歸根結底人類生活的問題。正如自然界在混亂中尋找秩序一樣,人類也試圖混亂中找到秩序。但是,人類世界的秩序可能與自然世界的秩序不同。 如果說自然界的秩序是在物質世界的衝突和和諧中形成的,那麼人類社會的秩序就應該與弱肉強食這樣的秩序是不同的。這就是為什麼我們談到和平。簡而言之,生命和平是以尊重生命的思想爲基礎,提倡多種生命共存的宇宙觀和平思想,也是實踐運動。前院裏供奉着一座花園,重新思考宇宙道法的僧侶的生命和平藝術。  

 

圖1 智異山實相寺極樂殿院內和尚種植的花圃。  
圖2 安尚秀的生活和平圖樣。  
圖3 朴永均的作品《智異山遊客中心》的壁畫,以藝術的形式詮釋了生命和平形象。


生命平和という宇宙的思考と実践
金俊起

 

「自然と戦わずに、ただ自然があるがままの姿を見よ」

「しばし止まってここにある宇宙をありのままに見よ」

「よく見よ、草花畑そのものを」

「ここは星たちが遊ぶ宇宙の庭」

「皆が花で輝く華厳世界の草花畑」

 

智異山実相寺には道法僧侶が滞在する極楽殿があり、その中庭にこのような文句が書いてある。瓦に色鉛筆で書かれた草花畑の解説文だ。これは花畑ではなく草花畑、と。花畑は、見栄えの良い花を咲かせる植物以外の草を排除する空間だ。草花畑は人の目でなく、生命の論理にしたがってどんな草でも育つ空間だ。少し前まではタンポポの花でいっぱいだったが、いつの間にか芒硝の花が満開になり、まもなく月見草の花が咲くだろう。 全ての草は花を咲かせ、その花はそれぞれに美しい。

道法僧侶の草花畑は生命平和という華厳思想を集約している。最先端を行く出発点とは、自然に抗わないことだ。寺家は建築物以外の空間つまり庭を、草一本も生えないこぎれいな空間に整理することを原則とする。したがって、春から秋にかけて、寺家は草と戦いを繰り広げる。毎日が鬱蒼とする草取りで忙しい。ところが道法僧侶は逆の発想で華厳思想の庭園を作った。人の歩く道以外の空間を草花畑と名付け、ありのままの自然を受け入れてそこに宇宙を祀った。戦いを止めて、美しさを得た。戦争を終結し、平和を達成したのだ。

実際、人間が自然と戦って得られるものは、限られた場所に人工的な空間を造成し、維持することだけではない。道法僧侶は、寺家で行われる草との戦いを止め、星が宿る宇宙庭園を作った。「一微塵中含十方」、つまり一粒の塵に宇宙が宿る」と話した。 『義湘祖師法性偈』という詩に出てくる一節。万物の総体として、宇宙の一つ一つの存在に価値があり意味がある。逆に、存在の一つ一つが宇宙である。部分と全体を有機的に連動する総体として認識するこの宇宙的事由が、智異山・実相寺の草花畑に広がっている。

道法僧侶のこのユニークな庭園は生命平和思想の芸術的表現である。庭園は自然をコントロールして得た人工的な空間だ。辞書的な意味だと庭の手入れとなる造園術は、「踏み場を確保するために植生をなくす」ことだ。多くの生命を尊重し、その中で生の真理を悟り実践し、生命こそ平和の出発であるという究極の生命平和思想で、仏教寺院が数千年間維持してきた造園術の伝統を変えたのだ。「草花畑」と表現した生命平和思想は、実は智異山実相寺を中心に長く受け継がれてきた思想であり、実践運動でもある。6.25戦争という同族が争う悲劇が顕著に起こった智異山に端を発したことの意味はさらに格別なものがある。

生命平和思想を感性学的に圧縮した安尚秀の生命平和文様はさらに美しい。中央の円を中心として、上方に草の木を象徴する三つの線がある。左には魚と鳥、右には四足と尻尾を持つ鳥がある。そして下には人がいる。核心は、この4つの方向の存在が中央にある「円」につながっていることにある。もろもろの生命はこのように一つに繋がるという意味だ。人間は天と地と海、空気と土と水気体と固体と液体など存在するすべてのものと別々に存在することはできないということを悟らせてくれるグラフィックだ。実相寺のあちこちに存在するこの図像は、人間を形どった仏像に取って代わったりもする。「仏陀」という人間に対する敬意と、その悟りに対する覚醒とが変わらないということを示す。

平和とは何か。それはすなわち生命の平和を意味する。 実際、宇宙の至るところ、物質世界に平和は意味がない。あちこちで起こる混沌の中で絶えず変化するのが宇宙だ。 西洋人が宇宙を物的空間としてのスペースと見たり、存在するすべての総体としてのユニバース(universe)という概念とともに、混沌の中でも秩序に従って運行する時空間としてのコスモス(comos)と命名する理由でもある。千字文の最初のくだりにも出てくる 「天地玄黃宇宙洪荒」というこの一文も、「天と地、宇宙は未知の混沌に満ちている」ことを知らせてくれる。

結局、平和は生命の問題、究極的には人間の生活の問題だ。自然界が混沌の中で秩序を見出すように、人間界もまた混沌の中で秩序を見出す。しかし、人間界の秩序は自然界の秩序と異なる場合がある。自然界の秩序が物質世界の衝突と調和の中でなされるものなら、人間社会の秩序は弱肉強食のような秩序とは異なるものでなければならない。それが私たちが平和を語る理由だ。要するに、生命平和は生命尊重の思想をもとに、多くの生命が共存する宇宙的観点の平和を汲み上げようとする思想であり、実践運動でもある。前庭に草花畑を祀り、宇宙を思惟する道法僧侶の生命平和芸術をあらためて考える。

 
図版1 智異山実相寺極楽殿の庭にある道法僧侶の草花畑
図版2  安尚秀の生命平和文様
図版3 生命平和文様を造形美術で解釈した朴永均の作品、智異山トレッキング・ビジターズセンターの壁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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