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시선] 경제구조와 삶 형태 바꾸는 새로운 전환 필요한 때 / 김효철

* ‘소리시선’(視線) 코너는 말 그대로 독립언론 [제주의소리] 입장과 지향점을 녹여낸 칼럼란입니다. 논설위원들이 집필하는 ‘사설(社說)’ 성격의 칼럼으로 매주 수요일 정기적으로 독자들을 찾아 갑니다. 주요 현안에 따라 수요일 외에도 비정기 게재될 수 있습니다. / 편집자 글

낡은 것들은 사라지고 있으나 새로운 것은 아직 오지 않았다.

지구 생태계 파괴와 인간 삶을 경쟁 속에 내몰며 자본화를 이루던 20세기 자본주의가 서서히 수명을 다해가고 있다. 코로나19는 21세기를 넘어서도 영원할 것처럼 환상을 주던 자본주의에 치명타를 남겼다.

진정한 21세기는 코로나19와 함께 시작된 것이다.

코로나19는 자유시장경제가 대변하던 시대에 국가 또는 지역공동체가 왜 중요한지를 분명히 느끼게 했다. 나아가 싼 노동력과 원료를 찾아 세계 곳곳을 이윤추구를 위한 공급망으로 이어온 자본주의 생산체계도 흔들린다.

무엇보다 가장 합리적이고 그러기에 영원하리라는 자본주의에 대한 믿음이 무너지고 있다.

자본주의와 공산주의가 대립하던 시절 자본주의를 반대하는 것만으로도 처벌받던 시절이 있었다. 자본주의는 곧 민주주의이며 민주주의가 영원하듯 자본주의도 영원할 것이라는 믿음이 우리를 사로잡았다.

하지만 코로나19 시대에 어느 누구도 자유시장경제가 우리를 바이러스로부터 지켜 줄거라 말하는 사람은 드물다. 방역이나 의료 시스템은 물론 마스크나 생필품조차 국가나 지역사회와 같은 공공영역에서 해결해야 하는 상황을 맞닥뜨린 지금, ‘보이지 않는 손’에 맡기라며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은 찾기 힘들다. 평소 자유시장 경제를 주창해온 학자들이나 주류 언론조차 정부에 마스크 공급 책임을 따지고 있음이 방증한다.

자본주의 경제 체제는 수백년을 이어오며 환경파괴와 빈부격차, 차별 등 우리 사회에 많은 문제를 드러내고 있다. 자본주의의 한계를 넘어 새로운 사회로 향하기 위한 유력한 대안은 사회적 가치 실현을 목적으로 하는 경제활동이다.

수백 년을 이어온 자본주의 경제 체계는 우리 사회에 숱한 과제를 남겼다. 자유시장경쟁에 바탕한 자본주의가 만병통치술처럼 생산력을 높이고 경제발전을 이루며 인류에게 풍요를 약속했으나 여전히 10억 명이 넘는 사람들이 배고픔에 고통받고 있다. 이미 남극과 북극 또는 태평양을 가리지 않고 플라스틱 쓰레기로 오염될 만큼 환경파괴는 심각하다. 자유민주주의를 바탕으로 자본주의 본류를 이룬 미국에서 벌어지는 빈부격차와 차별, 백인 우월주의가 낳은 야만스런 폭력을 보면 낡은 것은 단지 낡은 것이 아니라 사라져야할 것임이 분명하다.

이미 지구는 환경파괴나 사회공동체 붕괴, 자본간 경쟁과 같은 이유로 그야말로 거주 불능한 곳으로 변하고 있다.

얼마 전 원희룡 지사도 언론사 기고에서 ‘거주불능 지구를 물려줄 수는 없다’며 위기의식을 공유했다. 원 지사는 환경 문제 해결을 위해 ‘탈탄소 제주(Carbon Free Jeju)’ 기본계획을 수립해, 도내 전력과 자동차를 100% 재생에너지와 전기차로 바꾸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원 지사가 스스로 밝혔듯이 지금 정책만으로는 2030 온실가스 배출량을 전망치(BAU) 대비 34% 줄이는 데 그친다. 또 다른 환경 부담이 불가피한 재생에너지 개발과 전기차 보급만으로 제주를 거주 가능한 지역을 돌릴 수는 없다. 다른 한편에서는 대규모 개발사업이 줄을 잇는 상황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지금까지 경제구조와 삶 형태를 바꾸는 새로운 전환이 필요한 때다.

코로나19로 인류 생존 위험이 높아가고 과거 경제체제로서 자본주의 한계가 드러날수록 이를 대체할 경제와 사회체제에 대한 관심과 요구는 높아간다.

사회적 경제는 지금 자본주의 한계를 넘어 새로운 사회를 향한 가장 유력한 대안으로 떠오른 실천 운동이다. 사회적 경제는 양극화 해소와 일자리 창출, 지역공동체 재생과 지역순환경제, 환경문제 해결과 사회통합 등 사회적 가치를 실현을 목적으로 하는 경제활동이다. 

7월 1일은 사회적기업의 날이고 4일은 협동조합의 날이다. 또 이번 한 주를 사회적 경제주간으로 삼아 사회적 경제 가치를 알리고 연대와 협동을 실천한다.

아쉽게도 올해는 코로나19로 인해 전국 사회적 경제 박람회를 비롯해 사회적 경제 관련 행사가 크게 줄었다. 제주에서도 코로나19 여파로 사회적 경제 한마당 예산이 삭감되면서 한마당 행사가 취소돼 아쉬움이 남는다.

그럼에도 제주 사회적 경제 주체들은 코로나19 이후를 준비하기 위한 더 깊은 고민과 준비를 해야 하는 시기다. 특히, 올해로 1차 제주 사회적 경제 종합발전계획이 마무리되고 새롭게 2차 종합발전계획 수립을 앞두고 있다.

제주특별자치도는 2015년 제주 사회적 경제 활성화 방안을 담은 종합발전계획을 발표했다. 원 지사는 또 지난 도지사 선거 과정에서 제주를 사회적 경제 선도 도시로 만들겠다는 공약도 내세웠다. 하지만 사회적 경제 선도도시 공약이나 종합발전계획이 내비친 화려함은 빛을 바래고 있다.

종합발전계획을 보면 2020년까지 사회적 경제 규모를 도내 총생산(GRDP) 기준 5%를 목표로 하고 있다. 사회적 경제 기업을 2014년 기준 200개에서 2000개로 늘리겠다는 목표도 제시했다. 그러나 사회적 경제 기업 수는 500개에도 이르지 못한 것을 비롯해 사회적 경제 총생산량, 사회적 경제 전문인력 양성 등 대부분 계획이 목표를 크게 밑돌고 있다.

제주특별자치도는 이런 결과에 대해 자유롭지 못하다.

최근 제주특별자치도 조직개편 과정에서 사회적 경제팀이 다른 팀에 통합된다는 소문이 나돌면서 사회적 경제 현장에서 진위확인에 나서기도 했다. 다행히 제주특별자치도는 사회적 경제팀 축소는 없다고 밝혀 혼란은 잦아들고 있다. 하지만 사회적 경제팀 존속 논란을 떠나 전국 광역시도에 비해 제주특별자치도 사회적 경제 담당 조직은 열악하다. 강원도와 전라남북도를 보더라도 사회적 경제과를 별도로 두고 3개 팀(담당)을 운영하고 있는 것에 비해 제주도는 경제 정책과 내 1개 팀이 있을 뿐이다. 사회적 경제 선도도시를 꿈꾸는 조직이라 하기는 부족하다. 나아가 원 지사가 내세운 사회적 경제 선도도시 공약 실천 의지에 의문이 드는 상황이다.

제주특별자치도는 제주연구원에 의뢰해 올해 말까지 2차 사회적 경제 발전 종합계획을 준비하고 있다. 1차 계획이 화려한 목표에도 불구하고 초라한 결과가 분명한 상황에서 2차 계획은 다시 장밋빛 전망만 내세워서는 안 된다.

김효철 (사)제주사회적경제네트워크 상임대표 ⓒ제주의소리
김효철 (사)제주사회적경제네트워크 상임대표 ⓒ제주의소리

코로나19 영향을 비롯해 크게 달라진 제주 환경에서 사회적 경제가 갖는 책임과 중요성이 더욱 커졌기에 2차 발전계획은 보다 분명하고 실천 가능한 계획이어야 한다. 제주 사회적 경제가 지역 내 일자리 문제를 비롯해 환경과 농업, 지역공동체와 공유자산 보전, 미래 산업육성 등 새로운 제주를 만들어가야 한다. 이를 위해 발전계획은 사회적 경제 현장 목소리를 제대로 듣고 제주를 사회적 경제 선도도시로 만들겠다는 제주도정 의지와 계획도 담겨있어야 한다.

낡은 것을 대체할 새로운 것을 이루지 못해 제주 사회가 또다시 낡은 것들이 지배하는 사회로 남는다면 주거불능 제주는 훨씬 빨리 올 것이다. 사회적 경제가 다시 힘내야 하는 이유다. / 김효철 (사)제주사회적경제네트워크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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