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국제평화센터, 8월 31일까지 강요배 개인전 ‘금강산과 DMZ’

제주 화가 강요배의 명성은 비단 자료들을 나열하지 않더라도 평론가, 동료 예술가, 미술애호가 모두에게 제주를 대표하는 현대화가로 손꼽힌다. ‘거리 위의 종합 예술’ 제주민예총의 창작 거리굿부터 1000석 넘는 실내 공연장의 창작오페라 <순이삼촌>까지, 강요배의 4.3역사화 연작은 빠지지 않고 등장할 정도니 4.3예술에 있어서도 그의 위상을 실감케 한다.

4.3역사화 연작 ‘동백꽃 지다’ 덕분인지 기자를 포함해 많은 이들이 강요배를 4.3작가로만 인지했지만, 강요배는 ‘자연(自然)’에 대해서도 깊은 이해를 보여 왔다. 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이자 미술평론가 김준기는 2016년 <월간미술>에서 “강요배의 세계는 한 시대의 대세를 이룬 특정 예술이념과 관계를 맺으면서도, 애초에 그를 길러낸 제주의 자연과 역사가 그에게 안겨준 근본 성정을 풀어낸 과정으로 보아야 한다”고 설명한다.

이런 점에서 6월1일부터 8월 13일까지 제주국제평화센터(센터장 김선현)에서 진행하는 강요배 개인전 <금강산과 DMZ>는 자연 뿐만 아니라 민족의 염원에 대한 화가의 성찰을 느낄 수 있는 소중한 기회다.

강요배 개인전 '금강산과 DMZ'를 진행 중인 제주국제평화센터 기획전시실. 제공=제주국제평화센터. ⓒ제주의소리
강요배 개인전 '금강산과 DMZ'를 진행 중인 제주국제평화센터 기획전시실. 제공=제주국제평화센터. ⓒ제주의소리

제주국제평화센터 기획전시실에 걸린 강요배 작품을 보면 시간과 공간의 흐름이 느껴진다. 1998년 금강산에서 물꼬가 트여 2000년 DMZ(비무장지대)를 휘돌고 다시 훌쩍 뛰어넘어 2019년 제주로 흘러 나간다. 강요배는 1998년 8월 평양 조선화 창작단과의 7박 8일 금강산 여행, 2000년 국내 휴전선 답사단과 6박 7일 DMZ 여행을 떠났다. 

구룡폭포와 해금강, 그리고 덕흥리 고분까지 북한 땅을 둘러보며 남긴 작품들은, 거칠고 속도감을 우선시한 느낌이 강하다. 각진 선의 조합으로 만들어낸 <땅크바위>, 시야에 들어오는 인상을 몇 줄기 선으로 표현한 <청룡>, <주작>, <백호>와 <삼일포> 등을 보면 경계 너머로 들어간 화가의 긴장감과 흥분을 상상하게 만든다.

이와 달리 파스텔 조합만으로 층층이 쌓인 자연 지물의 두께감을 표현해낸 <펀치볼>이나 농도를 달리한 검은 색 만으로 내포한 역사를 이끌어내는 <끊어진 다리>처럼 2000년 DMZ 스케치는 선과 색의 활용에 있어 한층 차분하다. 낯선 공간에서 서둘렀을 1998년은 빠르게 사물의 핵심을 파악하는 눈썰미와 순발력을, 한층 여유 있는 분위기에서 작업한 2000년은 명성에 걸 맞는 진면목과 섬세함을 비교해보는 재미가 있다.

제공=제주국제평화센터. ⓒ제주의소리
강요배의 작품 '땅크바위', 24x34cm, 종이에 붓펜, 1998. 제공=제주국제평화센터.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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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룡, 25x34cm, 종이의 붓펜, 1998. 제공=제주국제평화센터.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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펀치볼, 26x38cm, 종이에 파스텔, 2000. 제공=제주국제평화센터.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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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어진 다리, 26x38cm, 종이에 콘테, 2000. 제공=제주국제평화센터.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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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 뜯는 사람, 55x79cm, 종이에 목탄, 2000. 구제공=제주국제평화센터. ⓒ제주의소리

관람객 시선을 사로잡는 작품은 2019년 작 <구룡폭>과 <중향성>이다. 두 작품은 압도하는 크기(182×259cm, 197×333cm)에 폭포의 하강, 봉우리의 상승이란 상반된 특성을 각각 흩날림과 뭉침으로 구현한 기법 이상으로 강요배의 진지한 열망이 담겨 있다.

그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단출한 스케치 속 북한 땅을 끄집어내 21년 만에 커다란 화폭 위에 옮긴 이유는 무엇일까.

2018~2019년은 한반도 역사에서 유례없는 남북한의 역사적 진전을 기대한 시기다. 북한 지도자가 종전 이후 처음으로 남한 땅을 밟고, 남한 지도자가 수만 명의 북한 주민 앞에서 한반도의 새로운 미래를 공표했으며, 두 사람이 백두산에 올라 손을 맞잡았다. 나아가 한 때 서로를 절멸하기 위해 총부리를 겨눴던 한국, 북한, 미국 세 나라 정상이 분단 경계선에서 모이는 사상 초유의 순간을 온 국민, 전 세계가 지켜봤다. 

다른 세상이 찾아오리라는 희망이 국민들 가슴에 깃들었다. 많은 예술인들은 숨 가쁘게 흘러가는 역사의 순간을 지켜보며 영감을 받았다. 강요배 역시 같은 마음이지 않았을까. 냉엄했지만 뇌리에 깊이 새겨진 북녘 땅을 또 다시 밟을 수 있겠다는 기대감, 그때가 온다면 서둘렀던 스케치가 아닌 혼신을 다해 금강산을 그려보리라는 벅찬 마음으로 귀덕화사에서 붓을 잡지 않았을까. 

제공=제주국제평화센터. ⓒ제주의소리
구룡폭 Ⅰ, 54x39cm, 종이에 목탄-파스텔, 1998. 제공=제주국제평화센터.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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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룡폭 Ⅲ, 182x259cm, 캔버스에 아크릴릭, 2019. 제공=제주국제평화센터.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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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양사망 내금강경, 54x39cm, 종이에 목탄-파스텔, 1998. 제공=제주국제평화센터. ⓒ제주의소리
중향성, 197x333cm, 캔버스에 아크릴릭. 2019. 제공=제주국제평화센터. ⓒ제주의소리
중향성, 197x333cm, 캔버스에 아크릴릭. 2019. 제공=제주국제평화센터. ⓒ제주의소리

 

“정양사에 오르니 백운대, 중향성, 비로봉이 한눈에 하얗게 펼쳐졌다. 그 품 안에 꽃송이를 피워놓고 기라성처럼 흰 돌기둥 무리가 그 사위를 푸르고 금강계를 펼치고 있었다. 풋풋하고 순수한 마음의 경지. 그것은 오랜 시간을 거쳐, 울울 첩첩한 공간을 돌아, 강고한 인간의 제도를 뚫고 뚫어서 구하지 않으면 안 될 우리 겨레의 이상향이 아닐까. 그 맑고 고운 기운은 이제 현실의 안개와 홍진에 휩싸여 꿈속에 두고 온 듯 아득하기만 하다.

새천년 오늘 남북의 정상이 만나려 한다. 조팝나무, 귀릉나무 하얀 꽃무리 무덕진 판문점 길을 따라 벌써 선발대가 북으로 떠났다. 
우리 민족은 더 이상 서로에게 ‘개’와 ‘꼭두각시’는 아닐 것이다. 50년의 어둠을 걷어내고 광휘의 여름, 6월의 새날을 열어야 하리라.

- 2000년 5월 31일 강요배 에세이 <봉래와 금강> 가운데

안타깝지만 미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어느 회고록의 내용처럼 미국 강경파와 일본의 집요한 방해 공작으로 2019년 이후 남북 간의 기대는 더 이상 부풀지 않았고, 오히려 다시 차가워진 상태다. 강요배의 바람처럼 “50년의 어둠”이 걷히길 간절히 원했지만 안타깝게도 현실은 ‘70년의 어둠’까지 현재 진행형이다.

하지만 포기할 일은 아니다. 남북의 화합을 바라는 세력과 바라지 않는 세력이 이제는 명확히 드러난 마당에, 민족 공동체의 미래가 걸린 역사의 발걸음은 다시 한 걸음 씩 내딛을 것이다.

전시를 준비한 협력 큐레이터 이나연의 표현처럼 "강요배의 시선으로 따라가는 의미있는 평화기행"이 세계평화의 섬을 위해 출범한 제주국제평화센터에서 열린 사실은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 

김선현 센터장은 "제주4.3, 진실, 평화를 미술로서 대중과 꾸준히 만나왔기에, <금강산과 DMZ>전은 강요배 만이 할 수 있는 전시"라며 "오랫동안 자신 만의 예술 세계를 잃지 않은 화가의 행보가 더해져 보는 이에게 감동으로 다가온다"고 강조했다.

머지않은 시기, 강요배가 다시 금강산 앞에 서서 “풋풋하고 순수한 마음의 경지”를 온전히 느끼고 화폭에 담아내는 날이 오길 기원해본다.

제공=제주국제평화센터. ⓒ제주의소리
같은 구룡폭포 작품이지만 양 쪽 작품 사이에는 21년이란 세월이 존재한다. 제공=제주국제평화센터. ⓒ제주의소리
제공=제주국제평화센터. ⓒ제주의소리
21년 전 금강산 풍경을 스케치한 왼쪽 작품들과 오른쪽 '중향성' 작품. 제공=제주국제평화센터.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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