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창식 시인, 시집 《노지소주》 발간..‘서정성과 공동체의식의 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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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창식 시집 《노지소주》(시와실천). ⓒ제주의소리

“노지에서 자라고/노지로 돌아갈 제주사람들…(중략)…찬 거 말고 노지 걸로 줍서/오늘 저녁도 술집마다”

찬 술이 아닌 다소 온도가 미지근한 소주, 즉 노지 소주를 찾는 제주인. 말씨와 표정만 보면 무뚝뚝해 보이지만 수없이 오고 가는 외지인과 관광객들을 깊이 수용하는 중용의 자세를 가진 제주인을 그린 시집이 세상에 나왔다.

2009년 《정신과 표현》으로 등단한 양창식 시인이 시집 《노지소주》(시와실천)를 발간했다.

‘서정성과 공동체의식의 조화’라는 평을 받는 이 시집은 △두개의 문 △흔적 △담지 못한 소리들 △어떤 추억은 꽃으로 핀다까지 5부로 구성돼 있다. 

박현솔 시인 겸 문학박사는 이 시집을 “‘자연과의 조화’, ‘사랑의 원천’ 측면에서는 개인적인 서정적 감정을 주로 구현하고 있으며, ‘섬사람으로서의 소외감’, ‘제주 4.3사건’, ‘공동체의식’의 측면에서는 제주인으로서 혹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느끼는 공동체의식을 심층적으로 짚으며 자신만의 시적세계를 구축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특히 양창식 시인의 시편들에는 제주 4·3의 아픈 기억이 절절하게 배어있다. 희생자들의 마지막 말을 옮겨놓은 시편들은 “묻혀야 할 진실이란 없다”고 말한다.

“넓은 세상에서 고통 어시 살라/ 아멩 죽어져도 오지 말라 설운 아덜아”

우리 어머니들의 피눈물 섞인 애원을 고스란히 담은 이 시구를 인용하며, 문태준 시인은 “제주 사람들의 굳센 생명력을 제주말로 노래한 ‘노지소주’ 같은 시집이라고 말하고 싶다”고 비유했다.

한편 양 시인은 시집 『제주도는 바람이 간이다』 외 여러 권의 책을 쓰고, 시사모 동인, 탐라문학회 동인, 제주국제대학교 총장, 대학원장, 교수를 역임한 바 있다.

노지소주(露地燒酒)
양창

여름에도 미지근한 소주를 찾는다 
차가운 유혹을 물리치고
노지 것을 주문하는 제주사람들의
고집이란

육지와 제주의 만남은 소주잔 온도
차가운 잔
미지근한 잔
오가는 술잔 속에 달아오르는 화색
온도의 경계는 모호해지고

노지에서 자라고
노지로 돌아갈 제주사람들
새 잎 묵은 잎 감싸 안으며 피는
감귤 꽃처럼
상생을 꿈꾸는 섬사람들의
미지근한 질서

찬 거 말고 노지 걸로 줍서

오늘 저녁도 술집마다
투박스러운 주문이 쏟아지고
노지 한 벌판을 넘길 때마다
식탁위에 퍼런 묘비가
하나씩 늘어가는 데
 

시와실천, 148쪽, 1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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