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과 검찰, 경찰 모두가 나에게 족쇄였다”

11년간 제주 보육교사 살인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돼 살아 온 전 택시기사는 지난 세월을 족쇄라고 표현했다.

항소심 재판부도 11년 전 제주 보육교사 살인사건의 범인을 경찰이 끈질기게 추적해온 전 택시기사로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광주고등법원 제주제1형사부(왕정옥 부장판사)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강간등 살인)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박모(51)씨에 1심과 같이 무죄를 8일 선고했다.

선고 직후 박씨는 심경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언론과 검찰, 경찰 모두가 나에게 족쇄였다. 그것들이 나의 모든 것을 잃게 했다. 너무 힘들다. 그만하자”며 고개를 떨구었다.

박씨는 2009년 2월1일 새벽 3시쯤 제주시 용담동에서 자신이 운행하는 택시에 탑승한 이모(당시 27세.여)씨를 성폭행 하려다 살해하고 애월읍 고내리의 배수로에 사체를 유기한 혐의를 받아 왔다.

경찰은 시신이 발견된 2009년 2월7일 수사본부를 설치하고 택시기사를 용의자로 지목했다. 이를 위해 도내 택시기사 5000명을 전수조사하고 운행기록까지 분석했다.

당시 경찰이 지목한 유력 용의자가 박씨였다. 수사에 탄력을 받는 듯 했지만 피해자의 사망 일시를 두고 혼선이 빚어졌다. DNA 등 직접증거까지 나오지 않으면서 수사는 난항에 빠졌다.

풀려난 박씨는 이듬해인 2010년 2월 제주를 떠나 여러 지역을 떠돌며 생활해 왔다. 그사이 수사본부까지 해체되면서 사건은 장기미제로 남게 됐다. 

2016년 2월7일 제주지방경찰청 장기미제사건팀이 사건을 넘겨받으면서 형사들은 다시 박씨를 겨냥했다. 2017년 6월 제주청 형사과장을 맡은 김기헌 총경이 사건을 진두지휘했다.

경찰은 여성의 사망시점을 증명하기 위해 국내 최초로 동물사체 실험을 진행했다. 당시 사체 상태와 기후조건까지 맞춰 사망 시점을 실종 당일을 기준으로 24시간 이내로 특정했다.

이후 범행 동선에서 박씨의 차량이 찍힌 폐쇄회로(CC)TV 영상을 보정하고 당시 용의자와 피해자의 옷, 택시에서 발견된 섬유 조각에 대한 미세증거 분석 작업을 진행했다.

발전된 과학수사 기법을 총동원 해 10년 전 증거물을 다시 꺼냈다. 각 사안별로 입증 불가능한 경우의 수를 제외하며 용의자를 추렸다. 경찰의 마지막 경우의 수도 역시 박씨였다.

반면 법원은 피해자가 피고인의 택시에 탑승 했는지 여부와 검찰이 제시한 CCTV 속 차량이 피해자의 택시인지 여부에 대한 증거가 모두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피고인의 택시 뒷좌석과 트렁크에서 동물털이 발견됐지만 이를 피해자의 무스탕 뒷 목부분에서 나온 섬유와 동일하다고 단정지을수 없다”고 밝혔다.

CCTV에 대해서도 “영상 속 차량이 당시 피고인이 운전한 택시와 동일하다고 볼 수도 없다”며 “더욱이 당시 증거물 속 CCTV 촬영시간이 실제 시간과 달라 증명력도 높지 않다”고 강조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여러 상황을 종합하면 수사기관은 피고인이 범인임을 전제로 사건을 추적한 것으로 보인다”며 “검찰의 공소사실이 구체적고 증명이 이뤄졌다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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