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초 여동생에게 사업자금을 빌린후 갚지 못하고 야반도주한 구성회(왼쪽) 할아버지가 40여년만에 제주에서 재회해 활짝 웃고 있다. [사진제공-성산파출소]
1980년대초 여동생에게 사업자금을 빌린후 갚지 못하고 야반도주한 구성회(왼쪽) 할아버지가 경찰의 도움을 얻어 40여년만에 여동생과 제주에서 참회의 상봉을 이뤘다. 여동생과 재회해 활짝 웃고 있다. [사진제공-성산파출소]

사업난을 겪던 오빠가 신혼부부였던 여동생에게 빌린 돈을 갚지 못하고 야반도주했다가 40년만에 참회의 상봉을 이뤘다. 30대였던 오빠는 어느새 70대 할아버지가 됐고 여동생도 60대 중반이 되어서야 경찰의 도움으로 제주에서 감격스런 재회가 이뤄졌다.  

지금부터 약 40년 전, 경기도 이천 출신인 구성회(73.성산) 할아버지는 1980년대 경기도 안성에서 벽돌공장을 운영하다 자금난에 처하자 여동생(66)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200만원을 급하게 빌렸다.

삼남매 중 막내인 여동생은 당시 서울에서 신혼부부 생활을 하고 있었다. 사업을 하는 오빠를 위해 여동생은 만사를 제쳐놓고 선뜻 돈을 건넸지만 기나긴 이별의 시작이 되고 말았다. 당시 200만원은 보통의 직장에서 1년치 월급을 모아야 할 액수였다. 

여동생은 이 일로 새신랑과 싸우고 한 달 가까이 별거까지 했다. 시어머니의 도움을 받아 가까스로 재결합했지만 하마터면 파경까지 갈 아찔한 상황이었다.

빚에 시달린 오빠는 거주지를 떠나 전국을 돌아다니며 악착같이 돈을 벌었다. 1987년에는 제주까지 내려와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일을 했다.

선박 폐선 사업을 시작으로 돈을 모아 땅을 사들이며 자수성가 했다. 자신도 자식들을 키우면서 노후 생활을 즐기고 있지만 정작 술을 마실 때마다 혈육에게 너무나 큰 죄를 지은것 같아 여동생이 매번 눈에 아른거렸다.

때마침 동네에서 파출소 직원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 경찰의 신원확인 서비스를 알게 됐다. 더 이상 기다릴 이유가 없었다.

6일 성산파출소 경찰관과 만난 자리에서 “여동생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생사만이라고 알고 싶다”며 도움을 요청했다.

경찰은 민원인이 적은 여동생의 이름을 조회해 경기도 남양주시 모 아파트에 거주하는 사실을 알아냈다. 7일 아파트 관리사무소를 통해 드디어 연락이 닿았다.

느닷없는 전화에 여동생은 처음 보이스피싱을 의심했다. 경찰관이 오빠의 신원을 얘기하자, 노숙자로 생활하다 숨진 것은 아닌지 가슴이 막막했다.

경찰관이 민원인의 사연을 차분히 소개하며 “애타게 찾고 있다”는 말을 전하자, 그때서야 안심하고 만나겠다는 의사를 전했다.

여동생은 바로 다음날 제주행 항공기에 몸을 실었다. 이어 이날 오후 4시30분 서귀포시 성산읍 성산파출소를 찾아 기다리던 오빠 품에 안겼다.

오빠는 지금이라고 돈을 갚겠다며 현금을 건넸지만 동생은 한사코 거절하며 손사래를 쳤다. 20대였던 여동생의 곱디곱던 손은 어느새 60대 초로에 접어들며 주름진 모습을 하고 있었다.

구 할아버지는 “제주에 터를 잡고 먹고 살기에 바빠 옛날 일은 다 잊어버리며 살았다”며 “하지만 술을 마실 때마다 여동생의 얼굴이 떠올라, 어떻게든 참회하고 미안한 마음을 꼭 전하고 싶었다. 이렇게 만나게 돼 기쁘고 감격스럽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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