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댁, 정지에書] (4) 독새기 고기튀김 / 김진경 베지근연구소 총괄디렉터 제주음식연구가

밥이 보약이라 했습니다. 바람이 빚어낸 양식들로 일상의 밥상을 채워온 제주의 음식은 그야말로 보약들입니다. 제주 선인들은 화산섬 뜬 땅에서, 거친 바당에서 자연이 키워 낸 곡물과 해산물을 백록이 놀던 한라산과 설문대할망이 내린 선물로 여겼습니다. 제주에서 나고 자란 김진경 님은 제주 향토음식에 대해 공부하고 있는 젊은 연구자입니다. 격주로 '제주댁, 정지에書'를 통해 제주음식에 깃든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편집자 글]
 
 제주에는 집에서 잔치음식을 준비하고 하객을 대접하며 치러지는 결혼식을 ‘가문잔치’라고 한다. 지금은 사라진, 정겹고 그리운 결혼문화다.  ⓒ이로이로

지금으로부터 15여 년 전, 대학 선배 언니가 졸업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일찍 시집을 가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결혼식에서 친한 동기가 부신부를 맡게 되었는데, 그 친구가 내게 결혼식을 도와달라며, 이틀 치 짐을 싸서 집 앞에서 대기하라고 연락했다. 아침 일찍 결혼식 하객 옷까지 챙긴 배낭을 짊어지고 집 앞에 서 있으니 승합차 한 대가 집 앞에 멈춰 섰는데, 차 안을 들여다보니 대학 동기와 선배들이 이미 한 차 가득 타고 있었다. 그렇게 우리를 태운 차는 제주시를 출발하여 산방산 아랫자락 사계리의 한 집 앞에서 멈춰섰다. 그리고 그 사계리의 집에서 이틀 간의 여정이 시작되었다.

우리는 바로 작업복(?)으로 환복하여 한 팀은 서빙을, 한 팀은 삼촌들의 부름씨(심부름의  제주어)를, 한 팀은 부신부 옆에서 부신부를 도우며 정신없는 하루를 보냈다. 저녁에는 부신부가 지정해 준 방에 모여 숙취해소제에 손수건을 감싸 돌돌 말면서 내일 아침에 있을 결전의 날을 대비하며 첫 번째 밤을 보냈다.

다음날 아침, 신랑이 그의 친구들과 함께 신부를 데리러 신부집에 왔고 우리들은 신랑상이 차려진 방에서 그들을 맞이했다. 그리고 온갖 수난(?)을 겪으며 준비한 손수건을 신랑친구들에게 전부 팔아 돈봉투를 모두 획득했다. 한바탕 떠들썩한 아침을 보내고 웨딩홀로 이동하고 나서야 이틀 만에 공식적으로 신부의 얼굴을 보게 되었다. 결혼식이 끝난 후 신부와 함께 신랑 집에 갔더니 제주의 산해진미가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차려진 신부상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신부상 가운데에는 꽃닭이 어여쁜 자태를 뽐내고 있었는데 마치 아침 내내 수모(?)를 겪은 우리를 반겨주고 위로해주는 느낌이었다.
 
여기까지가 2006년, 내가 기억하고 있는 결혼식 중 마지막으로 집에서 치러진 결혼식, 즉마지막 ‘가문잔치’의 기억이다. 물론 그 이후에도 촌에서 결혼한 친구와 지인들도 있었고, 간혹 내가 그들의 부신부를 맡기도 했으며, 신부상을 몇 번 접해보기도 했다. 그러나 2006년 사계리의 결혼식이 집에서 돼지를 직접 잡아 가문잔치를 하고 마을 사람들이 함께 음식을 준비하고, 신랑상 신부상을 차리고 받으며 신부보다 더 바쁜 신부친구의 역할을 했던 마지막 기억이었다. 그렇게 제주식 결혼문화는 나의 기억에서 서서히 희미해져 갔다.
 

그런데 정확히 10년 후, 2016년 하도에서 펜션을 운영하는 한 젊은 여사장님이 나를 찾아왔다. 제주토박이 펜션 사장님은 나에게 뜬금없이 사진 한 장을 내밀었다.

“혹시 이 음식 아세요?”

“아! 네 당연히 알죠. 신부상에 올라갔던 음식이잖아요.”

“이건 스카치에그라는 음식이에요. 그러면 신부상에 올라간 음식은 이름이 뭔지 아세요?”

“......”

사장님의 말인 즉, 본인이 운영하는 펜션에서 친분이 있는 한 커플의 결혼식을 준비하게 되었는데, 그 커플이 우리가 잘 아는 유튜버, 영국남자 조쉬와 마스터셰프코리아 준우승자 국가비라는 것이다. 펜션 사장님이 영국남자와 제주에서의 결혼 준비 회의를 하는 도중, 우연히 영국의 전통음식인 스카치에그 이야기가 나오게 되었다고 한다. 제주태생이었던 펜션 사장님은 제주에 이 모양과 똑같은 음식이 있는데, 가문잔치 때, 그러니까 결혼식 때 꽃닭과 함께 신부상에만 올라가는 귀한 음식(신랑상에도 올렸다는 어르신들도 계셨다.)이라는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고 한다. 당시 스카치에그는 한국에서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음식이었는데, 결혼 당사자인 부부들이 영국과 한국에 이렇게 비슷한 음식이 있어 놀랍다며, 제주에서 치르는 결혼식이니만큼 이 음식을 꼭 하객들에게 대접하고 싶다하여 수소문 끝에 나를 찾아오게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음식은 나도 십여 년 전을 끝으로 거의 보지 못했던 음식이었고 음식의 이름도 정확히 몰랐다. 그래서 그 이후부터 지금까지 나는 여러 삼춘들과 할망들을 만나게 되면 신부상에 올라가는 그 음식의 이름을 꼭 물어본다. 어르신들의 대답은 “계란돈까스”. “덴푸라”, “돈까스”, “계란튀김” 등 다양했지만 사실 가장 많이 돌아왔던 대답은 이거였다.
 
“게매이(글쎄).....”
 

정확한 이름도 없고 그나마 할망들이 부른 이름도 이 음식의 정체성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는 것 같아 나는 일단 이 음식의 이름을 “독새기고기튀김”이라고 명명했다. 그리고는 내 추억 속에 들어가 아주 희미해져 있던 이 음식을 다시 세상 밖으로 꺼내며 수업으로, 간식으로, 도시락으로, 행사용 음식으로 만들게 되었다. 30대부터 50대의 제주사람들은 내가 만든 “독새기고기튀김”을 먹으며 나처럼 잊고 있었던 추억상자를 찾은 듯 행복해 하고 즐거워하며 이 음식에 대한 추억담을 하나씩 꺼내놓았다.


30대부터 50대 사이 대다수 제주 토박이들은 어린 시절, 신부상위에 그 맛있는 음식이 나의 입까지 오길 기다리며 그 근처를 기웃기웃 거렸던 추억이 있을 것이다. 그런 추억이 듬뿍 담겨있는 “독새기고기튀김”은 사실 제주에서 아주 오래전부터 만들어먹었던 제주 전통음식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본래 일제강점기 이전 제주전통조리법 중 튀김음식은 거의 없었다. 제주에서 기름을 이용한 조리법은 돗지름(돼지기름)과 노물지름(유채기름)이 보편화 되면서 시작됐다고 추측해볼 수 있다. 여기에 콩기름이 보급되면서 튀기는 조리법이 더욱 널리 퍼졌다고 가정한다면 삶은 달걀에 돼지고기 완자를 감싸 기름에 튀긴 이 음식, 즉, 삼촌들이 말하는 “계란돈까스”는 사실 그 역사가 그리 길지 않을 이다. 이는 더 윗세대에게 물어보면 금방 유추해 볼 수 있다. 60대 이상의 할망들에게 본인들이 받은 신부상을 떠올려 보라고 부탁드리면 신부상 위 이 “계란돈까스”는 “삶은 달걀 세 개”로 대체된다. 정확히 이야기 하면 “삶은 달걀 세 개”가 튀김유가 보편화되면서 “계란돈까스”로 대체 된 신부상도 있고, 이 두 개를 함께 올리는 신부상도 등장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신부상에 이 달걀, 그러니까 삶은 달걀 세 개를 꼭 올렸던 이유는 무엇일까?

제주가 신들의 섬, 신화의 섬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면 이 해답의 열쇠를 금방 찾을 수 있다.
 

나는 웨딩홀에서 치르는 예식이 보편화되기 전, 그러니까 1960년대부터 1970년대 초 사이가 제주에서 유교적 혼례와 서양식 혼례가 혼재 된 과도기적 시기라고 본다. 이 시기에 혼례식을 하신 어르신(소길리 양태경 어르신, 1944년생, 1973년 혼인)의 말에 따르면 제주의 혼례 당일 일정은 다음과 같다. 우선, 혼례식 날 아침에 신랑 집에서 문전코시를 치른다. 문전코시가 끝나면 문전코시가 끝나면 신랑이 신부를 데리러 가는데 이로써 본격적인 혼인식이 시작되는 것이다. 주지하듯이, 문전코시는 제주의 집에 있는 문전신을 위한 것이다. 조상에게 드리는 제례가 아니라 문전본풀이의 녹디생이, 즉 문전신에게 드리는 제이며, 이를 시작으로 결혼식 당일 본격적인 행사가 시작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신화적 요소는 신부상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제주한라대학교의 오영주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신부상의 “삶은 달걀 세 개”는 일뤳신에게 바치는 제물이라고 한다. 일뤳신은 일뤠중저, 일뤠할망이라고도 불리는 신으로 아이의 출산과 성장을 돌보는 신이다. 바로 이 일뤳신에게 올리는 삶은 달걀 세 개는 달걀 흰자 표면처럼 하얗고 매끈한 피부를 가진, 즉, 피부병을 앓지 않는 아이를 출산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올리는 것이라고 한다. 세 개를 올리기도, 다섯 개를 올리기도 하는데 그 숫자는 지역이나 가정에 따라서 달랐던 것 같다. 내가 만난 어르신 중에는 최대 아홉 개를 올렸다고 한 어르신도 있는 것으로 보아 꼭 “삶은 달걀 세 개”가 원칙은 아닐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삶은 달걀 세 개”는 가문잔치의 꽃, 신부상에만 오르는 걸까? 그건 아닌 것 같다. 병환이 있는 분을 위한 굿을 몇 번 참관한 적이 있는데 그 상에도 삶은 달걀 세 개가 올라가 있었다. 또 신들을 위한 제상 위에서도 삶은 달걀을 보는 일은 어렵지 않다. 이는 일뤠할망이 산육(産育) 뿐 아니라 제주의 지리와 기후에서 오는 풍토병을 치유해 주는 치병신으로서 역할을 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만큼 제주 사람들에게 삶은 달걀은 여러모로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또 신부상에서 음식을 조금씩 뜯어 상아래 두는데 그 음식은 문전본풀이에 나오는 측간신, 노일제대귀일의 딸에게 이 결혼을 훼방 놓지 말라달라는 의미의 행위라고 한다.

제주의 가문잔치는 이미 추억이 되었다. 제주의 어르신들에게는 괴깃반과 함께 돼지육수를 이용해 만든 몸국, 놈삐국, 배춧국, 좁짝뼈국, 또는 간혹 고기국수를 떠올리는 추억의 옛 이야기가 되었다. 한편, 제주의 청․장년들에게는 “그거 하나!” 꼭 얻어먹고 싶은 음식인 “계란돈까스”를 떠올리게 한다. 그렇게 보면 “계란돈까스”는 제주의 청․장년층에게 희미하게나마 제주의 가문잔치를 떠올리게 하는 강렬한 음식이 아닐까?

과거 7일 동안 치뤘다고 해서 일뤳잔치라고도 했던 제주의 가문잔치는 요즘사람들에게는 삼일잔치로 알려져 있는 듯하다. 그런 삼일잔치가 이틀잔치로 축소되고, 최근에는 당일잔치로 대폭 축소되었다. 이는 고작 10년 사이에 일어난 일이다. 응당 제주사람이라면 잔치당일만이라도 솔문을 세우고, 신랑상 신부상을 다시 부활시키고, 넉둥배기로 축제 분위기를 돋우는 그런 우리만의 결혼문화를 다시 만들어가면 어떨까? / 김진경 베지근연구소 총괄디렉터, 제주음식연구가

김진경은?

20대에 찾아온 성인아토피 때문에 밀가루와 인스턴트 음식을 끊고 전통음식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떡과 한과에 대한 공부를 독학으로 시작했다. 결국 중학교에서 아이들 가르치던 일도 그만두고 전통 병과점을 창업해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다.

이후 제주전통음식으로 영역을 확장해 현재 베지근연구소에서 제주음식 연구와 아카이빙, 제주로컬푸드 컨설팅, 레시피 개발과 쿠킹랩 등을 총괄기획하고 있다.
 
현재 제주대학교 한국학협동과정 박사과정을 밟으며 제주음식 공부에 열중이다. 두 아이를 키우고 있어 어멍의 마음으로 제주음식을 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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