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世通, 제주 읽기] 171. 나민애, '책 읽고 글쓰기', 서울문화사, 2020.

나민애, '책 읽고 글쓰기', 서울문화사, 2020. 출처=알라딘.

책을 읽는 일은 즐겁다. 서평을 쓰는 일은 힘겹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에게, 책읽기는 여가고, 서평 쓰기는 노동이다. 읽고 쓰기가 말 그대로 ‘일’이 되는, 엄살 많은 평론가에게만 서평 쓰기가 고된 것은 아닐 터. (당신이 여유롭게 읽는 이 글 역시 늦은 밤에 원고 마감에 쫓긴 다급한 누군가의 안타까운 흔적이다.) 더 많은 이들이 독자에서 작가로 변신하는 이 과정을 괴로워한다. 

그 원인은 쉽게 찾을 수 있다. 독후감은 언제나 우리의 ‘숙제’였기 때문이다. 학창 시절, 독서에 언제나 따라붙는 독후감은 비단 독후감 쓰기뿐만 아니라 책 읽기를 피해야할 지겨운 일로 만든다. 그래서 근래 들어 독서교육계에서는 과제를 내주지 않고, 학생들이 우선 책 읽기 그 자체를 즐길 수 있도록 하는 독서법도 권유한다. 사실 모든 공부에 해당하는 것이겠지만, 본래 책 읽기가 즐거운 활동이라는 점을 학생들이 먼저 알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독후감 쓰기는 왜 어려운가? 혹은, 많은 독자들은 어째서 독후감 쓰기를 잘 하지 못할까? 학교에서 가르치는 선생으로서 미안하고 부끄러운 일이지만, 우리의 선생님들이 제대로 가르쳐주지 않아서다. 사범대 교수인 나는 예비 국어교사인 학생들에게 그들의 선생님을 탓하며 면죄부를 제공한다. 그러면서 앞으로 여러분은 더 잘 가르쳐야 한다고 은근히 닦달한다. 

이쯤에서 누군가는 이렇게 물을 지도 모른다. 굳이, 독후감 쓰기까지 배우거나 가르쳐야 할까? 내 대답은, 네. 약간의 교육과 지도만으로도 많은 학생들의 독후감 수준은 놀랍게 향상된다. 그 점에서 읽기와 쓰기를 가르치는 교사와 부모의 역할이 중요하다. 그리고 독자 스스로를 배우고 가르칠 필요가 있다. (역시 가장 좋은 스승은 책이다.)

그러면, 무엇으로 독후감과 서평 쓰기를 배워야할까? 다행히도 근래 들어 ‘책에 관한 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고 해도 좋을 만큼 많이 출간되고 있다. 책 읽는 문화가 줄어든다고 걱정하는데, 역설적으로, 그나마 다행이랄까, 책과 독서 문화에 관한 책들은 더욱 풍성해지고 있는 것이다. 독후감과 서평 쓰기에 관한 책들 또한 독자의 관심과 수준에 따라 다양하게 골라 읽을 수 있다. 

서울대에서 글쓰기 담당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나민애 교수는 문학평론가이자 서평 특강을 진행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 나 교수가 쓴 《책 읽고 글쓰기》는 서평 쓰기에 관한 책 중에서 가장 쉬운 책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서평의 맛이 무엇인지 몸소 느끼며 서평을 배울 수 있는 더 깊이 있는 서평집도 많을 것이다. 또한 다양한 관점과 요령을 설명하는 친절한 서평 안내서들도 있을 것이다. 송승훈 교사의 《나의 책읽기 수업》처럼 교사들에게 특별히 유용한 책들도 있다.

하지만 《책 읽고 글쓰기》는 독후감과 서평 쓰기의 ‘초보’가 택할 만한 책으로 더 없이 적합해 보인다. 글쓰기 초보들에게는 사소한 글쓰기 요령과 풍부한 예시가 요긴하다. 이 책은 비록 완성된 서평 예시나 전문 서평가의 탁월한 서평 사례가 풍부하지 않지만, 기초 중의 기초가 될 만한 요령을 일러준다는 점에서 좋은 점수를 줄만하다. 

이 책에서 많은 사람들이 서평 쓰기를 어려워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를 소개한다. 그것은 서평 쓰기 위한 독서를 하지 않는다는 것. 

한 독자가 책을 열심히, 그리고 즐겁게, 심지어는 감동하고 감탄하면서 읽었다. 자, 이제 서평을 써볼까! 컴퓨터 앞에 앉는다. 워드프로세서 프로그램에서 커서가 깜박, 깜박, 반짝인다. 깜박, 깜박, 깜박… 책 내용이 뭐였더라? 책 내용을 깜박한 것 같다. 서평을 써야할 머리는 반짝이지 않고, 커서는 그 자리에서 침묵하며 빛날 뿐이다. 

무엇이 문제일까? 여유로운 독서 이후에 남는 게 없기 때문이다. (‘독서교육론’ 강의 시간에 나 또한 자주 그런다며 학생들과 공감하기 위한 소재로 삼는다.) 여유롭게 즐기고 음미하는 책읽기만으로 ‘분석, 판단, 평가’의 목적을 지닌 서평을 쓰기 어렵다고, 저자 또한 지적한다. (나는 학생들에게 서평을 위한 독서는 여가를 위한 독서보다는 차라리 ‘학습 독서’에 더 가까워야한다고 솔직하게 설명한다.) 사실 여기서 서평 쓰기의 목적의식이 만들어내는 특유의 괴로움과 어려움이 있다. 이 괴로움과 어려움을 이겨내고 그 과정에서 깊이와 즐거움을 만들어내는 것이 서평 쓰기의 역설적 미학이라고나 할까.

문학평론가들이 우아하게 시를 읽어낸 결과물이 문학평론이라고 믿는 사람이, 평론가들이 읽어낸 시집에 덕지덕지 붙은 포스트잇과 지저분한 밑줄과 메모들, 그러니까 노동의 진한 땀내로 가득 차 있다고 생각하기는 힘들 것이다. 스타 배우와 감독과 나란히 멋지게 사진을 찍는 영화평론가들이 어두운 극장에서 A4 용지를 몇 겹으로 접어 깨알 같은 글씨로 부지런히 메모를 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기도 힘들 것이다. 요컨대, 아름답게 유영하는 백조의 부지런한 물장구질이 서평에도 깃들어야 하고, 그 물장구질의 친절한 ABC를 수다스런 목소리에 담은 책이 《책 읽고 글쓰기》다.

또 다른 생각거리 하나. 이 책을 포함해서 서평에 관한 책들은 서평과 독후감을 구분한다. 이 책도 “학술 논문보다는 촉촉하고, 감상문보다는 엄격한 글이 서평”(49쪽)이라고 구분한다. 하지만 사실 그 구분이 언제나 가능한 것은 아니다. 특히, 문학에 관한 서평은 독자의 감상에 크게 기대기 때문에 ‘엄격’과 ‘촉촉’의 구분을 무화시킨다. 시를 전공한 문학평론가인 저자야말로 그 점을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감상과 분석의 구분보다 중요한 것은 나와 책(책에 담긴 세상과 사람들)의 대화 과정을 담아 글을 ‘더 풍성하고 깊이 있게’ 만드는 일이다. 

자칫 ‘서평’이란 용어에 담긴, 더 체계적이고 진지한 독서 후 글쓰기라는 관점이 오히려 독자들의 글쓰기에 부담을 안겨줄까 우려된다. 다시 말해, 부지런히 물장구질을 하되 몸에서 힘을 빼야한다는 잔소리다. 독후감이 되었든 서평이 되었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은 문제인지도 모른다. 더 많은 독자들이 책 읽기를 더 깊은 성찰과 대화로 이끄는 글쓰기를 시도해보길 권한다.

▷ 노대원 교수

서강대학교 국어국문학·신문방송학 전공, 동대학원 국문학 박사과정 졸업
대산대학문학상(평론 부문) 수상 
2011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평론 부문 당선
제주대학교 국어교육과 부교수 재임.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