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법정의기록] (2)김두황 할아버지, 4.3 첫 일반재판 재심 심문...군법재판과 달리 판결문 존재 ‘개시 촉각’

제주4.3의 광풍에 휘말려 징역 1년을 선고 받아 목포형무소에서 억울한 옥살이를 한 김두황 할아버지. 김 할아버지가 72년만에 재심을 청구하면서 국내에서 일반재판 4.3생존수형자에 대한 사상 첫 심문이 제주지방법원에서 열렸다.
제주4.3의 광풍에 휘말려 징역 1년을 선고 받아 목포형무소에서 억울한 옥살이를 한 김두황 할아버지. 김 할아버지가 72년만에 재심을 청구하면서 국내에서 일반재판 4.3생존수형자에 대한 사상 첫 심문이 제주지방법원에서 열렸다.

“어르신 하실 말씀 있으세요?”

“판사님, 지난 72년간...흑흑”

예순이 넘은 자식들에게도 지금껏 하지 못한 말을 법정에서 쏟아내면서 아흔을 넘긴 할아버지는 두 눈을 가린 채 오열했다. 이를 지켜 본 딸도 입을 틀어막으며 눈물을 쏟아냈다.      

제주4.3이 발생한지 72년 만에 열린 국내 첫 일반재판 생존수형인 재심 신청사건의 첫 번째 심리재판에서 김두황(93) 할아버지는 그날의 조각난 기억을 맞추는데 집중했다.  

제주지방법원 제2형사부(장찬수 부장판사)는 13일 오전 10시30분 국방경비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을 선고 받아 복역한 김 할아버지의 재심 청구 사건에 대한 심문기일을 진행했다.

서귀포시 성산읍 난산리 출신인 김 할아버지는 마을 내 실력단체인 민보단의 서무 계원으로 활동하던 1948년 11월 중순 느닷없이 성산포경찰서로 끌려갔다.

남로당에 가입했냐는 일방적인 질문에 “그런 적이 없다”고 하자, 폭행과 고문이 시작됐다. 경찰은 장작을 패다 남은 목재로 어깨와 등, 무릎을 연신 내리치며 허위 자백을 강요했다.

폭행은 다음날까지 이어졌다. 경찰관이 총까지 겨누며 협박했지만 김 할아버지는 “있지도 않은 일을 했다고 할 수 없다”며 맞서다 지금까지 휴유증으로 고생을 하고 있다.

“신 순경, 구 순경이 오더니 줄로 팔을 뒤로 묶고 잡아갔습니다. 경찰서에는 다른 사람이 때리고 고문을 하는데 두 번이나 기절했어요. 쓰러지면 물을 뿌리고 또 때렸습니다”

보름 뒤 김 할아버지는 제주시로 다시 끌려갔다. 정식재판 절차 없이 죄명과 형량도 모른 채 고깃배에 실려 목포형무소로 향했다.

“굴비를 줄줄이 엮는 것처럼 끌고 제주시내 어디로 갔는데 그게 재판인지도 몰랐지요. 그리고 다시 제주경찰서 유치장에 열흘간 지내다 배에 태우던데, 도착해보니 형무소였습니다”
    
판결문에는 김 할아버지가 1948년 9월25일 오후 8시45분 난산리 김두홍씨의 집에서 김관삼씨 등 주민 6명과 무허가 집회를 열고 폭도들에게 식량 제공을 결의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1948년 9월28일 오후 9시에는 집으로 찾아온 2명에게 좁쌀을 제공했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김 할아버지가 폭도들을 지원하며 국가를 위협했다는 것이 짜맞춰진 공소사실이다.

형기가 2개월 감형돼 1950년 2월 출소했지만 자신의 죄명과 선고 일자는 지난 70년간 모르고 지내왔다. 연좌제에 시달리며 과거를 잊으려 했지만 생전에 명예회복(재심)을 결심했다.

제주에서 군법회의를 통한 4.3재심 사건이 열린 적은 있지만 일반재판에 대한 재심 청구이자 심문은 이번이 처음이다. 기존 재판과 달리 김 할아버지는 판결문이 존재한다.

재판부는 이날 김 할아버지에 대한 변호인과 검찰측 신문을 듣고 양측에 의견서 제출을 요청했다. 이를 토대로 재심 개시 여부를 판단하기로 했다.

개시 결정이 이뤄지면 72년만에 유·무를 다시 판단하는 본격적인 재심 재판이 열리게 된다. 이 경우 당시 공소사실에 대한 입증 책임은 검찰에게 돌아간다.

검찰은 공소사실에 등장한 인물에 대한 정보 확인을 검토하고 있지만 생존시 대부분 나이가 100세에 이르고 정확한 신원확인도 어려워 난처한 상황에 처했다.

공판검사는 “검찰도 고령인 재심 청구인이 법적 구제절차를 빨리 받기를 원한다. 다만 최소한의 절차는 밟아야 한다. 일단 국가기록원에 자료를 요청하고 의견서를 제출하겠다”고 말했다.

김 할아버지는 이날 마지막 진술에서 “늦었지만 이제라도 판사 앞에서 이야기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 72년간의 응어리를 풀고 싶다. 억울함을 풀고 명예를 회복하게 해달라”며 오열했다.

재판부의 발언권을 얻은 딸 김연자(61)씨도 “4.3진상조사가 이뤄지고 난 이후에야 아버지의 이야기를 하셨다. 부디 억울함을 풀고 생을 마감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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