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웅의 借古述今] 180. 방아는 느티나무, 절구는 복숭아나무)

*방에 : 방아
*굴무기 : 느티나무
*절귀 : 절구
*도에낭 : 복숭아나무

지금은 옛날 방아를 만들던 엄청나게 굵은 굴무기(느티나무)가 있을까. 절구를 만들던 굵직한 복숭아나무가 있을까. 하긴 마을의 정자목으로 수백 년 수령을 거느려 온 느티나무가 기억에 떠오른다. 성읍 민속보호마을에 오랜 풍상을 견디며 시퍼렇게 살아 있는 마을 가운데 자리 잡은 그 느티나무. 

(얼마 전까지 살았던 조천리 조천초등학교에도 서쪽 교사 앞에 늙은 느티나무가 위의을 뽐내며 서 있다. 그 학교 교목으로 개교 당시 심었다 하니, 수령 백 수십 년이 너끈히 될 것이다.)

예전엔 아름드리 느티나무가 흔했던 것 같다. 마을에서 내로라하는 기와집이나 오칸 초가집 마루는 단단하고 투박한 느티나무였다. 사오기(벚나무)가 있어 비슷한 용처에 쓰였으나 목질에서 차이가 컸다.

제주에서 절구를 사용해 곡물을 찧거나 가루를 빻는 방아는 ‘남방에’라 해서 크기가 엄청났다. 두 아름쯤 되는 통나무였다. 한 가운데를 알맞게 팠다. 거기다 찧는 곡물이 들어가게 움푹 파 돌혹을 앉혔다. 그 재료로 쓰였던 것이 바로 느티나무다.

가만 행간을 읽어 보면, ‘굴무기’가 쓰일 곳이 있고 또한 ‘도에낭’이 쓰일 곳이 따로 있다 함이다. 출처=오마이뉴스.
가만 행간을 읽어 보면, ‘굴무기’가 쓰일 곳이 있고 또한 ‘도에낭’이 쓰일 곳이 따로 있다 함이다. 출처=오마이뉴스.

느티나무는 워낙 재질이 단단해 좀처럼 좀도 슬지 않아, 십 수 년만 지나면 좀 슬어 구멍 숭숭하게 나는 소나무 등과 다르다. 또 습기에도 강해 방아를 만드는 데 최고로 쳤다. 절구 또한 목질이 단단해 좋은 도화목(복숭아나무)가 제일로 꼽힌다 함이다.

덧붙이지만, 방아의 재료로 제일이던 굴무기는 궤(櫃, 반닫이)를 만드는 데 그 앞판에 쓰였다. 옛날 궤들, 백 수십 년 된 것인데도 좀이 범접하지 않아 새것이나 다름없었다. 귀한 것인 줄 몰라 육지에서 골목을 누비던 골동품상에게 헐값에 팔아 버렸다. 지금 있어 팔아넘긴다면 값을 좋이 받을 것인데, 생각만 해도 애석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방아를 찧는 절구를 복숭아나무로 만들었다 하는데, 요즘 그런 거목을 구하기가 힘들 것이다. 마루뿐 아니라 각종 가구며 생활용품들이 목제 아닌 가공제품들로 대체됐다. 예전의 느티나무나 복숭아나무가 크게 소용되지 않게 되면서 그 자리를 시대의 물결 앞에 내놓고 말았다.

가만 행간을 읽어 보면, ‘굴무기’가 쓰일 곳이 있고 또한 ‘도에낭’이 쓰일 곳이 따로 있다 함이다. 단적으로 말해 무턱대고 쓰이는 것이 아니라. 저마다 쓰이는 특정의 용처가 있음을 빗댄 게 아닐까. 적재적소(適材適所)라는 것, 사람 또한 능력이 각기 다르므로 다 적당한 제 자리가 있는 법이다. / 김길웅 시인·수필가·칼럼니스트

동보(東甫) 김길웅 선생은 국어교사로서, 중등교장을 끝으로 교단을 떠날 때까지 수십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쳤다.1993년 시인, 수필가로 등단했다. 문학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도서관에 칩거하면서 수필, 시, 평론과 씨름한 일화는 그의 열정과 집념을 짐작케한다. 제주수필문학회, 제주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대한문학대상, 한국문인상 본상, 제주도문화상(예술부문)을 수상했다. 수필집 <마음자리>, 시집 <텅 빈 부재>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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