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예술칼럼, Peace Art Column] (22) 우다퀀

제주도는 평화의 섬입니다. 항쟁과 학살의 역사를 가지고 있기에 평화를 염원하는 마음은 더욱 간절할 수 밖에 없습니다. 제주4.3이 그렇듯이 비극적 전쟁을 겪은 오키나와, 2·28 이래 40년간 독재체제를 겪어온 타이완도 예술을 통해 평화를 갈구하는 ‘평화예술’이 역사와 함께 현실 속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2018년부터 세 나라 세 섬의 예술가들이 연대해 평화예술운동을 벌이고 있어 이에 대한 창작과 비평, 이론과 실천의 공진화(共進化)도 매우 중요합니다. 독립언론 <제주의소리>가 세 섬 예술가들의 활동을 ‘평화예술칼럼(Peace Art Column)’을 통해 매주 소개합니다. 필자로 국외 작가들이 참여하고 있어 일어, 영어 번역 원고도 동시 게재합니다. [편집자 글]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COVID-19, 이하 코로나19)가 전 세계에서 유행하고 세상은 편치 않다. 하지만 평화예술의 맥동은 멈추지 않고, 타이페이시현대미술관의 초대에 의해 <표현의 부자유전>이 순회전을 열었다. 이는 2019년 아이치트리엔날레, 한국 제주도 4.3평화공원에 출품한 데 이어 비슷한 학예적 맥락에서 표현의 부자유전이 재전시된 것이다.

한국인 조각가 부부인 김서경과 김운성이 제작한 평화소녀상도 포함돼 있다. 이 작품은 서울에 있는 주한 일본대사관 정문을 향해 처음 나타난 뒤 한국 각지로 퍼져나갔다. 주로 한국 민간단체가 추진하는 '평화의 소녀상'은 한국의 옷에 몸을 감싸고 두 주먹을 쥐고 의자에 앉는 대표적인 포즈에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이 위안부를 강제 동원한 비인도적 행위를 고발하다.

제공=우다퀀. ⓒ제주의소리
평화의 소녀상. 제공=우다퀀. ⓒ제주의소리
제공=우다퀀. ⓒ제주의소리
'표현의 부자유전'에 전시된 평화의 소녀상. 제공=우다퀀. ⓒ제주의소리

대만에는 위안부였던 할머니들의 역사를 기록한 ‘할머니의 집’이라는 장소가 있다.

할머니는 늘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쩔 수 없다, 저게 운명이었다고.”
하지만 그렇게 말조차 못하는 할머니도 있었다.
이것이 이들의 청춘이었다.

‘할머니의 집’ 벽에 쓰인 그 시대를 그린 말이다.

1991년 처음 한국인 위안부의 김학순 여사가 자신의 권리 보호를 위해서 일어서서 일본 정부의 강요에 의해서 위안부가 된 고통과 근심을 토로하고 1992년 2월에는 이토 히데코 중의원 의원이 결정적인 전보 3통을 발견하고 대만에도 피해자가 있음을 입증했다. 그 해 여성구호 재단은 대만 위안부 핫라인을 설립하고 호소를 받아 ‘대만위안부전문팀’을 대만위안부의 수, 부족, 지역 등의 역사 자료 조사에 착수했다.

대만에 적어도 2000명의 위안부가 있었음이 입증됐지만 상당수는 타계했다. 여성구호조사팀을 통해 확인된 피해자는 민난, 하카 그리고 원주민 여성을 포함한 58명으로 브로커(대만적과 일본적)와 일본식민지시대 지구사무소 공무원들의 권유에 속아 일본 정부가 주장하는 것처럼 자발적으로가 아니라 무지 또는 강제적인 위안공작에 종사하기 위해 전쟁 최전선으로 끌려갔다.

대만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를 위한 타이페이 '할머니의 집' 모습. 제공=우다퀀. ⓒ제주의소리
대만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를 위한 타이페이 '할머니의 집' 모습. 제공=우다퀀. ⓒ제주의소리
대만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를 위한 타이페이 '할머니의 집' 모습. 제공=우다퀀. ⓒ제주의소리
대만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를 위한 타이페이 '할머니의 집' 모습. 제공=우다퀀. ⓒ제주의소리

‘부인원호회’는 1992년부터 대만 ‘위안부’ 인권 운동에 나섰다. 긴 과정에서 모두 할머니가 사슬을 끊은 후에 보이는 에너지와 용기를 보고 2016년에야 자리를 얻어 대만 최초의 위안부 인권 운동을 기반으로 한 여성 발전과 양성 평등 교육을 결합한 다기능 박물관 ‘할머니의 집 – 평화와 여성 인권관’을 설립했다.

할머니들의 인생 이야기를 출발점으로 기념하기 위해, 동시에 현대 여성들과 시공을 초월한 살아있는 대화를 진행하기 위해 관은 할머니의 집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할머니처럼 따뜻하고, 평등하고, 자유로운 빛을 발하는 이곳은 당신과 나의 마음의 집을 지키고, 여성, 젠더와 인권에 특화된 대화의 공간이기도 하다.

제2차 세계대전 때의 대만 위안부에 관한 사료와 생존자의 인생 경험과 예술적 창조를 보존 전시함으로써 대만 위안부의 역사적 사실에 대한 사회의 이해를 구축하고, 인생의 트라우마를 긍정적인 힘으로 전환하고, 역사의 상흔이 오늘의 평화의 초석이 될 수 있음을 이해시킨다. 이어 위안부가 입은 전쟁 상해, 성폭력, 인신 매매 역사를 기초로 이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보존하고 기억하고 계승한다.

동시에 다양한 전시, 교육활동을 통해 대만사회에 대해 현대사회의 여성인권, 전쟁 및 평화문제를 지속적으로 고민하고 다음 세대를 위해 평등하고 폭력이 없는 존중해야 할 미래를 실현하기를 기대한다.

2016년 12월 개관한 이래 '할머니의 집'은 대만의 국제인권, 남녀평등에 관한 교류의 플랫폼으로 전세계에서 예를 들면 국제인권조약(CEDAW, CRC, 2개 조약) 심사위원회, 아시아인권대상 수상자, 정부대표 또는 NGO그룹, 국내의 공적 및 시민단체, 학생을 맞이하며 일반 방문객은 125,529명에 이른다. 특히 매년 일본 방문객이 많은 할머니의 집은 일본에서는 볼 수 없는 사실을 보완하기 위해 정확한 사실을 제공한다.

2016년부터 현재까지 부원회는 위안부, 여성인권문제 등의 공교육에 임하는 적극적으로 국제 교류에 연계하는 한편 활동 자금이나 운영 재원 모집에 힘쓰고 있다. 하지만 월세, 노후 건물 유지비, 컬렉션 유지비, 인력 인건비 등 경비가 늘어나 정부 보조, 가게 수익, 지지자들의 기부금을 빼고도 최근 3년간 매년 400만에서 500만 대만 달러 가까이 적자를 내고 있다. 부원회의 재무적 부담은 커 2019년 누적 결손을 메워야 하기 때문에 이미 총회 사무실을 팔아 할머니 집 운영에 쓰고 있다.

대만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를 위한 타이페이 '할머니의 집' 모습. 제공=우다퀀. ⓒ제주의소리
대만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를 위한 타이페이 '할머니의 집' 모습. 제공=우다퀀. ⓒ제주의소리
대만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를 위한 타이페이 '할머니의 집' 모습. 제공=우다퀀. ⓒ제주의소리
대만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를 위한 타이페이 '할머니의 집' 모습. 제공=우다퀀. ⓒ제주의소리

2020년 코로나19가 발생해 단체 방문이 취소되고 관람객이 급감했으며 입장료, 가게 수입, 기부금이 급감해 운영이 어려워지면서 적자는 더 커졌다. 할머니의 집은 매년 심각한 적자를 견디지 못해 부득이하게 올해 말 주택임대차 계약 연장 계약을 하지 않고 시한인 11월 10일 운영을 중단하게 됐다.

안타깝게도 역사의 아픔을 기록한 대만 최초의 위안부 실상의 박물관이 세계에서 사라지고 있다. / 우다퀀 큐레이터

우다퀀(吳達坤, WU Darkeun)은 타이페이국립미술대학을 졸업한 후 타이페이예술대학 <관두미술관> 큐레이터, 대안공간 <VT ARTSALON> 디렉터, <타이페이국제예술촌> 디렉터 등을 역임했습니다. 현재 타이페이 소재 복합문화공간 <C-LAB(Taiwan Contemporary Culture Lab) 수석큐레이터로 일하고 있습니다.


和平少女像與台北的「阿嬤家」

在'COVID-19' 疫情肆虐全球的同時,世界不得平靜。但和平藝術的脈動卻沒停止,在台北當代藝術館的邀請之下,「表現の不自由展」巡迴到台北當代館。也是繼2019年於日本愛知三年展、韓國濟州島和平公園展出後,「表現の不自由展」在同樣策展脈絡下再次展出。也促成韓國雕塑家夫婦金曙炅與金運成(KIMSeo kyung and KIM Eun sung )創作的和平少女像來台展出。這件作品最早出現在韓國首爾的日本駐大韓民國大使館大門對面,之後擴展至韓國各處與各地的日本大使館外。主要由韓國民間團體推動,「和平少女像」身穿韓服,雙手握拳以具有代表性的姿勢坐在椅子上,控訴著日方二戰時期強徵慰安婦的不人道行為。

在台灣,也有一處可貴的地方叫做「阿嬤家」,記錄著台灣慰安婦阿嬤的歷史。

我的阿嬷總是說,「沒法度,那是命」。
但有的阿嬷,卻連說都不敢說....。
這是她們的青春時光。

這是阿嬤家牆上的一段文句,對她們的時光留下註解。

1991年,韓國慰安婦金學順 (Jin Xue Shuan )女士首先站出來捍衛自身權益,道出在日本政府強迫下從事慰安婦的苦楚與心酸,1992年2月日本眾議院議員伊東秀子女士發現三封關鍵的電報,證實台灣也有受害者。於是,1992年婦女救援基金會便設立台灣慰安婦熱線接受申訴,組成「台灣慰安婦專案小組」,著手調查台灣慰安婦的人數、族群、地區等歷史資料。證明在台灣至少曾有2000名的慰安婦,但多數已凋零。經由婦援會調查小組確認的受害人數共58位,分別有閩南、客家與原住民女性,他們大多都是被掮客(台籍、日籍都有)所騙,或是被區公所(日本殖民時期)徵招,一無所知或是強行壓迫前往戰爭前線從事慰安工作,而非日本政府所宣稱的自願。

婦援會1992年開始投入台灣「慰安婦」人權運動,漫長過程中,我們看見每一位阿嬤歷經淬鍊後所展現出來的能量與勇氣,2016年終於覓得場地,成立台灣第一座以「慰安婦」人權運動為基礎、結合婦女培力與性別平等教育的多功能博物館:「阿嬤家─和平與女性人權館」。館舍取名為「阿嬤家」,以紀念這些阿嬤們的生命故事為出發點,同時與當代女性進行跨時空的生命對話。這裡溫暖平等、發出自由光芒,是像阿嬤一樣,守護著你我的心靈之家,也是專屬於女性,性別及人權關懷的對話空間。館中保存並展示二戰時期台灣「慰安婦」的相關史料、倖存者的生命經驗與藝術創作,以建構社會大眾對台灣「慰安婦」史實的認識,並理解生命的創傷得以轉化為前行的力量,歷史的傷痕得以成為今日和平的基石。更將以「慰安婦」遭受的戰爭傷害、性別暴力及人口販運的歷史為基礎,讓這群阿嬤們的故事被保存、被記憶、被流傳。同時,透過多元的展示與教育活動,促使台灣社會持續思考當代社會中女性人權、戰爭與和平等議題,期望為下一代實現尊重、平等、無暴力的未來。

阿嬤家於2016年12月開館以來,成為台灣在國際人權、性別平權的交流平台,接待來自世界各國,例如國際人權公約(CEDAW、CRC、兩公約)審查委員、亞洲人權獎得獎者、各國政府代表或NGO團體及國內官方及民間團體、學生、民眾參觀訪問高達12萬5,529人次。尤其每年有不少來自日本參訪者,阿嬤家所提供正確歷史事實,補充其無法在日本看到的史實。但從2016年至今,婦援會一方面致力於慰安婦、性別與人權相關議題公眾教育,積極和國際交流互動,一方面努力募集財源以因應活動支出及館內營運。然而,房租、老舊建築維護、館藏文物維護及人事開銷龐大,扣除政府補助、商店收入及支持者捐款,近3年每年皆虧損近4、5百萬台幣,造成婦援會財務重大負擔,2019年因要彌補累計虧損,已經把總會的辦公場所出售,支持阿嬤家的營運。

而2020年發生武漢肺炎疫情,參訪團體取消、到館人數驟減,門票、商店收入及捐款銳減,營運艱難,虧損更繼續擴大。「阿嬤家」在不堪連年嚴重虧損下,不得不作出今年底房屋租約到期於11月10日停止營運,不再續約營運。 令人難過的是,這座記錄著歷史傷痛的台灣第一座「慰安婦」實體博物館,將消失在世人之前。


Statue of the Peaceful Girl and "AMAMuseum" in Taipei

While the 'COVID-19' epidemic is raging around the world, the world cannot be peaceful. However, the pulse of peaceful art has not stopped. At the invitation of the Museum of Contemporary Art in Taipei, " Non-Freedom of Expression Exhibition: A Long Trail for Liberation " toured to the Contemporary Museum of Taipei. After being exhibited at the Aichi Triennale in Japan and Jeju Island Peace Park in South Korea in 2019, "Performance No Freedom Exhibition" was exhibited again under the same curatorial context. It also contributed to the exhibition of the Peace Girl statue created by Korean sculptor and couple Kim Seo kyung and KIM Eun sung (KIM Seo kyung and KIM Eun sung). This work first appeared across the gate of the Japanese Embassy in Seoul, South Korea, and later expanded to outside the Japanese embassies in and around Korea. Mainly promoted by South Korean private groups, the "Peace Girl" dressed in a hanbok, sitting on a chair in a representative posture with both hands clenched into fists, accused the Japanese of forcibly recruiting comfort women during World War II inhumane behavior.

In Taiwan, there is also a valuable place called " AMA Museum ", which records the history of comfort women and grandma.

My grandma always said, "It can't be saved, that's fate."

But some grandmothers dare not even say.....

This is their youth time.

This is a sentence on the wall of AMA Museum, leaving a comment on their time.

In 1991, South Korean comfort woman Jin Xue Shuan (김학순)first stood up to defend her own rights and expressed the pain and sadness of working as comfort women under the compulsion of the Japanese government. In February 1992, Ms. Hideko Ito, a member of the Japanese House of Representatives, discovered three key telegrams, confirming that there are also in Taiwan. victim. Therefore, in 1992, the Women's Relief Foundation set up a Taiwanese comfort women hotline to accept complaints and formed a "Taiwan Comfort Women Task Force" to investigate historical data such as the number, ethnic group, and region of Taiwan's comfort women. It proves that there were at least 2,000 comfort women in Taiwan, but most of them have faded. A total of 58 victims were confirmed by the investigation team of the Women’s Aid Association, including Minnan, Hakka and Aboriginal women. Most of them were deceived by brokers (both Taiwanese and Japanese) or by district offices (Japanese colonial Period) Recruitment, ignorance or forced pressure to go to the front lines of the war to engage in comfort work, not voluntary as claimed by the Japanese government.

The Women’s Aid Association began to participate in the human rights movement for “comfort women” in Taiwan in 1992. In the long process, we have seen the energy and courage shown by every grandma after hardening the chain. In 2016, we finally found a venue and established Taiwan’s first one. Based on the "Comfort Women" human rights movement, a multifunctional museum that combines women's empowerment and gender equality education: " AMA Museum-Peace and Women's Human Rights Museum". The building is named "AMA Museum", to commemorate the life stories of these grandma as the starting point, and at the same time have a life dialogue with contemporary women across time and space. This place is warm, equal, and emits free light. It is like a grandma, guarding the home of your and my soul, and it is also a dialogue space dedicated to women, gender and human rights. The museum preserves and displays relevant historical materials of Taiwan’s "comfort women" during World War II, the life experiences and artistic creations of survivors, in order to construct the public's understanding of the historical facts of Taiwan’s "comfort women" and to understand that life trauma can be transformed into forward progress Strength, the scars of history can become the cornerstone of today's peace. It will also be based on the history of war injuries, gender-based violence and human trafficking suffered by "comfort women", so that the stories of this group of grandma will be preserved, remembered, and circulated. At the same time, through diversified exhibitions and educational activities, Taiwanese society will continue to think about women's human rights, war and peace issues in contemporary society, and hope to realize a future of respect, equality, and violence-free for the next generation.

Since the opening of the museum in December 2016, the grandmother’s family has become a platform for Taiwan’s exchanges on international human rights and gender equality, and it has welcomed people from all over the world, such as reviewers of international human rights conventions (CEDAW, CRC, and the two conventions), Asian Human Rights Award winners, and countries Government representatives or NGO groups, domestic official and non-governmental organizations, students, and the public have visited 125529 people. In particular, there are many visitors from Japan every year. The grandmother's family provides correct historical facts to supplement historical facts that they cannot see in Japan. However, since 2016, the Women’s Aid Association has been committed to public education on issues related to comfort women, gender and human rights on the one hand, actively interacting with international exchanges, and on the other hand, it has worked hard to raise financial resources for event expenses and in-house operations. However, rent, maintenance of old buildings, maintenance of collections of cultural relics, and personnel expenses are huge. After deducting government subsidies, store income and supporters’ donations, they have lost nearly 4 to 5 million (NTD) each year in the past three years, causing a significant financial burden on the Women’s Aid Association. 2019 In order to make up for the accumulated losses, the office of the general meeting has been sold to support the operation of Grandma's home.

In 2020, when the Wuhan pneumonia epidemic occurred, visiting groups were cancelled, the number of visitors to the museum plummeted, tickets, store income and donations fell sharply, operations were difficult, and losses continued to expand. The " AMA Museum " was unable to bear heavy losses for years, so it had to make a decision that the house lease expired at the end of this year and ceased operations on November 10, and no longer renewed the operation. The sad thing is that Taiwan’s first physical museum of "comfort women" that records the pain of history will disappear before the world.


平和の少女像と、台北の「祖母の家」

吳達坤(ウー・ダクァン)

'COVID-19' が世界中で流行し世の中は穏やかでない。だが平和芸術の脈動は止まることなく、台北市現代美術館の招待により「表現の不自由展」が台北当代館に巡回した。これは、2019年の「あいちトリエンナーレ」、韓国済州島の平和公園に出展したのに続いて、同様なキュレートリアルの脈絡で「表現の不自由展」が再展示されたものだ。韓国人彫刻家夫妻、金運成(キム・ソギョン)と金龧炅(キム・ウンソン)が制作した平和少女像も含まれている。この作品は、ソウルにある在韓日本大使館正門に向かって初めて現れた後、韓国各地に広がった。主に韓国の民間団体が推進する「平和の少女像」は、韓国の服に身を包み、両の拳を握って椅子に座るという代表的なポーズで、第2次世界大戦当時、日本が慰安婦を強制動員した非人道的行為を告発する。

台湾には「祖母の家」という、台湾の慰安婦だったおばあさんたちの歴史を記録した貴重な場所がある。

祖母はいつもこう言っていた、「仕方ない、あれが運命だったんだ」と。

でも、そう口にすることさえできないおばあさんもいた。

これが彼女たちの青春だった。

これは、「祖母の家」の壁に書かれた、その時代を描いた言葉だ。

1991年、初めて韓国人元慰安婦の金學順(キム・ハクスン)女史が自分の権利を守るために立ち上がって、日本政府の強要によって慰安婦となった苦しみと心痛を吐露し、1992年2月には伊東秀子衆議院議員が決定的な電報3通を発見して、台湾にも被害者がいることを立証した。同年、女性救援財団は、台湾慰安婦ホットラインを設立して訴えを募り、「台湾慰安婦専門チーム」を構成して台湾慰安婦の数、部族、地域などの歴史資料調査に着手した。

台湾に少なくとも2000人の慰安婦がいたことが証明されたが、多くは他界している。女性救援調査チームを通じて確認された被害者は閩南、客家と原住民の女性を含む58人で、ブローカー(台湾籍と日本籍)や日本植民地時代の地区事務所吏員の勧誘に欺かれて、日本政府が主張するように自発的にではなく、無知または強制ゆえに、慰安工作に従事するため戦争の最前線に連行されたのだった。

「婦人援護会」は、1992年から台湾「慰安婦」の人権運動に取り組んできた。長い過程のなかで、すべてのおばあさんが鎖を解かれた後に見せてくれるエネルギーと勇気を目の当たりにし、2016年にようやく場所を得て、台湾初の「慰安婦」人権運動を基盤とした、女性のエンパワーメントとジェンダー平等教育を結合した多機能博物館「祖母の家―平和と女性人権館」を設立した。祖母たちの人生の物語を出発点として記念するため、同時に、現代の女性たちと時空を越えた生きた対話を進めるために、館は「祖母の家」と名付けられた。祖母のように暖かく、平等で、自由な光を放つこの場所は、あなたと私の心の家を守り、女性、ジェンダーと人権に特化した対話の空間でもある。

第2次世界大戦時の台湾「慰安婦」に関する史料や、生存者の人生経験と芸術的創造を保存展示することで、台湾「慰安婦」の歴史的事実に対する社会の理解を構築し、人生のトラウマが前向きな力に変換され、歴史の傷跡が今日の平和の礎石になり得ることを理解させる。

さらに、「慰安婦」が被った戦争傷害、性暴力、人身売買の歴史を基礎として、この祖母たちの物語を保存し、記憶し、そして継承する。同時に、多様な展示・教育活動を通じて、台湾社会に対し、現代社会における女性の人権、戦争および平和の問題について引き続き考え、次世代のために、平等かつ暴力のない尊重すべき未来を実現するように期待する。

2016年12月の開館以来、「祖母の家」は、台湾の国際人権、男女平等に関する交流のプラットフォームとなっており、世界中から、たとえば国際人権条約(CEDAW、CRC、2つの条約)審査委員会、アジア人権大賞受賞者、政府代表またはNGOグループ、国内の公的および市民団体、学生を迎え、一般の来館者は125,529人に達する。特に、毎年日本からの訪問者が多い「祖母の家」は、日本では目にすることのない史実を補うべく、正確な史実を提供する。2016年から現在まで「婦援会」は、慰安婦やジェンダー、人権問題などの公教育に取り組み、積極的に国際交流に連携する一方、活動資金や館運営の財源募集に努めてきた。しかし、家賃、老朽化した建物の維持費、コレクションの維持費、スタッフの人件費などの経費がかさみ、政府補助、ショップの収益、支持者たちの寄付金を差し引いても、最近3年間で毎年400~500万台湾ドル近くの赤字が出ている。「婦援会」の財務的負担は重く、2019年に累積欠損を補わなければならないことから、すでに総会の事務室を売却して「祖母の家」の運営に充てている。

2020年、武漢肺炎が発生し、団体訪問がキャンセルされ、入場者が激減し、入場料やショップの収入、寄付金が激減し、運営が困難となって赤字はさらに拡大した。「祖母の家」は毎年の深刻な赤字に耐え切れず、やむを得ず今年末の住宅賃貸借契約の延長契約をすることなく、期限の11月10日に運営を停止することになった。残念なことに、歴史の痛みを記録した台湾初の「慰安婦」実像の博物館が、世界から消えようとしてい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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