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댁, 정지에書] (5) 제주댁 할망의 봄 에세이(봄, 저봄 : 젓가락의 제주어) / 김진경 베지근연구소장 제주음식연구가

밥이 보약이라 했습니다. 바람이 빚어낸 양식들로 일상의 밥상을 채워온 제주의 음식은 그야말로 보약들입니다. 제주 선인들은 화산섬 뜬 땅에서, 거친 바당에서 자연이 키워 낸 곡물과 해산물을 백록이 놀던 한라산과 설문대할망이 내린 선물로 여겼습니다. 제주에서 나고 자란 김진경 님은 제주 향토음식에 대해 공부하고 있는 젊은 연구자입니다. 격주로 '제주댁, 정지에書'를 통해 제주음식에 깃든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편집자 글]

“제주전통음식 코스인데, 젓가락이 당연한 거 아니에요?”

2017년 11월 9일 오후 4시 30분,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은 말이었다.

36살이었던 나는 제주 전통음식을 기반으로 한 케이터링, 도시락, 교육 사업을 하고 있었다. 그때 나는 고작 3년 차 사업 초보였음에도 감사하게 꽤 굵직굵직한 프로젝트 의뢰가 들어 왔기 때문에 남들이 보기에는 소위 ‘잘나가는 젊은 여성 사업가’였다. 그 당시에는 30대 중반의 제주 토박이 중 제주 전통음식으로 사업하는 친구가 거의 없을 때라 많은 분이 나를 찾아 주셨던 그런 시기였다.

2017년 11월 9일은, 이름만 들어도 다들 아는 곳에서 주관하는, 외국 바이어를 초청하여 진행하는 대규모 국제행사의 마지막 날이었다. 그 행사에서 나는 제주 전통음식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코스요리를 선보이는 연회를 담당하게 되었다.

ⓒ제주의소리
제주 전통음식을 주제로 메뉴기획 단계부터 꼼꼼히 신경 써 준비했던 연회 모습. ⓒ제주의소리

그동안 이런 연회는 대부분 제주의 특급호텔에서 맡아 진행해왔고 소규모 업체가 진행하는 경우는 거의 드물었다. 나는 외국인 손님들께 맛있고 아름다운 제주 전통음식을 드시면서 제주에 대한 좋은 추억을 떠올릴 수 있도록 메뉴를 기획하고, 아쿠아플라넷 대형수족관 앞에서 제주 가을의 분위기를 함께 느낄 수 있도록 이색적인 공간기획에도 힘썼다. 메뉴기획에 공간기획까지, 행사 몇 주 전부터 꼼꼼하게 신경을 쓰고 철저하게 준비했던 작업이었다.

제주 전통음식이지만 담음새(플레이트)는 양식코스를 표방했던 연회라 커트러리(숟가락, 포크, 나이프 등)를 제공할지 한식 수저를 제공할 것인지에 대해 주최 측과 여러 번 회의를 거쳤다. 장기간의 논의 끝에 외국인 바이어들이 사용하기 편리한 커트러리를 제공하는 것으로 결정했고, 이를 일정 마지막 날 다시 한번 체크 해 최종 확인까지 마쳤다. 나는 연회에 초대된 150여 명의 손님이 드실 제주 음식을 준비하느라 며칠 전부터 거의 밤을 새다시피 하며 만반의 준비를 마쳤다.

당일 오후, 아쿠아플라넷 제주에 도착하여 연회 세팅을 하고 있었는데 테이블에 놓여진 커트러리를 본 한 남자분이 이 연회의 총 책임자인 나를 찾았다.

“제주음식으로 준비하는 거 아닌가요?”
“네 맞습니다.”
“그런데 왜 젓가락이 아닌, 숟가락과 포크죠?”
“아, 그 부분은 주최 측과 이미 여러 번 협의해서 커트러리를 제공하는 걸로 결정이….”
“아니 당연히 제주 전통음식 코스인데, 외국인 연회여도 젓가락이 맞지 않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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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회 시작이 한 시간 반밖에 남지 않은 그때 나는 ‘제주 전통음식에 맞게 한식 수저를 준비해달라’는 관계자 요청에 따라 대책 없이 성산 마을로 향했다. ⓒ제주의소리

연회 시작까지는 겨우 한 시간 반 밖에 남지 않은 그때, 커트러리에서 한식 수저로 교체해달라는 요청을 빨리 해결하지 않으면 음식을 준비하는 주방팀도, 테이블 세팅을 담당하는 연회팀도 모두 흔들리게 된다. 저녁 행사 때문에 푸드코트에 입점해 있던 업체들도 모두 퇴근한 터라 건물 내에서 그만큼의 젓가락을 구할 방법은 없었다. 주최 측에 급한 대로 일회용 젓가락이라도 괜찮겠느냐 물었더니 당연히 안 된단다. 나는 우리 팀들에게 곧 젓가락을 가지고 올 것이니 행사를 착오 없이 준비해 달라 부탁하고 무작정 아쿠아플라넷 밖으로 나왔다.

대책 없이 밖으로 나온 나는 성산의 큰 식당들이 보이면 무작정 들어가서 젓가락을 빌려달라고 사정을 했다. 하지만 이제 곧 저녁 영업을 시작하는 식당들이 나에게 젓가락을 빌려줄 리 만무했다. 시간이 늦어 마을회관도 문을 닫았고 성산에는 당장 150벌의 젓가락을 구입할 수 있는 곳도 없었다. 클라이언트와의 약속을 지키는 것도 내가 해야 할 역할 중 하나였기 때문에 시간이 흐를수록 마음이 급해진 나는 발을 동동 굴렀다. 순간 스승님 중 한 분의 친정이 성산이라 하셨던 기억이 떠올랐다. 급하게 스승님께 전화를 드려 급하게 젓가락이 좀 필요한데 친정 어머님께 부탁드려보면 안 되겠느냐고 부탁드렸다. 그리고는 일 분이 채 지나지 않아 스승님께 연락이 왔다.

“진경아, 우리 엄마한테 지금 전화 드려보렴.”

스승님의 친정 어머님께 전화를 드렸더니 지금 바로 집으로 오라고 하셨다. 급하게 차를 몰아 댁으로 갔더니 어머님은 이미 대문 앞에 나와 계셨다. 인사를 제대로 나눌 겨를도 주시지 않고 급하게 앞 조수석에 타신 어머님은 “이디래,저디래”(이쪽으로, 저쪽으로) 하며 손목 스냅을 이용하여 방향을 알려주셨고 나는 무작정 알려주신 방향으로 운전했다. 그리고는 신양리의 어느 골목에 차를 세웠는데 차를 세운 곳 바로 앞 쉼팡 아래 어르신 두 명이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스승님의 친정 어머님이 물으셨다.

“거기가 어디꽈? 따라옵써.”

할머니들과 함께 좁은 골목을 따라 들어간 어느 가정집 마당에서 들어서자마자 나의 눈은 바로 하얀 김이 서린 것처럼 뿌옇게 흐려졌다.

“아이고, 야이라? 동네에서 잔치하는 아이가? 잘도 어린 아인게. 나도 잘도 오랜만에 꺼내부난 한번 씻었져. 다 어디로 가신지 106벌 이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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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젊은이에게 젓가락을 전해주기 위해 모인 성산 어르신 네 분의 따뜻한 마음에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제주의소리

스승님의 친정어머니는 전화를 받자마자 바로 이웃 동네 친구에게 물어 젓가락을 가지고 있는 마을주민을 찾아냈고 성산에서 당장 잔치를 치르는 사람이 젓가락이 없어 손님을 치르지 못한다고 하니 빨리 와서 가져가라 하셨다 한다. 그리고는 오랫동안 장 안에 간직하고 있던 오래된 젓가락을 꺼내 하나하나 깨끗하게 씻고 난 다음 또 다시 하나하나 마른행주로 닦아 내고 계셨던 것이다.

“게난 우리 동네에서 잔치햄서? 이거면 되커냐? 더 필요한 건 어시냐?”

검정색 비닐봉투에 젓가락을 넣어 돌돌 말아 내 손에 쥐어주시며 더 필요한 게 없냐고 물어보시는, 생전 처음 보는 할머니의 손을 잡고 나는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감사하다는 말만 계속했다.

처음 만난 낯선 젊은이에게 젓가락을 주려고 모이신 성산 토박이 어르신 네 분. 그리고 그 젓가락이 없으면 오늘 큰 고초를 겪을 뻔한 제주시에서 온 젊은 제주 처자 한 명. 다른 공기, 다른 세월을 살았지만, 어르신들에게 이 “야이”는 그 순간만큼은 같은 공기 속에서 함께 숨 쉬고 있는 그냥 동네의 아이였던 것이다.

나는 그렇게 검은색 비닐봉투를 떨리는 품에 안고 다시 연회장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리고 신양리 어르신들이 내어 주신 젓가락으로 그날의 연회를 무사히 치렀다.

나에게 젓가락을 내어주신 어르신은 마을에서 행사나 마을제가 있을 때 전이나 적을 도맡아 만들었던 어르신인데, 이때 마을 사람들이 사용할 젓가락도 관리하고 계셨다고 한다. 이제는 마을 단위의 행사를 치른 지 오래되어 몇 년 동안 젓가락을 장 속에 묵혀 뒀는데 오랜만에 꺼내니 순간 떠들썩했던 옛날 마을 모습이 생각 나서 좋으셨다고 하셨다. 

제주의 통과의례 음식(고양숙, 김지순, 2016).
제주의 통과의례 음식(고양숙, 김지순, 2016).

할머니는 아주 최근에야 본인이 적을 만들었지만 사실 돼지고기 준비나 적을 만드는 건 예전에는 남자가 담당했던 일이었다고 하셨다. 집에 있는 대나무를 가늘게 깎아 ‘적꽂이’를 만드는 것부터 시작해 돗궤기(돼지고기), 쉐고기(소고기), 상어고기, 모멀묵(메밀묵), 둠비(두부), 구젱기(뿔소라), 뭉게(문어), 오징어 등을 손질해 각각의 꽂이를 만들어 내는 것은 다른 지방에서는 보기 드문 광경이다. 제례상에 올리는 제주의 적(제주에서는 적갈이라고도 부른다)은 바로 이렇게 한 꽂이에 한 종류만을 꿰는 점과 그 크기가 제법 크다는 점에서 육지의 적과는 다르기 때문에 외지사람들이 신기하게 생각하는 제주 음식문화 중 하나다. 이 적꽂이는 행사의 종류나 먹는 사람에 따라 조금씩 모양을 달리했는데 50년대~60년대 가문잔치의 상객 상에는 하얀 곤밥 위에 돼지고기, 간전, 메밀전병, 닭다리 등을 꿰어 올린 반꽂이를 올리는 등 각각의 이유와 이야기가 있는 제주의 적문화다.

그땐 먹고 사는 게 아무리 힘들었어도 잔칫날만 되면 온 마을에서 떠들썩하고 즐거웠다고 한다. 잔칫날이 다가오면 두부를 제일 잘 만드는 어른은 ‘마른둠비(마른두부)’를 만들었다. 또 잔치에 쓸 돼지도 잡았는데, 그때면 어른이나 아이나 모두 들뜨고 신이나 온 마을이 축제 분위기였다고 한다. 마을제나 행사가 있을 때도 마을 사람이 모두 함께 모여 음식을 만들고 행사 준비를 했었는데, 기쁜 날이나 슬픈 날이나, 마을의 중요한 행사를 일 년에 몇 번이고 함께 치러내느라 바빴던 기억이 이제는 까마득해지셨다고 했다. 기쁨도 같이 나누고 슬픔도 함께 나누며 마을을 지켜갔던 사람들은 하나둘씩 떠났다. 또, 아이들과 젊은이들도 시내로 가고, 육지로 나갔다. 그렇게 마을 사람들이 점점 사라져갔다. 마을에서 직접 준비했던 잔치는 점점 예식장이나 행사장으로 옮겨가고 이제 마을제는 어르신들만의 행사가 되어버렸다. 제사음식을 먹으러 가는 “식게밥(제사밥)”도 역시 어르신들만의 이야기가 되어가고 있다.

마을 큰 행사에 사용하는 젓가락을 정성스레 내어주신 성산 어르신들. 마을의 큰 행사가 있을 때면 각각의 이유와 이야기가 있는 ‘적꽂이’를 준비한다는 이야기를 풀며 떠들썩한 옛 마을의 정취가 생각나 좋으셨단다. 이런 따뜻한 할망의 ‘봄’ 덕분에 행사를 무사히 치를 수 있었다. ⓒ이로이로
마을 큰 행사에 사용하는 젓가락을 정성스레 내어주신 성산 어르신들. 마을의 큰 행사가 있을 때면 각각의 이유와 이야기가 있는 ‘적꽂이’를 준비한다는 이야기를 풀며 떠들썩한 옛 마을의 정취가 생각나 좋으셨단다. 이런 따뜻한 할망의 ‘봄’ 덕분에 행사를 무사히 치를 수 있었다. ⓒ이로이로

그렇게 어르신들의 기억에 남아있던 마을 사람들의 생생한 소리가 살아있는 신양리는 이제는 조용한 마을이 되어버렸다. 그런데 갑자기 나타난 젊은 “야이”가 우리 동네에서 손님을 치른다고 젓가락을 찾는데 젓가락을 씻으며 문득 옛날 정겹고 왁자지껄했던 옛날 마을의 모습이 떠올라 울컥했다고 하셨다.

2017년 어느 가을날, 나는 그렇게 할머니가 50여 년 동안 소중히 간직하면서 마을의 잔치 때마다 마을 사람들과 함께 사용했던 그 소중한 “할망의 따뜻한 봄”으로 기적처럼 잔치를 치러냈다.

“할머니 한 분이 돌아가실 때마다 박물관 하나가 사라진다.”

존경하는 어느 학자가 했던 말을 자꾸 떠오르게 하는, 나에겐 보물같이 소중한 이야기. 이 어르신들 이야기와 그 속에 담긴 삶의 지혜가 오늘도 나를 겸손하게 만든다. / 김진경 베지근연구소장, 제주음식연구가

김진경은?

20대에 찾아온 성인아토피 때문에 밀가루와 인스턴트 음식을 끊고 전통음식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떡과 한과에 대한 공부를 독학으로 시작했다. 결국 중학교에서 아이들 가르치던 일도 그만두고 전통 병과점을 창업해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다.

이후 제주전통음식으로 영역을 확장해 현재 베지근연구소장으로 제주음식 연구와 아카이빙, 제주로컬푸드 컨설팅, 레시피 개발과 쿠킹랩 등을 총괄기획하고 있다.

현재 제주대학교 한국학협동과정 박사과정을 밟으며 제주음식 공부에 열중이다. 두 아이를 키우고 있어 어멍의 마음으로 제주음식을 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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