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서로에게 스며드는 세 사람
어느새 서로에게 스며드는 세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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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예술공간 오이 연극 ‘집과 집 사이’
ⓒ제주의소리
예술공간 오이 연극 '집과 집 사이'에 출연하는 전혁준(왼쪽부터), 김수민, 김소여 배우. ⓒ제주의소리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 가운데 하나는 아마도, 타인과 가까워지는 것이다. 누군가를 잘 알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단계는 어디일까. 나도 쉽게 들여다보지 못하는 내 안의 ‘나’를 과연 타인에게 보여줄 수 있을까. 보여준다면 상대는 어떻게 받아들일까. 이런 고민 자체가 사치일 만큼 피상적인 관계로 가득 차 있지 않을까.

예술공간 오이의 신작 연극 <집과 집 사이>는 마음 한 구석이 멍든 현대인들의 관계 속에 작은 치유를 내미는 작품이다.

그린빌에 사는 준(배우 전혁준), 루비하우스 거주자 미미(김소여), 영빌라 입주자 도연(김수민). 어쩌면 가끔 가다 마주치며 얼굴만 희미하게 기억하는 옆집 이웃으로 남을 수도 있을 세 사람. 그러나 스트레스 가득한 미미가 준의 화분을 무참하게 짓밟으면서 인연의 신호등은 불이 켜졌다.

<집과 집 사이>는 관객의 이해를 돕는 친절한 설정과 각자의 내면을 풀어내는 진행 덕분인지, 이야기가 종국으로 가면 '해피엔딩'이 되겠다는 예상을 금세 할 수 있다.

불행한 가정사로 인한 트라우마에 얽매여 사는 준, 진솔한 사랑을 받지 못해 스스로를 해치는 미미, 부모를 포함한 주변의 바람이 아닌 스스로 진정 원하는 길을 찾지 못해 괴로워 하는 도연. 

모든 등장인물은 쉽사리 꺼내지 못하는 상처를 하나씩 안고 있다. 그 상처는 제각각 다르지만 내면을 계속 갉아먹고 집어삼키고 있다는 점에서는 모두 동일하다. 

이런 ‘자신이 자신이 아닌’ 상태에서 서로 부딪히며 한 동안 서로를 날카롭게 찌르는 세 사람. 시간이 지날 수록 투박하지만 가감 없이 아픔을 꺼내 보이면서 서서히 그 끝이 무뎌진다. 미미의 술잔을 빼앗아 만취한 상태가 되서야 진정 하고 싶은 말을 쏟아내는 도연, 그런 도연은 미미와 준이 위험한 상황에서 중요한 도움을 제공한다. 그리고 도연과 준은 반복하는 미미의 일탈을 외면하지 않고 기꺼이 나서서 돕는다. 어려운 순간마다 옆을 지켜주고 그런 배려를 잊지 않으면서 세 사람의 거리는 어느새 ‘집과 집 사이’ 간격을 둔 이웃 이상으로 가까워진다.

<집과 집 사이> 속 세 사람은 선명한 캐릭터 설정을 갖추고 관객에게 다가선다. 

준은 커다란 덩치에 하관 가득한 수염, 정돈되지 않은 머리카락이라는 외모와 달리, 작은 화분도 오와 열을 맞춰 배치하는 꼼꼼함이 대비를 이룬다. 이런 모습은 세상을 등지고 자기만의 식물 세계 속에 살아가는 은둔자와 꽤 어울린다.

미미는 화려한 미를 뽐내는 여성성을 장착했다. 목욕 가운, 원피스, 시스루 같은 복장뿐만 아니라 기다란 담배, 금색 발찌 등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 썼다. 이는 매혹적인 외형과 달리 스스로를 파괴하면서 진정한 교감과 사랑을 갈구하는 인물을 완성한다.

도연은 앞서 두 인물과 비교하면 밋밋하고 무색무취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주목할 만 한 특징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 헐렁한 티셔츠와 간단히 질끈 묶은 머리카락, 화룡점정으로 슬리퍼 신발까지 더하면서 오직 하나의 목표만 바라보고 달리지만 어느새 지쳐버린 공무원 준비생을 보여준다. 

식물로 뒤덮인 초록의 그린빌, 집안이 온통 붉게 물들인 루비하우스, 집 앞에 종량제 쓰레기가 수북히 쌓인 영빌라. 작품 속 등장인물은 어디서 마주친 듯 익숙한 모습이지만, 세밀한 아이템 구성을 더하면서 힘을 잃지 않는다. 

처음엔 남보다 못한 사이에서 결국 서로를 진심으로 배려하는 관계로 바뀌는 작품의 큰 틀은, 관객 입장에서 새롭기보다는 친숙하게 다가온다. 그렇지만 진솔한 관계의 따스함이 차갑게 얼어붙은 마음을 녹이는 과정은 관객을 미소 짓게 만든다.

무엇보다 완벽히 달라진 결과를 보여주기 보다는 그저 서로가 "스며드는" 정도까지만 관계가 나아가면서, 지켜보는 관객은 부담을 한층 덜어낸다. 온갖 혐오가 난무하는 요즘, 내가 당신에게 당신이 내게 스며든다고 여길 수 있는 사이. 상상만으로 미소가 지어지고 작은 위안이 되기 충분하지 않나. 그렇기에 “(우리가) 필요 이상으로 많이 만나는데, (서로가) 스며드는 것을 받아들이자”는 막판 준과 미미의 대화는 보다 더 긴 호흡으로 메시지를 강조하면 어떨까 하는 인상을 받았다. 

<집과 집 사이>는 등장인물의 성격을 잘 반영한 듯 적절한 캐스팅과 대사가 또 하나의 장점이다. 

“그렇게 바라던 부모의 죽음인데 눈물과 웃음이 동시에 났다.”
“모두 다 사라져 버려.…살고 싶어.”
“나는 왜 원룸에 살까, 나는 왜 태어났을까.”

인물들의 독백은 누구나 생각해볼 법한 솔직한 감정에 가까운데, 동시에 거추장스럽지도 가볍지도 않은 농도를 유지하며 관객의 뇌리에 박힌다. 인물과 인물 간의 대화도 나름의 속도감으로 극 내내 지루함을 줄이며 분위기를 이끈다. 피(blood)가 준에게는 트라우마를 일으키는 위험한 존재이지만, 미미에게는 자존감을 확인시키는 유일하고 "편안"한 것이라는 아이러니한 사실이 동시에 대비되는 장면은 상당한 몰입감을 선사했다.

글과 연출을 맡은 홍서해는 <집과 집 사이>가 첫 극작·연출 작품이다. 개인적으로 극단 예술공간 오이와 처음 만난 작품이 5년 전 홍서해 배우의 1인극 <설사>이기에 이번 작품은 기자에게도 꽤나 기억에 남겠다. 

‘작품 속 세 인물 모두 내 안의 모습’이라는 연출자의 설명을 기억하면 인물 관계만큼이나 준·미미·도연 각자에게 더 집중할 수 있다. 홍서해의 연극 인생에서 의미 있는 이번 발걸음과 또 다음 걸음걸음을 이 글을 통해 응원한다.

<집과 집 사이>는 극단 내적으로도 성장한 계기다. 음향감독 고승유는 작품에 사용한 음악 5곡을 직접 작곡했다. "자작곡은 몇 가지 음을 섞은 것에 불과하고, 마음 같아서는 수록곡 모두를 만들고 싶었는데 하지 못했다"는 설명이지만, 이런 시도는 결코 사소하게 평가받을 것이 아니다. 작은 부분 부분까지 놓치지 않고 발전하려는 노력이 쌓일 때, 관객은 어느 극단이 좋은 작품을 하는지 아닌지를 자연스레 알게 된다. 여기에 단원들이 배우·제작진으로 활동하다가 작가·연출자까지 나아가는 선순환도 건강하고 긍정적인 구조다.

“내가 나였다가 너였다가 우리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서 출발해서 원하든, 원하지 않든 생겨나는 관계와 살아있는 동안 내 속에서 일어나는 갈등이 끝나지 않을 것 같다는 두려움에 도착했습니다. 멀리서 보려고 노력했지만 어쩔 수 없이 가까이 들여다보게 되는 세 인물을 여러분은 어떻게 보실지 궁금합니다.”

- 연출의 글

코로나19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고민하게 되는 요즘,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주는 관계의 회복을 연극 무대 위에서 만나보자. 엄격하게 관리되는 소극장은 다른 어느 실내 공간보다 감염에서 안전하다.

<집과 집 사이>는 8월 1일, 2일까지 열린다. 시간은 오후 3시와 7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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