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일 4.3평화공원…3부 ‘제주신보 김호진 편집국장과 불온삐라 인쇄사건 기록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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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일 오후 2시 제주언론학회와 제주4.3평화재단은 4.3 72주년 기념 학술세미나 '4.3과 미디어'를 개최했다. ⓒ제주의소리

제주4.3 72주년을 맞아 다양한 미디어의 역할과 기능을 탐구하고 지역 반영 방안에 대해 논의하는 학술세미나가 개최됐다.

사단법인 제주언론학회와 제주4.3평화재단은 31일 오후 5시 4.3평화기념관 1층 대강당서 3부,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허구인가? 제주신보 김호진 편집국장과 불온삐라 인쇄사건 기록을 중심으로’라는 주제로 세미나를 진행했다.

세미나는 △문윤택 제주국제대학교 스마트미디어학과 교수가 사회를 맡고 △고영철 언론개혁제주시민포럼대표·제주대 명예교수가 주제 발표를 담당했다. 토론은 △김계춘 전 제주매일 주필 △김종민 전 국무총리 소속 4.3위원회 전문위원 △허호준 한겨레 선임기자가 자리했다.

고영철 명예교수는 주제 발표에서 “이번 연구는 1948년 10월경 인민군사령관 이덕구 명의 삐라를 인쇄해준 혐의로 처형당한 제주신보 김호진 편집국장 등 관련 사건 기록들이 어디까지 사실이고 허위인지 알아보기 위해 시도됐다”며 “본 내용은 제주 인터넷신문사에 원고를 싣기도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내용을 종합할 때 ‘호소문’과 ‘포고문’ 두 개는 김호진 국장이 인쇄해준 삐라라는 것이 확실해 보인다”며 “이덕구 명의 삐라가 언제 뿌려졌는가 정확한 근거는 없지만 새로운 사료가 발굴되지 않는 한 김봉현·김민주의 ‘제주도인민들의 4.3무장투쟁사(이하 4.3무장투쟁사)’ 주장을 따를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덕구 명의 삐라 인쇄자는 김호진 편집국장, 조판공장장 공 모씨, 직원 양경운 등 3인이라는 가설이 가장 타당성 있다”고 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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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철 언론개혁제주시민포럼대표·제주대 명예교수와  김계춘 전 제주매일 주필. ⓒ제주의소리

고 명예교수는 “이 사건을 처음 알린 것은 1963년 일본서 출판된 ‘4.3무장투쟁사’다. 이 책보다 늦게 출판된 문헌은 사실보다 허구가 많았다”면서 “대다수 문헌들은 ‘4.3무장투쟁사’와 1978년 김봉현의 ‘제주도 피의 역사’를 무비판적으로 인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애매모호한 기록들이 사실왜곡을 가중시키고, 사건 윤곽을 잡는데 도움을 주기보다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고 토로했다.

김계춘 전 주필은 “김호진 국장이 인쇄해줬다는 유인물 종류는 다양했다”면서 “각종 문헌에 등장하는 ‘선전포고문’ 등은 실체가 없는 것으로 확인돼 규명이 필요해 보인다”라고 주장했다.

이어 “이덕구 명의 삐라가 4.3무장투쟁사에 따르면 1948년 10월 24일 살포됐다고 하는데 명확한 근거가 없다. 문제는 이후 대부분 문헌이 이를 참조하고 사실화 했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4.3무장투쟁사가 처음 사건을 알린 것은 맞지만 이후 출간과정서 다수 필자들이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며 마치 정설처럼 고착화된 부분이 있다”며 “또 사료 원형을 입맛에 맞게 변형하는 사례가 발견돼 진실 규명보다 잘못된 정보를 전달했다는 비판이 존재한다”고 피력했다.

김 전 주필은 “‘커튼 뒤 가려진 진실을 알려야 한다. 각 언론과 역사가는 자신을 점검하며 스스로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는 고 명예교수 말처럼 경고를 겸허하게 받아들이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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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민 전 국무총리 소속 4.3위원회 전문위원과 허호준 한겨레 선임기자. ⓒ제주의소리

이어 제주4.3에 대한 수많은 연구를 해온 김종민 전 위원은 “이덕구 명의로 발표됐다는 유인물에 대한 4.3관련 책자 저자 중 실제로 그 유인물을 본 사람이 없다”며 “4.3무장투쟁사 저자 김봉현 역시 4.3무장봉기 전 일본으로 피신해 4.3을 체험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김봉현은 직접 삐라를 확인하지 못한 탓에 ‘다음과 같은 요지의 호소문’, ‘호소문은 대략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며 “글을 곰곰이 살펴보면 고유명사로써 사용한 것이 아니라 일반명사로 쓴 것이라 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

또 “이덕구 명의 포고문 내용을 문자화 시켜 세상에 공개한 문국주 저서 ‘조선사회주의운동사 사전’ 역시 삐라의 실제 내용이기 보단 김봉현의 글을 버무려 쓴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피력했다.

김 전 위원은 “발제자는 포고문과 호소문이 함께 소개된 것은 신상준의 저서 ‘제주도 4.3사건’ 하권이 유일하다 했는데 이 저서 역시 4.3무장투쟁사를 그대로 옮겨놓은 것 뿐이다”라고 했다.

허호준 선임기자는 “주제 제목에 나타난 ‘불온삐라’ 같은 표현도 주관적 견해가 아닌 객관적 기술이 필요해 보인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4.3은 언론의 흑역사다. 4.3 당시 언론은 진실의 문을 굳게 닫고 전후 모든 과정을 생략한 채 폭동으로만 기술했다”면서 “70년대 보도가 되지 않더라도 취재를 했다면 기록적 측면에서 4.3의 진실에 가깝게 다가갈 수 있었을 것”이라고 유감을 표했다.

또 “김봉현 저자를 직접 취재한 적이 있는데 저자 역시 서술된 부분이 오류와 과장이 있다고 인정한 바 있다. 재일동포 증언에 의존하다보니 검증 기회가 없었다라고 했다”면서 “이런 부분을 감안했을 때 새로운 자료 근거를 찾아내 확실히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토론자들의 발언이 끝나고 고 명예교수는 “언론인으로서 부족한 부분, 빠진 부분을 채우는 것이 역할이고 임무라 생각한다”며 “지적해준 모든 사항들에 대해 다시 한번 검토하고 자료를 찾겠다”고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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