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살에 갇힌 서귀포항](1) 제주 서귀포시 역사 깃든 공간...그러나 시민과 단절된 서귀포항

대한민국 최남단 도시 항구인 제주 서귀포항은 대표적인 관광지로 도민을 비롯한 관광객이 많이 찾는 명소입니다. 천지연 폭포를 병풍 삼아 새섬과 문섬을 바라볼 수 있던 서귀포항의 자연 그대로의 옛 풍경은 지금은 파란 철제 울타리에 가로막혀 있습니다. 서귀포시민의 역사와 추억이 깃든 서귀포항이 치유와 문화의 공간으로 거듭날 것을 요구하는 시민들의 목소리를 [제주의소리]가 현장 취재를 통해 연재합니다. 서귀포항을 살펴보는 이번 기획을 통해 자연 가치는 물론 시민과 동화되는 ‘문화적 공간’의 의미를 되돌아보고자 합니다.  [편집자] 

암흑 같던 일제강점기가 끝나고 1946년 남제주군 서귀면과 중문면으로 출발해 1981년 7월 서귀읍과 중문면이 통합, 시로 승격된 서귀포. 

‘서귀시’나 ‘중문시’ 등이 아닌 ‘서귀포(西歸浦)’라는 지명으로 개칭된 이름에는 포구를 뜻하는 포(浦)자가 들어가 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지역 시민들의 기억이 고스란히 스며있는 서귀포항과 바다. 그곳에 녹아있는 정서는 노래로도 많이 불렸다.

1937년 발표되며 서귀포를 널리 알린 남인수의 ‘서귀포 칠십리’나 1974년 조미미의 ‘서귀포를 아시나요’가 대표적이다. 노래 중에는 ‘바닷물이 철썩철썩 파도치는 서귀포’나 ‘수평선에 돛단배가 그림같은 내고향’ 등 바다 관련 가사들이 나타나기도 한다. 서귀포를 논할 때 바다를 빼놓을 수 없다는 이야기다.

ⓒ제주의소리
서귀포수협 위판장서부터 제1부두까지 약 300m 구간은 파란 철제 울타리가 설치돼 있어 30년 가까이 아름다운 서귀포항의 미관을 크게 해치고 있다. 철제 울타리 뒤로 새섬과 새연교 풍경이 가려 제대로 바라볼 수 없는 상태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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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씨년스럽게 서귀포항 주변으로 파란색 철제 울타리가 설치돼 있다. ⓒ제주의소리

그런 바다를 끼고 해 지는 저녁 새연교 다리에 걸린 노을이 붉그스름한 빛을 띠며 포구와 새섬을 가득 메우는, 절경을 자랑하는 서귀포항. 천지연 폭포를 병풍 삼아 새섬과 문섬을 바라볼 수 있는 관광미항 서귀포항이 파란 철창에 갇혀 있어 안타까움을 사고 있다.

최근 서귀포수협 위판장서부터 제1부두 입구까지 울타리로 가려진 서귀포항을 시민 공간으로 만들어달라는 요구가 빗발치고 있다. 지난 6월 9일 30여개 시민단체는 서귀포항의 아름다운 절경을 해치는 철제 울타리를 철거해달라고 촉구하기도 했다.

울타리가 없던 시절엔 서귀포항서 5개의 섬을 바라볼 수 있었고 국내 관광 1번지였다는 것. 역사적으로도 서귀포항이 가진 의미는 매우 중요하다고 피력했다.

서귀포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조선왕조실록 세종 21년 2월 ‘서귀’라는 지명이 나타난다. 제주 도안무사 한승순은 세종에게 ‘정의현 서쪽 서귀 방호소에는 모두 성곽이 없사온데, 만일 왜적이 밤을 타고 돌입해오면 군사가 의지할 곳이 없사와 응적하기에 형편이 어려우니, 형편을 요량하여 성을 쌓게 하시고 적변을 대응하게 하소서’라고 아뢰었다.

이후 서귀포항은 역사를 거쳐 1925년 서방파제 축조와 1958년 동방파제 완공을 시작으로 1991년 무역항으로 지정되며 울타리가 만들어졌고 현재에 이르렀다.

윤봉택 (사)한국예총 서귀포지회장은 최근 [제주의소리]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서귀포항은 예로부터 주민들이 많이 이용하던 곳이다. 항해하기 위한 바람을 기다리는 후풍처의 역할을 톡톡히 한 곳”이라며 “(서귀포항 앞) 새섬이 지켜주는 천연 요새로 세종실록에도 ‘왜선이 숨어 정박하기 좋은 요해의 땅’이라고 나타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과 가까운 탓에 경술국치 이후 일제에 의해 서귀포항이 확장되기 시작했다. 1925년 서방파제 축조가 시작인 셈”이라고 설명했다.

서귀포항은 아픈 과거가 서려 있기도 하다. 1970년 12월 15일 서귀포항을 떠난 남영호가 부산으로 가던 중 여수 인근 앞바다서 침몰하고 만 것. 290명 정원인 선박에 331명을 태우고 400톤이 넘는 감귤 등 화물을 과다 적재한 탓이었다. 더불어 항해 10일을 남겨두고 항로 경험이 부족한 선장으로 교체된 것도 원인으로 지목된다.

남영호 침몰 사고 당시 시신 운구 모습. 사진출처 =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현재 정방폭포 인근 산책로에 조성된 남영호 희생자 위령탑(사진 왼쪽)과 사고 당시 세워졌던 위령탑. 1970년 12월 15일 발생한 이 사고로 319명이 목숨을 잃었다. 제공=윤봉택.

세월호 이전 우리나라 최대 해난사고인 남영호 침몰 사고로 인해 319명이 목숨을 잃었다. 당시 남영호가 떠난 서귀포항에는 위령탑이 세워져 원혼을 달래기도 했지만, 위령탑은 1982년 서귀포항 도로 개설로 인해 돈내코로 옮겨졌다 2014년 정방폭포 인근에 자리 다시 자리잡는 수난을 겪었다.

윤 회장은 “임의대로 돈내코로 옮긴 위령탑이 왜 다시 서귀포항으로 돌아가지 못하는지 모르겠다”면서 “아픈 역사를 기억하고 원혼을 달래기 위해 다시 거창하게 만들 필요 없이 서귀포항으로 그대로 옮기는 것이 맞다고 본다”고 피력했다.

그러면서 “서귀포항을 기억과 문화 향유의 공간으로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서귀포시가 추진하는 문화도시 조성프로젝트인 노지문화 역시 해상 공간을 포함하는 개념이다”라고 강조했다.

문화도시를 추진함에 있어 서귀포항 펜스를 철거해 서귀포항을 문화·자연·환경을 아우르는 공간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 지역 주민 삶의 애환이 녹아있는 바다는 그야말로 문화 그 자체라고 했다.

1984년 천지연 입구 확장공사 당시 서귀포항 전경. 제공=윤봉택.
윤봉택 사단법인 한국예총서귀포지회장은 서귀포항 철제 울타리 제거 필요성을 강조하며 아름다운 서귀포항을 시민 문화공간으로 거듭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제주의소리
윤봉택 사단법인 한국예총서귀포지회장은 서귀포항 철제 울타리 제거 필요성을 강조하며 아름다운 서귀포항을 시민 문화공간으로 거듭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제주의소리

윤 회장은 “무역항 본연의 기능을 상실한 채 보안과 동떨어진 서귀포항 내항에 있는 펜스를 철거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면서 “시민, 관광객이 즐겨찾는 장소로 만들어 활기 넘치는 서귀포항을 만든다면 여수밤바다가 부러울 이유가 있나”라고 힘줘 말했다.

이어 “우리나라 최남단 도시 항구로 서귀포시의 정서를 가득 담고 있다. 시 승격 당시 중문시, 서귀시가 아닌 서귀포시가 된 것은 항구의 의미를 담은 서귀포 시민 무언의 약속이 담긴 것”이라며 “서귀포항은 시민에게 정서적 안정을 가져다줌과 동시에 이름 자체에 정서가 배어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오한숙희 사단법인 누구나 이사장 역시 “천지연 폭포서부터 자구리공원까지 이어지는 아름다운 길이 중간에서 펜스로 가로막혀 단절돼 있다”며 “서귀포항 안쪽에서 바라보는 새섬과 새연교는 특별하다. 이 아름다움을 시민과 관광객에서 개방해 더 아름다운 서귀포시를 만들자는 것”이라고 피력했다.

또 “서귀포항 안쪽서 노을과 밤바다를 구경하고 원탁을 펼쳐 신선한 해산물도 먹고 자유로이 오갈 수 있는 아름다운 어촌마을의 풍광이 펼쳐질 것”이라며 “서귀포항 가치를 재평가하고 제주도 차원서 주민 갈등이 없도록 서로가 윈윈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람들이 많이 찾게 된다면 수산물 소비도 늘어나고 관광이 활성화돼 한국의 나폴리가 되기에 충분한 곳”이라고 강조했다.

서귀포항은 1981년 여객 터미널이 준공되며 서귀포시 경제를 이끌기도 했으나 지금은 그 모습은 온데간데 없이 소량의 화물선과 어민들이 사용하는 항구로만 쓰이고 있다. 

서귀포항에 마련된 서귀포항여객터미널역시 아무도 사용하지 않아 을씨년스러운 모습으로 방치돼 있었다. 건물로 들어가는 출입구는 굳게 닫혀 있었고 녹슨 손잡이는 지나간 세월을 보여주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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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귀포항여객선터미널은 방치된 상태로 간판 도색이 벗겨지고 시설물 곳곳이 녹슬어 있는 등 을씨년스러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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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귀포항여객선터미널 출입구 손잡이엔 주인을 잃은 것 같은 편지가 꽂힌 채 녹슬어있다. ⓒ제주의소리

8년째 방치되고 있는 서귀포항여객터미널은 2012년 준공 이후 여객선 취항 실적이 한 건도 없는 등 무용지물 상태다. 천혜의 자연환경과 독특한 관광자원을 가지고 있는 서귀포항이 관광미항으로써 제 기능을 할 수 있도록 시민들을 위한 공간으로 조성해야 한다는 지적이 따르는 이유다. 

서귀포시민의 삶과 역사가 고스란히 녹아있는 서귀포항. 2009년 항만법 개정 이후 지방관리무역항으로 지정되며 서귀포항 관리권은 현재 제주도가 위임받은 상태다. 울타리 철거를 요구하는 시민들의 목소리에 제주도와 서귀포시가 얼마나 귀 기울일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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