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연합-제주의소리 공동기획] 제주도 해안사구 이야기(6) 평대리 해안사구

제주의 자연생태계 중에서 무관심과 보전의 사각지대에 오랫동안 놓여있었던 곳이 있다. 바로 해안사구이다. 해양생태계의 시작점이자 끝 지점이면서도 연안 습지로 인정받지도 못했고 그렇다고 육지로도 인정받지 못한 곳. 그야말로 중간지대에 있는 곳이라 할만하다. 그렇다 보니 제주의 해안사구는 전국에서도 가장 많이 훼손되었다. 국립생태원의 2017년도 보고서에 의하면 제주도 해안사구의 82.4%가 사라졌다는 충격적인 결과가 나왔다. 이 때문에 제주환경운동연합은 올해부터 도내 해안사구 조사를 시작했다. 조사 결과를 정리해 오는 12월까지 매월 2차례씩 총 16회에 걸쳐 도내 해안사구의 가치와 관리실태에 관한 내용을 소개한다. [편집자 주]

평대리 해안사구
▲ 제주시 구좌읍 평대리 전경

지난회에서 주민들이 협동의 방법으로 해안사구에 숲을 조성한 구좌 한동 단지모살의 이야기를 다뤘다. 이번에는 해안사구와 더 친밀한 삶을 살아온 마을의 이야기를 다뤄보려고 한다. 바로 평대리다. 

제주환경운동연합 해안사구조사팀은 이곳을 조사하면서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다른 곳과 달리 평대리라는 마을은 해안사구와 함께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해안사구 사이사이로 집들이 있었고 해안사구를 바람막이로 하고 있었다. 나지막한 알오름들이 마을 안에 있고 빈 평지마다 집들이 들어선 형국이라고나 할까? 

‘개발 아니면 보전’이라는 이분법에 갇혀서 세상을 보고 있는 우리에게는 또 다른 경험이었다. 어떻게 이럴 수 있었는지 매우 궁금했었고 주민을 직접 만날 기회를 얻게 되었다.

주민들과의 인터뷰와 현장답사를 통해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평대리 주민들과 해안사구는 긴밀한 관계가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사실을 통해서 제주도민의 삶과 경제, 보전의 갈등을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생각하는 소중한 기회가 되었다.

평대리 해안사구
▲ 평대리 사무소에서 주민들과 해안사구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 벵듸라는 뜻을 가진 평대리

평대리를 포함한 동서쪽 해안 일대, 그러니까 동쪽으로는 하도리, 서쪽으로는 한동리 해안은 지질학용어로 파호이호이용암(pahoehoe lava)이라는 용암이 넓디넓은 평원을 이루고 있는 해안이다. 

파호이호이용암은 제주에서는 빌레 용암이라고 부른다. 빌레는 ‘너럭바위’의 제주어인데 널따랗고 평평한 큰 돌을 말한다. 즉 평평한 돌을 만드는 용암이란 뜻이다. 

화산에서 분출한 파호이호이용암은 점성(끈적거림)이 매우 낮고 속도가 빨라서 지면을 넓게 덮는 특징을 갖는다. 또 천천히 냉각되는 특징이 있어서 공기와 접하는 윗부분은 냉각되면서 바위가 되지만 아래쪽에 용암은 본래의 형태를 유지한 채 물처럼 흘러가 버린다. 그러면 용암 안은 비게 되고 용암동굴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파호이호이용암은 용암동굴을 만들어내는 용암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에 용암동굴 윗부분은 광활한 바위 평원을 이룬다. 제주도는 곳곳에 파호이호이용암이 흘렀다. 그러한 곳들은 어김없이 넓은 바위 평원지대가 나타나며 아래에는 동굴이 있는 경우가 많다. 또 지면보다 낮게 파인 지형에는 용암 습지가 형성된다. 

평대리 해안사구
▲ 평대리는 벵듸, 즉 넓은 들판이라는 뜻을 가졌다. 마을 안에 드넓은 해안사구가 자리 잡고 있다. 

 

중산간지대로 흘러간 파호이호이용암은 넓디넓은 벵듸 지대를 만들어냈다. 성산읍 수산리의 수산평(수산 벵듸)가 그렇다. 오름이나 곶자왈처럼 제주어로만 존재하는 벵듸는 아직 학술적으로 정립되지는 않았지만 대개 ‘넓고 평평한 들판’을 말한다. 

벵듸란 지명은 제주에만 160곳 이상 되는데 특히 중산간 지대에 있는 벵듸는 광대한 초원지대를 유지하고 있다.

바다로 흘러간 파호이호이용암은 바다 위에 시꺼먼 바위 평원을 만들어냈다. 제주도 곳곳의 해안에 흐른 파호이호이용암으로 인해 육지부에서는 볼 수 없는 희귀한 바다 평원이 존재하는 것이다. 이렇게 제주도 곳곳에 있는 벵듸로 인해 마을 이름이 벵듸로 지어진 곳도 몇몇 있다.

특히 평대리가 그렇다. 벵듸는 한자로 평대(坪代)라고 표기한다. 마을 이름이 벵듸인 것이다. 그만큼 평대리는 해안에서부터 중산간 지대까지 넓은 평원지대를 이루고 있는 마을이다. 

세계 최대의 비자나무 군락지인 비자림도 평대리에 속해있다. 비자림도 비지곶자왈에(비지는 비자의 제주어다) 속한, 평지에 만들어진 숲이다. 

평대리 해안사구
▲ 평대리 해안사구에 올망졸망 집들이 들어서 있다.

# 해안사구와 마을의 역사를 같이해온 평대리

평대리 해안사구는 바다에서 불어오는 거센 북서풍에 의해 동남쪽 내륙 깊숙이 사구가 발달한 지역이다. 환경부는 평대 해수욕장 뒤편에 형성된 작은 면적의 해안사구만 해안사구로 인정하고 기존의 광대한 해안사구는 주택과 농경지가 있다는 이유로 해안사구에서 제외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정의이다. 비록 해안사구가  부분적으로 훼손되고 단절되었다 해도 남아있는 해안사구는 그 기능을 일정 부분 갖고 있으며 그또한 보전해야 할 곳이다. 또한, 훼손된 부분을 해안사구로 인정하지 않으면 향후 개발사업에서 유리한 지위를 갖게 되어 해안사구의 개발을 막을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평대 해안사구는 마을의 주택과 농경지로 이용되고 있다. 특이한 것은 마을의 주택들이 평대 사구에 기대어 옹기종기 모여있다는 것이다. 바람을 막아주는 언덕으로 사용한 것이다. 그래서 평대 주민들에게 해안사구는 그 어느 마을보다 친근하다. 이 해안사구를 부르는 이름들이 각별하다. 현재 평대 사구엔 올레 21길이 나 있다.

평대리 해안사구
▲ 평대리의 쉰모살. 이 사빈에서 날린 모래가 평대리 해안사구를 만들어냈다.

평대 해안사구의 모태인 평대 해수욕장을 주민들은‘쉰모살’이라고 부른다. 그 쉰모살의 모래가 바람에 날려 형성된 여러 언덕을 주민들은 저마다의 이름을 붙여주었다. 불림모살, 진모살, 복동모살, 수리앗길 등등 아기자기한 이름이 붙여져 있다. 그리고 그 사구마다 그들의 추억과 아픔이 서려 있다. 

주민이 들려준 진모살 주변에 살던,‘혹할아버지와 좀좀영감’이야기는 재미있으면서도 은근하게 애잔했다. 눈물이 고였다. 그들의 삶이 우리 선조들의 고단한 삶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 가슴 아팠던 것은 평대리의 해안사구에 얽힌 삶과 죽음에 관한 이야기였다. 병에 대한 개념이 부족했을 때 전염병은 수치였고 곧 죽음으로의 직행 티켓을 의미했다. 옛날, 마을에서 전염병에 걸린 사람이 죽었을 때 시신을 해안사구에 묻는 경우도 있었다고 전해 온다. 

아마 제주도 다른 지역에서도 이런 사례는 없으리라. 해안사구와 살아온 추억 때문이었을까? 떠나간 이를 조금이라도 더 옆에 두고 싶어서였을까? 망자를 모래언덕에 묻고 영혼은 하늘길로 떠나 보냈던 것이다. 

평대리 해안사구
▲ 해안사구를 기대어 들어선 집. 해안사구는 든든한 바람막이였다. 

 

그래서일까. 주민들은 해안사구를 건드리면 동티난다는 생각이 강했다. 그들에게 해안사구는 단순한 모래언덕이 아니라 아픔의 언덕이었기 때문이다. 이승과 저승의 경계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옆 마을들이 당근 농사를 짓는다며 해안사구를 훼손할 때도 평대리는 그렇지 않았다.

4·3 때도 그랬다. 군경토벌대를 피해 중산간의 동굴과 곶자왈로 숨어들던 다른 곳과는 달리 이곳 주민 중 일부는 산사람이 무서워 해안사구 속에 몸을 숨겼다고 한다. 밤이 되면 집 옆의 해안사구를 깊이 파고 들어가 몸을 숨겼던 것이다. 주민들 안에서만 구전으로 내려오고 아직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이기도 하다. 

또한 주민들은 해안사구를 하나의 산으로 인식했던 것 같다. 풍수지리학적으로 이 해안사구를 의지하면 안전하다는 생각이 있었다. 좌청룡 우백호라는 기본적인 풍수의 원리를 해안사구에도 적용하고 있었던 셈이다.

평대리 해안사구
▲ 평대리 주민이 해안사구 현장을 설명하고 있다. 4.3 당시에는 해안사구 모래 안을 파 피신하기도 했다고 한다.

 

해안사구를 오름이라고 부르는 주민도 있었다. 실제로 평대마을 안 해안사구에 올라서면 마을의 전경이 훤히 보인다. 중산간 사람들이 오름에서 조망을 했다면 평대리 주민들은 해안사구 위에서 그것을 했던 것이다. 

평대리 해안사구
양수남 제주환경운동연합 대안사회국장

주민들을 인터뷰해본 결과, 해안사구에 대한 보전의식이 매우 강했다. 해안사구가 없어지면 마을이 없어지는 것으로 인식을 했다. 해안사구는 평대마을 공동체 문화의 한 축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카페, 펜션 등을 하려고 들어오는 외지인들은 다르다고 했다. 이들은 주민들과 달리 해안사구에 대한 인식이 전혀 없어 이를 훼손하고 집을 짓거나 하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평대리 주민과 해안사구의 관계를 보면서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생각한다. 자연에 기대어 인간은 살 수밖에 없는 존재임에도 우리는 그 사실을 잊고 살 때가 많다. 더구나 해안사구 개발 등으로 인해 해양 침식이 제주도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심각하게 일어나고 있음을 볼 때 자연에 대한 파괴는 다시 인간에게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음을 다시 한번 확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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