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뮤지컬 ‘손 색시’

지난해 여름, 제주에선 소박한 창작 뮤지컬 한 편이 열렸다. 서울에서 볼 법 한 화려한 효과는 찾아볼 수 없고 유명 연예인이 등장하는 초호화 캐스팅도 아니었다. 다만, 귀를 사로잡는 음악들과 제주설화를 현대적인 감각으로 풀어낸 시도는, 작품의 다음 무대를 기대하게 만들었다.

뮤지컬 <손 색시>가 1년 만인 8월 5일 다시 무대에 올랐다. 작품은 김녕사굴, 배나무 배조주 딸 설화, 서복 설화를 각색한 큰 줄거리는 유지하되 눈에 띄는 변화들이 보였다. 배우 캐스팅이 3명 늘어나면서 그에 따라 역할이나 연출이 바뀌었고, 몇몇 장(場)도 생기거나 사라지는 등 구성도 달라졌다. 기존 설화에 설문대할망 이야기도 추가했다. 공연장은 초연 당시 설문대여성문화센터에서 서귀포예술의전당으로 바뀌면서 시설 부분도 조금 나아졌다. 무엇보다 가장 큰 변화는 온라인 생중계다.

이처럼 여러 변화 속에 열린 두 번째 <손 색시>는 변함없는 매력과 한 걸음 내딛은 가능성으로 관객에게 즐거움을 선사했다.

5일 온라인으로 생중계한 '손 색시'의 커튼콜 장면. ⓒ제주의소리
5일 온라인으로 생중계한 '손 색시'의 커튼콜 장면. 출처=서귀포시 유튜브. ⓒ제주의소리

병든 아버지 배조주를 살리기 위해 생명초를 찾는 딸 ‘다온’(배우 임재은)과 그를 돕는 생쥐 ‘서생원’(鼠生員, 강하나), 그리고 제주에서 벌어지는 실종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왕의 명을 받고 새로 부임한 사또 서련(허만)과 호위무사 칠성(윤동기)은 한 팀으로 용신(허순미) 일당을 상대한다. 가까스로 용신 일당을 물리친 뒤 제주도는 안정을 되찾았고, 다온·서련 남녀 주인공 역시 인연을 꽃피우며 해피엔딩으로 마무리한다.

작품은 발단 부분을 요약한 일종의 ‘프롤로그’를 새로 추가하고, 배조주나 서생원 등 몇몇 부분을 삭제했다. 돌이켜 보면 이런 분량 조절은 알맞게 군살을 덜어낸 셈이다. 또, 초연보다 3명 늘어난 총 10명의 캐스팅으로 보다 안정적인 진행을 꾀했다. 생명초를 통해 뱀에서 본래 모습으로 복귀하려는 용신은 초연만 해도 홀로 고군분투했지만, 이번에는 추가 캐스팅을 포함한 4명을 덧붙여 ‘일당’으로 몸집을 키웠다. 덕분에 양쪽 집단이 대척하는 선악 구도가 보다 명확해졌고, 생명초를 얻기 위한 마지막 대결에서도 무대가 한층 꽉 차는 역동적인 연출 역시 가능했다. 

사또 서련을 보좌했던 시종은 호위무사로 바뀌었고, 용신에 협조하면서 호시탐탐 서련을 노리는 이방 '만석'(노현) 역할을 추가하면서 갈등 구조를 더욱 다각적으로 만들었다. 호위무사를 ‘미워할 수 없는 단순무식한 성격’으로 설정하고 온라인 생중계라는 현실을 넘나드는 유머 등 웃음 코드도 놓치지 않으려 애썼다. 이런 설정들이 더해지면서 <손 색시>는 이전 보다 뮤지컬로서의 재미가 늘어났다. 초연에서 시종을 맡은 배우 노현은 이방 역에 낙점돼 변함없이 ‘약방의 감초’로서 활약했고, 서련을 연기했던 윤동기는 호위무사 칠성으로 옮겼다. 지난해에 이어 '서생원' 강하나 배우는 변함없는 안정적인 연기를 선보였고, 새로 출연한 허순미는 뱀 일당의 리더로서 강인한 카리스마를 뽐냈다. 관객의 환호성과 박수 대신, 텅 빈 객석 붉은 색 영상 카메라 불빛 만을 앞에 두고 끝까지 집중하기란 결코 쉽지 않았을 텐데, 젊은 배우들의 노력에 박수를 보낸다.

배경으로 설치한 영상 패널과 낮은 높이의 계단식 장치를 제외하면 무대는 쑥스러울 만큼 텅 비었다. 이는 여전한 제작비 문제와 무관하지 않다. 그렇기에 동선을 구현한 조명 기술과 영상 패널을 적극 활용한 연출은 조금 더 나은 무대를 고민한 김재한 연출을 포함한 제작진의 노력으로 다가온다. 

<손 색시>는 김녕사굴, 배나무 배조주 딸 설화, 서복 설화를 참고해 창작한 이야기인데, 이번에는 설문대할망 설화를 추가했다. 제주를 지배하려는 사악한 용신을 설문대할망이 물리쳤고, 남은 힘을 생명초에 담았다는 설정은 극적인 상상력이다. 설문대할망이 선택한 유일한 존재만이 생명초를 찾을 수 있다는 새로운 설정은 흥미롭지만, 다온이 왜 설문대할망에게 선택 받았는지는 충분히 관객에게 전달되지 않았다는 느낌이다. 

<손 색시>는 유튜브 기준으로 최대 1080pixels이라는 높은 해상도를 제공해 독자들을 배려했다. 그러나 화면으로 볼 때 조명에 의해 배우 얼굴이 하얗게 변하는 현상이 수시로 등장했다. 만약 현장 객석에서 지켜봤다면 전혀 문제가 아니겠지만 온라인이라는 낯선 방식을 지나기에 발생하는 문제다. 온라인 관객을 위한 책자도 보다 원활하게 제공돼야 한다. 서귀포시 홈페이지, SNS 어디를 봐도 <손 색시> 책자를 만날 수 없었다. 언론사에게 제공하는 보도자료에만 저화질 이미지 파일이 등록됐을 뿐이다. 객석이 PC, 태블릿PC, 스마트폰 등으로 바뀌는 달라진 관객 여건에 맞게 정보 접근성도 달라져야 한다. 코로나19로 인한 비대면 온라인 중계는 과도기적인 성격이기에 아직 완벽한 정답을 찾을 수 없다. 언급한 문제들 역시 비단 <손 색시> 만의 것이라기보다는 부득이하게 온라인 중계를 선택하는 모든 공연 예술에 적용된다.

김경택 서귀포관악단 수석단원이 작곡한 <손 색시> 음악은 단연 작품의 백미다. 1년 만에 다시 만나도 흥얼거리게 할 만큼 매력이 살아있다. 설렘, 단합, 결의, 간절함, 희망, 사랑, 우정 등 여러 감정을 세련된 선율로 만나는 경험은 무척 즐거운 일이다. 두 번째 무대에서는 프롤로그를 비롯해 6곡이 새로 추가됐는데, 덕분에 한층 풍성한 공연이 됐다.

<손 색시> 초연을 보며 ‘이 작품이 목표로 하는 대상은 누구이며, 목적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에 명확히 판단하지 못한 기억이 있다. 지금도 개선할 점이 많지만, 분명 여러 면에서 발전한 무대를 1년 지나 다시 마주하니, <손 색시>는 어린이부터 성인까지 모든 연령대를 만족시키는 한국적 판타지 작품으로 충분히 자리매김 할 수 있으리라 상상해 보인다. 그 바탕이 제주 고유 설화라는 사실은 가치를 더욱 높인다.

코로나19 여파와 문화 예산 삭감 광풍에서 <손 색시> 역시 공연 여부를 확실하게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주관을 맡은 서귀포예술의전당이 발벗고 나서준 덕분에 무사히 성사될 수 있었다는 후문이다. 

지난해는 제주문화예술재단, 올해는 한국문화예술회관연합회 사업으로 <손 색시>가 만들어졌다. 지원 사업 만으로 채울 수 없는 다양한 수요는 김경택 작곡가를 비롯해 제작진이 메운 것으로 알려진다. 부디 <손 색시>가 공연 콘텐츠로서 계속 발전하는 기회가 주어지길 바란다. 

김경택 작곡가는 "지난해도 작품이 무대에 오를 때까지 사연이 많았지만, 올해도 정말 배우부터 제작진 모두 가슴을 졸이며 우여곡절을 감내해야 했다. 무사히 공연을 마칠 수 있어 벅찬 감정이 든다"고 소감을 밝혔다.

제주 음악인의 손에서 탄생한, 한 번 들으면 뇌리에 남을 <손 색시>의 음악과 유쾌한 대학로 배우들의 열정을 만나보자. 기억에 남을 90분이 되리라 확신한다. <손 색시>는 8월 6일과 7일(오후 2시와 7시 30분) 서귀포시 유튜브와 페이스북에서 녹화 중계로 재송출한다.

서귀포시 유튜브 : https://www.youtube.com/channel/UCNI4WSmTUwb0a63BvU8KcWg

서귀포시 페이스북 : https://www.facebook.com/Seogwiposiche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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