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희의 노동세상](31) 노동자 두 명의 죽음 후, 발간된 책자 

지난 2018년 제주도개발공사 삼다수 공장에서 발생한 근로자 사망사고 현장에서 발견된 신발 한 쪽.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지난 2018년 제주도개발공사 삼다수 공장에서 발생한 근로자 사망사고 현장에서 발견된 신발 한 쪽.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얼마 전 제주시 도남의 정부합동청사 1층을 지나는 길이었다. 로비 한편에 고용노동부에서 발간한 안전보건 관련 책자가 전시되어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정부에서 산재 사망을 절반으로 줄이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그 일환으로서 발간했다는 책자의 제목은 ‘음료제조업 안전보건 실무길잡이’였다. 2017년 음료 제조 공장에서 사망한 현장실습생 이민호와 2018년 같은 원인이 된 사고로 사망한 삼다수 제조 공장의 30대 노동자가 떠올랐다. 제주에서 연달아 음료 제조 공장에서의 사망 사고가 발생하자 당시 노동부에서는 음료 제조업 중 ‘생수공장’을 전수조사 하기도 했다. 연이은 노동자의 죽음 이후 책자가 발간되었다는 것에 씁쓸함을 느끼면서 책장을 넘겼다.

음료 제조업은 알콜 음료와 비알콜음료 및 얼음 제조까지도 포함한다. 책자를 통해 확인한 도내의 음료 제조 업체는 생각보다 많았다. 도내의 음료 제조 업체 현황은 최근 5년간 지속적으로 증가하여 2018년 기준 971개 업소가 등록되어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는 전국 음료 제조 사업장의 4.6% 가량을 차지하는 수준으로 타 지역보다 빠르게 증가하는 추세였다. 2014년 700여 곳 수준에서 5년간 271곳이 늘어난 것이다. 추측컨대 물 산업의 개발 추진과 감귤을 비롯한 1차 산업과 연계한 음료 제조 사업의 확대가 도내 음료 제조 업체의 증가에 영향을 끼치고 있음이라 생각된다.

노동자 참여는 사업장 안전보건의 핵심

산업안전보건법은 산업 재해를 예방하고 쾌적한 작업 환경을 조성함으로써 노동자의 안전 및 보건을 유지․증진함을 목적으로 제정된 법이다. 특별히 다른 법에 규정되어 있거나 적용 예외 사업에 포함되지 않는 한 모든 산업 분야에 적용된다. 모든 산업 분야를 포괄하다보니 안전보건 기준을 정하고 있는 시행규칙의 조항은 670조가 넘고 건설업이나 위험 작업, 일반 사업장 등 별도의 지침을 만들어 시행하고 있다. 예컨대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 제80조는 ‘사업주는 지속적으로 서서 일하는 근로자가 작업 중 때때로 앉을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해당 근로자가 이용할 수 있도록 의자를 갖추어 두어야 한다’는 규정을 두고 있다. ‘사무실 공기관리지침’이라는 것도 있는데 이 지침은 사무실 공기의 미세먼지, 이산화탄소 등의 수치 기준을 고시하여 이에 따라 관리하도록 하고 있다. 

이와 같은 기준을 준수하기 위해 사업주는 사업장의 안전보건 관리 체계를 갖출 의무가 있다. 안전보건 관리 체계는 쉽게 표현하여 담당자를 정하고 정기적인 회의 체계를 갖추는 것이다. 관련법에 따라 일정 규모 이상 혹은 유해․위험 작업의 사업을 운영하는 사업주는 안전보건 관리 책임자를 선임하고 그를 보좌하고 조언하도록 전문가로 구성된 안전 관리자 혹은 보건 관리자를 두어야 한다. 또 노동자 위원과 사용자 위원이 동수로 구성된 ‘산업안전보건위원회’를 운영해야 한다. 산업안전보건위원회는 사업장의 안전과 보건에 대한 중요한 사항을 심의․의결하는 기구로 분기별 1회 이상의 회의가 진행되어야 한다. 

흔히 사업장의 안전보건 분야에서 있어서 가장 전문가는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노동자라고들 한다. 그것은 노동자에게 있어서 현장은 일상적으로 머물면서 일하는 공간이기 때문에 아주 미세한 부분까지 그 누구보다도 정확히 파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이 작업장의 위험 요소를 파악하기 위해서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노동자의 인터뷰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산업안전보건위원회는 노동자의 참여를 보장함으로써 현장에서의 위험 요소와 개선 방안을 도출할 수 있는 기구로서 작동할 수 있다. 다만, 현재에는 산업안전보건위원회를 구성하기 위해서는 최소 상시노동자 50인 이상이 되어야 하는 등 제한적으로 적용되고 있다는 한계가 있다. 또한 산업안전보건위원회가 개최되더라도 형식적인 회의에만 그친다면 애초의 기능을 하기가 어려운 경우도 있다. 

음료 제조업을 기준으로 했을 때 상시 노동자가 50명 이상인 경우에 사업주는 사업장 내에 안전보건 관리 책임자와 안전 관리자를 두어야한다. 음료 제조 사업장이 상시 노동자 100명 이상인 경우에는 산업안전보건위원회를 구성하여 운영해야 한다. 만약 앞선 상황에서 이러한 체계가 제대로 운영되었다면 현장 실습생과 노동자 사망 사고는 나지 않았을 것이다. 삼다수 사고의 경우에도 안전보건 관리 체계 하에서 기계의 오류가 보고되고, 안전 장치 미비에 대한 지적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공사 측에서 개선하지 않다가 발생한 인재였다. 

상대적으로 위험 요소가 많은 중소사업장에서는 안전보건 체계를 만드는 것도 의무 사항이 아니다. 최근 5년간 음료 제조업에서 발생한 산업 재해의 절반이 100인 미만 사업장에 집중되어 있는 것은 그 결과이다. 일정 규모 이상이 전제되어야 하는 산업안전보건위원회가 아니더라도 사업장에서 자체적으로 안전과 보건에 대하여 노동자가 직접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제도와 기회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지만 현재까지는 사각지대로서 존재하고 있다.

안전보건 체계의 확대 적용이 필요하다

최근 제주도청과 제주도교육청에서 산업안전보건위원회가 구성되어 운영을 시작했다. 도청과 교육청에서 이제야 산업안전보건위원회가 구성된 이유는 무엇일까?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에서는 교육 서비스업과 공공 행정 분야에 대해서 안전보건관리체계 규정이 적용되지 않는다. 각 급 학교와 지자체에 산업안전보건위원회가 없는 이유이다. 하지만 교육 서비스와 공공 행정 분야에서 일하는 노동자 중에 시설 관리나 환경 미화, 조리 시설 관련 등 현업 업무에 종사하는 경우에는 안전보건 조치가 필요하다는 요구가 오랫동안 있었고 올해 초 고용노동부의 고시 제정을 통해 현업 업무를 하는 노동자를 대상으로 산업안전보건위원회를 설치하고 운영할 의무를 부여했다. 작은 변화이지만 현업에 종사하는 노동자에게는 큰 변화이다. 공식적인 회의를 통해서 현장의 안전과 보건에 대하여 정기적으로 논의하는 구조를 갖추었기 때문이다. 늦은 감이 있지만 산업안전보건위원회를 통해서 현업노동자의 오랜 고충이 개선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노동자의 안전과 보건의 영역도 점차 확대되고 있다. 과거의 산업 재해가 사고 발생이 주가 되었다면 현재는 일하면서 생긴 근골격계 질환 등의 직업병, 서비스 노동자의 감정 노동, 직장 내 괴롭힘에 의한 질병 등 다양한 영역에서의 안전과 보건이 요구되고 있다. 사업주의 입장에서도 사업장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 기본적인 체계가 필요하지만 현재의 산업안전보건법은 사업주의 의무만을 강조하고 있을 뿐이다. 산업안전보건법상 안전보건 체계의 확대 적용과 함께 소규모 사업장에 적합한 제도적인 보완도 필요한 상황이다.

일터에서의 하루를 시작하면서‘나의 일터는 안전한가?’에 대한 질문으로 하루를 시작해보면 어떨까. 노동자의 참여가 일터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으니깐 말이다. 

# 김경희는?

‘평화의 섬 제주’는 일하는 노동자가 평화로울 때 가능하다고 생각하면서, 노동자의 인권과 권리보장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공인노무사이며 민주노총제주본부 법규국장으로 도민 대상 노동 상담을 하며 법률교육 및 청소년노동인권교육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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