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댁, 정지에書] (6) 가파도 개구리참외 / 김진경 베지근연구소장 제주음식연구가

밥이 보약이라 했습니다. 바람이 빚어낸 양식들로 일상의 밥상을 채워온 제주의 음식은 그야말로 보약들입니다. 제주 선인들은 화산섬 뜬 땅에서, 거친 바당에서 자연이 키워 낸 곡물과 해산물을 백록이 놀던 한라산과 설문대할망이 내린 선물로 여겼습니다. 제주에서 나고 자란 김진경 님은 제주 향토음식에 대해 공부하고 있는 젊은 연구자입니다. 격주로 '제주댁, 정지에書'를 통해 제주음식에 깃든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편집자 글]

“엄마 된장 꺼내주세요.”
“된장은 왜?”
“된장에 참외 찍어 먹으려고요.”

7살 된 딸아이가 4살이었을 때의 일이다. 밥을 먹는 딸아이 곁에서 후식으로 줄 참외를 깎고 있는데 뜬금없이 그 아이가 저 말을 꺼냈다. 아니 왜 갑자기 참외를 된장에 찍어 먹을 생각을 했냐고 물어보았더니 우리 딸, 나의 귀에 익숙한 대답을 했다.

“외할머니 집에서는 참외에 된장 찍어서 밥 먹어요.”

워킹맘인 나는 혼자 살고 계신 친정 엄마에게 딸을 종종 맡기곤 했다. 그럼 가끔 손녀딸과 모처럼 도란도란 식사를 하는 친정 엄마의 식탁에는 반찬으로 말끔히 깎은 참외가 올랐다. 물론 이 참외는 식후에 먹는 디저트는 아니다. 옆에 된장과 함께 짝꿍을 이뤄 습하고 더운 날의 여름밥상을 시원하고 개운하게 만들어 주는 '밥·반·찬'이다. 

물론 나는 알고 있었다. 

내가 초등학생일 때도, 중학생일 때도, 고등학생일 때도, 대학생일 때도 여름날 우리집 식탁에는 종종 참외와 된장이 함께 올라왔다. 하지만 그때 당시 나는 참외를 당연히 식후나 간식으로 먹는 과일(과일은 아니지만)로 생각했지 반찬으로 생각하지 않았었다. 

“진경아. 너도 한번 된장 찍어서 밥이랑 먹어봐. 진짜 맛있어.”
“음...난 별로.”

우리 가족 중 유일하게 참외를 된장에 찍어서 밥과 함께 먹는 친정 엄마의 '가파도 식 식문화'는 나에게 그다지 매력적이지 못했었다.

그런데 외할머니와 종종 함께 밥을 먹는 우리 딸은 이게 얼마나 맛있는 줄 아냐며 된장을 꺼내주기가 무섭게 그 작은 손으로 참외를 된장에 푹 찍어 밥알이 든 입 속으로 넣어 오물오물 거리더니 이렇게 말했었다.

“아 맛있어. 나는 참외 반찬이 제일 좋더라. 엄마도 먹어봐! 맛있어요!”

친정 엄마가 늘 그렇게 말했어도 시큰둥했던 큰 딸은 마흔을 바라보는 애엄마가 되었고, 본인이 낳은 딸이 먹어보라는 그 말 한 마디에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얼른 참외를 들어 된장에 찍어 입 안에 넣어보았다. 그런데 세상에, 적당히 짭조름 한 된장과 달콤하고 시원한 참외, 그리고 구수하고 따뜻한 쌀밥은 너무 잘 어울렸다. 오이에 된장을 찍어 먹는 그 수준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그 자리에서 바로 따끈한 밥 반 공기를 더 떠서 딸과 함께 참외와 된장 반찬에 밥을 말끔히 비워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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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세상에, 적당히 짭쪼롬 한 된장과 달콤하고 시원한 참외, 그리고 구수하고 따뜻한 쌀밥은 너무 잘 어울렸다. 사진은 필자가 2017년 딸과 함께 실제로 차린 개구리참외 밥상. 사진=김진경. ⓒ제주의소리

이날 이후 친정 엄마와 '참외 해프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는데 엄마는 가파도 하면 당시 정말 유명한 '개구리참외'가 있었다 해 주셨다. 물론, 그 참외는 지금 우리가 먹는 노란 참외와는 완전 다른 참외였다고 한다. 그 개구리참외를 사려고 사람들이 모슬포 항을 거쳐 가파도로 들어왔었다고. 그리고 그때 당시 가파도는 모슬포보다 더 사람들이 많이 드나들었고 어떤 동네보다 그 근방에서 가장 번화한 동네였다고 하셨다.

2014년 송악도서관에서 펴낸 《대정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라는 책에도 가파도 개구리참외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나온다. 가파도에서 태어나 좀녀(해녀) 활동을 하시다 지금은 모슬포에 살고 계신 김수열(1951년생) 어르신의 이야기에 따르면, 아마도 1970년대 즈음, 가파도가 관중(중심)이고 모슬포는 오히려 촌이라고 회고하였다. 윤복희가 미니스커트 입고 등장해 국민들에게 충격을 줬던 그 시기, 미니스커트에 하이힐을 신은 사람은 그 근방에서 가파도에서만 볼 수 있었다고 하는데, 이를 통해 그때 당시 가파도의 번화한 풍경을 상상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사람들이 가파도로 몰려들었을 시기에 맞물려 가파도에서 개구리참외를 엄청나게 많이 심기 시작했다고 한다. 어떤 경로로 가파도에 개구리참외가 들어왔는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어쨌든, 이때 이후로 제주 전역에서 이 참외를 사고 먹기 위해 가파도로 몰려들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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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송악도서관에서 펴낸 '대정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사진=김진경.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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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정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가운데 개구리참외를 설명하는 부분. 사진=김진경. ⓒ제주의소리

그리고 모슬포 오일장이 서는 날이면 가파도 사람들은 개구리참외를 한 포대 실어 등짐으로, 멜빵으로 지어, 리어카에 실어 모슬포로 가는 배를 탔다고 한다. 오일장 좌판에 개구리참외 깔고 “외삽써, 외삽써”를 외칠 부모님의 뒤를 코 흘리며 졸졸 쫓아가던 기억이 아직도 아련히 남아 있는 분들은 이미 중장년층이 되었을 것이다.

2011년도 제주 지역어 조사 보고서(가파리)의 라여옥(1939), 강죽자(1943) 어르신에 따르면 당시 개구리참외만 재배했던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금마까라고 불렸던 노랑 참외도 있었고 그 외에도 몇몇 참외를 더 재배하기는 했다고 한다. 그래도 가장 유명한 참외는 뭐니뭐니 해도 개구리참외였는데 육지에서 재배되는 개구리참외도 사다가 먹어봤지만 가파도 개구리참외보다는 그 맛이 훨씬 못한데, 그 이유는 그때 당시 땅에 모자반을 깔아 거름으로 삼았고 이 덕에 땅이 비옥해졌기 때문이란다. 그렇게 모자반 거름으로 땅이 비옥해진 덕에 가파도 보리 또한 다른 동네보다 훨씬 맛있었던 것이라고 한다.

2011년도 제주 지역어 조사 보고서 표지. 사진=김진경. ⓒ제주의소리
2011년도 제주 지역어 조사 보고서 표지. 사진=김진경.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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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도 제주 지역어 조사 보고서 가운데 개구리참외에 대한 내용. 사진=김진경. ⓒ제주의소리

이 참외는 당시 가파도 사람들의 짭짤한 수입원이었는데 그냥 먹기도 했지만 반찬으로도 먹고, 수확기가 거의 끝나갈 때 쯤, 품질이 떨어지는 참외나 알이 작은 파치는 웨지(외장아찌)로도 담아 먹기도 했다 한다. 

가파도가 외가인 나는, 학창시절 외가에 갈 때마다 배 시간에 늦을까 조바심내곤 했다. 하루 두 회만 왕복 운행했던 삼영호를 타야만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청보리를 보기 위해, 낚시를 하기 위해, 올레길을 따라 걸으며 가파도를 만끽하기 위해 가파도를 찾고 있고, 이 덕에 현재 가파도와 모슬포를 오가는 블루레이 호는 하루에 왕복 7번이나 사람들을 실어 나르고 있다. 그런데 50여년 전, 그 당시에도 하루에 몇 번이고 여러 대의 풍선이 오직 개구리참외 때문에 가파도와 모슬포를 부지런히 왕복 했다고 하니, 그 시절 가파도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들로 가득 찼던 섬일지 실로 궁금해졌다. 실제로도 약 40년전 까지 대략 5ha(5만m²)의 농지에서 30여 농가가 이 개구리참외를 재배했다 한다. 그런데, 왜 그 많던 갑자기 개구리참외가 갑자기 사라졌을까? 그 이유는 둘째치더라도, 아 정말 먹어보고 싶었다. 개구리참외의 맛이 정말 궁금했다.

다행히 내 주위엔 최근까지도 개구리참외를 집에서 재배하고 먹은 기억이 있다는, 제주음식을 정말 사랑하는 20대 친구의 값진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 친구는 본인의 엄마가 재배하셨던 개구리참외는 속을 가르면 반전처럼 노란 열매와 더욱 더 샛노란(붉어보이기까지 한) 씨앗이 있는데 열매에서는 슴슴하고 은근한 단맛이 났고 조금 억센 편이었던 씨는 씹다가 퉤퉤 뱉는 재미까지 있었던, 본인이 제일 좋아하는 엄마의 작물 중 하나라고 했다. 물론 지금 노란 참외가 훨씬 단 것은 분명하지만, 너무 달기만 한 노란 참외보다는 슴슴한 단맛이 있는 이 개구리참외에 더욱 애정이 간다는 말에는 나도 이 개구리참외를 꼭 한번 먹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리고 다행히 최근 제주에서 개구리수박을 구할 수 있다는 희소식도 들렸다.

하여튼 우리 딸은 그렇게 참외에 된장을 찍어 먹었고, 엄마인 나도 엄마를 따라서가 아닌, 딸을 따라서 참외에 된장을 찍어 밥반찬으로 즐겨 먹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이렇게 딸 덕분에 친정 엄마의 식성을 그대로 물려받게 되었다. 친정 엄마의 된장 사랑은 참외에 된장을 찍어 먹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여름이면 냉수에 된장을 풀어 물외, 청각, 양파를 썰어 시원하게 한 사발 들이키기도 하고 몸국에 된장을 풀어 끓이기도 한다. 횟감을 마련하면 초고추장이 아닌 된장 양념을 가장 먼저했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가끔씩 고등어에 된장 양념을 해 지져낸 고등어 지짐도 참 별미 중에 별미였다. 그리고 정말 희한하게도 우리 딸, 어제 밥상 위 고등어 구이를 보더니 된장을 밥에 넣어 쓱쓱 비벼 고등어 한 점 올려 밥을 맛있게 먹고 있었다. 아무도 그렇게 먹는 법을 가르쳐주지 않았는데 말이다.

“그래. 너 엄마 딸 아니고 할머니 외손녀 맞아.”

타임머신이 실제로 있다면 친정 엄마와 딸아이의 손을 잡고 청보리가 아닌 개구리참외로 가득 덮였던 50년 전 가파도의 한 여름 푸른 섬으로 떠나보고 싶다. / 김진경 베지근연구소장 제주음식연구가

ⓒ제주의소리
타임머신이 실제로 있다면 친정엄마와 딸아이의 손을 잡고 청보리가 아닌 개구리참외로 가득 덮였던 50년 전 가파도의 한여름 푸른섬으로 떠나보고 싶다. ⓒ이로이로

 

김진경은?

20대에 찾아온 성인아토피 때문에 밀가루와 인스턴트 음식을 끊고 전통음식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떡과 한과에 대한 공부를 독학으로 시작했다. 결국 중학교에서 아이들 가르치던 일도 그만두고 전통 병과점을 창업해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다.

이후 제주전통음식으로 영역을 확장해 현재 베지근연구소에서 제주음식 연구와 아카이빙, 제주로컬푸드 컨설팅, 레시피 개발과 쿠킹랩 등을 총괄기획하고 있다.

현재 제주대학교 한국학협동과정 박사과정을 밟으며 제주음식 공부에 열중이다. 두 아이를 키우고 있어 어멍의 마음으로 제주음식을 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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