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詩 한 편] (53) 양두구육/ 김연희

겉은 덩굴, 속은 창고. ⓒ김연미
겉은 덩굴, 속은 창고. ⓒ김연미

어쩌자고 기다리지 않은 너는 닥치는지
창 밖 네온불빛 온 몸을 휘감아든다
희망의 봄빛을 밀쳐낸다
어둠만이 엉겨든다

삼백예순날을 헤치고 견뎌온 끝이 여기인지
향방 없이 가고 또 가는 참이라는 수렁
볼 수도 잡을 수도 없다
그러안을 수 없다

그럴싸 달근한 언사 여린 너를 길들이고
구절양장 토해내어 만장으로 내걸어도
천칭을 손에 든 저 여인도
가리지 못한 진실

-김연희, <양두구육> 전문-

춘추시대 제나라의 영공은 아내가 남장하는 것을 좋아했다. 이게 유행이 되어 제나라 여인들이 남장을 즐겨 하였는데, 이를 탐탁하지 않게 여긴 영공이 관리들에게 명하여 이를 금지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남장 유행은 없어지지 않았다. 이에 영공이 관리에게 왜 남장하는 유행이 없어지지 않는지 물었다. 그러자 관리(안자)가 대답했다. 

“전하께서 궁궐 안에서는 남장을 묵인하면서 궁궐 밖에서는 이를 금지하시니, 이는 마치 『문에는 양의 머리를 걸어놓고 그 안에서는 개고기를 파는 것과 같습니다.』하였다. 이 말을 들은 영공이 궁궐 안에서도 여자가 남장하는 것을 금지시키자 나라 안에서 남장하는 풍습이 사라졌다. 

양두구육(羊頭狗肉)의 유래다. 겉과 속이 다름을 일컫는 말이다. 진실을 알기 위해서는 겉모습에 머물지 말고 그 속까지 들여다봐야 하는 수고로움을 감내해야 한다. 그러나 속을 들여다보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어찌할까. 속을 알 수 없으니 진실은 오리무중이다. 자칫 진실과 먼 결단을 내리기가 쉽다. 세상은 갈수록 교묘해지고 갈수록 교언영색해지고 있다. 

요즘은 유행이 없다. 모든 게 유행이고, 모든 게 유행의 범위에서 벗어난다. 방향이 없다는 것이다. 제각각의 개성을 강조하다 보니 나타난 결과일지도 모른다. 자신이 서 있는 쪽 방향이 최선이고 최고라고 하는 주장 끝에 선 혼란.

눈으로 확연히 보이는 유행조차 이럴진대, 속을 파헤쳐 봐야 겨우 보일까 말까한 진실은 어느 쪽인지 도무지 알 길이 없다. 갈수록 미화여구만 늘어가고 ‘구절양장 토해’낸 ‘만장’이 즐비하다. 

그러나 진실은 반드시 존재하는 것, ‘희망의 봄빛을 밀쳐’내며 ‘어둠만이 엉겨든다.’해도 시간이라는 물결은 한쪽 방향으로 흐르는 것. 돌아가기도 하고, 잠시 멈추어선 것처럼 보이는 순간 여지껏 혼란스럽기만 하던 것들이 일시에 한쪽 방향을 향하여 도도한 물결이 되었던 시간을 우리는 감동스럽게 기억하고 있으니 말이다.

김연미 시인은 서귀포시 표선면 토산리 출신이다. 『연인』으로 등단했고 시집 『바다 쪽으로 피는 꽃』, 산문집 <비오는 날의 오후>를 펴냈다.

젊은시조문학회, 제주작가회의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현재 오랫동안 하던 일을 그만두고 ‘글만 쓰면서 먹고 살수는 없을까’를 고민하고 있다.

<제주의소리>에서 ‘어리숙한 농부의 농사일기’ 연재를 통해 초보 농부의 일상을 감각적으로 풀어낸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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