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교육주체다] 제주 학교비정규직 와이드 인터뷰 (1)급식실 조리실무사

흔히 교육의 3주체로 ‘교사·학생·학부모’를 꼽는다. 잠시 시선을 돌려 보면 우리가 놓치고 있는 또다른 주체가 있다. 교육활동 지원을 담당하고 있는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다. 소위 ‘비교사 노동자’로 호칭되는 이들도 분명한 교육주체다. 학교라는 교육공간에서 노동의 차별은 반드시 없어져야 하고 비정규직 노동에 대한 존중도 보장되어야 한다. 경쟁과 차별을 넘어 협력과 지원이라는 새로운 교육 패러다임이 자리잡고 있는 주민자치 교육감 시대다. 독립언론 [제주의소리]가 현장 전문가의 릴레이 와이드 인터뷰로 생생한 현장의 목소리를 전한다. / 편집자 

지루한 장마가 끝나고 폭염이 시작됐다. 지구온난화로 한반도가 ‘핫’(HOT)반도라고 불린다. 학교 급식실은 ‘폭염’과 ‘조리열기’가 합해져 말 그대로 ‘핫’하다. 급식실은 여름철에 내부 온도가 40도를 넘어 50도까지도 치솟는다. 올해는 코로나19로 급식실 노동환경은 더 악화됐다. 개학연기로 인해 여름방학 일수는 줄어들었다. 

학교 급식노동자들은 아침 7시 30분에 출근해서 3시 30분 퇴근할 때까지 마스크를 쓰고 일한다. 여름철 폭염과 조리 열기가 합해져 찜통 같은 공간에서 마스크 착용은 온열질환을 높인다. 조리실무사 최은경(46.가명)씨는 “머리가 어지럽고 메스껍다”며 “온열질환자가 많이 나올 것 같아 다들 걱정하면서 일한다”고 말했다. 참고로 교육부에서 제시한 학교 급식 급식실 적정 온도는 18℃, 적정 습도는 50~70%이다. 

제주도 내 학교 급식실은 코로나19로 거리두기를 위한 식탁 칸막이 설치, 지정 좌석, 학년‧반별 시차배식 등을 시행하고 있어 배식시간이 갑절 이상 늘어났다. 코로나19 이전에는 1차 배식을 하던 학교 급식실이 코로나 이후 6차, 7차까지 배식을 하고 있다. 배식시간이 이전 1시간 내에서 2시간 30분 이상 걸리는 학교들이 다수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전국교육공무직본부 제주지부는 지난 7월 급식실 노동자를 대상으로 폭염 실태조사를 했다. 제주지역 급식실 노동자 215명이 참여한 실태조사 결과, 응답자의 96%가 배식시간이 늘어났다고 응답했다. 조리사 박성희(51.가명)씨는 “배식이 끝날 때까지 점심도 먹지 못하고, 2시간 이상 계속 서 있어야 해서 너무 괴롭다”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우리노조는 일상적인 배식이 이뤄진 작년 여름에도 제주지역 학교급식실 노동자를 508명을 대상으로 폭염실태조사를 했다. 응답자 80%가 급식실이 무척 덥고 습하다고 응답했다. 78%가 여름철 급식실 근무 중 열기로 인해 건강 이상(두통, 현기증, 구토, 쓰러짐 등)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61%가 폭염으로 건강 이상을 경험해도 쉬지 못하고 일했다고 토로했다. 

당시 ‘학교에서 실시하는 급식실 노동자 폭염대책은 무엇이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절반이 4 ‘없다’고 답했다.(49%) 다음으로 물 마시기 권유(31.4%), 휴식권유(18.2%), 가벼운 옷차림 권유(4%) 순이었다. 에어컨가동, 작업 중 10분 정도의 휴식, 냉난방환기시설 설치는 각각 고작 0.2%였다. 

제주지역 급식실 노동자 78.1%가 폭염대책으로 여름철 작업환경을 고려한 식단을 짜야 한다며 튀김, 부침 등 고열 발생 요리 자제를 가장 우선사항으로 꼽았다. 냉방 및 환기 시설 개선이 54.9%, 배치기준 개선이 30.2% 순이었다. (폭염대책 2개 선택)
 
조리실무사 김희정씨(53,가명)는 “푹푹 찌는 더위에 기름으로 튀김이나 전을 하고 있자면, 온 몸에 땀이 줄줄 흐른다. 2시간 정도 기름 앞에서 허리를 숙인 채 튀김이나 전을 하고 있다 보면 머리가 어질해지면서 정신까지 혼미해진다”고 토로했다. 

작년 여름 라디오 방송에서 한 식당 이야기를 들었다. 식당 사장이 여름철이 되면 “주방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정신건강을 위해 우리 식당은 여름철에 튀김요리를 하지 않습니다”라는 안내문을 붙힌다는 것. 

그렇다. 이미 찜통 같은 공간에서 펄펄 끓는 기름으로 튀김이나 전 요리 등 고온 조리를 한다는 것은 급식실 노동자 육체를 혹사시킬 뿐만 아니라 정신과 영혼마저 태우는 일이다. 

그동안 학교 급식실 폭염대책은 사실상 없었다. 작년에도 학교 급식실 노동자 폭염실태조사 한 결과를 가지고 교육청에 폭염대책을 세울 것을 촉구했다. 도의회에서 정책간담회를 진행하는 등 어려움을 호소했지만 교육청은 무대책으로 일관했다. 올해 급식실 노동자들은 코로나 19로 어느 때보다 힘든 여름철을 보내고 있다. 급식실 폭염대책이 그 어느 해보다 절실하다. 

제주도교육청 산업안전보건위원회가 지난 6월 30일 열렸다. 학교 급식실도 산업안전보건법 적용 대상이 되면서 올해 6월 30일 첫 회의가 진행됐다. 산업안전보건위원회는 교육청과 노동자가 노사동수로 위원회를 구성해 분기마다 회의를 열어 급식실 산업안전문제를 다룬다.  

급식실 노동자 음식물 감량기 손가락 절단 사고가 연이어 생긴 이후 열린 산업안전보건위원회였다. 고성도 오갔다. 한 번 휴회하고 며칠 후 회의를 재개하는 등 총 7시간의 위원회 회의를 진행했다. 진통 끝에 노사가 폭염대책을 세웠다.

폭염대책의 주요 내용은 △여름철 고온을 사용하는 조리방법(튀김, 전 등) 자제, 간편음식 사용 할 수 있도록 공문 발송 △ 급식실 노동자들이 잠시라도 쉴 수 있도록 대기시간 권고 공문 발송 △ 급식실에서 냉방기 추가설치 요청 시 교육청에서 적극 지원 등이다. 

산업안전보건위원회 회의가 끝난 지 1달이 훌쩍 지났다. 필자가 원고를 쓰는 오늘(8월 6일)에도 교육청은 튀김, 전 요리 자제와 대기시간 권고 공문을 학교로 발송하지 않았다. 이미 폭염은 시작됐다. 폭염대책 공문은 폭염이 시작되기 전에 학교로 보내야 하는 게 상식이다. 그래야 대책이지. 

김은리 공공운수노조 전국교육공무직본부 제주지부장은 “교육청이 산업안전보건위원회가 끝나자마자 폭염대책 공문을 시행해야 했다”며 “8월 식단이 이미 다 짜져 있고 9월 식단까지도 정해졌다. 지금에서야 여름철 고온사용 조리방법을 자제하라는 공문을 보내는 것은 별 소용이 없다”고 지적했다. 

홍정자 산업안전보건위원회 노동자대표(공공운수노조 전국교육공무직본부 제주지부 부지부장)이 8월 6일 교육청 담당 과장에게 전화를 걸어 “왜 폭염대책 공문을 시행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교육청 담당 과장은 튀김, 전 요리 자제는 ‘이번 주’에 공문을 시행하겠다고 답했다. 

이어 홍정자 노동자대표는 “급식실 노동자들이 하루 종일 잠시 쉴 여유도 없이 일하고 있다”며 “대기시간 권고 공문도 이번 주 내로 시행하라”고 요구했다. 교육청 담당 과장은 이에 대해 확답은 하지 않고 “퇴근을 조금 늦게 하더라도, 배식 후에 쉬고 일하면 되지 않느냐”라고 말했다. 

단체협약에 있는 대기시간(급식실 종사자에게 근로시간 도중 학교별 특수성에 따른 적절한 대기시간을 부여하며, 노동강도 완화와 업무상 재해 예방에 노사가 노력한다)을 급식실 노동자들이 실제로 보장받도록 각 학교에 공문을 보낼 것을 산업안전보건위원회에서 논의했고, 결정했다. 그런데 왜 공문은 시행하지 않으면서, 쉬고 일하면 되지 않느냐고 말할까.  

교육청이 산업안전보건위원회 폭염대책 결정 사항 공문을 신속히 학교에 보내지 않았다. 무슨 이유인지 그 속내를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산업안전보건위원회에서 무슨 결정을 하든 제 때 시행을 하지 않으면 별 소용이 없다. 여름철 ‘튀김’이나 ‘전’이 급식실 노동자의 육체와 영혼을 태우고 있는 게 아니라, 교육청 관계자들의 왜곡된 인식과 늦장 행정이 급식실 노동자를 ‘태움’하고 있다. (태움의 의미 1. 불이 붙어 타게 함, 2. 탈 것 따위에 몸을 실음, 3. 걱정과 고민 4. 영혼이 재가 되도록 태운다는 간호사들의 은어로써 신입 간호사에게 갑질을 하는 행위)

급식실 노동자들은 폭염 속에서 힘든 하루 노동을 마치고, 오늘도 피켓을 들러 교육청으로 간다. 피켓에는 이렇게 쓰여있다. “급식실 노동자 쓰러진다. 폭염대책 마련하라”, “급식실 노동자 골병든다. 인력충원 시행하라” / 박진현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전국교육공무직본부 제주지부 교육선전국장

글쓴이 박진현은?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전국교육공무직본부 제주지부는 학교에서 일하는 교육공무직 노동자들이 가입하는 노동조합으로 조합원 1천3백여명의 제주지역 최대노조다. 박진현 국장은 2014년 4월부터 전국교육공무직본부 제주지부에서 일했다. 민주노총 부산본부와 공공운수노조 중앙에서 일한 햇수를 합하면 20년 가까이 노동조합에서 일했다. 박진현 국장은 원래 부산 사람이다. 2013년 제주로 이주했다. 주위 사람들에게 제주로 이주하면 노동조합에서 절대로 일하지 않겠다고 떠들었지만 헛말이 됐다. 지금 제주 와서 가장 잘한 일을 뽑으라면, 교육공무직본부 제주지부에서 일한 것이다.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고, 한 해도 파업과 투쟁을 하지 않은 해가 없었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노동조합 하는 보람과 재미를 느낀다. 노동존중 평등학교를 실현하기 위해, 조합원들의 노동과 삶을 전하고자, 제주의소리에 연재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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