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왓 칼럼](13) 신강협 제주평화인권연구소왓 상임활동가

편견으로 무장한 이들이 사회적 약자들에게 여전히 반인권적 발언과 행동을 주저하지 않는 일들을 우리는 종종 목격하곤 합니다. 존재 자체로 차별받는 사회적 약자들이 있어선 안됩니다.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 이주노동자, 난민 등 대상은 다르나 일상 곳곳에서 여전히 차별이나 혐오, 폭력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독립언론 <제주의소리>가 인권문제를 다룰 '인권왓 칼럼'을 격주로 연재합니다. 제주평화인권연구소왓을 중심으로 인권활동가들의 현장 목소리를 싣습니다. [편집자 글]

“‘인권에 기반을 둔 행정’ 즉, 인권 행정이란 행정의 최고 목적을 주권자인 국민의 인권 보호·증진에 두고, 행정의 전 과정이 인권을 지향하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인권 행정은 국가가 국민을 위해 사람을 중시하는 행정,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를 중시하고 보호하는 행정이라 할 수 있다.”

- <인권행정 길라잡이 지방자치단체편>(2018), 국가인권위 발행.

매우 당연한 표현이지만, 인권이라는 화두를 가지고 많은 공무원분들을 만날 때 마다 심한 괴리감을 느끼는 정의이다. 공무원이라는 직업을 가진 분들을 보면 한편으로는 매우 괘씸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매우 애처롭기까지 하다. 이런 저런 일을 하다보면 행정기관에서 여러 가지 서류도 처리해야하고, 처리 결과에 따라 희비가 엇갈리기도 한다. 그런 과정에서 만나는 공무원들은 상대하기가 참으로 쉽지 않다. 행정의 도움을 바라는 입장에서, 혹여 공무원의 심기를 건드리게 되어 이런 저런 규정을 들이대면 참으로 난감한 입장이 되기 십상이다. 법으로 세운 규정이라고 하니, 민원인으로서 특별한 또는 경험적 전문 지식이 없는 한 공무원을 상대로 따지기도 쉽지 않다. 역으로 막무가내로 행정기관에서 민원을 처리해달라고 우겨대는 민원인을 만나면 공무원이 참으로 난감하다. 규정상 안되는 것이라고 아무리 설명해도 우이독경이다. 그리고는 대뜸 상급자를 보자고 한다. 상급기관에 신고하기도 하고, 언론에 제보하기도 한다. 이래저래 까다롭기 그지없다. 

이러한 일들이 왜 다반사로 일어날까? 

공공기관의 지원의 가능여부에 따라 한 민원인의 개인적 생계가 전부 달려있다고 생각해보면, 그 일은 단순한 행정처리 이상의 의미를 갖게 된다. 사진은 제주도청 전경.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공공기관의 지원의 가능여부에 따라 한 민원인의 개인적 생계가 전부 달려있다고 생각해보면, 그 일은 단순한 행정처리 이상의 의미를 갖게 된다. 사진은 제주도청 전경.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일단 공무원들에게는 상당한 많은 권력이 부여되어 있다. 공무원의 처분에 의해 국민 개인의 재산 소유권이 제한 될 수 있다. 또한 여러 행정적 조처를 통해 국민 개개인들에게 각종 벌금과 세금을 부여할 수도 있고, 형사법적 업무를 다루는 공무원들에 의해 개인 신상의 자유가 박탈되어 감옥에 갈 수도 있다. 공무원들은 자신들이 그러한 권한이 많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을지 모르나 행정 서류 하나로 한 개인의 일상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뉴스를 가끔 들을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공무원들의 권한은 사실상 아주 막강하다. 공무원의 권력은 국민에 대한 법적 처벌을 배경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또 역으로 공무원의 권력은 특정 개인에게 막대한 특혜를 몰아줄 수도 있다. 여러 가지 비리 문제가 그러하지 않은가? 

그러면 반대로 까다로운 민원인들은 어떻게 된 것일까? 물론 몇몇 개개인들의 이기심과 막무가내 우기기가 문제가 될 수도 있지만, 아무런 법적 배경과 처벌 권한이 없는 국민들의 입장에서는 일단 개인적으로 목소리 크게 내기, 우겨보기, 상급자에게 따져보기 등등이 가능할 것이다. 그리고 재정적인 여유가 있다면 소송도 할 것이고, 약간의 전문 지식이라도 있으면 신고라도 해볼 것이다. 하지만 법적 보호 조치가 강고한 공공 공무원들의 위치에 비해, 일반 국민들은 민원 제기의 실패는 오롯이 혼자 떠안아야한다. 결국 인권의 문제에 있어서는 국민 개개인들을 보다 더 중심적인 사항으로 더 고려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권력의 불균형점이 지속적으로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권력의 불균형은 상호간의 분란과 불공정성을 키우게 마련이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소수자에 대한 배려와 다수자 스스로의 자기 권력 감시가 필요하다. 즉 공무원들은 자신들에게 부여된 권력에 대해 보다 민감해져야 한다. 

공무원 자신의 처분에 따라 민원인의 처지가 어떻게 될 것인지 생각해보자. 공공기관의 지원의 가능여부에 따라 한 민원인의 개인적 생계가 전부 달려있다고 생각해보면, 그 일은 단순한 행정처리 이상의 의미를 갖게 된다. 그리고 종종 큰 사회적 문제로 비화되기도 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인권 행정이 빛을 발해야 한다. ‘행정’이라는 규정적이고 비인격적인 과정들 속에서 바로 사람을 중심에 놓고 행정 처리 과정을 고민해야 하는 것이다. 공무원의 권력이 작동되는 과정 속에서 사람들의 삶을 중심에 놓고 고민하지 않으면, 그 권력은 정확하게 사람들의 살을 베어내고 고통을 안겨준다. 정당하더라도 그러한 권력의 처분은 매우 냉정하며 냉혹하고 고통스럽다. 공무원들은 자신의 업무를 규정에 맞게 처리하고 싶어 하는 것 같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사람들의 삶에 대한 숙고, 즉 인권적 감수성이 없으면 공무원의 공무 행위는 사실상 마음이 없는 권력의 행사가 되고 만다. 그래서 인권 감수성에 기반을 두지 않거나 또는 인권 업무가 아닌 우리 부서의 독자적인 업무는 국민들에게 매서운 칼날이 될 수 있음을 공무원들은 깨달아야 한다.

또는 역으로 특정 개인에게 특혜가 될 수 있는 일들 허가하거나 강제함으로서 부지불식간에 피해를 입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음을 잘 둘러보아야한다. 요즘 제주 사회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동물테마파크 사업의 행정 절차 과정을 보면, 행정의 의지로 개발 사업을 관철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인권침해, 차별 행위로 인해 주민들의 고통이 상당히 심각함을 유추해 볼 수 있다. 개인의 사적 생활이 공공연하게 수집되고, 그러한 사적 정보를 근거로 개인의 성향을 분류하고 차별했다. 집단적인 주민의 의사 결정 과정은 행정 처리 과정의 미비라는 핑계로 묵살되고, 도정 책임자로부터 차별적인 배제가 수시로 발생하였다. 행정의 행위, 즉 권력의 사용이 인권적 감수성에 기반 하지 않으면 주민들이 얼마나 많이 상처받고, 공공에 대한 사회적 신뢰성이 얼마만큼 추락할 수 있는 보여주는 심각한 사례가 될 수 있다. 국가인권위의 조사가 진행되고 있지만, 그 결과에 관계없이 지금 전후의 맥락으로 보아 행정은 스스로 그 행위에 있어서 인권적 감수성과 관점을 다시 재고해야할 필요가 있다.  

공무원들의 피로도가 가장 높은 업무가 민원 업무일 것이다. 행정의 결과가 개인에게 중대한 영향을 끼치게 됨으로 모두가 다 민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민원 업무의 어려움을 개선하는 방식이 민원인의 행동 양식을 분류하는―예를 들어 악성 민원인으로 분류해서 따로 관리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또다시 민원인을 행정, 권력의 대상으로 삼는 것일 뿐이다. 이러한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자 한다면 공무원들의 인권 행정에 대한 진지한 인식이 필요하다. 자신들에게 부여된 권력을 보다 철저하게 감시함으로서 민원들이 감내해야 할 다양한 결과를 공감하고 인지하는 인권적 감수성이 필요하다. 그러한 인권적 감수성을 기반으로 행정 행위의 신중을 기한다면 지금과 같은 까다로운 민원 업무는 많이 줄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인권 행정은 국민들, 즉 민원인들만을 위한 행정의 원리가 아니다. 사람들의 삶을 중심으로 고민하는 인권 행정은 공무원들도 국민들의 존중을 받을 수 있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인권 사회의 원리도 되는 것이다. / 신강협 제주평화인권연구소왓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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