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시선] 10년 전 공유지 파괴 반복하는 2단계 영어교육도시 사업 / 김효철

소리시선’(視線) 코너는 말 그대로 독립언론 [제주의소리] 입장과 지향점을 녹여낸 칼럼란입니다. 논설위원들이 집필하는 ‘사설(社說)’ 성격의 칼럼으로 매주 수요일 정기적으로 독자들을 찾아 갑니다. 주요 현안에 따라 수요일 외에도 비정기 게재될 수 있습니다. / 편집자 글

<공유지의 비극>은 미국 생물학과 교수인 개렛 하딘이 1968년 12월 13일 사이언스지에 실은 논문이다. 그 후 공유지의 비극은 50년 넘게 경제학 뿐 아니라 생태학, 사회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수 없이 인용되면서 한 번쯤 들어 봤을 유명한 이론이 됐다.

공유지의 비극이 여러 분야에서 수없이 인용되며 유명해진 데는 우리가 사는 세상에 숱한 공유지의 비극이 벌어지고 있음을 말하는 또 다른 증명이기도 하다.

공동체가 자유롭게 양을 키우며 함께 사용하던 목초지에 누군가 욕심을 부려 더 많은 양을 놓기 시작하면 너 나 없이 개인 이득을 위해 양을 더 놓을 것이고 어느 순간 목초지는 양으로 가득차고 만다. 결국 공유지는 양을 키울 수 없는 황무지로 바뀌고 결국 공동체마저 무너진다는 얘기다.

하딘은 공유지 비극을 해결하기 위해 국가가 강력하게 통제하거나 공유지를 사유지로 만들어 개인들이 관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공유지를 사유지로 만들어 개인 소유로 관리하면 개인은 이익을 지키기 위해 적절하게 이용할 거라는 주장이다.

공유지의 비극이 주는 진짜 비극은 하딘이 제시한 국가 통제나 사유화를 통해서는 공유지의 비극이 해결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공유지의 비극은 여러 면에서 제주도 마을공동목장을 떠올리게 한다.

먼저 공유지의 비극이 과연 필연적으로 발생하는가에 대한 의문이다. 제주 마을공동목장은 고려시대 이후 국영목장을 지나 마을공동목장으로 변천사를 거치며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다. 하지만 오랜 세월 공동목장이라는 공유지로 존재해왔으나 사적 이윤추구로 공유지가 파괴되는 비극은 없었다. 오히려 공동체 운영 원리속에 자율적 합의와 관리로 공동목장을 이용해왔고 마을 공동체를 유지하는 기반이 됐다.

오히려 공유지는 사유지로 바뀐 후 파괴되는 사례를 볼 수 있다. 도내 마을공동목장 곳곳이 개발과정에서 기업들에게 팔려나가 파괴됐다. 목장 매각을 두고 조합원간 소유권 싸움도 여러 마을에서 나타나 공동체가 깨지는 상황도 봐야했다.

이제 공유지의 비극은 가장 크고 울창한 숲이자 도민들이 사용하던 공유지인 곶자왈에서 일어나고 있다. 곶자왈에 들어서는 영어교육도시가 대표 사례다.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JDC)가 서귀포시 대정읍 제주영어교육도시 2단계 사업 실시설계 용역을 올해 내에 마무리 하고 내년에는 공사에 들어가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289만여㎡에 이르는 1단계 영어교육도시 사업이 마무리된 가운데 올해부터 2023년까지 실시하는 2단계 사업은 89만㎡ 부지에 국제대학을 비롯해 주거시설, 근린생활시설과 주차장이 들어설 예정이다.

10여년전 개발에 들어간 영어교육도시는 시작부터 많은 논란을 빚었다.

영어교육도시가 들어서는 사업부지는 마을 공동목장을 포함하는 산림지대이자 곶자왈 지대다. 도너리오름에서 분출한 용암류가 만들어낸 곶자왈로 도내 곶자왈 가운데 가장 울창한 상록활엽수림이다. 개가시나무를 비롯한 멸종위기식물과 희귀식물이 서식하는데다 동굴이나 숨골, 함몰지를 포함하는 용암지대로 생태가치가 뛰어난 곶자왈 지대여서 영어교육도시는 곶자왈을 파괴하는 대표적 사업이란 비판을 받았다. 한 해 5000만원에 이르는 학비도 대다수 도민들이 감당하기 힘든 수준이어서 소수에게만 혜택이 돌아가는 귀족학교란 비판을 받기에 충분했다.

영어교육도시 개발이 안고 있는 더 큰 문제는 공기관과 지방자치단체가 주도해서 공유지를 개발하고 민간에게 매각하면서 사유화하는데 있다. 

영어교육도시는 전체 379만㎡ 부지 가운데 도유지를 비롯한 국·공유지가 57%, 사유지가 43%를 차지한다. 사유지도 대부분 마을공동목장으로 공유지이자 곶자왈이다.

제주영어교육도시 사업부지 내 지하수자원보전지구 등급별 분포 현황. 붉은 원 안의 2단계 사업부지는 모두 지하수 2등급 보전지구로 포함돼 있다. 출처=곶자왈사람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제주영어교육도시 사업부지 내 지하수자원보전지구 등급별 분포 현황. 붉은 원 안의 2단계 사업부지는 모두 지하수 2등급 보전지구로 포함돼 있다. 출처=곶자왈사람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제주도는 영어교육도시 개발을 위해 도민 자산인 도유지 208만㎡를 JDC에 무상 양여했다. JDC는 사업부지내 사유지도 3.3㎡에 2만~3만원선에 사들였다.

곶자왈을 비롯한 공유지 개발 결과는 엄청난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나타났다.

JDC가 2018년 7월 실시한 영어교육도시내 상업시설용지 공매에서 1만1115㎡ 부지가 456억9990만원에 팔렸다. 3.3㎡ 가격이 1357만원에 이른다.

영어교육도시내 대부분 토지들이 처음 사들인 가격과는 비교할 수 없는 가격에 팔려나가면서 JDC는 국가가 운영하는 부동산 개발사업자라는 비판을 들어야했다. 영어교육도시 개발사업은 수익면에서는 성공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을지 모르나 도민들에게 곶자왈 파괴와 공유지가 사유지로 바뀌는 결과를 남겼다.

공유지는 경제나 환경, 생활문화면에서 공동체를 이루는 원초적 기반이다. 곶자왈이 지키는 환경가치는 종다양성 보존을 비롯해 인류생존에 필요한 환경가치를 지켜주고 공유자원은 지속가능한 마을공동체를 이루는 터전이었다. 하지만 영어교육도시 개발로 공유지가 사유지로 바뀌고 공동체 터전으로서 기능을 잃어버린 것이다.

제주시 탑동매립에서 보듯 공유지 개발로 공동체 자산은 사유화되고 개발이익은 소수가 독점한다. 

이제 실시설계를 앞둔 2단계 영어교육도시 사업 부지도 10여년 전 개발사업과 똑같은 공유지 파괴라는 전철을 앞두고 있다. 

영어교육도시는 개발 전부터 곶자왈 파괴라는 부담을 안고 출발했다. 2단계 사업부지는 1단계 사업때보다 더 많은 보호종들이 발견되고 있다.   

지금까지 조사만으로도 멸종위기종인 개가시나무, 솔잎란, 비바리뱀, 긴꼬리딱새 뿐아니라 보호가 필요한 희귀종들인 백서향나무, 밤일엽, 섬오갈피나무도 자생한다. 

이밖에 사업초기 조사에서는 없던 새로운 식물들이 발견되고 있어 당시 환경영향평가가 사업추진에 급급해 부실했음을 말해준다. 또한 영어교육도시 개발사업후 10년 넘는 시간이 지나면서 식생이 변화한 것도 2차 사업부지가 대규모 개발사업 대상지로서 부적합하다는 지적을 낳고 있다.

영어교육도시 개발사업을 시작한지도 15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제주사회 환경 변화는 그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달라졌다.

공유지의 비극에 대한 대안 제시로 2009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엘리너 오스트롬은 정부 통제나 사유화가 아닌 공동체 관리 방법을 강조했다.

오스트롬이 여러 나라 사례에서 확인했듯이 제주도 역시 오랜 세월 공유지 관리를 공동체가 주도했음을 알 수 있다. 한라산과 곶자왈, 공동목장과 오름, 용천수처럼 제주사회 공동체를 이루는 공공자산은 오랜 세월 도민들이 협력과 합의를 거쳐 유지해왔다.

지역공동체 지속가능성과 환경보전을 위한 제주사회 구성원들의 바람도 커졌다. 이제는 JDC가 제주에서 벌어지는 공유지의 비극을 풀어갈 새로운 대안을 내놓아야하는 때다. / 김효철 (사)제주사회적경제네트워크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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