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진단-얼룩진 제주외고 공론화] ① 학부모 갈등 불씨 지핀 이석문 교육당국

제주외국어고등학교의 일반고 전환 모델을 선정하기 위한 공론화 과정이 연일 구설수에 오르내리고 있다. 학부모를 중심으로 한 학교 구성원과 교육당국 간의 갈등이 격화됐고, 급기야 법적공방까지 벌이게 됐다. 갈등 상황에 치우친 나머지 충분한 토론이 이뤄져야 할 숙의과정 역시 도매금으로 매도당하고 있다. [제주의소리]는 제주외고 전환 과정의 갈등 요인이 무엇인지 되짚고, 동지역 이전안을 제시한 설득 논리는 무엇인지, 제주외고를 존치시키려는 배경은 무엇인지 등을 총 네 차례에 걸쳐 긴급 진단한다.  [편집자]
지난 6월 17일 오전 제주외국어고등학교 일반고 전환 공론화 과정에 반대하는 제주외국어고등학교 학내 구성원들이 제주도교육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지난 6월 17일 오전 제주외국어고등학교 일반고 전환 공론화 과정에 반대하는 제주외국어고등학교 학내 구성원들이 제주도교육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제주외국어고등학교의 일반고 전환을 위한 공론화 과정이 연일 논란의 중심에 서고 있다. 법적공방까지 치닫는 등 논란은 쉬이 가시지 않을 전망이다.

발단은 외국어고, 국제고, 자율형사립고 등 특수목적고를 2025년까지 모두 일반고로 전환한다는 방침의 교육부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이 고시되면서다다. 교육부는 국내 주요 대학의 학생부종합전형(학종) 실태조사를 실시한 결과, 고교 유형별로 서열화가 확인됨에 따라 조치를 취했다고 설명했다.

제주의 갈등 사례는 이례적이다. 평균 학비가 1000만원을 웃돌던 육지부 일부 사립학교의 반발은 어느 정도 예견돼 왔다. 실제 '자사고·외고·국제고의 일괄폐지는 기본권 침해'라는 취지의 헌법소원이 제기되는 등 예상대로 시끌시끌하다.

반면, 엄연히 '공립학교'인 제주외고는 사정이 달라야 했다. 전국에 총 14개교의 공립 외국어고가 운영되고 있지만, 현재 갈등이 불거진 곳은 제주외고가 유일하다.

제주 교육당국 역시 적잖이 당황하는 눈치다. 익명의 한 관계자는 "결론을 정해둔 것도 아니고 논의를 해보자는 차원이었는데 이렇게까지 일이 커질 줄 몰랐다"고 털어놨다.

여러 요인이 있었지만, 결국 갈등의 근본적인 원인은 교육당국의 성급하고 서툰 판단 때문이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제주외고 전환보다 이전에 무게를 둔, '제보다 젯밥'에 관심을 쏟으며 갈등을 자초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타 지역과 달리 제주외고의 일반고 전환 모델은 학교 이전 문제와 결부되어 있다.

공론화 작업을 주도하는 제주교육공론화위원회는 제주외고 전환과 관련 △제주시 동(洞)지역 평준화 일반고로 전환 및 이전 재배치 △현재의 위치에서 읍면 비평준화 일반고로 전환 등 선택지를 2개안으로 추렸다.

도교육청은 의제 설정이 민간 차원으로 구성된 교육공론화위가 판단한 것이라며 거리를 두고 있지만, 제주외고의 동지역 이전 가능성을 최초 시사한 이는 지난해 11월21일 제주도의회 교육행정질문에 출석한 이석문 제주도교육감이었다.

약 한 달 후인 같은해 12월24일 제주도교육청 홈페이지 도민청원란에는 '제주외고 동지역으로'라는 제목의 청원글이 올라왔고, 약 보름 만에 의제 선정 최소 요건인 500명을 채웠다. 500명을 넘어서자 청원인 수도 그대로 멈췄다.

그 후 다시 한 달 후인 올해 1월20일 교육공론화위는 해당 청원을 공론화 의제로 상정했다. 일련의 과정이 작위적이라는 의혹이 나오는 배경이다.

지난 7일 제주외고 학부모회 등과 간담회를 갖고 있는 이석문 제주도교육감. 이날 간담회는 제주외고 전환 갈등이 불거진 지 반 년이 넘어서야 성사됐다. ⓒ제주의소리
지난 7일 제주외고 학부모회 등과 간담회를 갖고 있는 이석문 제주도교육감. 이날 간담회는 제주외고 전환 갈등이 불거진 지 반 년이 넘어서야 성사됐다. ⓒ제주의소리

교육당국의 의도를 넘겨짚을 만한 또 다른 배경은 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교육감은 지난 2015년에도 제주외고를 일반고로 전환하려다 재학생·학부모·동문 등의 반발을 산 바 있다.

당시 도교육청은 고교체제 개편 필요성을 강조하며 평준화지역 일반고로 전환하는 구체적인 안까지 검토했지만, 군불만 지피다 아무런 성과도 얻지 못했다.

5년 만에 재현된 이번 제주외고 일반고 전환 논의가 이전과 단순 비교하기는 어렵다. 정부 정책의 변화에 따른 당위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그러나, 제주외고 구성원들은 여전히 교육감의 '의도'를 의심하고 있다.

조례 위반 논란 역시 해결해야 할 숙제다. 교육공론화위가 의제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근거가 된 '제주특별자치도 교육행정 참여를 통한 숙의민주주의 실현 조례'를 어겼다는 점이다.

해당 조례에 따르면 공론화의 청구는 제주도에 주소를 두고 있는 도민 500명 이상이 연서해 청구인 대표가 신청하거나, 온라인 청원인 수가 500명 이상일 경우 가능하다.

문제는 온라인 청원에 참여하는 과정에서 참여인이 제주도민인지 구분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학부모들은 '교육공론화 의제 공론화진행금지가처분 신청'을 법원에 제출한 상태다.

되돌아보면 제주외고 전환 문제는 학내 구성원과의 충분한 논의를 거치는 등 과정이 매끄러웠다면 논란이 커질 일도 아니었다. "뉴스를 보고서야 일반고 전환 계획을 알게됐다"는 학부모들의 항변은 성급하고 서툰 행정의 단면을 보여준다.

현재의 위치에서 제주외고의 특성을 살리는 대안 못지 않게 동지역으로 이전하는 대안 역시 충분한 설득 논리를 갖추고 있다. 이에 대해 도민사회의 판단을 묻고 결정하겠다는 교육당국의 판단도 틀렸다고 보긴 어렵다.

결과적으로 진행 과정이 매끄럽지 못하면서 동지역 이전 대안 역시 도매금으로 폄하되고 있는 모습이다.

중심을 잡아야 할 교육당국은 최초 의제를 던진 후 민간 차원의 교육공론화위원회에 책임을 넘기고 거리두기에 열중하고 있다.

오히려 모범적인 사례가 될 수 있었던 숙의민주주의 과정이 첫 발을 떼기 전부터 얼룩지고 있다. / ②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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