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과 화해하고 싶어요”...할머니를 그리는 낙선작가의 책방
“고향과 화해하고 싶어요”...할머니를 그리는 낙선작가의 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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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봉선의 마을 책방을 찾아書](2) 제주시 애월읍 몽캐는 책고팡

화분에 꽃을 키워본 사람은 알 것이다, 덩그러니 하나의 화분에 꽃을 키우는 것보다 여럿이 어우러져 있을 때 꽃이 훨씬 더 잘 자란다는 사실을. 하가리 연화못에서 동남쪽 200m 위치에 또 하나의 마을 책방이 생겼다. 얼핏, 시골에 책방이 하나 더 생기면 ‘힘들겠다.’라는 생각도 들 것이다. 하지만 화분이 여럿일 때 꽃이 더 잘 자라듯, 책방 또한 어우러져 있을 때 더 활기 띠지 않을까. 주제넘은 서점의 김용숙 씨가 발 벗고 돕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장마의 끄트머리를 따라가는 길, 1억 5000만 킬로미터 저 멀리서 퍼붓는 태양의 열기는 뜨거워도 너무 뜨거웠다. 정수리를 책으로 가리며 찾아간 곳은 향수를 불러오기 충분한 골목과 마당, 집 안까지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슬레이트 지붕이었다. 자신의 창작 연구소인 이곳에서, 작가의 꿈을 키우며 책방을 오픈한 책방지기이자 낙선작가 임현정 씨를 만나보았다.

ⓒ제주의소리
장마의 끄트머리에서 뜨거운 태양을 즐기는 연화못 구름. ⓒ제주의소리

“‘몽캐는 책고팡’이 무슨 뜻이냐고요?”
‘몽캐는’, 제주가 고향이라면 얼핏 ‘꾸물거림’을 떠올릴 것이고, 모르는 사람은 ‘꿈[夢]을 캐는’ 쯤으로 생각할 것이다. ‘책고팡’ 또한 ‘책을 보관하는 곳’, 혹은 ‘책이 고파서.’ 정도로 여길 수도 있다. 하지만 여기 ‘고팡’엔 파고들다, 고프다, 보관하다 등 움직씨 외에도 꿈, 연구 등 이름씨의 의미까지 고루 들어 있다.

박사 과정 중 자퇴 위기에 놓인 책방지기 임현정 씨, 세운 무릎 위로 턱을 괴고 두 팔은 무릎을 껴안았다. 그리고는 잠든 아기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천사가 따로 없다. 휙, 휙, 수많은 생각이 뇌리를 스쳐간다. 참으로 급하게만 달렸다. 오른손을 뻗으며 아기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엄마, 쉬면서 가요.’ 아기가 입술을 실룩이며 말하는 것 같다. 그래, 느릿느릿 그야말로 몽캐면서 육아 겸 독서 겸, 게다가 독립할 기회로 만들자. 낙선작가 임현정 씨는 가슴에 얹힌 응어리를 훌훌 털어냈다. 

책방지기가 자랄 당시만 해도 제주에선 서울로 가는 게 출세라는 의식이 팽배했다. 책방지기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렇다고 제주에 관심이 없다는 뜻이 아니다. 임현정 씨에겐, 제주를 세계에 알리고 싶다는 꿈이 있었다. 

IMF의 소용돌이 속에서, 대학은 서울로 가되 국립이어야만 한다고 부모님께서 못을 박았다. 서울의 국립대학을 뒤져보아도 원하는 관련학과는 없었다. 하고 싶은 일이 우선이었던 임현정 씨는, 제주대학교 관광경영학과로 방향을 틀었다. 그리고 재학 중 중국어 관광통역안내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관광공사에서 교육도 받았다. 종국엔 관광, 언어, 철학, 사투리 등의 변화나 문화는 하나로 연결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 깨달음을 얻은 후, 임현정 씨는 늘 책이 고팠다. 그 ‘책 고픔’을 채우면서 꿈을 캐고 동네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는 곳, 드디어 ‘몽캐는 책고팡’을 오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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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 앞에 세워진 입간판. ⓒ제주의소리

“하필 왜 책방이냐고요?”
책방지기이자 낙선작가인 임현정 씨 꿈은, 상식이 통하는 세상을 만드는데 일조하는 작가가 되는 것이다. 통역사로 일하며 수도 없이 중국어를 입에서 굴렸다. 당연히 글이란 도구도 자유자재로 굴릴 수 있어야 했다. 책 또한 필수 조건이었다. 

임현정 씨는 몇몇 대기업뿐만 아니라, 제주도청에서도 중국 대사관과 영사관을 상대하면서 통역했다. 하지만 아이를 낳으면서, 게다가 계약직이라서, 상황은 본인이 생각하는 상식을 벗어났다. 임신 중에 퇴직하고, 분노도 삭일 겸 무조건 호주로 날아갔다. 분노의 눈물을 태평양에 떨구며 호주로 가는 동안, 어릴 적 모습이 떠올랐다. 쥐와 함께 살며, 굴묵 지든(땐 굴뚝) 방에서 고구마를 구워 먹던 시절이 그리웠다. 피 토하듯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그래도 시절을 공유했던 형제가 있어 힘이 났다. 그런 형제들을 낳아주신 부모님이 감사했다. 

호주에서는 베이징이나 서울에서처럼 월세 때문에 전전긍긍하던 무게를 내려놓았다. 모처럼 호사를 누렸다. 그리고 그곳에서, 독립출판 연구소를 잉태했다. 이제 비로소 안식처를 찾았다. 정적인 활동을 하면서,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돌아올 땐 버선발로 맞이할 수 있다는 사실이 더없이 좋았다. 

책방지기 임현정 씨는 중문학 전공에 언어학과 통역, 문학번역도 공부했다. 이를 바탕으로 기술번역과 함께 몇몇 기업에서 동시통역도 했다. 이렇게 활동하면서 독립출판과 작가의 꿈을 키우자니, 바쁠 수밖에 없었다. 주위에선 하나만 파라고 했다. 그러나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다. 한 번뿐인 생, 두루 즐길 수 있다면 꼭대기에 오르지 못해도 괜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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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캐는 책고팡 시작 책’ 알림판. ⓒ제주의소리

“‘8월 시작 책’은 무엇이냐고요?”
‘몽캐는 책고팡’의 시작은 제주 작가⸱번역가 3춘 책으로 테잎을 끊었다. 작가 3춘은 ,김윤화의 ‘킁킁 가게’ 현기영의 ‘순이 삼촌’, 그리고 또 한 명은 다름 아닌 낙선작가 본인이다. 번역가 3춘은 영어엔 김석희의 ‘꽃들에게 희망을’, 중국어는 유소영의 ‘9천 반의 아이들’, 일본어는 이상희의 ‘자매 인형의 세계 여행’이다. 제주의 옛 모습을 간직한 집에서, 제주 3춘 작가⸱번역가와 함께하는 책방지기만의 의식을 엿볼 수 있었다. 

8월의 시작 책 중 맨 먼저 ‘킁킁 가게’를 선정한 이유는 할머니가 그리워서다. 어머니는 항상 바쁘셨다. 그래서 임현정 씨에겐 할머니가 든든한 기둥이었다. 결혼하여 아이를 낳고, 할머니를 향한 애착은 더 심해졌다. 못 견디게 할머니가 그리울 땐 킁킁, 구석구석 코를 벌름거리며 할머니 냄새를 찾아다녔다. 그 옛날 쥐 오줌 냄새까지 나는 듯했지만, 할머니의 ‘왕내’는 맡을 수 없었다. 그런 날은 괜히 우울해졌다. ‘꽃들에게 희망을’ 역시 앞에 세운 이유가 있다. 이 책은 고교 시절 중앙로에 있는 탐라도서에 드나들며 몇 번 읽었다. 구매도 않고 그냥 읽은 것이다. 이번을 계기로, 그때 진 빚을 갚고 싶었다. 

책방지기 임현정 씨는 십여 년을 타지에서 생활하였다. 제주 문학인에 대한 이해가 아직은 부족하다는 뜻이다. 그래서 ‘몽캐는 책고팡 시작 책’은 애월읍민과 그 외 지인들로부터 추천받았다. 책식주의 도서를 구매한 고객에겐 개방 시간에 한하여 장소도 제공한다. 책도 구매하고 제주의 옛집 향취도 누리고, 굳이 여행객이 아니라도 충분히 호사스러운 경험이 될 것 같았다. 9월이 되면 어떤 책을 판매할지 당장은 목록이 정해지지 않았다. 아직은 책방지기 마음대로라며 하얀 이를 드러낸다. 책방지기의 충만한 자존감이 매력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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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캐는 책고팡 난간. 난간 너머로 마루가 보인다. ⓒ제주의소리

“찻집이 더 어울릴 거 같다고요?”
주위에서는 왕왕, 제주 옛 모습이 보존된 집과 어울리게 전통찻집을 하라고 했다. 여기에서 책방지기는, 찻집이 아니라 책방인 이유를 세 가지 들었다. 원초적인 이유는 설거지다. 자취할 때도 설거지가 가장 문제였다. 집에서도 못 하는 설거지, 자신 없다. 다음으로는 옛집을 보존하고 싶다. 음식이 있는 곳엔 자칫 벌레가 꼬일 수 있다. 쥐도 드나들며 집을 갉아댈 것이다. 책방 앞에 카페가 있으니, 차를 마시고 싶을 땐 텀블러를 이용하면 된다. 세 번째는 친환경 추구다. 카드 결제도 종이를 사용하지 않을 것이다. 책을 팔더라도 비닐봉지 또한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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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캐는 책고팡 동녘 구들에 진열된 언어학 서적. ⓒ제주의소리

“이 집엔 제라진(진정한) 할머니의 스토리가 있어요.”
원래 이곳은 책방지기 임현정 씨의 작은할머니 신혼집이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결혼하고 일본으로 갔다. 그 후 할머니는 돌아왔으나, 할아버지는 태평양전쟁이 발발하면서 돌아오지 못했다. 할머니는 여기서 자식을 키우고, 할아버지는 일본에서 새 가정을 꾸렸다. 할머니는 재가도 않고, 그 시대 여성상의 표본으로 살았다. 두 분은 한일회담이 끝난 후에야 재회했다. 어쨌든 같이 살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임현정 씨는 재학 중에도 방학 땐 제주도 홍보 가이드로 활동했다. 해보니, 나이가 들어서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가이드는 밀쳐두고, 졸업하면서 곧바로 서울로 갔다. 몇 군데 굵직한 대기업에 원서를 넣었다. 최종 면접에서 떨어졌다. 대학을 마치면 부모님의 지원은 끝이라는 게 불문율이다. 월세라도 벌어야 했다. 무역회사에서 일하다가 통역대학원에 들어갔다. 그러나 얼마 다니지 못하고 휴학했다. 학비는 학자금 대출로 충당하더라도, 월세와 생활비를 마련하기가 버거웠던 까닭이다. 휴학 중 홍보 가이드로 일하며 소설 창작도 공부했다. 어렵사리 대학원 졸업 후, SK 차이나에 취직하며 베이징에서 일하게 되었다.

2013년, 부동산값이 하늘 높은 줄 모르게 치솟을 때였다. 아버지가 쓰러지셨다. 가까이 있어야만 할 것 같았다. 임현정 씨는 3년이란 베이징 창안제[長安街]에서의 직장생활을 못다 핀 꿈으로 남겨둔 채 돌아왔다. 십여 년 만의 귀향, 고향의 월세는 너무 비쌌다. 차라리 그리움이 깃든 할머니의 집을 고쳐서 살기로 했다. 

인연이랄지 운명이랄지, 할머니 집을 고치려고 할 때 소개팅이 있었다. 공교롭게도 소개팅 남(男)은 건축기사인 읍내 오빠였다. 박사학위만 따면, 통역사로 전 세계를 누비리라는 임현정 씨에게 소개팅 남이 슬며시 손을 내밀었다. 인연이 닿았는지, 소개팅 남이 할머니 집을 수리하게 되었다. 그리고 결혼에 골인했다. 할머니가 손녀딸 터전을 마련해주고, 결혼도 시켜준 셈이었다. 

“책이 너무 적다고요?”
책방에 들어서는 순간 누군가는, “에게!” 하고 실망할 수도 있다. 하지만 책방지기는 욕심부리지 않는다. 감당할 만큼만 하겠다는 것이다. 

 작가를 꿈꾸던 임현정 씨는, 4⸱3을 주제로 한 소설 ‘왼갱이 아빠’로 신춘문예에 응모했다. 하지만 보기 좋게 낙선했다. 낙선하는 순간, 마흔에는 책을 한 권 내겠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벌써 마흔 하나, 두 딸의 엄마가 되었다. 현재 방송통신대학교 국어국문화과 재학 중인 임현정 씨는, 시화전 때 전시했던 ‘딱 열 걸음’이란 작품을 제주 작가 3춘의 일인으로서 책방에 걸어 놓았다. 4⸱3 평화문학상에서 낙선된 작품도 바꿔가며 걸어놓을 예정이다. 그렇게 문학에 대한 이해를 높여가며, 작가가 되리라는 꿈을 놓지 않는다.

이렇게 엄마가 되는 사이, 문학을 순우리말인 글꽃으로 바꿔보자는 시도가 있었다. 이때 낙선작가 임현정 씨는 독립출판을 염두에 두고 ‘글꽃 창작소’를 마련했다. 글꽃 창작소와 함께하는 이곳에선 문학을 중심으로 판매하고, 언어학이나 전공 책은 공유할 것이다. 필요에 따라 마련된 책고팡에서 원서를 읽으며 판매도 할 예정이다. 

ⓒ제주의소리
몽캐는 책고팡 벽에 걸린 낙선작가의 시화와 드라이플라워. 책방지기 임현정 씨에겐 4.3평화상에 응모했던 작품 등 시화가 여런 있다. 그 시화를 주기적으로 바꾸면서 걸어 놓을 예정이다. ⓒ제주의소리

“판매 전략요?”
판매도서 목록은, 이미 밝혔다시피 지인들이나 읍민들한테 추천받았다. SNS가 발달한 시대인지라 별 어려움은 없었다. 추천받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홍보 효과도 누릴 수 있었다. 

책방지기 임현정 씨는, 이윤을 추구하기보다 독립출판사와 함께 ’같이의 가치‘를 찾고자 한다. 독립출판에 대한 스킬을 익히면 자연스레 수입도 따르리라 믿는다. 꼭대기를 바라보는 게 아니라 남편의 카드를 쓰지 않는 것, 그게 곧 책방지기로서는 독립인 셈이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낸 뒤 임현정 씨는 버스로 출근한다. 출근 후 책고팡에 묻혀 있다가 점심땐 어머니도 도와드린다. 맞은편에서 어머니가 식당을 운영하기 때문이다. 자신만의 공간에서 엄마로, 딸로, 직장인으로 사는 것이다. 비록 아이가 어리다 해도, 당분간은 경제에 쪼들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도 자신을 뒤받쳐 줄 남편이 있어 든든하다. 누군가를 도울 재능이 있다는 사실이 그저 기쁠 뿐이다. 조냥 정신과 수눌음 정신으로 버티며, 점차 인스타 마케팅 전략을 내세울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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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캐는 책고팡 내부에 진열된 도서. 여기엔 8월 시작 책으로 제주 작가와 번역가 삼촌의 책이 진열되어 있다. 채 오픈이 안 된 시간이지만, 축하하기 위해 놀러온 이웃이 여담을 나누며 책을 고르고 있다. 앞에서 옆모습을 보이는 사람이 낙선작가 임현정 씨다. ⓒ제주의소리

“수익 모델요?”
 책방지기는 수익 모델을 판매에만 한정하지 않는다. 또 다른 수익 모델은 인재를 모으는 것이다. 그들과 공부하며 글꽃을 피우고, 편집에 이어 출판을 계획하고 있다. 중국어 통⸱번역을 원하는 사람도 모을 생각이다. 통‧번역은 중국어뿐만 아니라 영어, 불어까지 확장할 수 있다. 물론 번역은 표현에 있어 논쟁이 있을 수 있다. 누가 번역하더라도 문학작품은 논쟁이 있기 마련이다. 철학이 비슷한 친구들과 번역 후 비교하고 출판하여, 이 또한 수익 모델로 삼을 예정이다. 번역을 보면 언어의 사고가 보인다. 그런데 한국어가 변하며 사고도 변하고 있다. 할 수 없다. 하지만 보존되어야 할 것조차 변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이 사실이 안타깝다고 책방지기는 말한다.

뭐니 뭐니 해도 임현정 씨의 궁극적인 꿈은 작가다. 정의를 추구하는 작가가 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해야만 할 일이다. 일제강점기나 4⸱3, 전쟁을 겪은 세대만큼은 아니지만, 누구에게나 어느 시대에나 아픔은 있다. 할머니의 삶, 여성의 삶, 경단녀의 굴곡에서 오는 경험도 절로 얻는 게 아니다. 희생이 필요하다. 취직이나 성장 등에서도 마찬가지다. 다만 깨닫지 못할 뿐이다. 

임현정 씨 경험에 따르면, 깊이를 바라보는 데는 한계가 있지만 통⸱번역사가 세상을 관찰하기엔 더없이 좋은 직업이다. 책방지기 임현정 씨는 경험의 중요성을, 중국 북송의 문인 소철의 말로 대신하였다. 소철은 훌륭한 문장가가 되고자 묻는 선비에게 ‘독만권서(讀萬卷書), 행만리로(行萬里路)’, 즉 ‘만 권의 책을 읽고 만 리를 여행하라.’고 대답했다는 것이다. 책방지기 역시 소철의 인용에 따르다 보면 궁극적인 꿈을 이룰 수 있을 거라는 말이다. 

“고향과 화해하고 싶어요”
하고 싶은 일, 이와 관련된 소자본 창업을 생각하며 책방지기는 여기까지 이르렀다. 다음은 ‘고향과 화해하기’이다. 서울이 낫다며 무시하고 떠난 고향, 생각할수록 부끄럽고 미안하다. 더군다나 제주를 떠나 있으면서 사투리를 쓰지 않다 보니, 어머니랑 대화할 때도 못 알아듣는 경우가 있다. 이제 사투리 사용을 일상화하면서, 이웃과의 거리에 디딤돌을 놓을 것이다. 코로나19로 혼란한 이때, 책방지기는 필요한 사람들에게 중국어와 한국어 강의도 재능기부할 생각이다. 이번 우한코로나 공익광고 역시 재능기부로 번역했다. 끊임없는 화해를 시도하면서, 때가 되면 제주에 와서 정착한 사람들의 이야기 “어떵 허연 제주도에 왓수가?”를 집필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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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캐는 책고팡 시작 책이 진열된 내부. ⓒ제주의소리

“스터디 계획요?”
‘몽캐는 책고팡’을 찾아가는 길은 제주시 애월읍 고하상로 125-1, 8월은 월요일 휴무이다. 화~일요일은 오후 2시부터 6시까지 개방하며, 일주일 중 하루는 ‘주경야독’도 운영할 예정이다. 다음은 ‘몽캐는 책고팡’에서 운영 중인 스터디로, 시범 후 조정할 예정이다. 

1. 쓰고팡(글쓰기 모임) : 독립출판을 목표로 글 쓰실 분, 화요일 10시~12시 격주 월 2회
2. 옮기고팡(통번역) : 수요일 10~12시 격주 월 2회
3. 중국어고팡 : 중국어 문학작품 원서 읽기, 목요일 10시~12시, 격주 월 2회
4. 한국어고팡 : 외국인을 위한 한국어 강의 재능기부, 금요일 10시~12시, 격주 월 2회
5. 파고팡(연구) : 언어학, 국어학, 방언학 스터디, 화요일 10시~12시 격주 월 2회
6. 함께하는 길 : 인스타 @bookgopang_jeju
7. 문의 : 064-901-0879

낙선작가 임현정 씨는 2013년도부터 제주도 연극단체 ‘오이’에서 활동하고 있다. 희곡을 쓰면 이곳에서 읽어주고 연극화할 수도 있다. 제주도청에 있을 때, 청렴연극동아리 멤버로 지내면서 시나리오도 두 편 썼다. 

책방지기의 통⸱번역 동기나 선⸱후배들 중에는 더러 웹소설을 번역하는 이가 있다. 이들의 글을 읽어보면, 어릴 적 환경이나 사고가 번역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무협지를 보며 자란 중국인의 세계관은, 설문대할망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란 우리와 아주 다르다. 그런데 무협을 소재로 다룬 웹소설이 적잖은 독자층을 형성하고 있다. 중국에서만이 아니라 한국 판권에서도 활발하다. 정신 차리고 남의 문화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살펴야 한다. 그래야 경쟁력⸱생존력을 보장할 수 있다. 이렇게 말하는 책방지기의 안목이 심상치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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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가 사용하던 그 모습 그대로 남아 있는 몽캐는 책고팡의 부엌. 실제로 불을 지피고 땔 수 있다. ⓒ제주의소리

무쇠솥 넷이 나란히 부뚜막에 앉아 있다. 그을음 냄새까지 고스란히 묻어나는 부엌은 할머니를 향한 그리움을 더더욱 짙게 한다. 가만히 부뚜막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아궁이 앞에 앉아 있던 할머니가 부지깽이를 짚고 느릿, 일어서는 모습이 보이는 듯하다.

“아이고, 내 새끼 오란디야?”
책방지기가 그리워하는 할머니 목소리가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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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몽캐는 책고팡 부엌 앞. 담장에 핀 시계꽃. ⓒ제주의소리

‘몽캐는 책고팡’ 부엌 앞 담장에 시계꽃이 만발하였다. 예전엔 담쟁이로 뒤덮였던 담장이다. 책방지기가 고향을 떠난 후, 할머니와 함께 담쟁이도 떠났다. 떠난 할머니는 손녀딸이 그리웠는지, 이번엔 시계꽃으로 왔다. 그리고 또 얼마나 손녀딸을 기다렸을까? 그리운 할머니의 시간이 꽃으로 대체된 것처럼 여겨지는 것은 또 무슨 까닭일까? 부디 고향과 화해하고, 할머니를 그리는 낙선작가의 꿈이 실현되기를 바랄 뿐이다.

고봉선은?

제주시 애월읍 고성리에서 농부의 딸로 태어나 식물과 함께 자랐다. 지금은 허름한 고향 시골집에서 꽃과 함께, 독서지도사를 하며 아이들과 지내고 있다. 한국해양아동문화연구소 운영위원, 애월문학회 회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독립언론 [제주의소리]에서 [고봉선의 마을 책방을 찾아書]를 통해 격주로 독자들을 만난다. 마을 책방에 깃든 사람과 책 이야기가 소개된다.

저서로는 시집 ‘詩를 먹고 자라는 식물원’, 꽃과 함께 사는 이야기 ‘詩가 사는 기행식물원1, 2, 3, 4’, 동화집 ‘지우개’가 있다. 식물원 시리즈로 전자도서관에 식물원을 꾸미는 게 소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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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2020-09-03 18:04:39
제주를 대표하는 책방으로로 남았으면 좋겠습니다.
39.***.***.85

지나가다 2020-08-21 18:16:00
글을 찾아 읽게되는 마력이 있습니다.
너무 감동의 글 잘 읽었어요..
여기도 꼭 가볼게요...
59.***.***.232

할머니사랑 2020-08-20 07:11:15
할머니를 그리는 마음이 곱네요
39.***.***.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