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연합-제주의소리 공동기획] 제주도 해안사구 이야기(7) 소형사구가 돼버린 김녕사구

제주의 자연생태계 중에서 무관심과 보전의 사각지대에 오랫동안 놓여있었던 곳이 있다. 바로 해안사구이다. 해양생태계의 시작점이자 끝 지점이면서도 연안 습지로 인정받지도 못했고 그렇다고 육지로도 인정받지 못한 곳. 그야말로 중간지대에 있는 곳이라 할만하다. 그렇다 보니 제주의 해안사구는 전국에서도 가장 많이 훼손되었다. 국립생태원의 2017년도 보고서에 의하면 제주도 해안사구의 82.4%가 사라졌다는 충격적인 결과가 나왔다. 이 때문에 제주환경운동연합은 올해부터 도내 해안사구 조사를 시작했다. 조사 결과를 정리해 오는 12월까지 매월 2차례씩 총 16회에 걸쳐 도내 해안사구의 가치와 관리실태에 관한 내용을 소개한다. [편집자 주]

전국적으로 해안사구는 수난의 대상이다. 수많은 사구가 개발로 인해 훼손되었고 그중에서도 제주도는 전국에서도 해안사구 훼손률이 제일 높다.

환경부는 5년마다 전국적으로 해안사구 조사를 진행하고 있는데 2016년 연구결과에 의하면 제주도 해안사구의 80% 이상이 사라졌다. 그중에서도 김녕 해안사구는 상징적이다.

김녕 해안사구는 환경부가 전국 최대규모의 해안사구로 분류했던 사구이다. 그런데 그동안 온갖 개발로 인해 지금은 소형 사구로 분류하고 있다. 현재 1위 자리는 천연기념물로 보호받고 있는 충남 태안의 신두리 사구이다. 그만큼 김녕 해안사구는 크게 훼손된 상태이다.

#빌레용암 위에 생긴 마을, 김녕리

김녕리는 신석기시대인 선사시대부터 이어져 온 오래된 마을이다. 선사시대부터 마을이 형성되었던 이유를 자연환경적 관점에서 바라보면 해산물을 얻을 수 있는 해안가라는 이점과 함께 김녕리에 산재한 수많은 용암동굴과 용천수 그리고 선흘곶자왈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이처럼 김녕리는 사람이 살 수 있는 최적의 자연환경을 갖춘 마을이었다. 물을 마시고 싶으면 용천수를 찾으면 됐고 잠자리는 동굴에서 해결하면 되었고 집을 짓거나 연장을 만들 나무가 필요하면 선흘곶자왈에서 구하면 되었기 때문이다. 김녕리가 이러한 풍부한 자연환경을 갖게 된 모태는 바로 거문오름이다.

김녕 해안사구
▲ 거문오름(주황색 안)에서 분출한 용암은 북쪽인 해안 방향(선흘,김녕,월정)으로 흐르며 만장굴을 비롯한 수십 개의 동굴과 선흘곶자왈을 만들어냈다.

중산간 지대의 거문오름에서 흐른 용암은 해안 방향으로 10km가 훌쩍 넘는 긴 여행을 하며 만장굴을 비롯한 수십 개의 용암동굴과 선흘곶자왈을 만들어냈다. 그 중심에 김녕리가 자리 잡고 있다.

파호에호에용암이라 불리는 거대한 빌레용암 지반 위에 김녕리가 있다고 보면 된다. 이 빌레용암의 중간지점에 선흘곶자왈이 있고 해안지역에는 ‘덩개해안’이라는 거대한 바위 평원이 자리하고 있다. 

# 해안에 펼쳐진 바위 평원, 김녕 덩개해안

이처럼 김녕 해안은 새까만 빌레 용암이 마치 넓은 평원처럼 펼쳐진 곳이다. 용암동굴을 만드는 용암인 파호에호에용암이 흐르다가 굳었기 때문에 지면이 평평하여 넓은 평원처럼 보이는 것이다. 

바닷가 중에서 이러한 용암의 특징이 가장 잘 나타난 곳 중 하나가 김녕 덩개해안이다. 덩개의 덩’은 바위를 뜻하고 ‘개’란 바다를 뜻하므로 바위가 있는 바다라는 뜻이다. 우리 선조들이 이름을 제대로 지은 것이다. 

김녕 해안사구
▲ 김녕 덩개해안. 바위가 있는 바다라는 뜻의 덩개해안은 빌레용암이 바다 위에 넓은 평원을 이룬 곳이다.

곶자왈이나 벵듸는 땅 위로 풀과 나무가 덮어버려 용암의 원형을 잘 파악하기가 힘들다. 하지만 바닷가로 흐른 용암은 그 위에 식생이 들어서기가 어려워 화산지형의 원형을 잘 볼 수 있다. 그러한 곳이 바로 김녕 해안이다. 그중에서도 덩개해안은 더 그러하다.

또한 덩개해안은 제주도 최대의 염습지 지대로서 여러 종류의 염습지 식물과 조간대의 생물을 동시에 볼 수 있는 곳이다. 살아있는 지질 박물관이요 해안 습지박물관이다. 

덩개해안에는 ‘두럭산’이 있다. 김녕 주민들이 신성시하는 산으로서 한라산에 장군이 나면 이 산에서 용마가 나온다는 전설이 전해온다. 설문대할망이 성산일출봉과 한라산에 두 발을 놓고 두럭산을 빨래판으로 해서 빨래를 했다는 신화가 내려온다.

그래서 김녕리 주민들은 두럭산을 신성하게 여겨서 언동을 조심했다. 해녀들 사이에서는 이 두럭산에서 큰소리를 지르면 바다에는 풍랑이 인다는 얘기가 있다.

두럭산은 제주의 5대 산 중의 하나이다. 제주의 5대 산은 한라산, 청산(성산일출봉), 영주산, 산방산, 두럭산이다. 이 중 실제 산이 아니면서도 산으로 불리는 곳이 바로 두럭산이다. 즉, 두럭산은 물이 차면 보이지 않고 물이 빠지면 모습을 드러내는 바닷속의 ‘여’(암초)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아무 때나 모습을 드러내는 게 아니고 음력 3월 보름 때만 일 년에 한 번 그 모습을 보인다고 한다. 어찌 됐든 여를 신화적 존재로 격상시킨 김녕 주민들의 상상력이 놀랍다.

김녕 해안은 이러한 빌레 용암지대와 함께 해안사구도 잘 발달한 곳이다. 모래 해변에서 날린 모래가 5km 이상 이동하며 빌레용암 위에 차곡차곡 쌓여 형성된 것이다. 김녕 해안사구의 모태는 성세기해변인 김녕해수욕장이다.

거대한 빌레용암 암반 위에 조개껍데기 등 패각류의 가루가 쌓여 만들어진 모래로 이루어진 해안이다. 이 해변에서 날린 모래가 전국에서 가장 큰 규모의 해안사구인 김녕사구를 만든 것이다. 

김녕 해안사구
▲ 김녕 해안사구. 전국 최대규모의 해안사구였으나 해안도로 등 각종 개발로 인해 현재 많이 훼손된 상태이다.

# ‘모살비’를 먹던 김녕 주민의 고단한 삶과 세계자연유산

김녕 해안사구도 성세기해변처럼 거대한 빌레용암 암반 위에 형성되었다. 제주의 바람은 늘 그렇듯이 김녕 성세기해변에도 세찬 바람이 몰아쳤다. 이 바람이 전국 최대규모의 해안사구를 만들어낸 것이다.

아래 지도에서 보듯이 성세기해변에서 날린 모래가 남동쪽으로 긴 막대 모양으로 펼쳐져 있음을 알 수 있다. 거의 5km 이상으로 사구가 형성된, 엄청난 면적이다. 이 안에 김녕사굴, 당처물동굴 등이 자리잡고 있다. 즉, 거대한 용암동굴 군락 위에 해안사구가 형성된 것이다.

김녕 해안사구
▲ 김녕 해안사구의 범위를 대충 그려 보았다(주황색선 안). 왼쪽 위의 김녕해수욕장으로부터 날린 모래가 동남쪽으로 5km 이상 이동하며 김녕 해안사구를 만들었다. 김녕사굴과 용천동굴 등 거대한 용암동굴 군락 위를 김녕 해안사구가 덮고 있다. (행정구역으로는 월정리를 포함한다)

하지만 환경부에서는 김녕사구의 배후사구가 일정 부분 훼손되었다는 이유로 이곳을 사구 지역에서 제외하고 김녕해수욕장에 인접한 좁은 면적의 해안사구만을 남아있는 김녕해안사구로 보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잘못된 것이다.

현재 김녕 해안사구의 배후사구는 소멸된 것이 아니라 군데군데 섬처럼 남아있는 상황이다. 이것또한 해안사구로 인정해서 조사 대상에 포함시키고 보전을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각설하고, 김녕 해안사구가 규모가 컸던 만큼 김녕 주민들은 모래의 영향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었다. 바람이 센 제주의 특성상 시도 때도 없이 부는 바람에 날려 온 모래는 참 고역이었나보다.

그래서 김녕리 주민들은 ‘모살비’(모래비의 제주어)라고 이것을 비유했다. 밭에서 일하다가 먹는 밥 위로 모래가 비처럼 떨어져 밥과 모래를 섞어서 먹을 수밖에 없었다. 이 모살비라는 단어에서 옛 제주민중들의 고단한 삶도 함께 엿볼 수 있다.
 
그런데 이 모살비와 해안사구의 모래는 제주도가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되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어떻게 된 일일까? 위 지도에서 어느 정도 알 수 있듯이 김녕-월정-행원 지역은 만장굴을 포함하여 김녕사굴, 용천동굴, 당처물동굴 등 수많은 동굴이 형성되어 있다. 

김녕 해안사구
▲ 김녕해수욕장에 남아있는 해안사구. 하지만 뒤편으로는 도로, 체육관, 농경지 등으로 파괴되어 있다. 해안사구 파괴로 김녕해수욕장의 모래가 심하게 유실되면서 해수욕장으로서의 가치가 떨어지고 있다. 환경부에서는 이 사구만을 현재의 김녕사구로 인정하고 있다.

이 동굴 위에 있는 해안사구의 모래는 오랜 세월 동안 지면의 틈을 통하여 동굴로 떨어지면서 독특한 석회생성물을 만들어냈다. 모래 속의 탄산염이 녹으면서 동굴 내부의 2차 생성물을 형성하는 원인이 됐다.

이로 인해 용천동굴의 찬란하고 아름다운 경관을 만들어낸 것이다. 이 용천동굴의 발견은 제주도가 세계자연유산으로 선정됨에 있어서 크게 이바지했다.

거대한 지하호수를 품었을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매우 특이하고 아름다운 동굴이었기 때문이다.

김녕 해안사구
▲ 김녕 해안사구의 배후사구. 현재 농경지로 이용되고 있으나 이 밑으로 용천동굴이 자리 잡고 있다. 사구의 모래가 오랜 시간 녹으면서 용천동굴의 아름다운 경관을 만들어냈다.

김녕 해안사구가 결국 아름다운 용천동굴의 지질과 경관을 만들어낸 것이다. (용천동굴은 행정경계로는 월정리이지만 지질학적으로는 김녕 해안사구 안에 포함된다)

그러나 용천동굴 주변의 해안사구가 농경지와 도로 등으로 개발되면서 더 이상의 석회생성물 생성이 더디거나 멈춰질 수 있다. 

또한 문제는 김녕 해안사구 파괴로 인한 김녕해수욕장의 위기다. 해안사구가 주차장과 도로, 체육시설, 건물로 사라지면서 사빈(해수욕장)으로 모래를 공급해주는 기능을 잃어버렸다.

그러다 보니 모래가 유실되면서 매년 모래를 쏟아붓고 있고 위를 차광막 등으로 덮어 모래가 날아가지 않게 하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무지한 해안사구 개발로 인해 관광지인 김녕해수욕장이 그 가치를 잃어버리고 있는 것이다.

# 부동산 광풍에 사라진 월정의 해안사구

김녕 바로 옆에 있는 월정은 행정구역만 다를 뿐 지질적으로는 사실상 같은 곳이다. 김녕처럼 거문오름에서 흐른 빌레용암이 지반을 이루고 있는 곳이다. 그래서 월정의 땅 아래에는 용천동굴 등 국보급 동굴들이 자리 잡고 있다.

특히 월정 해안은 튜물러스의 현장 박물관이라고 불러도 될 정도로 많은 튜물러스가 있다. 튜물러스는 빌레용암이 흐르다가 내부의 압력에 의해 빵처럼 부풀어져 굳은 용암 언덕이다. 이 튜물러스가 산재한 곳으로 바닷물이 들어와 마치 작은 다도해 같은 해안 경관을 이루고 있다. 

해안사구도 마찬가지이다. 튜물러스가 바다 쪽에 있다면 육지 쪽으로는 튜물러스가 있어서 검은색 언덕과 하얀색 언덕을 연상하게 한다.

하지만 이미 이 해안사구는 해안도로에 의해 단절되어 있다. 특히 카페거리로 유명한 월정리 마을은 개발 광풍에 의해 해안사구가 사라진 대표적인 곳 중 하나이다.

카페거리와 월정해수욕장이 유명세를 타면서 부동산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아 어떤 집은 1,000배나 솟았다는 얘기가 있다.

김녕 해안사구
▲ 월정해수욕장(한모살)에서 날린 모래가 거대한 해안사구를 만들었지만 인접한 해안사구는 해안도로와 상업시설에 의해 크게 파괴되었다.

해안도로 개설로 인해 모래가 도로 턱을 넘지 못하고 도로 위에 쌓이고 있다. 이 때문에 사구가 침식되어 해안에 묻혀있던 빌레용암도 드러나 버렸다. 앞으로도 계속 모래유실이 일어날 것이다.

특히 최근에는 마을 뒤쪽의 해안사구가 큰 규모의 택지개발로 없어져 버렸다. 문제는 앞으로도 월정은 부동산 광풍으로 개발의 몸살을 크게 앓을 것 같다는 것이다.

해안사구는 어떤 구제도 받지 못한 채 무차별적으로 개발될 가능성이 크다. 월정 해안사구는 다음 회에서 더 집중적으로 다루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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