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진단-얼룩진 제주외고 공론화] ② 동지역 이전안 논리 '과밀학급-교육환경 편중'

제주외국어고등학교의 일반고 전환 모델을 선정하기 위한 공론화 과정이 연일 구설에 오르내리고 있다. 학부모를 중심으로 한 학교 구성원과 교육당국 간의 갈등이 격화됐고, 급기야 법정공방까지 벌이게 됐다. 갈등 상황에 치우친 나머지 충분한 토론이 이뤄져야 할 숙의 과정 역시 도매금으로 매도당하고 있다. [제주의소리]는 제주외고 전환 과정의 갈등 요인이 무엇인지 되짚고, 동지역 이전안을 제시한 설득 논리는 무엇인지, 제주외고를 존치시키려는 배경은 무엇인지 등을 총 네 차례에 걸쳐 긴급 진단한다.  [편집자]
제주외국어고등학교 전경.
제주외국어고등학교 전경.

정부의 방침에 따라 제주외고의 일반고 전환은 2025년 강제된다. 충분한 시간적 여유가 남아있다고 볼 수도 있지만, 제주도교육청은 누차 '물리적 시간이 부족하다'는 의견을 피력해 왔다. 이전 가능성에 무게를 뒀을 경우다.

제주교육공론화위원회가 제시한 첫 번째 모형 '동지역 이전안'이 관철된다면 현재 제주시 애월읍 고성리에 있는 제주외고를 동지역으로 이전시키기 위한 시간을 맞추기가 빠듯하다. 일반적으로 학교가 신설되는데 소요되는 시기는 약 3~4년이다.

교육당국이 서두른 이유는 제주외고의 이전이 제주시내 평준화고등학교의 과밀학급 문제라는 지역사회의 해묵은 과제를 해결해줄 수 있다는 계산에서 나왔다.

매해 5개년 계획으로 수립되는 '2019~2024 중기학생배치계획'에 따르면 2019년 제주도내 평준화고 일반고의 경우 학급당 학생수는 평균 35명으로 집계됐다. 2019년 4월 1일 기준 학급당 학생수는 사대부고 35.9명, 제주일고 35.7명, 중앙여고 34.8명, 오현고 36.4명, 대기가 35.0명, 신성여고 34.9명, 제주여고 35.4명, 남녕고 35.4명이었다.

고교체제 개편 이후에도 과밀학급 문제는 해소되지 않고 있으며, 이는 5년 후에도 마찬가지일 것으로 예상된다. 2024년에는 평준화고 학급당 학생수는 34명으로 근소하게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시국에서 이 같은 문제는 더욱 두드러졌다. 학생 간 거리두기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된 상황에서 제주의 과밀학급 규모는 전국적으로도 가장 높은 수준이었다.

제주 평준화고 중기학생배치계획 및 학생수 현황
제주 평준화고 중기학생배치계획.

교육통계연보에 따르면 2019년 4월 1일 기준 제주지역 일반계고등학교의 경우 전체 539학급 중 학생수가 20명 이하인 학급은 50학급에 불과하고 21~30명 229학급, 31명 이상 260학급이다. 세부적으로 분류했을 시 31~35명 학급은 151학급, 36~40명 학급은 95개 학급, 41명 이상 학급도 14학급에 달했다.

전체 48.2%가 31명 이상 학급으로, 절반에 육박한 수준이다. 반면, 전국 일반계고의 31명 이상 학급 비율은 15.9%다. 충남이 29.4%, 광주가 29.3%로 뒤를 이었다. 제주를 제외하고는 과밀학급의 비율이 절반에 달하는 지역은 없다.

중학생 자녀를 둔 학부모의 경우 소위 '인문계고등학교 진학'을 지상과제로 여기는 지역 특유의 정서도 반영된 결과이기도 하다. 일반계고 진학을 원하는 최대한의 수요를 반영하다보니 과밀학급 문제는 쉽사리 해소되지 못했다.

제주외고 이전 재배치를 조기에 논의하는 현 상황을 단순히 옳고 그름의 문제로 접근할 수 없는 이유다. 동지역에 평준화고 한 곳이 늘어난다는 것만으로 과밀학급 문제가 해소될 수는 없지만, 적어도 필요를 일정량 채워줄 수 있다는 상식적인 계산은 가능하다.

◇ "특정 지역 편중된 교육환경...불균형 해소 유일 대안"

교육당국으로서는 제주지역 내 교육불균형을 해소할 적기라는 해석도 뒤따른다. 제주외고 이전 논란 국면에서 교육당국이 수차례에 걸쳐 강조했던 것은 이전할 시 학교의 입지는 일명 '신제주권'에 둔다는 것이었다.

그간 제주시의 도시규모는 급격하게 팽창해 왔다. 특히 신제주로 불리는 연동·노형동 지구는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가파른 성장을 이어갔고 근래에 이르러서는 지역을 대표하는 지역으로 변모했다.

그러나, 정주여건과는 달리 교육환경은 열악했다. 해당 지역에 탐라⋅아라⋅한라⋅오름⋅노형중학교 등이 신설됐고, 최근에는 외도동 일대 학생 수용을 위한 서부중학교 신설을 추진하고 있지만, 고교생 수요 해결은 오랜 숙제였다.

제주시  동지역 고등학교 분포 현황.
제주시 동지역 고등학교 분포 현황.

그나마 제주제일고등학교, 제주고등학교 등이 이 신제주권에 입지하고 있지만, 수요를 충당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특히 여학생의 경우 선택의 여지 없이 구제주권을 넘나드는 힘겨운 통학을 이어가야 했다.

지방선거, 총선 등 선거철마다 '신제주권 여고 신설' 공약은 단골 메뉴였다. 단순 교육이슈만으로 접근할 것이 아닌 주요한 지역현안 중 하나였던 셈이다.

제주지역 전반적으로 되돌아보더라도 동지역 내 고교 중 2000년대 이후 신설된 학교는 없었다. 가장 최근에 개교한 일반고를 찾기 위해서는 1986년 남녕고, 1984년 사대부고·대기고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제주의 인구가 갓 20만명을 돌파했던 때의 입지다.

종전과 달리 학교를 신설하는 방안은 현실적인 벽이 너무 높아졌다는 점도 이전 안에 불을 지핀 요인이 됐다. 교육부는 전국적으로 학령인구가 급격히 감소되고 있는 추세에 맞춰 학교 신설을 최대한 배제시키고 있지만 학교 이전에 대해서는 획일적인 원칙을 고수하지는 않고 있다.

◇ 고교학점제 도입 준비 "소규모 학교 어려움 반복될 수도"

제주외고의 일반고 전환을 논의할 때마다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단어 중 하나는 '고교학점제'다. 

고교학점제란 고교과정 중에서 학생들이 진로에 따라 다양한 과목을 선택·이수할 수 있도록 하고, 누적학점이 기준에 도달할 경우 졸업을 인정받는 제도다. 

기존 고등학교에서는 출석 일수로 졸업 여부를 결정했다면, 고교학점제 도입 이후에는 누적된 과목 이수 학점이 졸업 기준에 이르렀을 때 졸업이 가능해지게 되는 것이다. 졸업이 곧 본질적인 학력 인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학생 개개인의 다양성을 지원하는 차원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이미 미국, 영국, 핀란드, 캐나다, 호주 등의 국가에서 학점제 형식의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있으며, 주변 아시아 국가인 싱가포르, 홍콩 등에서도 학점제 교육과정이 운영중이다.

정부는 현재 연구·선도 학교를 통해 정책을 점검한 후 2022년부터 전국적으로 도입하기 시작해 2025년부터 본격 시행한다는 복안을 갖고 있다. 공교롭게도 제주외고의 일반고 전환 시기와 맞아떨어진다.

이 고교학점제를 원활하게 운용하기 위해서는 일정 규모 이상의 학교가 필요하다는 것이 현장의 설명이다. 다양한 교육과정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다양한 교원을 충당해야 하고, 교원을 추가로 들이기 위해서는 학생 역시 일정 규모 이상이 확보돼야 하기 때문이다.

전문가토론회에 참석한 대정고등학교 현직 교사는 "고교학점제가 도입됐을 때 가장 크게 직면하는 문제는 규모의 문제다. 현재 교육부의 고교학점제 방침에 가장 반발을 하고 있는 곳은 읍면지역·도서지역에 있는 학교들"이라며 "고교학점제가 안착하려면 다양한 교원이 확보돼야 하는데, 소규모 학교에서는 실질적으로 교원 확보에 문제가 생긴다"고 실질적인 어려움을 토로했다.

고교학점제도를 시범 운영하고 있는 대정고의 경우 전교생은 270명으로, 전교생 300명인 제주외고와 비슷한 규모다. 해당 교사는 "저희가 겪게 될 어려움을 그대로 갖게 될 수밖에 없다"는 소신을 피력하기도 했다.

여러 여건 상 기호에 따라 배척하기에는 제주외고의 동지역 이전이 갖는 지역사회의 공헌도도 무시할 수 없는 이유다. / ③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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