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적 인간] (48) 반도(Peninsula), 연상호, 2020 / #살아있다(#Alive), 조일형, 2020 

영화 ‘반도’, ‘#살아있다’ 포스터. 출처=네이버 영화.
영화 ‘반도’, ‘#살아있다’ 포스터. 출처=네이버 영화.

영화 <알 포인트>(R-Point, 공수창, 2004)에서는 죽은 무전병이 신호를 보내온다.

“하늘소, 하늘소, 여기는 두더지 셋, 응답하라.”

죽어서도 구조 요청이 원혼처럼 남아 구천을 떠돈다. SOS는 마지막 구조 요청 신호다. 좀비가 몰려오는 위기를 극복하고 우리는 살아야한다. 우리는 지금 누구에게 구조 요청 신호를 보내고 있는 걸까.

그렇다면 좀비는 어떤 존재인가. 한때 사람이었으나 이제는 사람들을 위협하는 존재다. 그런데 우리는 좀비처럼 살아왔다. 학생들은 공부에, 어른들은 일에, 누군가는 술에, 사랑에, 꿈에 좀비처럼 달려왔다. 목적 없이, 남이 하니까, 눈에 뵈는 게 없이 달려왔다. 누구든 감염자가 될 수 있듯 누구든 좀비가 될 수 있다.

‘K-좀비’라는 말도 생겼다. 이러다 좀비 로맨스도 곧 나오겠다. 한국 최초의 좀비 영화는 강범구 감독의 <괴시>(A Mostrous Corpse, 1980)이다. 한국형 좀비 영화의 효시답게 태권도로 좀비를 제압한다. 그후 <이웃집 좀비>(The Neighbor Zombie, 류훈, 오영두, 장윤정, 2009), <노르웨이의 숲>(Norwegian Woods, 노진수, 2009), <기묘한 가족>(The Odd Family : Zombie On Sale, 이민재, 2018) 등 주로 B급 영화로 계보를 이어왔다. 연상호 감독의 <부산행>(Train To Busan, 2016)이 상업 영화로 크게 성공하면서 좀비 영화들은 계속 창궐하게 되었다. 

우리나라가 좀비의 무대로 은유되는 건 이 나라가 아포칼립스의 무대인 것 같아 씁쓸하다. 이미 ‘헬조선’이라는 말이 우리를 지배했다. 도서관 열람실에 머리를 박고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청년들을 보면 좀비들 같다. 일 끝나고 술집에 가서 술 마시고 나와 거리에서 비틀거리는 사람들을 보면 좀비들 같다. 갤럭시 익스프레스의 노래 ‘난 어디로’를 들어보면 마치 정처 없이 떠도는 좀비 시점의 노래로 들린다. 시인 기형도는 그의 시 ‘비가2 - 붉은 달’을 통해 묵시록 같은 전언을 남겼다.

“우리는 모두가 위대한 혼자였다. 살아 있으라, 누구든 살아 있으라.”

바이러스의 시대, 일단 살아남고 보자. / 현택훈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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