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진단-얼룩진 제주외고 공론화] ③ '읍면학교 살리기' 뒷전...메리트 없앤 '존치안'

제주외국어고등학교의 일반고 전환 모델을 선정하기 위한 공론화 과정이 연일 구설수에 오르내리고 있다. 학부모를 중심으로 한 학교 구성원과 교육당국 간의 갈등이 격화됐고, 급기야 법적공방까지 벌이게 됐다. 갈등 상황에 치우친 나머지 충분한 토론이 이뤄져야 할 숙의과정 역시 도매금으로 매도당하고 있다. [제주의소리]는 제주외고 전환 과정의 갈등 요인이 무엇인지 되짚고, 동지역 이전안을 제시한 설득 논리는 무엇인지, 제주외고를 존치시키려는 배경은 무엇인지 등을 총 네 차례에 걸쳐 긴급 진단한다.  [편집자]

- 작은학교는 국제학교 못지 않은 환경을 갖고 있다. 이 환경에서 제대로 꽃이 핀다면 대한민국 최고의 교육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결국은 지역균형을 살리는 힘이 될 것으로 보인다. 교육의 질을 높여 제주로 오게 만들 수 있는 기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작은학교가 중심이 될 수 밖에 없다. -2018년 6.13지방선거 당시 정책 기자회견

- 지속적인 투자와 지원 정책으로 읍면 작은 학교를 좋은 학교로 만들어 도외 전입 학생들이 읍면으로 찾아가도록 하겠다. 작은 학교의 성공 모형을 만들고, 이 모형을 도심 학교에 들여와 제주교육 전체 구조를 변화시킨다면 '모든 아이가 행복한 제주교육'이 실현될 것이다. - 2015년 신년대담

- 제가 교육감이 된 이후 가장 잘한 점이라고 한다면 읍면지역 학교의 수준을 끌어올린 점이다. 읍면지역 고등학교가 고르게 성장하고 진로와 진학에서 좋은 결과가 나타났다. 읍면지역 학교도 좋은 대학에 입학할 수 있다는 흐름이 만들어지고 있다. - 2020년 신년인터뷰

이석문 제주도교육감은 2014년 첫 취임부터 '읍면지역 소규모 학교 살리기'를 핵심 가치로 내세웠다. 공식석상에서 '소규모 학교', 내지 '작은학교'와 관련된 이 교육감의 발언을 돌이켜보면 꾸준하고 일관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비록 내부 구성원의 강한 반발을 샀지만, 취임 직후 본청 인력을 줄여 읍면지역 소규모 학교로 배치하는 조직개편을 관철시킨 것 또한 이 교육감의 철학을 대표하는 장면이었다. 교육의원 시절에는 보수정권이 소규모학교를 통폐합하겠다는 방침을 밝히자 일명 '작은학교 희망만들기 지원 조례'를 준비하며 자발적으로 작은학교 살리기 운동을 이끌어 왔다.

'소규모 학교'의 범위를 초등학교로 좁혀도 교육철학이 변하지는 않는다. 고교체제 개편 과정에서도 이 교육감은 동(洞)지역 일반계고 진학의 과열 양상을 일으킨 고교체제를 개편하기 위해 읍면지역 고등학교를 활성화하는 방안으로 돌파구를 모색했다.

그런데, 이석문 교육당국은 일반고 전환을 앞둔 제주외국어고등학교에만 유독 이중잣대를 들이대고 있다.

◇ 일반계고-제주외고 진학률 대동소이...'고교서열화 주범' 누명

정부가 전국적으로 자율형사립형고등학교, 외국어고등학교, 국제고등학교를 폐지하겠다고 결정한 배경에는 고교서열화를 심화시킨다는 판단이 있었다. 현행 제도상 특화된 교육체계가 대입 등에 최적화됐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적어도 제주 지역사회에서 제주외고가 고교서열화의 주범이라는 주장은 오명에 가깝다.

학교정보공시 사이트 학교알리미에 공시된 각 학교별 졸업생 진로 현황에 따르면 제주외고의 2019년 진학률은 86.5%다. 시내권 일반계고등학교인 A고의 진학률은 84.8%, B고는 81.9%, C고는 78.2%다. 

진학률에 있어 제주외고와 의미있는 차이를 보이지는 않고 있다. 흔히들 최상위권 대학으로 분류하는 '스카이(SKY)' 진학 성적도 시내권 일반계고가 상대적으로 뛰어난 성과를 거두고 있다.

고입이 곧 대입의 지름길이고, 구성된 커뮤니티가 그대로 사회생활까지 연결되는 타 지역의 외고-자사고 등과 단순 비교하기는 무리가 있다는 것이다.

실제 제주외고 입시 경쟁률은 2016학년도 2.07대 1, 2017학년도 1.96대 1, 2018학년도 1.46대 1, 2019학년도 1.21대 1 등 최근 5년간 하락세가 이어져 왔다. 심지어 일반고 전환 소식이 들려온 2020학년도는 정원이 미달되기에 이르렀다.

그나마 제주외고의 경우 국외로 진학하는 학생의 비율이 8.3%로, 시내권 일반계고인 A고 0.4%, B고 0.4%, C고 0%에 비해 높았다. 적어도 국외 진학을 원하는 학생의 선택지로서의 역할을 해왔다는 반증이다.

◇ '읍면학교 살리기' 주력한 교육당국...제주외고 대안은 "글쎄"

연합고사 폐지라는 담론에 가려졌지만 제주교육당국이 추진해 온 고교체제 개편의 핵심은 '읍면지역 학교 살리기'였다. 이 교육감은 읍면지역 고등학교가 고르게 성장해 진로·진학에서 좋은 결과를 냈다는 점을 자신의 임기 중 가장 중요한 치적으로 꼽았다.

고교체제 개편 과정에서 함덕고등학교와 애월고등학교는 예술중점고등학교로 거듭났다. 음악을 진로로 정한 학생들은 함덕고, 미술을 진로로 정한 학생들은 애월고로 진학했고, 그에 걸맞는 성과를 보였다.

해당 분야의 최상위권 대학 진학 성공 사례가 쌓이면서 고민 없이 선택할 수 있는 학교로 거듭나고 있다.

민선 7기에 접어들며 교육당국이 가장 역점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IB(International Baccalaureate) 교육 프로그램은 제주시내권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표선고등학교로 배정됐다. 도교육청은 IB학교 공모를 시작하는 단계에서부터 공모 대상을 읍면지역 학교로 한정하기도 했다.

교육당국이 해마다 특성화고 살리기에 매진하고 있는 것도, 비록 성사되지 못했지만 성산고등학교를 해사고로 전환하려던 시도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제주외고는 5년도 채 남지 않은 시점에서 일반고로 전환돼야 한다. 앞선 사례의 학교와 별반 다르지 않게 됐다.

그러나 그간 읍면지역 학교 살리기를 주창해 온 교육당국은 제주외고에 대해서는 아무런 대안도 제시하지 않은 채 '이전이냐, 존치냐'만을 논하고 있다.

◇ 제주외고 존치 구체적 대안 제시, 교육청의 몫

제주시내권 과밀학급 문제는 교육당국이 자초한 측면이 크다. 

연합고사 시행 시절 50%대였던 평준화고 입시 커트라인은 100% 내신 전형이 도입된 2019학년도에는 63.9%, 2020학년도에는 68.2%로 대폭 낮아졌다. 

교육수요를 충족시킨다는 명목 하에 입학 문턱을 낮추면서 학생수도 증가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제주외고의 동지역 이전이 과밀학급 해소의 유일한 대안인냥 언급된 것이 학내 구성원들의 분노를 샀다.

이 같은 배경에 따라 교육공론화위원회에 의해 2개 안으로만 압축된 제주외고 전환 모델이 편중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제시된 안은 △제주시 동(洞)지역 평준화 일반고로 전환 및 이전 재배치 △현재의 위치에서 읍면 비평준화 일반고로 전환 등 2개안이다. 

제주외고 학부모회 관계자는 "공론화 과정 초기부터 이전과 존치안 말고 아무런 대안도 제시하지 않았다. 교육청이 '2025년 입학하는 교육수요자가 가장 중요하다'고 얘기하는데, 적어도 일반고로 전환됐을 때 어떻게 운영이 될지를 논의해야 학부모도, 도민들도 선택할 수 있는 것 아닌가"라고 성토했다.

지적대로 이전만으로 과밀학급-교육불균형을 해소할 수 있는 첫번째 안과는 달리 일반고 전환만을 전제로 한 두번째 안은 아무런 메리트가 없다.

제주특별법(제216조)에는 '학교 및 교육과정 운영의 특례'가 담겼다. 제주도에 소재하는 학교는 도교육감의 지정을 받아 자율적인 교육과정을 운영할 수 있다는 근거다.

제주외고 역시 교육당국의 '아픈 손가락'이어야 한다. 적어도 제주외고를 현재의 위치에서 일반고로 전환한다면 어떤 교육과정으로 운영하게 될 지 청사진을 제시하는 것 역시 교육당국의 몫이다. / ④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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