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진단-얼룩진 제주외고 공론화] ④ 이전-존치 도민여론 '비등'...소통 폭 넓혀야

제주외국어고등학교의 일반고 전환 모델을 선정하기 위한 공론화 과정이 연일 구설수에 오르내리고 있다. 학부모를 중심으로 한 학교 구성원과 교육당국 간의 갈등이 격화됐고, 급기야 법적공방까지 벌이게 됐다. 갈등 상황에 치우친 나머지 충분한 토론이 이뤄져야 할 숙의과정 역시 도매금으로 매도당하고 있다. [제주의소리]는 제주외고 전환 과정의 갈등 요인이 무엇인지 되짚고, 동지역 이전안을 제시한 설득 논리는 무엇인지, 제주외고를 존치시키려는 배경은 무엇인지 등을 총 네 차례에 걸쳐 긴급 진단한다.  [편집자]
지난 6일 열린 제주외고 일반고 전환 모델 공론화를 위한 전문가 토론회. 코로나19로 인해 많은 청객들이 참석하지 못했지만, 숙의 과정의 첫 발을 뗀 데 의미가 있는 자리였다. 사진=제주도교육청
지난 6일 열린 제주외고 일반고 전환 모델 공론화를 위한 전문가 토론회. 코로나19로 인해 많은 청객들이 참석하지 못했지만, 숙의 과정의 첫 발을 뗀 데 의미가 있는 자리였다. 사진=제주도교육청

진보 교육감으로서의 정체성을 지닌 이석문 제주도교육감은 임기 중 다방면으로 교육혁신을 추구했고, 그에 대한 평가는 명암이 뚜렷하게 갈린다. 좌고우면하지 않는 강한 추진력은 때로는 득이 되고, 때로는 독이 됐다.

이 교육감의 평가 중 '암(暗)'을 논할 때 곧잘 따라붙는 단어는 '소통의 부재'다. 이 교육감 스스로도 인정하고 "고쳐나가겠다"고 답할만큼 썩 달가울리 없는 평가다. 학부모들의 강한 반발을 사며 지역사회 주요 교육의제로 떠오른 제주외국어고등학교 일반고 전환 공론화 국면에서도 이와 같은 평가가 나오고 있다.

지난해 말부터 줄곧 제주외고 이전 반대의 목소리를 외쳐온 제주외고운영위원회와 학부모회 등이 직접 이 교육감을 만난 것은 반 년이 훌쩍 지난 8월7일이었다. 그마저도 이 교육감의 빽뺵한 스케줄 탓에 직접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은 30~40분 남짓 짧은 시간에 불과했다. 제주외고 일반고 전환 의제를 주도적으로 다루고 있는 제주교육공론화위원회와 만난 자리도 8월18일에 성사됐다.

코로나19 시국이 겹쳤다고 하더라도 창구는 얼마든지 열려있었다. 제주외고 학부모들과 도교육청 실무자 사이에는 간간히 교류가 있었지만, 책임있는 답변은 나올 수 없었다. 그 사이 제주외고 학내 구성원들의 불안감은 커져갔고, 이는 학내 구성원들을 똘똘 뭉치게 하는 기제가 됐다.

애초에 제주외고 일반고 전환 공론화는 학부모들이 생업을 제쳐두고 '결사반대'를 외칠만한 사안은 아니었다. 일반고로의 전환이 확실시 된 상황에서 어떤 방식으로든 전환 모델을 논한다는 것은 그 자체를 반대할 이유도, 명분도 떨어진다.

심지어 현재 제주외고 학부모의 경우 제주외고가 일반고로 전환되는 2025년에는 자녀들을 모두 졸업시키고 사회로 떠나보낸 후다. 제주외고라는 이름 아래 구성될 수 있는 동문회 등의 커뮤니티를 잃을 수는 있지만, 학부모들 스스로도 이를 법적소송까지 불사하며 결단코 지켜야 할 핵심가치라고 보지는 않는다.

일련의 과정을 돌이켜보면 결국 갈등의 요인은 교육당국의 태도와 소통 방식이었다. 학부모들의 강한 반발은 이에 따른 결과물이다.

취재 과정에서 마주한 한 학부모는 "제주외고가 전환돼야 한다는 내용, 교육청이 제주외고를 동(洞)지역으로 이전하려한다는 내용, 모두 신문기사를 통해서 알았다. 그 전이나, 후로나 아무런 설명도 없었고, 설득 과정도 없었다"며 "막상 항의하려하면 실무자들은 '자신들의 소관이 아니다'라는 입장만 내놓았다. 대체 우리는 누구와 이야기를 해야 하느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또 다른 학부모는 "교육감이 학부모들과 직접 만나는 것은 피하면서 라디오 방송에 나와 앞으로 '제주외고'라는 이름을 사용할 수 없게 된다는 둥 학교가 사라지는 것을 기정사실화하는 발언을 했다. 왜 학부모들이 직접 교육청과 교육부에 관련 문의를 하고, 법원까지 드나들어야 하는 상황을 만드는 것이냐"고 하소연했다.

이는 이 교육감이 취임과 동시에 제주외고를 일반고로 전환하는 내용 등이 담긴 고교체제 개편을 추진하려다 지역주민과 학부모, 동문 등으로부터 '불통 교육감'이라는 오명을 샀던 2015년과 묘하게 오버랩된다. 이미 한 차례 곤혹을 느꼈던 교육당국이 5년 전의 전철을 고스란히 답습했다고 밖에 볼 수 없는 이유다.

제주외국어고등학교의 일반고 전환 과정에서 학내 구성원의 반발을 사는 장면이 오버랩되는 2020년과 2015년.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제주외국어고등학교의 일반고 전환 과정에서 학내 구성원의 반발을 사는 장면이 오버랩되는 2020년과 2015년.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 제주외고 이전-존치 도민여론 엇비슷..."숙의 과정은 필수"

뒤늦게 가진 대화의 자리에서 이 교육감은 제주외고 학부모의 요구에 따라 공론화 작업을 늦출 것을 주문했다. 일반고 전환 의제를 주도적으로 다루고 있는 제주교육공론화위원회도 지난 18일 학부모들과 만난 자리에서 3시간에 걸친 긴 대화를 통해 당장 22일로 앞두고 있던 도민참여단 토론회를 미루는 것으로 합의를 봤다.

적어도 제주외고 학부모들이 법원에 제출한 '제주도교육청 제주교육공론화위원회의 제2호 의제(제주외고 일반고 전환 모형) 공론화 진행 금지 가처분신청' 결과가 나올 때까지는 공론화 과정은 중단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후를 기약한다면 공론화 과정을 미룰 수는 있어도 원천 중단시키기는 곤란한 상황에 이르렀다.

교육공론화위원회는 이미 1차적으로 도민여론조사를 실시했고 그 결과를 받아봤다. 그 결과는 철저하게 함구령이 내려져 있다. 최종적인 판단을 내려야 할 도민참여단에게 자칫 편중된 시각을 심겨줄 수 있다는 이유다.

다만, 전교조 제주지부와 (사)제주대안연구공동체, 제주교육희망네트워크, 참교육제주학부모회 등 4개 단체가 지난 6월10일부터 7월2일까지 제주도내 학생과 교원, 만 20세 이상 도민 등 총 121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제주 교육쟁점 및 대안 설문조사' 결과는 눈여겨 볼 대목이 있다.

△고교교육체제개편 △IB교육 △대입제도 △학생인권조례 △자유학기제 등 지역 교육현안을 묻는 질문으로 구성된 이 설문조사에는 제주외고 전환에 대한 의사를 물어보는 문항도 포함됐다. 각 사안에는 1점(매우반대)부터 5점(매우찬성)까지 평가를 내리도록 했다.

설문 결과 제주외고를 동지역으로 이전해 평준화 일반고로 전환하는 방식에 대한 찬성도는 학생 3.15점, 교원 3.21점, 도민(학부모) 3.18점으로 나타났다. 읍면지역에서 일반고로 전환하는 방식에 대한 찬성도는 학생 3.08점, 교원 2.83점, 도민(학부모) 2.96점으로 근소한 차이를 보였다.

이 질문 문항에는 '공립형 대안학교로 전환'이라는 새로운 아이디어가 도입됐고, 학생 3.11점, 교원 3.11점, 도민(학부모) 3.14점의 찬성도를 보였다. 아직 깊게 논의된 대안이 아니라는 점에서 이 방식은 차치하더라도, 세 집단 모두 제주외고 전환 모델에 대한 고민이 깊은 것으로 나타났다.

즉, 이전안과 존치안에 대한 이견이 뚜렷한 상황에서 도민들의 총의를 모으는 방식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게 됐다. 교육당국의 자의적인 판단에 맡길 수도 없고, 학부모들의 요구만 관철시킬수도 없다면 결국 숙의 과정은 필요하다.

숙의민주주의는 여러 사람이 모여 깊이 생각하고 의논하는 숙의가 의사 결정에 중심이 되는 민주주의 형식을 뜻한다. 항상 정답이 될 수는 없지만, 해답의 열쇠가 될 수는 있다.

만에 하나 법원이 '제주특별자치도 교육행정 참여를 통한 숙의민주주의 실현 조례'에 따른 교육공론화위원회의 의제 설정에 대한 위법성을 인정한다고 해도 공론화의 취지 자체가 퇴색됐다고는 볼 수 없다. 방법을 바꿔가야 할 일이다.

제주외고 이전안에 비해 존치안이 지닌 이점이 떨어진다면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등 '운영의 묘'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 교육당국은 누누히 제주외고 학내 구성원과의 소통을 넓혀 나가겠다고 밝혔다. 소통은 단순히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의견을 반영하는데도 방점이 찍혀있어야 한다. 이는 또 다시 '불통 교육감'이라는 오명에 직면한 교육당국의 책임이다.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