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희의 노동세상] (32)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한 산업 재해

늦었지만 의미 있는 결정

산업 재해가 발생하면 노동자는 근로복지공단에 산업 재해를 신청한다. 근로복지공단은 노동자의 재해가 업무와 연관이 있는지 여부를 판단하여 상당 인과 관계가 성립되면 산업 재해로 인정하고 있다. 만약 인정되지 않았을 때, 노동자는 산업재해보상보험재심사위원회(이하, 재심사위원회)에 재심을 신청하여 산재 여부를 다시 물을 수 있다. 

제주공항에서 근무하던 중 지난 2018년에 사망한 노동자에 대한 재심사위원회의 판정 회의가 최근 개최되었다. 결과는 원처분 취소, 즉 사망한 노동자의 산업 재해가 인정된 것이다. 제주공항에서 근무하던 중 상사의 괴롭힘을 신고했지만 사업장 안에서의 적절치 않은 대처로 극단적인 선택으로 내몰린 20대 노동자의 사건이었다. 

결과를 듣는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아들의 사망 후, 지난 2년 여간 죽음의 원인을 파헤치고 책임자를 찾아 책임지도록 하려는 유족과 동료들 그리고 아버님의 노력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잠시 후 아버님에게 걸려온 전화를 받은 후 얼마 동안의 침묵이 흘렀다. 전화기 너머로 울음을 삼키는 소리가 전달되고 있었다.

사건의 내용만을 보자면 최초 신청에서 인정되어야 마땅했다. 뒤늦게나마 그의 죽음이 산업 재해로 인정되면서 안타까운 죽음이 사회적인 의미를 가지게 되었고 이후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에 힘이 실릴 것이다. 유족에게는 망자의 명예를 회복하고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는 결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상사의 괴롭힘으로 숨진 제주공항 근로자 김동희 씨의 유족과 민주노총 제주본부 등이 올해 3월 13일 근로복지공단 제주지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김씨의 산업재해 심사에 대한 재심사 청구서를 접수했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한 정신질환도 산업재해로 인정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 된지 1년이 지나고 있는데 사실 이 법 시행 이전에도 업무상 괴롭힘으로 인한 정신 질환에 대해 근로복지공단은 산업 재해로 인정하고 있었다. 다만, 작년에 관련된 내용을 보다 구체적으로 법제화 한 것이다.

2019년 7월 16일자로 시행된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은 일터에서 업무상 범위를 넘은 괴롭힘과 고객의 폭언에 의한 정신적 스트레스로 인해 발생한 질병에 대하여 산업 재해로 인정하고 있다. 또한 괴롭힘으로 인한 노동자의 정신 질환을 예방하기 위한 사업주와 국가의 의무도 규정하고 있다.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이 시행되고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에 있는 ‘제주직장갑질119’에도 다양한 괴롭힘 사례가 제보되고 있다. 연장 근무에 동의하지 않는다며 쏟아진 사장의 폭언, 동행 출장 중 상사의 성추행 시도, 주말에 일방적인 종교 활동의 강요, 체불 임금에 대한 지급을 요구했다가 당한 사장의 폭행을 비롯하여 사장의 개인 SNS에 올리기 위한 동영상에 원치 않는 출연을 강요받는 경우 등 폭언․폭행을 넘어 다양하게 발생하는 직장 내 괴롭힘의 유형이 확인되었다. 사측으로부터 일방적인 임금 삭감을 당하고 홧병으로 정신과 진료를 받은 경우도 다수 있었다. 직장 내 괴롭힘 신고 후 처리 과정에서의 불안감으로 인해 적응 장애의 진단을 받아 산재 요양을 승인받은 경우도 있었다. 

위에서 언급한 제주공항에서 발생한 사건은 직장 내 괴롭힘을 신고했지만 그 처리 과정이 차일피일 미뤄지면서 조사가 수개월간 진행되었고, 그 기간 동안 사측이 가해자와 피해자를 분리하지 않는 등 망자의 우울과 불안감이 지속되던 중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경우였다. 아직까지 재심사위원회의 결과만을 통보받았고 위 사건에 대한 구체적인 판정문은 송달받지 못한 상태이다. 

이번 산업 재해 결정이 직장 내 괴롭힘으로 고통 받고 있는 노동자들에게 지금의 고통이 개인적인 이유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는 위로와 지금의 고통에 조금 더 적극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가 되기를 바란다. 반대로 직장 내 괴롭힘의 가해자와 이를 방치하거나 조장한 사업주에게는 서릿발 같은 충고가 되어 직장 내 괴롭힘을 중단하고 조직 내 예방에 대한 사전 조치를 취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사망한 故 김동희님 아버님은 산업 재해 인정 소식을 듣고 ‘이제 재발 방지할 수 있도록 해야죠’라는 말씀을 남겼다. 산업 재해가 인정되어도 망자는 돌아오지 않는다. 그러나 남아있는 이들이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방법 중 하나는 다시는 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사회에 요구하는 것일 거다. 다시 한 번 故 김동희님의 명복을 빈다.

# 김경희는?

‘평화의 섬 제주’는 일하는 노동자가 평화로울 때 가능하다고 생각하면서, 노동자의 인권과 권리보장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공인노무사이며 민주노총제주본부 법규국장으로 도민 대상 노동 상담을 하며 법률교육 및 청소년노동인권교육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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