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웅의 借古述今] 185. 밥이 인삼이다

* 인섬 : 인삼

‘밥이 인섬이여.’

간결하면서도 기가 막힌 비유다. 하루 세끼를 챙겨 먹는 밥은 주식(主食)으로 영양소의 기본이다. 사람에게 건강을 유지하는 데 밥만큼 중요한 음식이 없다. 밥을 굶던 시절이 있었다. 

출처=염종호, 오마이뉴스.
선인들이 흔히 입에 올리던 말로 ‘밥이 보약이여’다. 출처=염종호, 오마이뉴스.

비근한 예로 ‘보릿고개’란 가요가 국민적 공감을 얻고 있는 데는 겨울 지나 보리를 거둬들이는 6월 사이, 양식이 바닥나 소위 굶기를 밥 먹듯 했던 그 고난의 시기를 회상하며 가슴 쓸어내리는 바로 그것이다. 노래를 듣고 있으면 ‘어머님의 한숨, 어머님의 통곡’이 들리는 듯 울컥하지 않는가.

없어서 못 먹었지 밥 먹어 배를 불릴 수 있으면 되었다. 무슨 보약인가.

몸에 좋은 인삼 이전에 밥을 먹어야 함을 말하려고 ‘밥이 인섬’이라고 은유한 것이다. 선인들이 흔히 입에 올리던 말로 ‘밥이 보약이여’다. 밥만 잘 먹으면 그 위에 특별히 인삼 같은 보약이 필요 없다는 얘기다. 사람에게 밥이 최고의 보약임을 강조한 것이다.

밥은 삶의 준거(準據)다. 온갖 사고와 행동거지가 밥에서 발원한다. 우리는 밥에 울고 웃는다. 실제 그러면서 궁핍과 혼란 속에서 어둡고 지루한 역사의 터널를 지나왔고, 암울했던 시대의 강도 건넜다.(중략)

소박한 식탁이었다. 어느 스님이 손수 삶아낸 소면에 진한 콩국물을 붓고는 합장해 공양송을 읊었다 한다.

“이 밥은 대지의 숨결과 강물의 핏줄, 태양의 자비와 바람의 손길로 빚은 모든 생영의 선물입니다.”

함께했던 사람들, 종교를 떠나 조촐한 밥상에서 작은 감동을 공유했으리라. 그런 목소리라면 단박 공명할 수 있어야 사람이다. 종교는 버금 문제다. “밥은 하늘이다. 밥에서 한국인은 이상을 찾는다. 김지하 시인의 말이다.” 밥에서 하늘을 보았으니, 하늘인 밥을 허투루 하랴.

- 김길웅의 수필 ‘밥3’의 일부

유사한 예들이 있다.

‘밥 먹은 힘광 체 먹은 사름 힘은 하늘광 땅인다.’
‘밥 먹은 사름 심 좋곡, 죽 먹은 사름 심 엇나.’
‘밥이 일혼다.’

하나같이 실감이 난다. 밥 앞에 겸손해야 한다. 

‘밥이 인섬이여.’ 맞는 말이다. 예전 필자가 커 오던 그 적빈(赤貧)의 시대엔 밥 그릇에 밥티 한 톨 남기지 않았다. 지금도 밥 한 알 남기지 않고 ‘북북’ 긁어 먹는다. / 김길웅 시인·수필가·칼럼니스트

동보(東甫) 김길웅 선생은 국어교사로서, 중등교장을 끝으로 교단을 떠날 때까지 수십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쳤다.1993년 시인, 수필가로 등단했다. 문학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도서관에 칩거하면서 수필, 시, 평론과 씨름한 일화는 그의 열정과 집념을 짐작케한다. 제주수필문학회, 제주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대한문학대상, 한국문인상 본상, 제주도문화상(예술부문)을 수상했다. 수필집 <마음자리>, 시집 <텅 빈 부재>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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