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 희곡집 ‘랭보, 바람 구두를 벗다’ 발간

출처=알라딘.
출처=알라딘.

연극인, 희곡 작가, 이제는 소설가의 길을 걷고 있는 강준(본명 강용준)이 새 희곡집을 펴냈다. 제주 역사 위에서 인간의 욕망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랭보, 바람 구두를 벗다》(청어)이다.

강준은 이 책에서 ▲내 인생에 백태클 ▲돗추렴 ▲랭보, 바람 구두를 벗다 ▲게스트하우스 꿈 등 희곡 4편과 창작뮤지컬 <산지포 연가>를 실었다.

저자는 해녀, 4.3, 만덕 등 제주를 잘 나타내는 소재를 다루지만 근본적으로 인간의 욕망을 솔직하게 다루는데 초점을 맞췄다. 그것은 지저분하면서 처절하고 때로는 애틋한 우리의 민낯이다.

<내 인생에 백태클>에서 주인공 공달국은 권력욕에 사로잡힌 인물이다. 공공과 시대정신을 위한 헌신이 아닌 오직 본인의 출세욕을 위해 정치에 나선다. “친일파 조상에 악덕 마름 이력”이란 배경과 온갖 악행으로 많은 재산을 모았지만, 이에 멈추지 않고 국회의원까지 꿈꾸면서 총선 준비에 나서는 주인공. 강준은 공달국이 정치 입문으로 몰락하는 모습을 통해, 권선징악의 구도를 따라간다. 더불어 정치와 언론의 민망한 속내를 꼬집는 시도는 꽤 흥미롭다. 

<랭보, 바람 구두를 벗다>는 제주4.3이라는 비극적인 역사의 광풍 속에 여러 인물들이 얽히고설킨다. 

부르주아라는 이유로 가족을 잃고 제주로 내려온 아름다운 여인 지안, 그런 지안을 사랑한 창민, 지안이 숨지며 남긴 딸을 애증으로 키우는 은하, 지안의 마음을 얻지 못하지만 창민을 끝까지 돕는 정국, 삐뚤어진 욕망으로 지안을 탐하면서 창민과 정국을 노리는 서북청년회 병선. 

작품은 4.3이 배경이지만 오히려 역사적 사실보다는 인물과 갈등에 비중이 크다. 무자비한 과거를 뒤로하고 선거에 출마하는 병선을 통해 부끄러운 권력을 꼬집고, 주민들은 굶주리는데 전투 식량을 쌓아놓는 무장대 역시 작가가 비판하는 대상이다.

“죄 없는 사람 고문하다 죽이고, 모욕해서 자살하게 만들고, 조작해서 감방 보내고, 불리하면 청부해서 죽이고” 나아가 가족에게 까지 폭력을 휘둘렀지만 “조직을 위해서 나라를 위해서”라고 변명하는 아버지. 그런 아버지가 담긴 유골함을 탈취하려는 아들을 조명한 <게스트하우스 꿈>.

제주4.3부터 삼청교육대까지 국가폭력의 굴레에서 아버지, 남편, 아들을 잃고 손자를 홀로 키워온 77세 해녀와 베트남 출신 손자며느리, 그리고 가족을 떠난 잘못을 뒤늦게 참회하는 아들며느리까지... 제주해녀 집안의 굴곡진 가족사를 그린 <돗추렴>.

저자의 시선은 한국의 현대사와 그 안에서 처절하게 살아온 인간의 삶, 그리고 욕망에 주목한다. <산지포 연가>는 제주의 영웅, 만덕에 대한 재조명이다.

저자는 책머리에서 “책을 읽지 않는 시대, 공연이 되지 못하는 희곡을 계속 써야 하는가 하는 자괴감이 강하게 밀려왔다. 작가는 시대 정신을 정확하게 읽고, 동시대 인간들의 치열한 삶을 진실하게 기록해야 한다는 변명을 마련하고서 그간 쓴 작품들을 정리했다”고 소개한다. 

작품마다 뉘우침, 화합, 갈등 봉합으로 마무리하는 공통점은, 인간에 대한 애정을 포기하지 않는 저자의 마음으로 다가온다. 평소 제주 연극, 문학계에 대한 날카로운 조언을 아끼지 않으면서, 글쓰기를 포기하지 않는 작가의 성품과도 닮아있는 듯 하다.

강준은 제주시 애월읍 출생으로 경희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하고 극단 <이어도> 창단 대표를 역임했다. 월간문학 신인상(1987), 삼성문학상(1991), 한국희곡문학상(1996), 한국소설작가상(2017) 등을 수상했다.

희곡집 《방울소리》, 《파도에 길을 묻다》, 《더 복서》 등을 비롯해 소설집 《붓다, 유혹하다》, 《사우다드》, 《오이디푸스의 독백》 등을 펴냈다 블로그 <예술정원, JOON>( http://blog.daum.net/joonartgarden )을 운영한다.

270쪽, 청어, 1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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