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 세이레 연극 ‘해뜨기 70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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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연극 '해뜨기 70분전'을 마친 설승혜(오른쪽), 박현수 배우. ⓒ제주의소리

[기사 수정 : 8월 23일] ‘결핍’은 인간의 동기부여 혹은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매우 강력한 원인이다.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 그것을 갈구하는 마음의 동력은 깊은 내면 심리에서부터 작동해 실로 어마어마한 힘을 가진다. 건강, 재산, 지위, 학력, 애정 등의 결핍과 그에 따라 생겨나는 소유욕은 장르를 가리지 않고 여러 예술 작품의 단골 소재이기도 하다. 극단 세이레의 190번째 공연 <해뜨기 70분전> 역시 이런 욕망이 정면으로 충돌하는 이야기다.

연극은 22세 나이 임산부 이현서(배우 박현수)가 대리모라는 사실과, 동시에 40대 중반의 여성 남병주(설승혜)가 여러 차례 유산을 경험했다는 정보가 관객에게 일찌감치 전달되면서 자연스레 나아갈 흐름이 예상된다. 남병주는 지금도 앞으로도 돈 걱정 없는 풍족한 삶이지만 정작 중요한 하나를 가질 수 없어서 고통 속에 살고 있다. 이현서는 알콜 중독 어머니 손에서 자란 불우한 어린 시절에, 지금은 대학 등록금을 위해 사채를 쓰고 보금자리가 없어 친구 자취방을 전전하며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꾸리고 있다. 그러나 상대가 가지지 못한 단 하나를 가진 상태.

다소 극단적이지만 정 반대에 위치한 두 인물은 흡사 언니·동생, 친정엄마와 딸 같은 사이로 시작한다. 알 듯 말 듯 묘한 긴장감을 이어가는 <해뜨기 70분전>은 남병주의 정체가 공개되면서 팽팽한 신경전으로 돌입한다. 가진 것은 악과 깡, 그리고 뱃속 아이 뿐인 20대 임산부는 상대를 심리적으로 물어뜯고 뒤흔든다. 하지만 40대 여인도 꾹꾹 참아왔던 감정을 터트려 반격에 나서며 철없는 대리모를 궁지로 몰고, 결국 두 사람 모두 파국을 맞이한다. 

엎치락뒤치락하며 주도권이 오고가는 흐름은 작품의 볼거리다. 서로의 내면을 집요하게 긁어내며 심리를 무너뜨리는 공방 역시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새 생명의 가치가 돈과 뒤틀린 욕망으로 바뀌다 못해 변패하는 고발성 메시지도 내포한다. 

설승혜는 진폭이 큰 감정을 노련하게 조율하는 연기력으로 극의 중심을 잡는다. 박현수는 생애 처음 경험하는 잉태와 출산에 혼란스러워하는 젊은 임산부의 심정을 생생하게 표현하려 노력했다.

2인극이라는 구성과 작품 내용 상 두 배우의 연기력은 밀고 당기며 팽행해야 하지만, 아무래도 힘의 균형이 설승혜 쪽에 쏠려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수시로 머리를 흔들고 객석을 정면으로 계속 응시하는 박현수의 연기 습관은, 작품 시작부터 끝까지 이어지며 관객에게 적잖은 부담을 안겨줬다. 또한 베테랑 배우의 기운에 밀리지 않기 위해 흡사 최대한 힘을 짜내며 맞서는 모습인데, 당찼지만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인상까지는 받기 어려웠다.

그도 그럴 것이 박현수는 아직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않은 미성년 학생 신분이다. 배우 경험은 또래들이 모인 극단 ‘청춘 모닥치기’의 뮤지컬 <헛묘>, <에필로그>가 대표적이다. 세이레 연극 <우연히, 눈>과 <세 마녀>에서는 음향 제작진으로 참여한 바 있다. 20년 간 많은 무대를 경험한 설승혜와 비교하는 건 애초 큰 의미가 없는 일이다.

그렇기에 이번 작품은 세이레에 있어 실험적이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배우부터 음향·조명 조작자까지 이제야 경험을 쌓아가는 10대 후반~20대 초반 나이로 채웠다. 조명과 음향에서 보다 적극적인 연출을 시도할 부분이 있었지만, 여백으로 남겨둔 것도 이런 이유와 무관하지 않을 터.

이번 <해뜨기 70분전>이 냉정하게 보면 완성도가 다소 떨어지고 긍정적으로 본다면 도전적인 무대인 까닭은 무얼까. 8월 31일 막을 올리는 세이레의 또 다음 작품 <자청비>와 일정이 겹치면서 주축 멤버를 투입할 수 없는 이유가 커 보인다. 동시에 내년부터 행정적인 족쇄를 풀고 본격적인 도약을 기대하는 세이레에게 미리미리 다양한 인재풀을 키워야 할 필요 역시 충분해 보인다.

지난해 <무슨 약을 드릴까요?>와 <제8회 전국 장애인 연극제>를 통해 확인했듯 연출자로서 설승혜는 서스펜스 장르를 꾸준히 시도하고 있다. 지역 연극계에서 의지를 가지고 특화된 장르를 시도하는 모습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극단도 새내기 연출자도 한 걸음 씩 나아가는 단계라고 이해하면서, 다음 연출작을 기대한다.

<해뜨기 70분전>은 22일과 23일 오후 4시, 7시에 공연한다. 장소는 세이레 아트센터 소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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