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대학교 초빙교수 이문호

얼마 전, 98세 노모가 갑자기 말 문(門)을 닫아, 요양 병원 입원 20일 만에 돌아가셨다. 돌아가시기 두 세 달 전에 친근하게 지내는 55세 우석이네가 “삼촌 할망, 어떵 살암쑤가?”라고 묻는 말에 “난 느네 어멍을 의지(依支)하고, 느네 어멍은 날 의지 하멍 살암서”라고 말씀하셨는데, 이것이 마지막 유언이 됐다. 

애·경사가 나면, 우리 고향 제주에는 삼촌 괸당과 겹부조 풍속이 육지와 다르게 존재한다. 돌 많은 제주에 돌문화가 사람 사는 사회에 뿌리내린 풍속이다.

제주에서 올레 담, 밭담, 장담 등 모두 곡선 돌담이다. 돌담은 밭이나 집 울타리 경계를 표시하면서 소나 말의 침범을 막고 바람과 불을 막는 역할을 한다. 제주에서 돌(石)의 삼촌(Uncle)은 ‘바람’이다. 삼촌은 굽돌 두 돌 위에 돌 한 덩어리를 올려놓은 삼각형의 삼(三)이고, 촌(寸)은 피붙이 마디다. 바람이 돌과 돌을 붙였다. 제주사람들은 밭담을 쌓는 것도 밭 돌담을 '붙인다'로 한다. 돌챙(石手쟁이)이는 ‘사람의 살(肉)을 붙이듯, 돌을 나풀나풀하게 붙이라’고 말한다. 제주 바람은 연 평균 초속 4.8m/s로 늘 분다. 홑담인 밭담은 불규칙(Random)하게 얼키설키 붙여진 돌담 사이의 틈새 돌 트멍(Window)으로 바람이 불고 지나지만 밭담은 끄떡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돌 각자가 제자리를 지키면서 돌의 이웃과 의지(依支)하고ㅜ서로 버티는 상생(相生, Reciprocal Cooperation)과 돌담이 연결체의 대칭(Symmetry) 특성 때문이다. 이것은 '돌과 돌의 수눌음'(石磧) Networks인데, 제주 특유의 사회관습 괸당(Social Custom Family Networks)도 돌의 수눌음에서 왔다. 수눌음(手積)은 ‘손들을 눌다’의 뜻이고 눌다는 쌓다로 손들을 붙여 서로 도와 가면서 화산회토의 척박한 땅에서 밭일을 한다. 눌은 보리눌, 촐 눌 등으로 쓰이며 보리나 소꼴을 원기둥으로 쌓는 것을 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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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담은 밭이나 집 울타리 경계를 표시하면서 소나 말의 침범을 막고 바람과 불을 막는 역할을 한다. 출처=Pixabay. 

한편, 괸당의 어원은 동사 ‘괴다(밑을 받치다, Support)’에서 비롯됐다. 친족이란 제주방언이다. 역사적으로는 돌 문화에서 밑을 받치는 형태는  괸돌이다. 괸돌은 고인돌에서 비롯됐다. 순 우리말인 고인돌은 고대 부족 국가 지배계층의 무덤 또는 제단을 의미하며, 이 단어의 유래는 큰 돌을 받치고(Support) 있는 것을 의미하는 괸돌(支石) 또는 고인돌에서 비롯됐다. 돌을 붙이면 돌담, 밑받침 되는 돌은 굽돌 또는 괸돌, 그리고 그 위에 다음 돌을 다시 붙여나가면 괸담(礎墻)이다. 돌과 돌의 수눌음(石磧, Neighbor Cooperation Culture)이다. 괸담(礎墻)은 제주인의 관습상 발음 변화, 할머니가 할망이 되듯 구어체(口語体)가 되면 괸당이 된다. 괸당은 제주인의 돌담 문화에서 꽃 핀 제주 특유의 수눌음 문화(文化)의 사회 연결관계 공동체망(Social Connection Relative Networks)이다.

그러면 제주 사람들이 괸당에 그렇게 집착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척박한 환경과 고난의 역사속에서 살아왔기 때문이다. 외부로부터의 온갖 위협들을 이겨내기 위해선 이웃 간 촌락내혼(村落內婚)으로 연대(連帶)할 수밖에 없었다.

괸당의 탄생 배경은 제주의 자연 환경과 국가 사회적 현상 때문으로 제주는 삼재도(三災島)로 수재(水災), 풍재(風災), 한재(旱災)로 흉년이 지속되었다. 특히 조선 영조(1739년)과 정조 때 심했다. 김만덕은 굶어 죽는 백성을 위해 구휼(救恤)을 했다. 흉년을 이기지 못해 뭍으로 나가는 사람이 많아서 제주도민이 출국 금지령 200년간(1629~1823) 내려졌다. 다음은 원나라의 제주 지배 100년(1273~1373), 일본의 35년 간 한일 합병(1910.8.29.~1945.8.15.)과 제주4.3사건 등이 있다. 따라서 항상 바람 부는 길목의 제주에서 사람들은 서로서로 의지하고 돕는 괸당 문화 탄생 배경이 됐다. 제주에서 늘 부는 바람은 24시간 제주 사람들에게 안부를 묻는 삼춘(?)이고 윈드 캐슬(Wind Castle)이다. 윈드 캐슬은 한라산-오름-밭담의 바람의 성(城)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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홑담인 밭담은 열린 공간에서 돌담사이에 적당한 틈새로 가볍게 보이는 아름다움에 있다. 사진은 제주 만장굴 인근 밭담. 출처=JEJUGEO, 위키백과.

집안에 어려움을 당했을 때 상부상조(相扶相助)로 부조(扶助)를 하는 것도 삼촌 괸당 돌담 속살(內肉) 문화가 빚어낸 공동체의 의지(依支)다. 1406년 태종 6년 문방귀(主簿 文邦貴), 1411년 고득종(高得宗, 1388-1452) 한성부판윤(현 서울특별시장)이 제주도내 처음으로 장묘를 했고, 후에 접(接)담으로 돌담을 쌓아 우마 및 산불을 막는 산담이 생겨났다. 접담이 제주 구어체로 ‘겹담’이 됐다. 겹담 산담이 넓이는 약 1-2m의 폭(Width), 그 사이 거리를 두고 안과 바깥쪽을 한 줄로 단단히 돌을 붙인 후, 잡석(雜石)으로 그 공간을 메워 돌담 사이 틈새가 없다. 외(홑)담인 밭담은 열린 공간에서 한 줄로 나풀 나풀 틈새를 내면서 가볍게(輕) 돌담을 붙여나가는 것에 반해서 겹담은 폐쇄 공간에 무겁게 돌을 붙여나간다.

부조(扶助)란 애경사시 고통이 틈새를 삼촌 괸당 끼리 나눠 갖는 풍속, 겹부조란 상주(喪主)가 여럿이 있을 때, 각 상주들에게도 친소 관계에 따라 각각이 따로 부조를 하는 제주의 유일한 풍속이다. 산담의 접담이 겹담으로 변하 듯, 겹부조란 말도 접(接)부조에서 온 말이다. 삼촌 괸당에게 겹부조는 겹담에서 보듯 무겁게(重) 느낀다.

홑담인 밭담은 열린 공간에서 돌담사이에 적당한 틈새로 가볍게 보이는 아름다움에 있다. 어머니의 49제를 모시는 첫째 날, 올해 8월 15일 녹차밭 서광리에서. / 전북대학교 초빙교수 이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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