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초점] 10여년 갈등 속 해군-강정마을회 해법찾기, 사법처리 사면-민군복합항 기능 복원 등 과제

부석종 해군 참모총장이 31일 강정해군기지 추진 과정에서 발생한 갈등에 대해 사과했다. ⓒ제주의소리
부석종 해군 참모총장이 31일 강정해군기지 추진 과정에서 발생한 갈등에 대해 사과했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10여년 간 첨예하게 이어져 온 제주해군기지 건설 갈등에 대해 해군 수장이 제주 강정마을 주민들 앞에 공식 사과했다. 입지 선정의 절차적 정당성, 추진 과정에서의 인권침해 등 숱한 논란에 대해 인정하고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아직 남은 과제가 산적해 '말로만 사과'에 그치지 않는 진정성 있는 후속 조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부석종 해군참모총장은 지난 31일 오후 2시 강정마을커뮤니티센터에서 '해군본부-강정마을회 간 민군상생발전을 위한 협약식'을 가진 자리에서 사과의 뜻을 표했다. 부 총장은 "민군복합형관광미항은 해양에서 대한민국 국익을 보장하고 평화를 지키기 위해 건설됐다. 그러나, 기지 유치 과정과 공사 진행 과정에서 구상권 청구, 행정대집행 등 가슴 아픈 많은 일들이 있었다"고 회고했다.

이어 "주민 여러분들께서 응어리 진 아픔과 상처를 지닌 채 지금껏 생활해 오신 것을 제주 출신이자 제주사업단장을 역임한 제가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며 "다시 한번 해군기지 유치와 건설 추진 과정에서 주민 여러분께 불편과 갈등을 초래한 데 대해 진심으로 사과와 위로의 마음을 전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강희봉 강정마을회장도 "오늘 참모총장이 사과했다고 해서 그동안 우리 가슴에 쌓아두었던 응어리가 완전히 풀어졌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과거에만 머물러 있으면 후손들에게도 우리와 같은 아픔을 물려주는 우를 범할 수 있다"며 "주민들은 아직 만족은 되지 않겠지만, 용서는 하고, 잊지 않으면서 미래로 나아갔으면 한다"고 화답했다.

◇ 정권 바뀌며 급 화해무드...대통령 유감표명-구상권 철회

해군의 공식 사과는 제주 해군기지 입지가 강정마을로 선정된 2007년 이후 13년, 해군기지 건설이 시작된 2010년 이후 10년 만이다.

지리하게 이어져 오던 제주 해군기지 갈등은 2017년 문재인 정권이 출범하면서부터 조금씩 화해 무드를 보이기 시작했다. 앞서 해군은 해군기지 공사 과정에서 발생한 지연 손실금 34억5000만원을 배상하라며 강정마을회와 주민 개개인에게 구상권 청구소송을 제기했는데, 정부는 2017년 12월 법원의 조정을 받아들여 구상권 소송 철회를 결정했다.

떄에 맞춰 강정마을도 변화를 선택했다. 해군기지 갈등 해소를 위해 '현실론'을 들고 나온 신임 회장이 당선되면서 정부와 제주도를 상대로 한 대응 전략에 차이를 보였다.

2018년 10월 문 대통령이 직접 강정마을을 찾아 주민들에게 공식 사과한 것은 대표적인 장면이었다. 당시 문 대통령은 "절차적인 정당성과 민주적 정당성을 지키지 못했다. 그로 인해 주민들 사이에 갈등의 골이 깊어졌고 주민 공동체가 붕괴하다시피 했다"며 "대통령으로서 깊은 유감을 표하고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이 같은 흐름 속에서 정부가 제주 출신의 부석종 해군참모총장을 임명하면서 공동체 회복의 전기가 마련될지 기대를 모아왔다. 부 총장도 취임 직후 첫 행선지로 강정마을을 선택해 주민들과 대화를 나눴고, 공식 사과를 표명하기에 이르렀다. 갈등 해결의 단초는 마련한 셈이다.

2018년 10월 11일 제주해군기지에서 열린 국제관함식의 문재인 대통령 연설 생중계 화면 갈무리. ⓒ제주의소리 자료사진.<br>
2018년 10월 11일 제주해군기지에서 열린 국제관함식의 문재인 대통령 연설 생중계 화면 갈무리.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 "공동체 회복 위한 부당 사법처리 사면돼야"

그러나 아직 완전한 갈등 해결을 위한 과제는 남아있다.

해군기지 건설 갈등 과정에서 사법처리된 주민 등은 253명에 달한다. 현재 계류중인 10명을 제외하면 기소인원 243명 중 사면처리된 것은 불과 21명 뿐이다.

아직도 222명의 주민들에게 범죄자의 낙인이 찍혀있는 것이다.

강희봉 마을회장은 이날 협약식에서도 "공동체의 완전한 회복을 위해서는 순수하게 오로지 강정마을만을 지키고자 투쟁했던 주민들의 사법처리는 부당하며 사면돼야 한다"고 강하게 건의했다.

◇ 무늬만 '민군복합항'...항구 내 군사보호구역 늘리려는 해군

사실상 무늬만 남아있는 '민군복합형관광미항'의 복원도 핵심 과제다. 민군복합형관광미항은 개항 이후 지금까지 민간 크루즈선을 들인 사례가 단 2건에 불과했다.

이른바 '사드(THAAD) 사태'로 인해 중국과의 관광교류가 끊겼고, 그 이후 코로나19 시국이 덮치는 등 악재가 겹쳤다고는 하지만, 강정크루즈항은 해군기지로서의 역할만 맡고 있다.

해군은 이 민군복합항 내의 모든 수역을 군사시설 보호구역 내 제한보호구역으로 지정돼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제주도는 크루즈선이 오가는 방파제 해역 중 함정 계류장을 제외한 곳은 보호구역에서 제외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해군은 군사시설 유사시에 대비한 보안과 통제를 위해 어쩔 수 없다는 주장을 펴고 있는 반면, 제주도는 통제구역 지정시 민군복합항의 본래 취지가 훼손된다며 평행선을 긋고 있다.

지난 5월 부석종 총장과 원희룡 제주도지사의 만남 당시에도 실무자 차원에서 이 같은 논의가 오갔던 것으로 전해졌다.

제주해군기지 전경.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무늬만 민군복합관광미항'이란 따가운 비판을 받고 있는 제주해군기지 전경.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 갈라선 공동체 "말로만 하는 사과 누가 못하나"

이미 갈라진 마을 공동체를 회복하는 방안도 시급한 과제다.

아직도 마을 내부에는 해군기지에 반대하는 반대주민회가 따로 결성돼 있다. 해군기지 건설 과정의 부당함에 가장 열심히 맞선 것도,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것도 이들이다.

반대주민회 한 관계자는 이번 부 총장의 사과에 대해서도 "현 집행부가 주민 의견을 묻지 않고 결정한 일이다. 말로만 하는 사과는 누가 못하겠나"라며 "이제까지 온갖 만행을 행사하며 기어코 해군기지를 완성하더니, 다 끝나니 '미안했다'고 하는게 맞는 것이냐"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 관계자는 "적어도 당시 잘못이 있는 이들에 대해 책임을 묻는 과정은 있어야 진정성을 볼 수 있지 않겠나. 현재 참모총장도 당시 갈등을 야기했던 이들 중 하나"라고 꼬집었다.

실제 이날 협약식에는 해군기지에 반대하는 활동가들이 들어서며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들은 "해군 총장이 진정 사과한다면 제주해군기지 건설 과정에 대한 진상규명이 전제돼야 한다"고 주장하며 추후 투쟁 의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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