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옷서점X한그루 복간 프로젝트 ‘리본시선’ 두 번째 시집

출판사 ‘한그루’와 제주 서귀포시 시집 전문 ‘시옷서점’이 공동 기획·발간하는 시집 복간 프로젝트 ‘리본시선’의 두 번째 시집이 발간됐다. 지난 2018년 강덕환 시인의 ‘생말타기’에 이은 두 번째 시집이다.

1993년 발간된 김경훈 시인의 《운동부족》(오름)은 4부 46편으로 이뤄져 있다. 이번 복간된 시는 ‘이덕구’, ‘재일조선인’, ‘강정’ 등 소재로 최근 발표한 시 12편이 덧붙여져 총 5부 58편의 시가 수록됐다.

발간 당시 김수열 시인의 발문과 함께 올해 김동현 문학평론가의 해설이 새롭게 실렸다. 여전히 날카로운 감수성으로 무장해 현장에 있는 김경훈 시인을 두고 김수열 시인은 ‘광대시인’, 김동현 평론가는 ‘송곳’이라 칭한다.

운동부족 2
김경훈

그저 적당히
비판당하지 않을 만큼만 적당히 비판하고
매 안 맞을 만큼만 적당히 개기고
잡혀가지 않을 만큼만 적당히 투쟁을 외치고
그래서 적당히
살도 찌고 배도 나오고 얼굴에 적당히 개기름도 흐르고
그래서 적당히 살림도 차리고 적당히 아이도 기르고
그렇게 적당히 여유도 있고
그렇게 적당히 부족하기도 하고
그렇지만 적당치 않아 보이는 것들에 대해
적당히 아주 적당히
경멸하고, 두려워하기도 하고 적당히
동정하고, 비웃기도 하면서
피 찰찰 흐르는 고민은 항상 시간이 없고
땀 팡팡 나는 실천은 항상 딴 사람 몫이고
그리하여 마땅히 적당한 때
적당한 곳에서 적당히 꽃피는
아름다운 환상 속에서 적당히 아주
아주 적당히
살해되고 아주 흔적도 없이 적당히 버려지는
그런 적당한 사회에
적당한 인간으로
적당히 길들여지는 적당한 법칙 안에 적당히
적응하는 그래서 동물적인
그래서 적당한 당신은

한그루는 강정해군기지 반대 운동 한복판서 온몸으로 시를 써온 저자의 책에 대해 “몸을 아프게 찌르는 자성의 송곳이자 세상을 찌르는 각성의 송곳으로 ‘운동부족’은 여전히 세상에 유효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제주 난개발, 불평등한 사회구조, 제주4.3 등 첨예한 사회 이슈 앞서 시인은 에둘러가지 않고 시를 실천한다. 이 꾸준한 ‘운동’이 긴 시간을 관통해 던지는 외침에 많은 이들이 응답하고 동참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김경훈은 제주시 조천읍서 태어나 대학 시절 문학동아리 ‘신세대’와 ‘풀잎소리 문학동인’ 활동을 하며 시를 쓰기 시작했다. 6월항쟁 이후 제주문화운동협의회 제주청년문학회와 마당극 단체인 ‘놀이패 한라산’에서 활동했다. 지금은 제주작가회의서 10년 이상 자유실천위원회 일을 한다.

1992년 《통일문학통일예술》 창간호에 <분부사룀>을 발표하고 이듬해 첫 시집 《운동부족》을 발간한 뒤 《삼돌이네 집》, 《한라산의 겨울》, 《강정木시》 등을 펴냈다. 산문집 《낭푼밥 공동체》, 마당극 대본집 《살짜기 옵서예》와 제주 강정해군기지 문제를 다룬 《돌멩이 하나 꽃 한 송이도》와 《강정은 4.3이다》를 출간키도 했다.

한편, 시선 ‘리본’은 절판된 시집에 새 옷을 입혀 되살리는 복간 프로젝트다. 의미 있는 시집들이 사라지는 것이 안타까워 시집 전문 시옷서점과 한그루가 마음을 모아 시집의 귀환을 기다린다.

한그루, 160쪽, 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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