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교육주체다] (3) 제주 학교비정규직 와이드 인터뷰 - 이미순·문수옥씨

흔히 교육의 3주체로 ‘교사·학생·학부모’를 꼽는다. 잠시 시선을 돌려 보면 우리가 놓치고 있는 또다른 주체가 있다. 교육활동 지원을 담당하고 있는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다. 소위 ‘비교사 노동자’로 호칭되는 이들도 분명한 교육주체다. 학교라는 교육공간에서 노동의 차별은 반드시 없어져야 하고 비정규직 노동에 대한 존중도 보장되어야 한다. 경쟁과 차별을 넘어 협력과 지원이라는 새로운 교육 패러다임이 자리잡고 있는 주민자치 교육감 시대다. 독립언론 [제주의소리]가 현장 전문가의 릴레이 와이드 인터뷰로 생생한 현장의 목소리를 전한다. / 편집자 
정년퇴직 첫 날. 이미순 조리실무사와 문수옥 조리사. 사진=교육공무직본부 제주지부
정년퇴직 후 첫 날인 9월1일. 이미순(사진 왼쪽) 조리실무사와 문수옥 조리사가 함께 한 모습. 사진=교육공무직본부 제주지부

2020년 9월 1일. 누구에게는 매년 돌아오는 9월의 첫날이지만, 누구에게는 새로운 인생의 시작이다. 문수옥(조리사, 60세)씨와 이미순(조리실무사,60세)씨는 학교 급식노동자로 20년 넘게 일하다 8월 31일자로 정년퇴직했다. 두 분 다 학교 급식실노동자이자,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전국교육공무직본부 제주지부 조합원으로 정년퇴직을 맞이했다. 

학교 급식실에서 20년 넘게 일하다가 정년퇴직을 한 두 분을 노동조합 사무실에서 만났다. 두 분 다 1960년생이다. 문수옥 씨는 제주지역에서 교육공무직 노동조합을 만드는 데 앞장섰다. 학교 급식실 조리사로 20년 넘게 일하고 마지막 3년은 노동조합 전임 간부로 일하다 정년퇴직을 했다. 이미순 씨는 조리실무사로 성산고에서 3년, 세화고에서 17년을 일하다가 정년퇴직을 했다. 

두 분은 중학교 친구다. 학교 급식실에서 일하면서 정년퇴직을 같은 날 맞이했다. 공통점은 그뿐 만이 아니다. 문수옥 씨는 “웃긴게요. 우리 둘이 생일이 똑같아요”라고 말했다. 이미순 씨도 “노동조합에서 하는 조합원 교육 마치고 차 마시면서 생일이 같은 것을 알았어요. 거짓말 같아요.”라고 덧붙였다. 태어난 시간도 1시간 차이란다. 

두 분은 이구동성으로 쥐띠에, 저녁 어스름 지는 시간에 태어나서 바쁘게 살 팔자였다고 말했다. 두 분의 닮은 꼴 인생역정은 생일과 정년퇴직으로만 끝나지 않는다. 두 분 다 비슷한 시기에 남편과 사별했다. 이미순 씨 남편은 2007년에 암으로 1년간 투병생활을 하다 운명을 달리했다. 문수옥 씨 남편은 2008년에 돌아가셨다. 몸이 안 좋아서 병원에 갔는데 바로 다음 날  폐혈증으로 죽음을 맞이했다. 마음의 준비도 할 시간도 없었다. 

두 분에게 학교 급식실 일은 가장으로 책임을 지기 위한 삶의 자리였다. 
이미순 씨는 “2000년부터 일했어요. 성산고에 3년 일했고, 그 후에는 세화고에서 일했어요. 아빠가 자기 고향에 가서 살겠다고 했어요. 내가 농사를 할 줄 아나, 다른 일을 할 줄 아나, 그래서 가까운 세화고에 전화했더니 오십써 해가지고, 일을 시작했어요. 당시 일당이 1만 9 천원이었어요. 지금까지 다녔어요. 결석 한 번 안 했어요.”

집안일이 있을 수도 있고, 아플 수도 있다. 20년 세월 동안 어떻게 하루도 빠짐없이 일을 할 수 있었을까. 자기 삶에 대한 억척스러운 성실함과 책임감이 만든 결과가 아닐까. 한국교육개발원이 2018년 펴낸 <학교급식 안전보건진단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학교 급식실 노동자 1명이 하루에 코끼리 두 마리 무게를 들고 내리는 중노동을 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미순 씨는 매일 학교 급식실에서 일을 마치고도 일을 더 해야 했다. 남편과 사별한 즈음 학교 비정규직노동자 급여는 월 60만 원 정도. “그 수입으로 살지 못해요. 아들 둘 공부도 시켜야 해서,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남의 밭에 가서 일하고 하루 일당을 받았어요” 

억척스러운 제주 여성의 이야기는 계속 이어진다. “아들이 대학 다닐 때 취업 면접을 보러 가야 하는데 양복이 없어요. 어쩌겠어요. 밤 12시까지 무 공장에 가서 박스에 넣는 일을 했어요. 그렇게 벌인 돈으로 아들 둘에게 양복 한 벌씩 사줬어요. 이제 남은 것은 병든 몸 밖에 없어요. 그렇게 열심히 살았어요.” 

우리 노조는 지난해 7월 제주지역 학교 급식실 노동자 508명을 대상으로 노동안전실태조사를 했다. ‘일상생활 및 근무 중에 몸(손목, 손가락, 어깨, 허리 등)에 통증이나 불편함을 느끼십니까’라는 문항에 응답자의 481명(97.2%)이 ‘그렇다’라고 답했다. 이는 노동 강도가 높다고 알려진 선박 제조업종 노동자 근골격계 질환 호소율 70~80%에 비교해서도 월등히 높다.  

문수옥 씨는 96년에 동광초등학교 조리실무사로 일을 시작했다. 당시 일당이 1만4천 원이었다고 한다. 그러다 조리사 자격증을 따고 고향 북촌초에서 조리사로 16년을 일했다. 문수옥 씨는 학교 급식실에서 일하면서 가장 어려운 게 무엇이었냐고 묻자 이렇게 답했다.

“집에 제사가 있으면 일을 해야 하는데, 대체인력을 구할 수가 없어서 힘들었어요. 북촌초는 조리사 한 명과 조리실무사 한 명, 두 명이 일하는데 한 명이라도 빠지면 일이 되지 않아요. 집안 대소사 말고도 아이들이 갑자기 아프면 참 힘들었어요.”라고 토로했다. 

근로기준법에 연차가 있다. 학교 관리자들이 학교비정규직노동자에게 연차에 대해서 알려주지 않았다. 문수옥 씨도 “우리한테 이야기 안 해주니까 연차라는 게 있는 줄도 몰랐어요. 운동회나 소풍이라든지 급식 없는 날에는 근무를 안 했어요. 그런 날 학교에서 연차를 본인한테 이야기 하지 않고 다 까버렸어요.”  

문수옥 씨는 나중에 연차가 있다는 걸 알게 되면서 노동조합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일하는 곳이 학교니까 열심히 일하면 월급도 거기에 맞춰서 줄 거라는 마음으로 들어갔지만 사실 그러지 않은거에요.”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전국교육공무직본부 제주지부는 2011년 6월 18일 설립했다. 이때 조리사, 과학, 전산분과 등 여러 직종 학교비정규직노동자들이 힘을 모아서 노동조합을 만들었다. 문수옥 씨도 그때 제주지역에 노동조합을 만들기 위해서 앞 장 섰다.  

당시 학교비정규직노동자 급여로 자녀 셋을 어떻게 키웠냐고 문수옥 씨에게 물었다. 
“아이고 안되죠. 나도 친구처럼 학교에서 일 마치고 나면 식당에 가서 일하고 그랬어요. 다행히 애들이 다 장학금을 받아 학자금이 별로 안 들었어요.”

작년 노동조합이 진행한 급식실 노동안전실태조사에 따르면 “일하면서 다쳤던 경험이 있냐”는 문항에 67.1%가 다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두 분에게 학교 급식실에서 일하다 다친 적은 없냐고 물었다.  

문수옥 씨는 후드 청소를 하다 떨어져서 큰일 날 뻔한 일이 있었다. “하수구 청소하다가 삐긋해서 자비로 깁스하고 급식실 일하러 다녔어요. 한번은 환풍기 청소하다가 떨어졌는데, 다행히 가스렌지 위에 떨어졌어요. 바닥에 떨어졌으면 큰일 났을 거에요.” 이미순 씨는 “일할 때는 다친 줄도 몰라요. 정신없이 막 뛰어 다니니까. 집에 와서 보면 때론 여기저기 나도 모르게 멍이 들어 있는 일이 많았어요”

‘우리는 조리실무사입니다’ 카드뉴스. 출처=전국교육공무직본부 제주지부
‘우리는 조리실무사입니다’ 카드뉴스. 출처=전국교육공무직본부 제주지부

산업현장에서 낙상 사고로 인한 사망 및 중상 등 중대 재해는 아주 높은 곳에서 떨어져서 생기는 것보다 1, 2미터 높이에서 떨어져서 주로 생긴다. 학교 급식실 후드(환풍기)를 청소하는 일이 중대 재해가 일어나기 십상인 높이다. 

이미순 씨는 “우리도 그 이전에는 우리가 다 닦았다가 이제는 업체에서 해요”라고 말했다. 노동조합과 교육청이 지난해 1월 단체협약을 맺으면서 “학교 급식의 위생 및 안전관리를 위해서 손이 닿지 않거나 닿아도 위험한 공간이 천정, 후드, 배관의 대청소는 전문업체에 위탁하여 처리한다”고 명시했다. 

교육청은 위 단협조항에 따라 초등학교, 중학교에는 매년 1백 만원을, 고등학교에는 매년 2백만원을 내려 보낸다. 그렇지만 이 예산으로 부족한 학교가 많다. 노동조합은 올해 교섭 요구안에 “후드, 배관, 천정, 2층 이상의 유리창 대청소는 5회 이상 업체 위탁하여 처리한다”고 문구를 넣었다. 

이미순 씨는 “음식 하는 일이 힘들기는 해요. 하지만 어쩌겠어요. 주어진 일이니까 열심히 해야죠. 처음에 미끄럼방지가 어디 있었어요. 하루에도 몇 번씩 넘어지고 그랬어요. 장화 바닥에 테이프 감아서 다들 일했어요. 요즘에 바닥에 미끄럼방지 다 붙이고 옛날에 비하면 많이 좋아졌어요.” 이어 “올해 5월 경에는 우리 학교 급식실에 애벌세척기가 들어왔어요. 그거 들어오니까 좋아요. 제주 시내 급식실에서 일하는 분들이 우리 학교에 애벌세척기를 보러 오기도 했어요.” 

작년 노동안전실태조사에 따르면 제주지역 학교 급식실노동자들은 조리업무에 이어 힘든 업무로 설거지 및 정리라고 응답했다. 특히 수작업 세척 시 손목과 팔꿈치, 어깨 부위의 반복성과 불안정한 작업자세가 많이 나타난다. 제주지역 급식실 노동자들은 몸의 질환을 예방하고 개선하는 데 있어 필요한 것 우선 순위로 애벌세척기 구입(53.2%), 반찬 수 줄이기(41.6%), 전 처리된 재료 구입(25.3%), 야채절단기 구입(6.8%)을 꼽았다. 

교육공무직본부 제주지부는 올해 8월말 정년퇴직 조합원에게 감사편지와 선물을 증정했다. 출처=전국교육공무직본부 제주지부
교육공무직본부 제주지부는 올해 8월말 정년퇴직 조합원에게 감사편지와 선물을 증정했다. 출처=전국교육공무직본부 제주지부

문수옥 씨는 “현재 급식실에서 제일 시급하게 개선할 것이 배치기준 같아요. 퇴직하면 알잖아요. 몸이 성한 데가 없어요. 북촌초에서 조리사로 일하면서 아침부터 배식이 끝나기 전까지 한 번도 화장실에 안 가요. 왜냐면 계속 참다 보니까요. 주어진 시간 내에 그 일을 마치려면 참는 수 밖에 없었어요. 그러다 보니 저는 질염, 방광염이 잘 생겼어요”라고 말했다. 문수옥 씨는 “파업할 때 도와주러 올테니 노동조합에서 급식실 배치기준 개선, 인력충원 등을 위해 노력하면 좋겠어요. 지금이야 마음이 그렇지만 그때 되면 그럴지 모르겠지만(웃음)”라고 강조했다. 

문수옥 씨는 정년퇴직 첫날 “감정이 아주 복잡해요. 세월이 야속하게 간다고 느꼈어요. 일이 힘들어 퇴직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와 있어요”라고 말했다. 이어 “정년퇴직 전 3년 가까이 노동조합에서 전임자로 일했어요. 잘 나왔다고 생각해요. 이런 인생 어떻게 살아보겠어요.”라고 노조 전임자로 정년퇴직을 맞이한 소감을 표현했다. 

공무원과 교사는 정년퇴직을 하면 이석문 교육감이 교육청으로 불러 공로패와 꽃다발을 증정한다. 교육공무직노동자도 지금은 학교 급식실 노동자 위주로 정년퇴직을 맞이하고 있지만, 이제 여러 직종에서 정년퇴직을 하는 노동자들이 많이 생긴다. 공무원과 교사처럼 교육공무직노동자에게도 8만 학생들의 급식, 돌봄, 교육지원 등을 해줘서 고맙다고 교육감이 직접 감사의 말씀과 꽃다발을 증정하는 모습을 앞으로 기대해본다. / 박진현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전국교육공무직본부 제주지부 교육선전국장

글쓴이 박진현은?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전국교육공무직본부 제주지부는 학교에서 일하는 교육공무직 노동자들이 가입하는 노동조합으로 조합원 1천3백여명의 제주지역 최대노조다. 박진현 국장은 2014년 4월부터 전국교육공무직본부 제주지부에서 일했다. 민주노총 부산본부와 공공운수노조 중앙에서 일한 햇수를 합하면 20년 가까이 노동조합에서 일했다. 박진현 국장은 원래 부산 사람이다. 2013년 제주로 이주했다. 주위 사람들에게 제주로 이주하면 노동조합에서 절대로 일하지 않겠다고 떠들었지만 헛말이 됐다. 지금 제주 와서 가장 잘한 일을 뽑으라면, 교육공무직본부 제주지부에서 일한 것이다.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고, 한 해도 파업과 투쟁을 하지 않은 해가 없었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노동조합 하는 보람과 재미를 느낀다. 노동존중 평등학교를 실현하기 위해, 조합원들의 노동과 삶을 전하고자, 제주의소리에 연재를 시작했다.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