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봉선의 마을 책방을 찾아書](4) / 제주시 한림읍 책방 ‘小里小文’

마을책방은 단순한 기호품을 파는 곳이 아닙니다. 대형서점처럼 책을 어마어마하게 팔아치우는 곳은 더욱 아닙니다. 후미진 도심 골목이나 시골 언저리에서 마을책방을 만난다면 그것은 행운이지요. 마을 초입 팽나무 아래 마을사람들이 모여들듯 책벌레들이 도란도란 어우러질 수 있는 사랑방 같은 곳입니다. 제주도 마을 곳곳에 작은 책방들이 사람을 살리고, 다시 사람이 마을을 살리고 있습니다. 그것이 마을책방의 가치입니다. [제주의소리] 시민기자 고봉선 시인이 바람을 쐬듯 책방마실을 다니고 있습니다. 책과 사람이 만나는 곳 ‘마을 책방’에서 책방지기의 책 살림 이야기를 시인을 통해 듣습니다. [편집자 글] 

장마 떠나고 몇 걸음이나 갔을까. 한림읍 상명리 ‘책방 小里小文’으로 향하는 길, 아침 볕살이 제법 야무지다. 책방 입구에 차를 세우고 문을 연 순간, 익숙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 근처 양돈장에서 풍겨오는 냄새다. 이 또한 사람이 살고 있다는 증거일 터, 시큰둥했다. 그래도 불쾌한 냄새인 것만큼은 확실하다. 그까짓 냄새쯤은 묻어두고, ‘책방은 이쪽이에요. 어서 오세요.’ 돌담 위 수세미가 노랗게 웃으며 책방 쪽을 가리킨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책방 小里小文’으로 들어가는 길, 여물어가는 수세미가 길을 가리키는 듯 책방을 향해 있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골목 정면으로 보이는 피자 가게가 화려하다. 낯선 이국땅에 들어서는 기분이다. 왼쪽 건물 처마 밑 돌담 벽에 보이는 ‘책’이란 글자, 괜히 가슴이 설렌다. 앞에 놓인 두 개의 의자는 고흐의 의자일까, 고갱의 의자일까. 설렌 가슴으로 들어선 마당, 제주를 상징하는 돌담집 벽에 기대선 간판, ‘책방 小里小文’이 나를 반긴다.

‘작은 마을 작은 글’, 달콤한 낮잠 후 엄마 젖을 빠는 아기가 떠오른다. 한마디로 해맑다는 뜻이다. 책방지기가 아이를 좋아하는 사람인가 보다. 마당엔 땅따먹기 놀이 선이 그어져 있다. 그 선을 보는 순간, 아이들의 떠들썩한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문을 열고 들어섰다. 앞문에서 뒷문에서 다툼질 벌이듯 들어선 햇살이 환하다. 그 햇살에 파묻힌 책들에서 따스함이 묻어난다. 그 책들과 같은 곳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 최상의 행복이 아닐까. 운명적인 만남으로 부부가 되어 같은 곳을 바라보는 책방지기 정도선‧박진희 부부를 만나보았다. 

“만남”
서울의 여인 박진희 씨와 부산의 남성 정도선 씨가 책이란 인연으로 만나 둥지를 틀었다. 2011년 11월, 정도선 씨가 서울 어느 서점에서 일하고 있을 때다. 정도선 씨는 우연히 SNS에서 한 고객의 담벼락을 보게 되었다. 고객은 <로자 룩셈부르크 평전 >이라는 절판된 책을 찾고 있었다. 절판된 책을 찾을 땐 누구보다 서점원의 노력이 필요하다. 책을 찾고 기뻐할 고객을 생각하며 정도선 씨가 나섰다. 출판사, 도매상, 전국 헌책방을 수소문했으나 소용없었다. 오직 찾겠다는 집념으로 페이스북에 사연을 올렸다. 몇 시간 후, 기적이 일어났다. 꼭 찾길 바란다는 댓글들 밑에 “저에게 그 책이 있어요.”라는 댓글이 올라온 것이다. 정도선 씨가 원하던 댓글의 주인공, 바로 박진희 씨였다. 책을 빌미로 만난 두 사람은 세상을 보는 시선에서부터 많은 것이 닮아 있었다. 그 닮음 하나로 둘은 서로에게 취하며 부부가 되었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50여 미터의 짧은 골목을 들어서면서 왼쪽으로 방향을 틀기 전 책방과 붙어 있는 부속 건물. 두 개의 의자에 빈센트 반 고흐의 얼굴이 겹친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시련”
《오늘이 마지막은 아닐 거야》(마음의숲). 2015년 9월에 출판된 정도선‧박진희 부부의 공저다. 무언가 사연이 있을 것만 같은 제목, 느낌이 심상치 않다. 집에 오자마자 인터넷을 검색했다. 다행히 구매할 수 있다. 마음이 급하여 e-북으로 구매했다. 나의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부부의 공저 《오늘이 마지막은 아닐 거야》란 제목 속엔 사연이 있었다.
이들 부부의 이야기를 읽다 보니 왜였을까? ‘크리스토퍼 엣지’의 《앨비의 또 다른 세계를 찾아서》란 책이 생각났다. 정도선‧박진희 부부야말로 이 책에서 말하는 다른 시공간, 즉 각각의 ‘병렬 우주에 존재하는 한 몸이 만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두 사람은 닮음꼴이 많았다.

《앨비의 또 다른 세계를 찾아서》는 양자 물리학 이론을 바탕으로 한 시공간 우주여행과 가족애가 소재인 성장 소설이다. 병렬 우주 이론은 우리가 사는 우주 외에도 다른 우주가 존재한다는 이론이다. 하지만 아직은 현실적으로 입증되지 않은 가설이다.

앨비의 엄마는 과학자다. 그런데 암에 걸리며 세상을 떠났다, 엄마가 그리운 앨비는 병렬 우주 어딘가에 엄마가 살아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엄마의 노트북에 있는 미니 강압자 충돌기를 이용하여 5차원으로 통하는 웜홀을 만들었다. 그리고 병렬 우주로 떠났다. 하나, 둘, 셋, 넷. 세 개의 우주에서는 엄마가 돌아가셨고, 마지막 우주에서 앨비는 태어난 지 얼마 안 돼 죽어 있었다. 하지만 엄마는 아프기 전 모습으로 살아계셨고 임신 중이었다. 앨비는 살아 있는 엄마 품에 안겨 있고 싶었다. 그러나 혼자 남은 아빠에게 자신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래서 자신이 사는 우주로 돌아온다. 하는 일이나 성격은 달랐지만, 병렬 우주에서 앨비는 또 하나의 자신과 엄마, 아빠를 만난 것이다. 비록 가설이지만, 다른 시공간에도 나와 똑같은 존재가 있을 수 있다는 뜻이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제주 전통 초가에서 보편적으로 부엌문에 사용되던 통나무 문을 활용하여 세워진 간판.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이대로라면 괜찮아”
정도선 씨는 독립을 꿈꾸며 오래전부터 서점에서 일했다. 그러나 모르는 게 약이라고 했던가. 책방 사정을 훤히 아는 그로서는 독립할 용기가 없었다. 그런 그에게 느낌이 왔다. 여기라면, 제주의 서촌 상명리를 보는 순간 꽂혔다. 한마디로 공간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는 뜻이다. 그동안 꿈꾸던 모습이 그의 머리에 그려졌다. 

대도시 서점, 애초 부부에게 그런 야망은 없었다. 책방에서 마진이 나오기 힘들다는 것도 잘 안다. 즉, 책방 운영으로 생계를 꾸리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그래도 이곳이라면 할 수 있을 것 같다. 부부는 한 달만 이곳에서 지내보기로 했다. 그렇게 시작된 책방, 그래도 먹고는 살아야 했다. 둘 중 한 사람은 다른 일을 구하기로 했다. 그런데 의외로 생계가 될 만큼 책방은 빠르게 자리 잡았다. 다행이다. 둘 중 한 사람이 다른 일은 하지 않아도 되었다.

공저에서 보여주는 부부의 사랑은 아름다웠다. 하지만 아름다운 만큼 아프기도 했다. 아니, 아파서 더 아름다웠는지도 모른다. 결혼하고 2개월, 신의 질투였을까 농간이었을까. 박진희 씨는 “희귀 척추암”이란 판정을 받았다.

아, 얼마나 놀랐을까? 다리에 힘이 풀렸을 것이다. 의욕도 다 잃었을 것이다. 하지만 사랑의 힘은 강했다. 섣부른 위로 따윈 필요 없다. 서로의 눈동자에 담긴 마음만 바라볼 수 있으면 되었다. 막연한 불안에 행복을 가둬 놓을 수는 없었다.

맥없이 병이 낫길 바라며 시간을 보내기엔 인생이 너무 짧다. 부부는 환자라는 사실도 잊고 세계 일주란 미션을 던졌다. 그리고 시간과 스마트폰이란 굴레에서 벗어나 마음껏 즐겼다. 몸은 둘이어도, 이들 부부는 같은 곳을 바라보고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었기에 가능했다. 

소통의 공간이자 자신의 존재를 느끼게 해주는 서점, 시공간을 불문하고 벗이 되어주는 책. 이 모든 걸 밀쳐두고 떠난 여행에서 이들은 보석을 캤다. 이들만의 이야기를 책으로 만든 것이다. 이들의 이야기는 작은 우주라는 서점 속을 채우는 또 하나의 책이 되었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짧은 골목을 들어서면 정면에 피자집이 보이고, 바로 왼쪽에는 마당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는 집 두 채가 있다. 한 채는 살림을 하는 집이고, 이곳은 책방이다. 마당에는 전통놀이 땅따먹기 놀이 선이 그어져 있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역마살 아닌 역마살”
역마살이 끼었다고 할 만큼 이들 부부는 서울, 홍성, 삼청 등 여러 곳을 돌아다녔다. 그렇다고 한량으로 돌아다닌 것이 아니다. 동네가 좋아서, 혹은 직장을 따라서 등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은 모든 걸 정리하고 배낭을 짊어졌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였다. 여행에서 부부는 대륙을 넘나드는 여정과 투병 소식을 페이스북에 기록으로 남겼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바로 《오늘이 마지막이 아닐 거야》란 책이다.

“역마살 끼었다고 하나요?” 정도선 씨가 웃으며 말했다. 단편적인 이야기만 들었을 때 나도 그런가 보다 하였다. 하지만 그들의 공저 《오늘이 마지막이 아닐 거야》란 책을 읽다 보니, 왜 돌아다녀야만 했는지 알 수 있었다. 역마살이란 표현 뒤엔 아픔이 숨어 있었다, 돌아다녀야만 했던 이유,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이 아니었을까? 그 피치 못할 사정이란 게 아내 박진희 씨 건강이었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거주지를 옮겨도 부부는 손에서 일을 놓지 않았다. 먹고 살아야 했기 때문이다. 아니, 오히려 더 치열하게 살았다. 이런 부부가 한없이 위대하게만 느껴졌다.

여행에서 돌아온 후 정도선 씨는 경남의 한 서점에서 일했다. 독립서점이란 꿈을 이루기 위해서다. 그러던 중 2019년 2월, 부부는 ‘제주에서 한 달 살아보기’ 프로젝트로 제주의 동촌 시흥에 머물게 되었다. 하지만 한 달은 너무 짧았다. 다시 ‘한 달을 더 살아보자’ 하면서 서쪽으로 오게 되었다. 

누구의 손길이었을까? 이들 부부에게 상명리가 꽂혔다. 그리하여 2019년 3월, 이곳에 터를 잡으며 그들만의 독립서점이 탄생했다. 부부는 이제 제주라는 책꽂이에 꽂혀 한 권의 책으로 살아가고 있다. 이곳에서 오래 머물고 싶다는 부부, 그들에겐 ‘책방 小里小文’이 역마살이란 비유를 치료하고 정착할 수 있는 곳이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이곳은 양돈장이 몰려 있는 곳, 그 이름 뒤에 붙는 냄새 때문이다. 예전보다 많이 줄긴 했지만, 휴일은 물론 평일에도 심하다. 지역 사람들의 불만이 민원을 넣기도 한다. 하지만 모든 것엔 양면성이 있는 법, 대신 임대료가 싸다. 양돈 역시 살아가기 위한 방편이다 보니 해결책은 쉽지 않다. 그래도 다행인 건, 양돈업자들도 이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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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 小里小文’ 내부 중 일부. 손님이 책들을 살피고 있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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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 小里小文’ 내부 중 일부.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꼬마 손님”
그렇다면 홍보는 어떻게 하고 있을까. 의외로 부부는 따로 광고하거나 홍보하지 않았다. 그저 SNS만 이용했다. 집을 수리하는 것에서부터 책방을 만드는 과정까지 SNS에 올리다 보니 자연스레 홍보되었다는 것이다. 

첫 손님은 지인들이다. 기억나는 동네 손님이 있다. 동네 사람들이 모인 밴드에서 누군가가 ‘여기 상명리에 책방을 열었다.’는 소식을 알렸다. 차를 몰고 지나던 동네 사람이 그 소식을 듣고 핸들을 돌렸다. 그리고 곧바로 ‘책방 小里小文’으로 오셨다. 와서는 이런 데, 즉 상상할 수도 없는 곳에 책방이 생겨서 너무 좋다며 기뻐해 주었다. 시작부터 느낌이 좋았다. 부부는 그분의 표정과 한마디에 절로 힘이 솟았다. 

내가 어릴 땐 책벌레라는 표현을 많이 썼다. 하지만 지금은 별로 듣지 못한다. 그래서 난 책벌레가 멸종위기종인 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아니다. 모르고 있었을 뿐, 아직은 책벌레가 많았다. 여행지 책방에서 구매하는 책, 정말 책이 좋아서다. PC 앞에서 손가락 한 번 클릭으로 구매하는 느낌과는 사뭇 다르다. 괜히 흐뭇해서 나는 자꾸만 입이 찢어지려고 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책방을 탐방하면서 책방지기들의 철학을 듣다 보니 수십 권의 책을 읽는 기분도 들었다. 마치 여행을 하는 것 같은 착각에도 빠졌다. 체험이 곧 독서이다 보니, 독서를 하였다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내가 이럴진대, 하물며 자신이 사는 곳에 책방이 생겼을 때 기뻐하는 그 동네 분의 심증을 백 번 헤아리고도 남을 것 같았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책방에 들어서면서 정면으로 보이는 모습.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책방 근처엔 ‘금악 초등학교’가 있다. 그런데 시골이다 보니 문화 활동을 제대로 누리지 못한다. 그런 처지가 안타까웠을까. 어느 날 한 선생님께서 아이들을 데리고 책방으로 견학 왔다. 책방이 어떤 곳인지 실질적으로 볼 수 없었던 아이들, 서점을 둘러보며 얼마나 설렜을까. 잠자던 꿈을 깨우는 계기도 되었을 것이다. 얼굴도 모르는 그 선생님이 고마웠다. 견학 후 아이들은 저희끼리 다시 책방에 오기도 했다. 

얼마 전이다. 다녀간 아이 중 한 친구가 소리소문없이 책방을 찾아왔다. 이유인즉슨, ‘엄마한테 책을 선물하고 싶어서’라고 했다. 아이는 부부에게 책을 골라 달라고 했다. 엄마 생일이냐고 물었더니 자기 생일이란다. 낳아 주신 엄마께 책을 선물하고 싶다는 것이다. 그런데 조건이 있다. ‘아픈 건 아니지만 엄마는 지금 힘든 시기를 겪고 있다. 그런 엄마가 자기를 돌볼 수 있는 책을 추천해 달라.’고 아주 디테일하게 요구했다. 부부가 책을 추천해주자, 아이는 고사리손으로 꼬깃꼬깃한 용돈을 주머니에서 꺼냈다. 그 모습에 콧등이 시큰하더란다. 듣는 나도 시큰했다. 시골에 책방이 있다는 사실이 더없이 감사했다. 

한때는 공순이가 되어도 뭍으로 가야 성공이라고 여기던 때가 있었다. 그런데 성인이 되고, 시답잖은 글을 쓰면서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이었는지 깨닫게 되었다. 밭을 매다가 근처 냇가에 가서 엎드려 물을 마시고, 올챙이도 잡고, 산열매도 따먹고, 돌을 일구면 털게도 나오고, 이런 경험들이 지금은 다 재산이다. 주변의 자연을 경험할 수 있는 게 하나의 독서였다. 하물며 초등학교 때 스스로 서점을 찾고 책 한 권을 손에 쥘 수 있다는 사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경험인가. 내가 다시 어린 시절로 돌아가 그 아이가 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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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 내부 중 일부. 손님이 책을 고르고 있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책은 다양하게”
관광객이 7이면 지역 손님은 3 정도, 3할인 이들은 대부분 시내에서 오는 사람들이다. 아이와 함께 오는 사람도 있고, 바람 쐬러 나온다는 노교수도 있다. 새 책이나 신간을 보고 싶은 욕구는 많은데, 제주도 인구에 비례하면 그런 걸 볼만한 책방들이 적다. 그래서 먼 곳임에도 굳이 찾아오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의 관심사에 맞춰 모든 책을 진열할 순 없다. 그래도 부부는 다양한 관심사와 시대상을 반영하기 위해 책 선정에서부터 큐레이션까지 애쓰고 있다. 

책 선정을 할 때 부부는 존경하는 작가, 언론사, 북 섹션, 신문, 미디어, SNS 등 모든 루트를 이용한다. 하지만 쉽지 않다. 그래도 부부는 신간의 정보를 살피고, ‘책방 小里小文에 어울리는가?’에서부터 소개할 만한 책들을 매일같이 추려서 가져온다. 그래서인지 ‘책방 小里小文’에선 더 따스함이 묻어난다.

서점의 구조가 예전엔 위탁이었다. 예를 들면 빌려서 책을 판매하고, 판매되면 대금을 지불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요즘은 현매다. 즉 돈을 주고 사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엔 문제가 있다. 책을 들여놨다고 해서 모든 책이 팔리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선정하는 책이 팔릴만한 책이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돈은 들어가는데 재고가 쌓인다. 재고 역시 수입에 반영된다. 그렇기 때문에 팔리지 않으면 떠안아야 한다. 책방이 어려운 이유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길이 다양한 책을 갖다 놓는 것이다. 

이러한 수가 쌓이면 자체적으로 검열을 하고 책들을 데려오게 된다. 모든 걸 부부가 부담하면 망하게 될 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부는 검열하지 않는다. 팔리든 팔리지 않든 마음에 드는 책을 데리고 온다는 것이다. ‘책을 데리고 온다’라는 표현에서 책이 곧 그들의 자녀임을 알 수 있다. 이처럼 부부는 책이 팔리지 않을 경우 ‘소장한다’ 생각하고 갖다 놓는다. 사람들이 이 책방을 좋아하는 이유가 따로 있는 게 아니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책방 앞에 선 정도선‧박진희 부부. 마냥 맑기만 한 표정이 꼭 소년‧소녀 같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취향은 편협할 수밖에 없어”
아무래도 시골이다 보니 판매를 위한 행사도 많아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행사는 많은 편이 아니다. 굳이 행사가 아니어도 한 번, 두 번, 세 번……, 단골손님도 많다. 단골은 대부분 도민이다. 

책방을 둘러보면 베스트셀러부터 에세이는 물론 독립서점 책들도 많다. 심지어는 잘 안 팔리는 책도 있다. 그래서 오히려 책방 안이 더 빛나기도 한다. 책방은 마치 봄꽃이 핀 것처럼 알록달록 원색적인 느낌마저 든다. 이 모든 책은 책방지기 부부가 꽂힌다는 책을 갖다 놓은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 부부가 추구하는 취향은 어떤 것일까? 

정도선 씨의 대답이 걸작이다. 취향이 없는 게 취향이란다. 취향이 분명히 있긴 하지만, 취향을 드러내는 구색을 갖춘다거나 큐레이션은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자신들의 취향이 드러나는 서점은 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취향이라는 게 한계가 있는 거라 편협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부는 다양한 관점을 보여줄 수 있는 책들로 진열하고 있다는 것이다.

부부는 분명히 촉이 꽂히는 책, 마음에 드는 책을 데려온다고 했다. 그런데 취향을 드러내지 않는다? 아리송하다. ‘어떤 책이 많이 팔리는가?’에 대한 질문에서도 정도선 씨는 뭐라고 말할 수 없단다. 본인이 재미있게 읽었다 해도 다른 사람이 재미있게 읽는 건 아니더라는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책을 선정할 때 부부는 언제나 한 발짝 뒤로 물러선다. 타인의 입장, 즉 객관적으로 바라봐야 하기 때문이다. 책방 주인의 취향이 드러나는 큐레이션보다는 많은 이가 관심을 두는 분야의 책들, 다시 말하면 동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이 느끼고 변화하며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데 밑거름이 될 수 있는 책을 큐레이션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많은 사람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다양한 정보통을 이용할 수밖에 없다.

책이란 과연 무엇일까? 세상과 소통하는 제1의 도구라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그래서 책방지기 부부는 책 선정은 물론 판매대 외에도 필사 코너며 블라인드 북 등 다양한 공간을 마련하고 있다. 이 다양한 공간에서 고객은 세상과 소통할 수 있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키워드만으로 상상하며 책을 고르는 블라인드 북 코너.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블라인드 북”
어쩌면 당신의 ‘인생 책’일 수 있는 특별한 책을 선물합니다. 두근두근, 키워드만으로 상상하며 책을 고르는 블라인드 북 코너입니다. 예상치 못한 인생 책을 만날 수 있는 특별한 기회를 소중한 사람에게 선물하세요. 혹은 소중한 나에게 선물해보세요.

뭐니 뭐니 해도 ‘책방 小里小文’의 특별함은 블라인드 북이다. 책 고르기를 주저하는 사람에겐 아주 제격이다. 그야말로 행운권 추첨과도 같은 찬스다. 책마다 몇 가지 키워드가 #해시태그로 달려 있다. 자신도 좋고 연인이나 은인도 좋다. 책을 선물하고 싶은 사람을 떠올리며 고르면 된다. 물론 복불복일 수도 있다. 설령 ‘꽝!’이라 하더라도 핑계에 또 다른 세계를 만날 수 있잖은가? 고를 때의 설렘, 짜릿한 쾌감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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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 小里小文’을 나설 때, 골목길 울 밑에 선 봉선화가 방글방글 웃으며 잘 가라고 인사한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이들의 세계여행이 곧 병렬 우주로 떠난 여행은 아니었을까? 부부는 세계여행에서 삶의 무게를 줄이는 법을 배웠다. 삶의 무게가 줄어들수록 사랑도 희망도 커졌다. 어쩌면 이들 부부의 세계여행은 병렬 우주에서 거대한 서점을 누비고 다닌 책읽기였는지도 모른다. 그 책읽기에서 부부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에 대한 답을 찾고 현재의 우주로 돌아왔다. 역마살이란 어휘 속에 숨어 있는, 크기를 가늠할 수조차 없는 부부의 사랑이 여기 있었다. 

우린 간혹 고집과 자존심을 혼동하기 쉽다. 하지만 고집과 자존심은 엄연히 다르다. 고집도 고집 나름, 버려야 할 고집과 지켜야 할 고집이 있다. 버려야 할 고집을 버리지 못하거나 지켜야 할 고집을 지키지 못하는 이유 또한 책에 있을 것이다, 우리가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다. 단 한 권의 책으로 모든 걸 한꺼번에 잡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도 ‘책방 小里小文’과 함께하는 한, 내 안의 버려야 할 고집은 소리소문없이 사라지고 지켜야 할 고집도 지킬 수 있을 것이다.

책방을 나섰다. 울 밑에 선 봉선화가 방글방글 웃으며 다가온다. 그 모습이 마치 이들 부부의 앞날은 희망뿐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부부의 건강과 함께 ‘책방 小里小文’이 소리소문없이 퍼져가기를 바랄 뿐이다. 부디 이곳에서 그들이 그려왔던 꿈을 마음껏 펼칠 수 있기를 바란다.

“책방 小里小文은”
당신의 꿈은 아직 살아 있나요? 그렇다면 ‘책방 小里小文’을 찾아가 보는 건 어떨까요. 어느 날 소리소문없이 내 곁을 떠나기 전에 말이죠. 찾아가는 길은 제주시 한림읍 중산간서로 4062. 오픈 시간은 매일 11시부터 오후 여섯 시까지이며 화요일과 수요일은 휴무입니다. 함께하는 길은 홈페이지 @sorisomoonbooks입니다. 

고봉선은?

제주시 애월읍 고성리에서 농부의 딸로 태어나 식물과 함께 자랐다. 지금은 허름한 고향 시골집에서 꽃과 함께, 독서지도사를 하며 아이들과 지내고 있다. 한국해양아동문화연구소 운영위원, 애월문학회 회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독립언론 [제주의소리]에서 [고봉선의 마을 책방을 찾아書]를 통해 격주로 독자들을 만난다. 마을 책방에 깃든 사람과 책 이야기가 소개된다.

저서로는 시집 ‘詩를 먹고 자라는 식물원’, 꽃과 함께 사는 이야기 ‘詩가 사는 기행식물원1, 2, 3, 4’, 동화집 ‘지우개’가 있다. 식물원 시리즈로 전자도서관에 식물원을 꾸미는 게 소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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