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世通, 제주 읽기] 175. 리처드 로티, ‘우연성, 아이러니, 연대’, 김동식·이유선 역, 사월의 책, 2020

리처드 로티, ‘우연성, 아이러니, 연대’, 김동식·이유선 역, 사월의 책, 2020. 출처=교보문고.

1. 계획할 수 없는 삶

질병관리본부는 얼마 전 ‘흩어지는 것’을 신종 코로나 시대의 새로운 연대 방식으로 제안했다. 몇 달 전에 아프면 쉬라는 지극히 상식적인 뉴노멀을 제시한 것에 비하면 이번 제안은 파격적이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쌍팔년도식 구호에 익숙한 나로서는 흩어지는 것이 연대의 방식이 될 수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이제 나 자신과 동료들을 살리기 위해서는 흩어져야 하는 세상이 되었다. 친구들과 우정을 돈독히 하려면 만나지 말고 거리를 두어야 하고, 부모님께 효도하려면 명절에 귀향하지 말고 집에 있어야 한다. 

인류가 이 정도의 팬데믹 상황을 겪으리라고 예상한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만약 중국 정부가 처음에 정보를 통제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전염 확산 방지에 나섰더라면 사태가 이 정도까지 오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가정은 무의미하다. 그것은 마치 시이저가 루비콘 강을 건너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의문을 갖는 것과 같다. 역사는 우연적인 사건들로 점철되어 있으며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우연적인 사건이 만들어낸 결과에 적절하게 대처하는 것뿐이다. 

인류의 역사와 마찬가지로 개인사도 우연으로 가득 차 있다. 그 누구도 계획을 가지고 태어나지는 않는다. 어떤 부모를 갖게 될 것인가 하는 것부터 전적으로 우연적이다. 나의 삶이 오늘날 이렇게 된 것은 내게 닥친 다양한 우연들에 대처해 온 결과이다. 많은 사람들이 생계를 위협받을 정도의 불운을 겪고 있고, 앞으로 닥칠 세상의 변화에 대해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적절한지 아직 모르고 있다. 팬데믹의 상황은 삶을 계획하는 것 자체를 어렵게 만들고 있다. 

삶이 계획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해서 아무런 계획을 갖지 않고 살 수는 없다. 오히려 계획대로 되지는 않을 거라는 예상을 포함하는 계획을 세울 필요가 있다. 내가 대처해야 할 우연성은 나 혼자만의 지성과 의지만으로 맞서기에는 너무 크고 거칠기 때문이다. 내가 삶의 어떤 계획을 성취했다면 그것은 수많은 운 좋은 우연적인 사건들과 우연히 만난 친절한 사람들 때문일 것이다. 

다양한 우연성에 대처할 방법을 미리 알 수는 없을 것이다. 우연성에 대처하는 방법은 그것을 직접 겪고 시행착오를 거쳐야만 알 수 있다. 신종 코로나 사태의 진정한 결말은 아직 닥치지 않았으며 그런 재난에 대한 대처법을 미리 제시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대안은 그런 재난에 맞서 힘을 합칠 자세가 되어 있는 동료들의 도움뿐이다. 우리에게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은 시대를 초월한 철학자나 성인의 거대한 진리의 말씀이 아니라 우리가 공통적으로 겪고 있는 우연적인 고통을 극복할 동료들의 친절함이다. 바야흐로 동료들과의 연대를 위해 동료들과 명확히 거리를 두어야 하는 아이러니의 시대이다.

2. 친절하고 겸손하게 살기

리처드 로티의 『우연성, 아이러니, 연대』(김동식, 이유선 역, 사월의 책, 2020)의 개역판을 얼마 전에 출간했다. 로티라는 철학자는 국내에 대중적으로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이 책은 내게는 일종의 ‘인생의 책’이라서 겸연쩍음을 무릅쓰고 간략히 소개해 보고자 한다. 이 책을 처음으로 번역 출간한 것은 24년 전인 1996년이다. 로티의 방한에 맞추어 급하게 번역해서 출간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24년이 지났다. 그동안 나는 로티의 지도를 받기 위해 버지니아 대학을 다녀왔고, 로티에 관한 여러 논문과 입문서 수준의 책을 몇 권 냈다. 로티는 2007년 췌장암으로 생을 마감했다. 철학도로서의 나의 삶은 대학원 시절 우연히 읽게 된 로티의 책을 빼놓고는 상상할 수 없다. 처음으로 이 책을 번역한 후 평생에 걸쳐 로티가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한 것이 정작 무엇이었을까를 생각해 온 것이 내 공부의 전부가 아닐까싶다. 이 책에서 언급된 거의 모든 소설책들과 철학책들을 추적해서 읽고, 개역판을 내면서 세세한 내용들을 다시 꼼꼼히 읽을 기회를 얻었지만 여전히 안개처럼 여겨지는 대목이 많다. 

판데믹의 상황에 비추어 이 책의 내용을 요약해서 말하라고 하면, 아마도 ‘친절하고 겸손한 삶의 자세’에 대한 책이 아닐까 한다. 물론 그런 어휘는 이 책에 등장하지 않는다. 로티가 이 책에서 제안하고 있는 대안적 문화의 영웅은 ‘자유주의 아이러니스트’라는 인물이다. 자유주의자란 다른 사람에게 친절한 사람이고 아이러니스트는 자기 자신에 대해 겸손한 인물로 풀어볼 수 있다. 

이 책은 3부로 되어 있는데, 1부는 언어, 자아, 공동체의 우연성, 2부는 아이러니즘, 3부는 잔인성과 연대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우선 우연성의 문제를 다루는 1부는 플라톤으로 대변되는 본질주의적인 서양철학사를 전복시키는 도발적인 내용으로 되어 있다. 본질주의 철학자들은 우연적인 현상의 배후에 필연적인 본질이 존재하며, 그 본질을 표상하는 언어가 바로 진리라고 생각했다. 본질주의자들은 있는 그대로의 사실 혹은 실재를 표상하는 언어를 ‘문자적인(literal)’ 언어라고 부르고 그렇지 않은 언어는 ‘은유적(metaphorical)’인 언어라고 보았다. 그러나 그런 구분은 유용하지 않다고 보는 것이 로티의 견해이다. 언어는 진리를 표상하는 매개물이 아니라, 세상에 대처하기 위해 인간이 만들어낸 진화의 산물이다. 지금까지 사용해 온 언어로 어떤 사물이나 사태를 표현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인간은 은유를 창조한다. 그런 은유적인 어휘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없어지기도 하지만 특정한 의미로 고정되기도 한다. 문자적인 언어란 그런식으로 고착화된 은유일 뿐, 실재를 표상하는 것과는 관련이 없다. 

언어가 이렇듯 완성된 채 존재하는 것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자아나 공동체도 우연적인 시간의 산물이며, 그 본질을 발견해야 할 어떤 것이라기보다는 우리가 실천적으로 만들어야 할 미완의 어떤 것이다. 로티는 프로이트의 삶에 대한 관점을 차용하여 “각각의 삶이란 제 나름의 메타포로 맵시를 뽐내려는 시도”(95쪽)라고 주장한다. 자아는 각자의 고유한 은유로 완성되어야 하는 한 편의 시이다. 공동체 역시 어떤 철학적인 원리에 입각해서 세워질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우연한 역사적 산물이다. 자유민주주의 사회를 만들 수 있는, 혹은 그 정당성을 밝힐 철학적 원리는 없다. 한 사회가 다른 사회에 비해 정당하거나 우월하다고 주장할 수 있는 근거는 그 철학적 원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사회가 다른 사회에 비해 덜 잔인하다거나 더 자유롭다고 말할 수 있다는 데 있다. 

2부에서 다루는 아이러니즘은 각 개인이 각자의 삶에 대해 갖는 책임의 문제와 관련이 있다. ‘자아’는 내가 완성해야 할 한 편의 시이고, 그렇게 하기 위해 내가 해야 할 일은 나의 삶을 완성시킬 마지막 어휘, 나만의 은유를 창조하는 것이다. 철학자의 글쓰기와 문학가의 글쓰기는 그와 같은 은유를 창조하고자 하는 욕망의 산물이라는 점에서는 다르지 않다. 다만 철학자는 ‘이론’을 만들어 냄으로써 자신을 완성시키고자 하고, 문학가는 시나 소설을 통해서 그렇게 하고자 한다. 그런 글쓰기가 완성에 도달하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을 늘 우려하는 인간이 ‘아이러니스트’이다. 아이러니스트는 자신의 삶을 한 편의 시로서 완성시키고자 하는 욕망을 갖지만 그것이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완성에 이르지 못한 것일 수 있다는 우려를 가지고 사는 인간, 즉 자신의 삶을 책임지고자 하지만 그럴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겸손함을 지닌 인간이다. 

3부에서 언급되는 연대는 다른 사람의 삶을 걱정하고 염려하는 자유주의자의 실천과제이다. 철학자들이 인류의 연대를 인간본성을 토대로 주장해 왔다면, 로티는 ‘인간본성’이라는 어휘 자체가 특정한 상황에 대처하기 위한 하나의 은유에 불과하다고 보고 더 실효성 있는 어휘들을 찾는 것이 좋겠다고 제안한다. 예컨대 팬데믹이 가져오는 고통으로부터 이웃을 구하고자 할 때 인간본성이라는 큰 어휘에 호소하기보다는 감성을 자극할 구체적인 어휘를 동원하는 것이 효과적일 것이다. 종교집회나 정치집회를 열어서 방역에 방해가 되는 행위를 하는 사람들도 자신들의 행위의 정당성을 인간본성에서 가져온다. 집회나 사상의 자유는 천부인권으로서 침해되어서는 안 된다는 식이다. 그들을 움직이려면 인간본성에 관한 종교적, 철학적 논쟁을 하기보다는 그들과 가까운 가족이나 이웃이 끔찍한 질병에 감염될 위험이 있다는 것을 납득시키는 편이 나을 것이다. 자유주의자의 연대는 이웃의 고통에 대해 진심으로 걱정하는 친절한 마음을 통해서 가능하다.

예상치 못한 재난 상황에서, 그리고 급변하는 사회적 환경 속에서 우리는 ‘진리’를 외치는 사람들이 그들 자신의 삶 뿐 아니라 그 이웃들을 고통에 빠뜨리는 사태를 목도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요구되는 것은 진리에 대한 맹신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완성시킬 것으로 생각한 그 진리에 대한 겸손한 회의이며, 종교적이든 정치적이든 거대한 구원에 대한 약속이 아니라 내 옆에 있는 사람을 죽일 수도 있는 침방울을 함부로 튀기지 않겠다는 작은 친절함이다. 자신의 삶이 결핍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겸손한 아이러니스트이자 이웃의 고통을 염려하는 친절한 자유주의자로서의 삶에 대한 이야기로 이 책을 읽는다면 지나친 오독일까?

▷ 이유선 교수

현 서울대학교 기초교육원 강의교수
고려대학교 철학과 및 동대학원 졸, 철학박사
전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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